회화의 재정의: 로버트 라우션버그 7/2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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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6,231회 작성일 10-01-28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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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의 현대 예술가 7th hour: Redefining Painting, Robert Rauschenberg
objets trouves : found object, 뒤샹이 이미 만들어져 있는 변기를 가져다가 샘이라는 이름으로 작품화했다. 변기는 ready made, found object 이다. 라우션버그도 found object 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Neo dada : 1, 2 차 양전 사이인 20년 대에 Dada 운동이 태어나고, 2차 대전 후에 라우션버그와 Jasper Jones 에 의해 Neo Dada 라는 이름을 가진다.
Combine painting painting 과 object 를 모아놓은 hybrid (잡종) 이다. 라우션버그는 Object + 붓질 + 신문 mass media 를 한꺼번에 보여준다.
Parody/ Pastiche 패러디는 남의 작품을 그대로 모방하여 내가 해봄으로서 원작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전략이다. 파티쉐는 작품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그 사람이 쓰는 style 그대로 써보는 전략이다. 라우션버그는 parody 와 pastiche 이 두가지 전략을 다 쓴다.
Assemblage 라우션버그는 종이, 신문, 잡지 오려서 canvas 에 부치는 collage 와 여러가지 사물을 함께 쌓아놓는 Assemblage 를 한 작품 안에 표현했다.
Junk art 쓰레기를 자기 작품에 가져 온다. 1960년대에 서부 California 에서 Junk Art 가 탄생한다. 한 무리의 예술가들이 트럭타고 수집한 쓰레기를 조합해서 아샹블라쥬를 만든다.
Robert Rauschenberg (1925-2008)
Susan Weil, Rauschenberg’s wife (1930-)
Merce Cunningham (1919-2009)
John Cage (1912-1992)
Black Mountain College (1933-1957) Ashville, North Carolina
Black Mountain College 는 필수 과목, 졸업장도 없이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학교이며 각 분야의 예술 workshop 에 모든 faculty 와 학생들이 다 똑같이 참여한다. 예를 들어 그림 workshop 에 소설가, 음악가, 무용가 등도 참여하며 Summer session 에는 외국인도 초빙되어 강의를 한다. 라우션버그를 위시하여 그의 부인 수잔 웨일, 존 케이지, 머스 컨닝햄 등 현대예술을 이끄는 쟁쟁한 예술가들은 거의 다 블렉 마운틴 컬리지 출신이다.1957년에 학교는 문을 닫는다.
Josef Albers (1888-1976), Homage to the Square 1965
Annie Albers, Wife of Josef Albers
Josef Albers는 abstract 의 daily life 응용과 workshop 위주의 수업을 주로 하는 독일의 Bauhaus 예술학교에서 가르치다가 Nazi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해서 Black Mountain College 를 세우는데 공헌하였고 나중에 Yale 대학 학장을 지냈다.
Robert Rauschenberg, White Painting 1951
Untitled (Glossy Black Painting) 1951
라우션버그가 유명하게 된 monochrome 그림 White Painting 이다. Abstract Expressionism 의 반대 급부인 한가지 색으로 canvas를 덥어 버린다. 4개의 canvas를 붙인 것이며, action 과 gesture 등의 격렬한 몸동작이 전혀 없다.
Untitled (Red Painting) ca. 1953
라우션버그의 Red Painting은 한번의 붓질도 없고 물감을 뿌린 것도 아닌데 잭슨 폴락처럼 canvas 면이 우들 두들하다. 천, 신문지를 밑에 구부려서 붙이고, 깨끗하게 빨강색을 칠했다. 아무런 action 도 없는데 폴락과 비슷한 효과가 나왔다. 잭슨 폴락과 그린버그를 조롱하고 있다. 그린버그는 아무 것도 재현 안하면서, canvas 위에 물감을 뿌려서 action 과 힘을 담아냄이 그림이 할 수 있는 절대 예술이다 라고 했다.
잭슨 폴락의 action painting 이나 action 없이 얌전히 칠을 한 라우션버그의 작품이나 주는 effect 는 똑같다. 라우션버그는 ‘너희가 말하는 절대 예술이 무엇이냐?’ 라고 parody 한다. 잭슨 폴락과 그린버그는 대중의 mass media 인 신문을 예술의 반대 개념으로 보고 조잡한 인쇄, 가짜 (kitsch) 라고 조롱했다. 라우션버그는 키치의 핵심인 신문 잡지를 가져다가 아무런 주제와 내용 없이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방법으로 Abstract Expressionism 추구하는 것을 똑같이 해냈다.
Elite 주의적 사고를 가진 그린버그는 art for art 를 주장하며, 대중 문화, Hollywood 영화등에 노이로제가 있을 정도로 키치를 혐오했다. Mass 로서의 대중은 무지해서, 키치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고 했다.
또한 그 당시는 소련 냉전 체제하에 Art for revolution. Art for propaganda (혁명예술, 정치 선전 예술) 운동이 공존하고 있었다. 예술이 사회주의의 message 를 담고 있다 하여 그린버그가 싫어했다. 결국 그린버그의 결론은 kitsch 와 message 가 있는 예술, 이 둘을 뛰어넘는 최고, 최대의 예술의 종착점이 Abstract Expressionism 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라우션버그는 반기를 들고 ‘그렇지 않다. Abstract Expressionism 은 하나의 illusion 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하여 추상표현주의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Creating artwork using a nude model on blueprint paper & sun lamp 1951
라우션버그는 Abstract Expressionism 의 문제점은 현실과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이며, 현실의 문제에 침묵하는 예술이라고 했고, Dada 는 기존 예술을 다 뒤집는 anti-art 라고 했다. 그렇다면 라우션버그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Art for art, art against art 도 아닌 ‘art and life’ 가 그의 답이다. 라우션버그는 삶과 인생이 예술에 같이 들어가야 하며, life 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한다. 신문을 통해 일상을 끌고 왔으며, 사진의 printing technique 에도 관심이 많았다.
Art history 에서 볼 때 painting 은 사진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도전을 받았다. 사진이 재현을 하므로, 미술은 재현을 벗어나 다른 길로 가기를 원했다. 사진은 20세기의 modern art, 아방가르뜨, 추상 미술이 탄생하는데 상당한 촉매 역활을 했다. 50-60년대 인쇄술 및 etching 기술은 mass culture 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엄청난 잡지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린버그는 ‘감히 대중매체를 그림 안에 들고 오는가’ 라고 하면서 키치라고 비난했다.
라우션버그는 Pop Art 의 Andy Warhol 이 Marilyn Monroe 를 가져 오기까지의 디딤돌 역활을 했다. 그는 Abstract Expressionism 을 전복시키고, Dada 의 뒤샹을 다시 가져오는 두 가지 일을 해내어 Pop Art 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
Rauschenberg and John Cage, Automobile Tire Print 1953
뒤샹의 업적은 chance (우연)의 요소를 작품 안에 가지고 온 것이다. 뒤샹의 Large Glass를 운반하던 중에 금이 갔으나 그는 그대로 작품을 전시했으며, 작품의 part 를 분실해도 개의치 않았다. 위의 작품은 잉크 칠한 자동차 바퀴가 scroll 위를 지나가면서, tire 자국을 남긴 것이다. Abstract Expressionism 의 전략인 action 을 가져와서 twist 시켰다. 이것을 parody 라고 한다. 나의 문학 작품에 다른 시인의 유명한 시를 그대로 따와서 나의 것과 같이 쓴다. 그럴 때 사람들은 원전을 읽었을 때 못 보는 것을 본다.
Pastiche 는 작품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그 사람이 쓰는 style 그대로 써보는 전략이다. 라우션버그는 parody 와 pastiche 이 두가지 전략을 다 쓴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장정일<라디오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 처럼
누가 와서 나의 버튼을 눌러다오
굳어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라디오가
되고 싶다
진정일의 ‘라디오’는 김춘수의 ‘꽃’을 plagiarize (표절) 한 것이 아닌가? Parody 와 pastiche 이다. 왜 그랬을까? 김춘수의 ‘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이것처럼 라우션버그도 parody 와 pastiche 를 통해 잭슨 폴락의 Abstract Expressionism 을 다시 한번 반문 하고자 한다.
Rauschenberg, Erased de Kooning Drawing, 1953
de Kooning, Woman, 1950-52
de Kooning 은 Abstract Expressionism 의 대표작가이다. 그의 그림에 나타난 figure 는 그린버그가 싫어했지만 거친 붓질은 충분히 Abstract Expressionist 라고 할 수 있다. 드 쿤닝은 먹고 살기 위해서 간판 그림도 그렸고 이미 당대에 유명해졌다. 폴락이 알콜 문제와 원만치 않은 대인 관계를 가진 반면, 드 쿤닝은 open mind 를 지녔고 젊은 화가들을 환영하며, 그들과 토론을 하기를 좋아했는데 라우션버그도 그중의 한명 이었다.
라우션버그가 드쿤닝에게 그의 drawing 작품을 지워보고 싶으니 하나 달라고 부탁하자, 드 쿤닝은 가장 지우기 힘들고 가장 아끼는 것을 라우션버그에게 주었다. 라우션버그는 지우는데 한달이나 걸리고, 다 지운 드쿤닝의 작품에 Erased de Kooning Drawing 이라는 자기 이름을 붙여서 전시를 하였다.
라우션버그가 뭘하려고 했을까? 드쿤닝 작품을 지우는데 한달이나 걸린, 잭슨 폴락의 action 보다 더한 그야말로 action of action 이다. 지워서 title 을 붙이니까 자신의 작품이 되었다. 제목 하나로 예술 작품이 되었다. 감히 드쿤닝의 작품 (found object) 을 가져다가 감히 전시를 하다니’ 무에서 유가 아닌, 유에서 무를 만들었다. 반대로 가는 것도 창조이다. 라우션버그는 Abstract Expressionism 안에 갇혀있지 말라는 사고의 전환을 말하려 했다. 드 쿤닝의 작품을 지워서 전시함은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선전포고이며, 잭슨 폴락과 Abstract Expressionism 의 정반대로 가겠다는 생각에 포문을 연 것이다.
Rauschenberg, Charlene 1954, Combine Painting
그림도 아닌 것이, 조각도 아닌 것이, object 도 아닌 것이, hybrid (잡종) 이다. 신문지 깔고, 격렬한 붓질을 하고 (pastiche 전략) 우산살을 뜯어서 붙였다. Object + 붓질 + 신문 mass media 를 한꺼번에 보여준다. 라우션버그는 종이, 신문, 잡지 오려서 canvas 에 부치는 collage 와 여러가지 사물을 함께 쌓아놓는 Assemblage 를 한 작품 안에 표현했다.
이걸보면 Abstract Expressionist 들은 ‘내 얘기하네’ 하고 라우션버그의 비아냥을 알아차린다. 아이들이 부모님의 나쁜 것 배워서 똑같이 하면 부모님은 새삼스레 자신의 그 행동이 미워보인다. 라우션버그는 여러가지를 어우르는 combine painting 을 통하여 ‘너 이렇게 그리잖아’ 하고 low culture 에 노이로제가 있는 Abstract Expressionist 들에게 딴지를 건다.
Kurt Schwitters, Merz Pictures 32A The Cherry Picture 1921
1920년 독일의 Hanover Dada 운동으로 늦은 밤 지하철에서 하루가 지난 쓰레기 같은 신문을 줒어서 작업을 했다. 지하철에서 굴러 다니는 신문에서 ‘merz’(commerce)를 보고, 자신의 작품을 merz picture 로 부르기로 했다. 밑에 신문지를 깔고 소위 말하는 쓰레기를 자기 작품에 가져 온다. 라우션버그의 combine painting 과 비슷하다. 이렇게 하여 1960년대에 서부 California 에서 Junk Art 가 탄생한다. 한 무리의 예술가들이 트럭타고 수집한 쓰레기를 조합해서 아샹블라쥬를 만든다.
Jean Auguste Dominique Ingre, Grande Odalisque 1814
Rauschenberg, Odalisk, 1955-58 Free Standing Combine
미술사에서 유명한 그림을 엽서, 잡지에서 오려서 box 에 붙이고 그 위에는 숫탉을 올려 놓고, 밑에는 cushion 으로 stand 를 만들어 조각처럼 세웠다. 조각과 회화 간의 장르가 무너짐이 Post Modernism 의 특징이다.
Grand Odalisque 는 터키에서 데려온 첩, 창녀로 cushion 위에 누워서 손님을 받는다. 라우션버그의 Odalisk 도 쿠션 위에 있고, 수탉이 그 위에 있는데 많은 여자들이 아무데서나 벗고 잘 논다. ‘여자’는 Ingres 의 시대에서 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진일보도 없이 여전히 대상으로서 보여지고 있음을 parody 한 것이다. Abstract Expressionist 들이 예술 안에서 전혀 취급하지 않던 여자 nude 가 1950년대에 low culture 에서 많이 나타난다.
Rauschenberg, Untitled 1954 (Man with White Shoes)
Rauschenberg, Bed 1955
Combine Painting 이다. 라우션버그의 이불 베개를 고스란히 canvas 위에 걸었다. Pastiche 전략으로 나도 너 처럼 듬뿍 물감 칠했음을 보여준다. Abstract Expressionism 의 목적은 회화 안에 message 와 주제를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라우션버그는 subject matter 를 다시 들고 들어 온다. 수단으로 들고 들어오는 object 가 곧 주제가 된다. 피카소가 신문을 오려서 작품에 가지고 들어올때 신문이 주제가 되지 않고 예술 작품의 재료로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라우션버그가 수단으로 ‘침대’ 들고 오면, 그 재료가 곧바로 작품이 된다.
이것은 바로 Abstract Expressionism 이 이야기 해오던 것이다. 수단인 물감을 있는 그대로 뿌리면 작품이 된다. 물감이 남긴 흔적만이 남아있는 예술이 가장 회화스러운 회화이다. 여기서 라우션버그는 parody 를 하고 있다. ‘나도 침대를 수단으로 가져왔는데 (너희가 물감을 수단으로 가져 오듯이) 똑같이 가져와 두니까 침대가 되었네' 그런데 침대 라는 메세지가 생겼네, 너희는 물감을 가져와서 그림 밖의 메시지를 없애라고 했는데 말이야.
Jasper Johns, Flag 1954-5
자스퍼 죤스는 라우션버그와 idea 를 공유했던 동시대 화가로서 Abstract Expressionism 을 다른 방법으로 조롱하고 있다. 신문을 밑에 깔고 그 위에 붓 터치가 살아있게 보이도록 밀납을 녹여서 붙였다. Abstract Expressionism 은 주제가 있으면 안되고 그림 밖의 것을 그리면 안된다. 그들에게 Jasper Johns 는 ‘ 강한 action 없이 신문지와 밀납을 붙이니 저절로 강한 붓터치가 나온다. 또한 이것은 깃발 그림 이기도 하고, 그림 밖의 object 인 깃발로 보이기도 한다’ 라고 말한다. Object 인지? Painting 인지? 경계가 애매모호하다.
Jasper Johns Age 29 at Castelli Gallery with Target Painting, 1958
과녁인지? 과녁 그림인지?
Jasper Johns, Black Market 1961 Combine Painting
사물을 가져다가 예술가는 설치만 한다. 설치 미술의 시초이다. 잡동사니 쓰레기와 notepad 를 붙이고 선으로 여행 가방을 연결했다. Johns는 Abstract Expressionist 가 생각하는 것이 환영에 불과함을 조목조목 집어낸다. 죤스는 폴락이 유명해진 것은 그들이 키치라고 부르는 Life Magazine 의 덕을 결국 본 것이며, CIA 에서 책략적으로 잭슨 폴락의 알콜 중독, 고뇌, 죽음을 신격화 했으며 그의 그림을 등에 업고 미국적인 freedom, democracy 를 전 세계에 선전하고자 했다. 이는 그린버그가 싫어하는 소련의 사회주의 예술보다 더 강한 정치적인propaganda 라고 할 수있다.
라우션버그는 저급 문화 image, 신문을 예술에 들고 왔는데, 그렇다면 그의 예술이 life 에 어떻게 engage 하였는가? 라우션버그의 움직임은 1960년대를 상징하는 paradigm 과 큰 관계가 있었다. 60년대는 역사적으로 가장 무책임한 시대였다. 케네디가 60년에 대통령이 되고 63년에 암살되고 가장 큰 사건인 베트남전이 있었고 61년에 Berlin 장벽이 생긴다. 한국은 4.19 와 5.16 혁명이 있었다.
60년대 대표예술가는 라우션버그와 Andy Warhol 이라고 할 수 있고, Woodstock 의 rock festival, hippie, Marilyn Monroe 등이 연상되며 백남준, Andy Warhol 을 위시해서 예술가라면 drug addict 이어야 하는 그런 시대였다. 2차 대전 후 미국에서는 전쟁의 상처를 망각해 가고, 역사 및 정치에 무관심 해진다. 사소한 것,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는 Trivialism 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져서 Hollywood 영화에 출현한 사람, 노래부르는 사람이 celebrity 로 새롭게 등장해 가수, 배우가 엄청난 power 를 가지는 그런 60년대가 되었다. 그 전에는 사상가, 정치인이 유명 인사였으나 양차 대전 거치면서 사상, 이념이 지긋지긋해지고 그런 것으로 부터 해방하고 싶었다. 이렇게 60년대는 모두가 무책임해 진다. 라우션버그는 고차원의 추상표현주의에 반기를 들고 대중 문화 예술은을 들고 왔는데, 당시의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었다.
Rauschenberg, Estate 1963
Abstract Expressionist 처럼 붓질하고 밑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 라우션버그는 60년 부터는 combine painting 은 그만하고 silk screen 을 하는데 Andy Warhol 보다도 먼저 시작했다.
Rauschenberg, Photograph: Hans Namuth 1964
예술이 쉬워졌고 대중에게 더 가까워졌다. 사람들은 친숙한 케네디의 이미지만 생각하지, 그의 이념같은 것은 생각 안한다.
라우션버그가 해결해야 할 숙제는 Abstract Expressionism 을 전복시키고, Dada 와 low culture 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는 이둘을 해결하느라고, 정치 사회 의식을 고취시킬 만한 것을 하기에는 숨이 찼다. 설사 그가 시도했었더라도 대중은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라우션버그의 이런 approach 로 인하여, 예술로 먹고 사는 사람들, 박물관, collector, dealer 들이 생활에 위기를 느꼈다. 왜냐하면 잡지나 TV 에서 대중이 실껏 보는 대중적인 이미지의 그림들을 museum 이 구태여 사야 할까 하고 고민했고, 그렇다고 라우션버그의 그림을 사기에는 돈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Museum 들은 문제에 봉착했고, 바야흐로 예술은 위기를 맞는다.
1964년 뉴욕 아트의 중심은 여전히 그린버그였고, 라우션버그는 Abstract Expressionist 들에게 미움을 받는다. Abstract Expressionism 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power figure 였고, Jasper Johns 와 라우션버그는 그들 눈에는 가시였으나, 네가 틀렸다는 얘기도 못하고, 아주 불편한, 빼지도 못하고 버릴 수도 없는 존재였다.
한편 라우션버그는 Venice Biennale에서 grand prize 를 받고 또한 그의 회고전이 열리자 사람들은 30살의 새파란 나이에 상과 회고전이 가당키냐 하면서 굉장한 충격을 받는다. 60년대 예술 세계는 라우션버그가 대세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곧 대세가 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Pelican (1965) Photograph: Seven Moore
Oracle 1962-65 Sound Environment
Pelican 은 라우션버그의 performance 이며 Oracle 은 창문, 자동차 문짝, found object 가져다가 그 안에 radio 를 넣어서 소리가 나게 한다. 요즘 현대 미술은 Sound 를 예술 안에 들고 들어온다.
Rauschenberg, Soundings 1968
라우션버그 역시 뒤샹처럼 이후 예술가에게 중요한 역활을 했다. Sound art 를 들고 왔고, music 과 visual art 를 연결시켰다.
1910-20 년대 칸딘스키는 아무 것도 재현하지 않고, 아무 것도 전달하지 않는 음악처럼 되는 것이 회화가 도달해야할 목표라고 하였다. 음악을 듣고 나면 감흥이 남는다. 칸딘스키의 추상에도 음악적인 표현이 들어간다. 그로부터 40-50년후 예술이 music 과 같이 온다.
그전에는 예술에는 각 분야별로 hierarchy 가 있었다. 그러나 라우션버그에게는 예술과 music 과 visual art 가 함께 어우러져 같이 있다. 쟝르의 구분이 없다. 그때그때 마다 다른 라디오 소리처럼 ‘chance’ 의 요소가 들어가 있다. 라우션버그는 4-5년 마다 새 예술의 paradigm 을 제시함으로써, 그 이후의 작가들에게 길을 제시한다.
Rauschenberg, Hoarfrost Editions Series 1974 (silk screen)
Rauschenberg, Cover, Time Magazine Nov. 29 1976
라우션버그는 Abstract Expressionism 옹호자 들에게는 기회주의자 처럼 보인다. 케네디 사진, 마릴린 몬로 사진을 오려서 대중에게 친숙하게 appeal 하면서 유명세를 탄 것 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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