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내기, 오노 요코 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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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5,955회 작성일 10-03-10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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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아시아 예술 6th hour : Cut Piece, Ono Yoko
일본의 은행가 집안의 딸로서 1955년 여자로서 최초로 대학교에 들어갔다. 부유하고 일찍 깨인 집안으로 30년대에 집에 영사기가 있어서 오노 요꼬의 어린 시절 영상물이 남아 있다. 뉴욕주로 가족이 이주한 후, 음악을 공부하는 일본 남학생을 만나 뉴욕으로 야반도주하고, 음악가 애인으로 인해 avant-garde 음악에 노출된다. 이때 Fluxus 초기 멤버들을 만나며, 요꼬도 플럭서스에 가담해 sensational 한 작품을 많이 낸다. 영국 런던에 가서 전시 하던 중에 John Lennon 을 만나 결혼한다
Yoko Ono, Cut Piece, Carnegie Recital Hall, NYC 1965
관객에게 가위를 나누어 주고 ‘무대로 올라와 내 옷을 자르세요’ 라고 하지만 처음에는 관객은 가만히 앉아 있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어 한 사람씩 무대로 나와 요꼬의 옷을 조각조각 자르는 performance 이다.
Charlotte Moorman & Baik Nam Jun, Performing Cage 26’1’, 1499” for a String Player 1965 백남준의 애인이자 cellist 인 샬롯 무어맨이 백남준이라는 악기를 연주한다.
Charlotte Moorman & Baik Nam Jun, Yoko Ono’s Cut Piece 1988 무어맨과 백남준이 오노요꼬의 Cut Piece 를 재연하고 있다.
Yoko Ono’s Cuts Ken Hakuta’s Tie at Paik Nam Jun’s memorial 2006 2006년 백남준의 장례식에서 요꼬가 백남준의 사촌인 하쿠타의 넥타이를 잘라서 함께 묻어준다.
Performance 는 누구라도 한다. 가시화된 물건이 아니므로 표절 plagiarism 이라고 누가 소송할 수가 없다. 사회에서 사람들이 쫓아오는 생각보다 법적 제재 장치는 으례 훨씬 늦게 생기기 마련이다. 백남준과 샬롯이 요꼬의 Cut Piece 를 재연했지만 요꼬는 관심이 없다. 관객이 나와서 자르지 않으면 작품이 안되므로 요꼬 혼자만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Feminism 과 관련하여 여성 작가가 무대에서 옷을 자르는 performance 에는 여러 가지 layer 가 내포되어 있다. 그 행위 자체도 sensational 하지만 남자의 응시 gaze 를 건드린다. 옷의 기능에 대하여도 한자락 깔고 있다. 옷을 사입는 대다수의 여성은 모델이 입었을 때는 예쁜데 내가 입으면 안 이쁘므로 ‘내가 잘못됐다’ 라고 생각한다. Fashion Industry 는 guilty feeling 을 여성의 심리에 심어준다. 따라서 diet, fitness 산업이 창출되며 서로가 공모 관계에 있다. 하지만 오노요꼬 의 Cut Piece 같은 performance 는 옷의 기능을 부순다.
또한 65년 당시에는 터부시 하던 여자의 몸매가 드러난다. ‘미친 거 아냐? 좀 이상하지 않어?’ 라고 쑤근거리지만, 실상 우리는 늘 몸을 갖고 잣대를 삼는다. 옷을 입고 있지만 몸에 대해 항상 신경쓴다. 지하철에서 내 옷에 켸챱 한 바가지를 흘렸어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데, 혼자만이 자신을 많이 의식할 뿐이다. 여자들은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을 끊임없이 신경쓰지만, 자신이 watch 되고 있다고 스스로 느낄 뿐이다. 그리고 그 의식은 사회에서 만들어져서 자꾸 부추겨진다. 오노는 남자들에게 말한다.- ‘와서 잘라봐, 그냥 흘낏거리지 말고.’ 남자들은 그들의 은밀한 잣대를 모를거 라고 생각했는데 들켜버렸고 판을 벌려 주니까 주춤해진다. 70년대에는 Feminism 이 이렇게 과감한 방식으로 터져 나온다.
Yoko Ono, Half-A-Wind, Half-A-Room, 1967
Yoko Ono, Half-A-Wind, Half-A-Room, 1967
실제 가구를 반을 잘라서 자신의 집과 gallery 공간에 interior 처럼 전시했다. 버려진 집을 자르는 고든 마타 클락과 비슷한데, ‘집’ 의 개념을 건드리고 있다. 여성에게 있어 집은 지겨울 수도, 나가고 싶을 수도 있다. 1960년대에는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적었기에 대다수가 housewife 였으며, 집이 지저분하면 주부를 욕하며, 여성에게 있어 집은 힘든 노동의 공간이며 복잡 다단한 곳이었다.
Ono Yoko & John Lennon, Bed-Ins 1967
오노요꼬는 런던에서 전시하던 중에 죤레논을 만나 1967년에 결혼을 하고 honeymoon 중의 신혼방을 공개해서 가자들이 구름떼같이 몰려 들었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침대에 누워 반전 issue 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친구를 쉽게 데려와도 어른이 된 후에는 집을 남에게 보여주거나 초대를 한다는 것은 웬만큼 친할 때 하며 부담감이 따르는 행위인데 요꼬는 과감하게 신혼방을 공개한다.
Louis Bourgeois, Femme Maison (Women House), 1945-47
루이스 부르조아는 feminism 운동의 대 선배격으로서 20-30년 후인 70년대에 feminist 여성 작가들이 봇물터지듯 나온다. 6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오노는 초기 주자라고 할 수 있다. 집과 여성에 대한 생각을 루이스 부르조아는 더 일찍 시작하였다. Femme Maison는 여자 몸의 나체 drawing 인데 머리 부분이 집으로 그려졌다. 여자는 어디를 가도 집을 끌고 간다. 여자는 가족과 외출을 할 때에도 집을 점검하느라고 꾸물거리며 제일 늦게 나온다.
여성에게 집의 의미는 남편이나 자식이 집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느낌과는 또 다르다. 학창 시절에 친구가 좋을때 밖으로만 나돌았고 늦게 들어온다고 혼이 난 경험이 있다. 집은 언제나 따뜻한 곳만은 아니며 집이 답답해 독립하고 싶기도 했던 애증의 관계이다. 그러나 엄마는 집에서 혼자 대충 밥먹을 때가 많으며 엄마에게 집은 복잡하고 짜증나는 공간, 부부싸움과 말 안듣는 자식으로 인해 상처를 받는 공간이기도 하다. 남편과 아이들은 집을 나오면 잊어버리고 해방감을 느끼지만, 엄마는 달팽이처럼 집을 이고 다니며 집 걱정을 한다.
Louis Bourgeois, Cell Vll 1998
내부 공간을 방처럼 꾸민 설치작업으로, 본인의 속옷, 잠옷을 걸어놓고, tapestry 공장이었던 아버지 집의 모형을 공간 안에 넣었다. 아버지가 집 밖에서 데려온 여자들, 밖에서 데려온 처음보는 아버지 애들과 항상 같이 살아야 하는 저주의 공간이었던 프랑스의 집과 뉴욕으로 이주해 자기만의 공간으로서의 집이 같이 공존하고 있다.
Louis Bourgeois, Spider 1998
오노요꼬의 집은 비록 가구가 반 잘라졌을 망정 따뜻한 집의 image 를 풍긴다. 그러나 부르조아는 집을 Cell 감옥이라고 부르며. 어둡고 음산한 동물 우리 같은 느낌을 준다. 밖이 다 보이는데도 나는 못 나가고, 밖에서도 나를 다 보고 있다. 여자의 방은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다. 여자들의 집을 꾸미려는 욕구는 결코 충족되지 않아 매달 잡지에 나오는 유명인사의 집을 흘끗거린다.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므로 시장이 계속 형성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소비를 한다. 욕망을 포장하기 위해 대중 매체는 집을 따뜻한 곳으로 보여주지만, 루이스 브르조아에게는 집이 어두운 곳이다. 간혹 명절 때 친척들이 모이면 감춰왔던 family secret, 부모만의 비밀이 옛날 얘기 하다가 드러나기도 한다.
Louis Bourgeois with Spider IV in 1996
브르조아는 어머니를 나타내기 위해 거미의 image 를 차용한다. 실을 자아서 집을 짓는 곤충, 수컷을 먹는 파괴적인 곤충. 브르조아는 어머니를 더 미워했다. 아버지가 데려오는 여자들을 다 받아주고, 밖에서 낳아 온 애들과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dinner table 에 앉아 밥을 먹는 어머니. 어딜봐서 그 어머니가 따스하고, 자식을 위해 죽는 강인한 존재인가? 딸과 어머니의 관계를 드러내는 작품이며, 브르조아에게 어머니는 가정을 꾸몄지만 하나도 따뜻하지 않은 복잡한 존재이다.
Brassi, Louis Bourgeois at the Academie de la Grande-Chaumiere, Paris, 1937
Louis Bourgeois, Cell (Eyes & Mirrors) 1989-93
여자 방에 대한 stereotype 은 큰 화장대와 거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여자는 방안에서 자기가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image 대로 자신을 꾸민다. 그러나 위의 Cell 이 밖에서 들여다 보이듯이, 여자의 꾸밈도, 변해가는 모습도 다 들여다 보인다. 대다수가 당시의 trend 에 비슷하게 꾸미며, 나만의 공간에 있어도 꾸미고 화장함은 내가 타인과의 공간에 의해 지배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심리는 집을 꾸밈에도 영향을 미쳐 내가 편한대로 꾸미기보다는 누가 놀러오는 것 의식해서 남의 시선과 환영에 끌려 다닌다. Cell (Eyes & Mirrors) 에서 처럼 집에 있어도 누군가 눈을 부릅뜨고 나를 지켜본다.
Louis Bourgeois, A Banquet, A Fashion Show of Body Parts, 1978
브르조아가 디자인한 유방이 덜덜 달린 옷을 남자 모델이 입고 fashion show 를 하고 있다. ‘너도 그렇게 한번 살아봐라’
Ono Yoko, No 4 (Bottoms) 1967
여자가 걸을 때 엉덩이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뒷모습을 video 촬영하였다. 여자의 몸도 집과 같다. Feminist 예술가들은 여자 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여자 몸은 증오와 욕망의 대상이다. 남자들은 걸어가면서 여자의 엉덩이를 본다. 여자들이 오히려 더 본다. 보면서 자기 몸과 비교한다. 내가 남을 그렇게 응시하므로, 남도 나를 그렇게 보겠지 여긴다. 내가 남을 보는 만큼, 딱 그만큼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다.
Carolee Schneemann, Interior Scroll 1975
캐롤리 쉬니만이 몸에 물감을 바르고 vagina 에서 scroll 두루말이 종이를 꺼내서 유명 영화감독과 나누었던 내용을 읽는다. 감독은 영화판은 남성 중심의 장이며 여자는 성공 못 할거라고 조언이랍시고 얘기하는데 여자를 깍아 내리는 발언을 한다. Lady First 역시 역차별이다. 위해주는 척하면서 남자와 구별을 한다.
Hannah Wilke, SOS Starification Object Series 1977
Performance 를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하나 윌키가 무대 위에 나체로 서있고 관객에게 껌을 나누어 주면서 ‘껌을 씹으세요. 씹던 껌을 내 몸에 붙이세요’ 라고 한다. 다 씹은 껌은 상품 가치가 없으며 관객의 타액이 하나윌키의 몸에 묻는다. 더럽고 모욕적인 일이다. 하나윌키는 fashion 잡지에 나오는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여자의 image 도 씹고 버리는 껌처럼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된다. Vogue 잡지에서도 몇 십년동안 소비해 왔으며, 윌키가 껌 performance 를 통해 5배,10배로 진폭시키니까 사람들이 불편해 한다. 윌키는 과연 ‘어느 지점이 불편하지 않음과 불편을 나누는 경계인가’ 를 묻고 있다.
Ono Yoko, Family Album Blood Objects, 2008
요꼬의 어머니 구두를 철로 모양을 만들고 피를 붙였다. 어머니 구두는 딸에게는 동경의 대상이다. 여자가 본능으로 화장하고 하이힐 신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교육이 되어진다. 남자는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어머니의 image 를 투영시키며 염마가 자신에게 해준 것처럼 해주기를 바란다. 집이라는 theme 은 한 인간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쇠뇌시키는 공간이다. 집은 결코 벗어날 수 없고, 버릴 수도 없고, 내려놓지도 못하는 무서운 공간이다. 의지로서 습득된 것이 아니라 어렸을때 나도 모르는 새 머리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Mary Kelly, Post-Partum Document, 1974
메리켈리가 아이를 출산하고 매일 매일을 기록한 육아 일기인 동시에 자신이 느끼는 박탈감, 허탈감, 우울증 등을 기록했다. 대중매체는 출산과 육아를 fantasy 로 포장하였지만 정작 여자 자신은 happy 하지 않다. 목도 못가누는 아이에게 끝없이 해줘야 하며, 임신시 신체적 변화와 매체에서 미화시키는 모유 수유도 실제로 해보니까 감동의 물결은 아니다. 많은 여성들이 post partum 을 겪는데 한없이 우울하고 애도 별로 안 예쁘고, 자기 혼자 이겨낼려고 노력하다가 궁극에는 내가 잘못됐다 라고 생각한다. Speak up 해봤자 남편도 이해못한다. 매체에 의해 여자는 그래야 한다고 교육이 되었는데 실제로 해보니까 너무 다르다. 메리 켈리의 document 는 그 느낌을 다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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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쟁쟁한 페미니스트 작가들인데
미쳤다는 욕을 들어가며 일단 까발려 놓고 생각 좀 해봅시다
요즘의 여성들은 집을 그리 갑갑하게 생각하지 않겠죠
집안에서의 목소리도 제법 큰 것 같구요.
집은 들어가서 자신을 생각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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