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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공주 야오이 쿠사마 1/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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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6,101회 작성일 10-02-0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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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아시아 예술 3rd hour : Yayoi Kusama, Polka Dot Princess




                           Yayoi Kusama (1929-)
 

                         Infinity Nets 2004

야오이 쿠사마는 1929년 생으로 Venice Biennale 에 일본 대표작가로 2번 참석했으며 해밀턴의 대 선배이다.
항상 원색의 가발을 쓰게에 쿠사마의 머리를 본 사람은 없다. 자신이 만든 polka dot 의 옷을 입고 가발을 쓰고 전시장에 나타난다. 1939 년 2차 대전 당시 10살 이었던 쿠사마는 히로시마 원폭을 경험했고, 어렸을 때 hallucination 환영이 보이는 병이 있었다. 자살의 충동이 심해서 40대 중반에 정신병원에 스스로 들어갔고 지금도 병원에서 살면서 가까이에 studio 를 두고 작업을 하고 있다. Hallucination 때문에 힘들어 했지만 부모님은 쿠사마의 정신적 힘듬을 모르고 5형제 중 막내딸이어서 버릇이 없다고 꾸짖고 그림을 못 그리게 했다. 환영으로 인해 점들이 온 세상을 뒤덮는 공포가 있었다. Fear 를 잊으려면 점들을 온 집안에 찍어야 했다. 미술을 못 그리게 하려고 거의 child abuse 수준으로 어머니께 혼이 났으며 미슬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27세 때 미국 Seattle 에 왔고 1년 후1958년에 뉴욕으로 와서 아방가르드 예술을 접한 쿠사마는 신기함에 충격을 받는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전통적인 방법이 대세였지 앤디 워홀, 백남준 등이 주류가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내가 뭘해도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이상한 그림을 그린다고 혼나고 그랬는데’ 쿠사마는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점 찍는 그림을 그리고, 그녀의 그림을 워홀과 도날드 져드가 높이 평가한다.  
 

                 Donald Judd, Untitled 1965

Minimalist 져드는 쿠사마의 minimalistic 한 단순 반복의 패턴을 좋아했다. 열정적인 작가 혼과 expressionistic 한 texture 가 살아 있는 그림을 그리는 Abstract Expressionist 폴락이 1940-50년대를 휩쓸고 있었는데, Minimalist 는 전혀 다른 그림을 하고 싶었다. 쿠사마는 폴락과 반대로 정적이며, 점만 살짝 찍는 의미없는 같은 패턴의 반복이 져드의 Untitled 과 비슷하다. 작가와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은 져드에게 쿠사마도 비슷한 전략을 하는 것 처럼 보였다.



   Eva Hesse (1936-1970), Untitled or Not Yet 1966                                    


       Eva Hesse, Contingent 1969

져드의 단순 패턴 반복은 예술 안에서만 고민하자는 의도로 정치적 예술 혼을 배제하려는 노력이었다. 여기에 60-70년대의 feminist 가 ‘과연 예술가의 정신을 배제한 예술 작품이 가능한가’ 를 반문했다. 예술이 실제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아예 처음부터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기력하다는 주장을 들고 나온다.

Minimalist 는 철, 알루미늄의 차겁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재질을 사용했지만, 에봐 해스는 feminist 들이 사용하는 천, 라텍스의 부드러운 재질을 사용했다. Contingent 는 cheese cloth 를 공중에 달고 라텍스의 고무 재질을 녹여서 사용했다. 관객이 지나가거나 난방이 쎄면 흔들린다. 작품은 어떤 식으로든 공간과 시간의 영향을 받는다. Minimalist 는 vacuum 상태로 영구 보존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지만, Post Minimalist 해스는 시간이 지나면 부식되고 먼지 묻는 것도 작품의 인생이며, 작품이 살아가는 길이 아니냐고 질문을 던진다.



        Jackie Winsor, Bound Grid 1971-72

Grid 는 서양 예술에서 구도를 정확히 그리기 위한 도구로 썼고, 추상화를 그리는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재키 윈저는  Bound Grid 에서 끈으로 묵어서 헝겊으로 바둑판 무늬를 들고 들어오면서 grid 가 더 이상 구도를 재는 도구도 추상 미술의 상징아 아님을 나타냈다. 미니멀리스트가 쓰지 않는 쓸모없는 부드러운 재료를 가지고 작품을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낡고 먼지가 쌓이는 temporality 를 나타낸다.



Yayoi Kusama, Self-Obliteration (자기 망각) by Dots 1968


             Kusama, Accumulation No 2 1966

쿠사마의 도발적인 행동이 뉴욕에서 주목을 받는다. Polka dot 을 너무 찍어서 나중에는 나를 알아볼 수 없다.
부드러운 재질로 길죽한 남성성기의 상징을 만들어 그 위에 엎드려 있다.



Yayoi Kusama, Grand Orgy to Awaken the Dead at MoMA 1969

모마의 정원에서 행한 쿠사마의 performance 가 Daily News 의 표지를 장식했다. 정원의 분수가에 나체로 서있는 여자들에게 쿠사마가 polka dot 을 찍는다. 외설적이다. Is it Art? 라는 대문짝 만한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쿠사마는 베트남 전쟁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나라가 창작 표현의 자유로운 나라인데 남의 나라에 가서 죽이는 일을 한다. ‘너희들은 나의 작품 에 대하여‘ 미친 짓 아냐? 정신병자 아냐? 하고 불편해 하면서 왜 베트남 전쟁 얘기는 안 해?  나는 예쁘게 점만 찍는데 이상한 여자라고 욕하면서 너희는 왜 사람을 죽이는 미국 욕 안해?’ 쿠사마는 자신의 예술을 통해 사회적 issue 에 강하게 개입하고 있다. 사람 개개인의 잣대, 미국인의 잣대, 한국인의 잣대를 건드린다.

Louis Bourgeois (1911-), Robert Mapplethorpe 1982



루이즈 부르조아는 1911년 생으로 71세때의 모습이다. 천, 라텍스를 재질로 쓰는 Post Minimalist 의 대모격으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한다.

1982년 모마에서 최초의 여성 작가 회고전의 주인공을 71세의 부르조아로 선정하고 catalogue 표지용 최근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의 작품인 남성 성기 La Fillette 를 옆에 끼고 환히 웃으며 ‘괘씸한 것들, 이제야 나를 알아봐?’ 하고 말하는 듯 하다.  이 사진을 찍은 작가는 로버트 매플쏘프인데 African American 이며 동성연애자이다. 부르조아 자신도 남성성이 없는 여자, 매플쏘프도 남성성이 없는 작가로 남성 중심으로 내려오는 모마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을 보내는 사진이다. 모마는 minority 인 여자, 동성애자, African American 을 차별하는 정책을 전통적으로 쓰는데, 부르조아는 이 사진 한장으로 그들의 차별을 꼬집고 넘어간다.

모마는 이 사진을 받고 당황해서 ‘왜 하필 이 사진을 catalogue 겉표지로 내야 하나’ 하면서 반대를 표명했다.
돈대는 사람들인 board of trustee 의 대부분이 남자이며 그들에게 카달로그를 mail 할텐데 그들이 싫어할 것은 뻔했다. 결국 모마는 이 사진을 표지로 쓰지 않았다.

루이스 브르조아는 프랑스에서 textile 과 염색 공장을 하는 부잣집 딸로서 태어났고, 공장 바로 옆에 자신의 집 mansion 이 붙어 있었다. 아버지는 때때로 저녁식사 자리에 처음 보는 애를 데려와서 이제부터 같이 살 sibling 이라고 했고, 어머니가 계시는데도 모르는 여자를 데려와 같이 한집에서 살았다. 브르조아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인하여 남성성을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자랐다. 브르조아는 소르본느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으며, 미술사를 전공한 미국인 남편과 결혼해서 미국으로 이주한 후, 망명온 유럽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미술 공부를 정식으로 한다.


            Louis Bourgeois, Maman 1999

Maman은 엄마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하필 거미일까?  그리스 신화 중에 아크네스라는 베짜는 여자와 베틀로 수를 짜는 아테네 신이 등장한다. 아크네스의 칭송이 자자하자 아테네 신은 ‘건방지다, 누가 더 잘하나 내기하자’ 하였다. 판결은 아크네스가 조금 더 잘 짰다로 나왔고, 화가 난 아테네 신은 아크네스에게 ‘평생 실만 짜고 살아’ 저주하면서 그녀를 거미로 만들었다.

에봐 해스 가 쓰는 실, 천 등은 서양 예술에서 여자들이 집에서 하는 손재주인 craft 에서 쓰는 재질로서 천하게 여겼다. 그러나 feminist 작가들은 그런 재료를 들고 들어왔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베틀로 수를 놓는craft 는 저주의 말, ‘실이나 짜라’ 하는 하찮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자라면서 듣는 모든 value 가 가부장제를 떠 받치는 질서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Louis Bourgeois, He Disappeared in Complete Silence 1949

예술가들은 삶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우울하고 depression 의 cycle 이 돌아가며, 인간 만큼 잔인한 것이 없다는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 니체는  ‘인간의 memory 에 지속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hurt 이며, hurt 를 주는 것과 받은 것을 끊임없이 기억한다’ 라고 했다. 대부분의 철학가, 작가, 예술가는 정신 질환이 있다. 그들이 느끼는 행복은 외관에 머물러 있지 않다. 브르조아는 70세가 되어도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 collector 와 미술관에게 받은 여성 차별에 대한 상처를 겹겹히 가지고 있었다.

Kusama 는 결국 hallucination 을 못 견뎌서 토쿄로 돌아가고, 괴기스런 소설을 쓰는 소설가로도 이름이 난다. 브르조아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단편으로 쓴다. 브르조아에게는 책이 종이로만 존재하지 않고 천으로도 존재할수 있다. 내 삶의 핵심을 보여주는 속옷으로 책을 만든다. 자신의 private 한 속옷, 베개, 린넨등을 오려서 책을 만드는 새로운 idea 를 80세가 넘어서도 게속 낸다.



          Louis Bourgeois, La Fillette 1968       

   
Kusama, Infinity Mirror Room, Phalli’s Field 1965
                                                  
La Fillette는 little girl 이란 뜻이다. Phalli는 phallus (남성 성기)의 복수형이다. 솜으로 만든 수백개의 거세된phallus 를 뿌리고 거울을 설치해 무한대 infinite 로 보이게 했다. 남자들이 보러와서 어색하게 서 있다.



Kusama,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Rotterdam, 2008


            Kusama, Invisible Life, 2000


                  Yayoi Kusama, Pumpkin                           


                Mirror Room ( Pumpkin ) 1991
       
Mirror Room  Polka dot 은 앙증맞고 귀여운 느낌으로 여자 원피스, 샌달, 우산 등에 흔하게 보이며, 60년대 유행했던 대중적인 Pop Art 와 잘 어울린다. Mass culture 에서 많이 보는 땡땡이를 예술 작품에 차용했다고 할 수있다. Kusama 의 Polka dot 역시 일상의 물방울 무늬를 빌려와 극대화시킨 것이다.

Mirror Room 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러나 2, 4, 6 시간, 하루 종일 있으면 돌아버릴 것 같다. 쿠사마의 작품은 살기위한 몸부림이며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예전에 자살했을 거라고 말한다. 관객의 눈에는 재미있고  minimalist 에게는 minimal 해보이는 dot 이지만, 쿠사마의 입장은 달랐다. ‘ high art, low art  어쩌고 하는 데서 내 작품이 나온 것이 아니다. 나는 버스 값이 없어서 걸어가는 사람이다. 과연 내 삶과 관계없는 예술 작품이 만들어 질 수 있을까?’ 쿠사마는 더 극단적인 gesture 로 작가의 biography 와 상관없는 작품이 가능한가를 묻고있다.

한 기자가 백남준을 interview 했다. ‘선생님의 작품이 이해가 안 되는데 의도가 뭡니까?’ ‘예술은 모든 것 가진 사람이 부리는 사치야.’ 진지하지 않고 humorous 하게 답한다. 내가 진짜로 얘기한들 네가 알아듣겠느냐? 백남준은 예술 세계가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지, 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고 있었다. ‘내 예술을 사람들이 사랑해서, 이해를 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다.’

이어령과 백남준이 대담을 했다. ‘TV Buddha 는 물고기로 쓸 TV box 를 구하지 못해서 우연히 만들어 졌다는데, 물고기가 물 밖 공중을 떠다니는 것은 그리 새로운 것 아니지 않습니까?  한옥의 처마 밑에 걸어놓는 풍경도 그런 것 아닙니까?’ ‘어어 얘 봐라. 이해를 좀 하네.’  이어령의 질문을 받은 백남준은 순간 놀라는 눈빛을 했다. 백남준은 말한다. ‘ 내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이미 이런 모든 것을 초월한 경지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해밀턴, 부르조아, 쿠사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질문을 던진다. 예술가의 입장에 대하여, 예술가에 대한 모마의 차별적인 attitude 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Yayoi Kusama

김수자는 천, textile 을 주로 하는 작가라는 점에서 쿠사마와 리밍웨이와도 연관이 있다. Mirror Room 에 들어가면 또 작은 방이 있는데 들어오던 나가던 polka dot 에 둘러 싸인다. 1960년대에 polka dot 이 뉴욕의 예술 세계에 나타났을 때는 minimalism, happening, 백남준, pop art, body art, video art, post minimalism, 2nd wave feminism 등이 한참 꽃 피고 있을 때였다.

미니멀리즘과 팝 아트가 ironical 하게도 야오이 쿠사마에게 호의를 보였다. 쿠사마의 땡땡이가 일관적인 연속
무늬를 좋아하는 미니멀리즘과 유사했고, 팝아트의 앤디 워홀이 고급 예술의 icon 을 쳐부수고 코카콜라, 캠벨숩 등을 대중 문화에서 차용하고 있었는데, 아가씨들의 원피스에서 보이는 쿠사마의 대중적인 땡땡이 무늬는 쿠사마도 차용을 하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쿠사마는 그 어느 쪽도 (미니멀리즘도 팝아트도)  아니다. 그녀가 polka dot 에 집착한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polka dot 이 그녀 주변의 세상을 덮치는 환영과 공포 fear 때문이었고 지금도 정신 병원에서 생활하며 gallery opening 이나 해외 전시회 때만 여행을 한다.

워홀은 쿠사마의 땡땡이를 재미있는 대중 문화로 보았고, minimalist 는 쿠사마의 minimal 한 dot 을 보고 그녀가 그림 밖의 것을 집어 던지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쿠사마는 dot 을 찍어야만 생존하는 절박한 위치에서 차비가 없어서 할 수 없이 걸어가는 사람이지만,  앤디 워홀은 차비가 있으면서 재미삼아 걸어가는 사람이다.

쿠사마의 gallery 공간을 잠깐 동안 둘러 보는 것은 재미있지만, 2시간만 있어도 나는 돌 것 같다. 그녀는 몇 십년을 이런 환영에 시달렸으며,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품을 했다. 이점에 있어 60, 70년대 feminist 입장과 비슷하며 동시에 post minimalism 과 맞 물린다. 미니멀리스트들이 쿠사마를 환영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치유하는 수단으로 생사의 처절한 싸움에서 나온 작품이므로, 쿠사마를 미니멀리스트로 볼 수는 없다.

Minimalist 대부분은 남성 작가로 차거운 재질을 쓰며, 공장에다 주문하고, assistant 에게 조립을 시킨다.
그 이유는 결코 귀찮아서가 아니라, 작가의 행동 철학과 혼이 진하게 담긴  Abstract Expressionism
추상 표현주의에 반기를 들기 위해서이다. Abstract expressionist 는 예술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utopia 적 idea 에 겉으로는 냉소를 보내면서, 안으로는 작품을 고가에 팔고 있었다.

미니멀리즘은 이런 추상표현주의 운동을 비판한다. 모마에 가서 미니멀리스트의 작품을 보면 ‘이게 뭐야, 아무 것도 아니네’  정치적 message 도 없고 예술가 정신도 없고,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인다. 그들의 작품은 가서 봐도 의미가 없는데 화집을 사기는 더욱 아깝다. 미니멀리스트는 말하기를 ‘여러분이 직접 gallery 에 가서 ‘너 뭐니? ’ 하면서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만 의미가 있다. 예술은 보는 것이 아니고 경험하는 것이다. 당신이 몇월 며칠 그 작품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 만이 의미있다.’ 고 한다.

대부분 박사나 철학 박사들로 구성된 minimalism 은 상당히 지적인 운동이다. 그들은 20세기 전반을 가르는 운동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책을 쓰는 일을 했으며 그들의 책은 굉장히 어렵다. 미술을 perception 해야 한다고 했으며 인지 과학 등 철학적인 이야기를 들고 왔다. 이런 minimalist 의 움직임이 60년대에 상당히 신선했다. 하지만 도날드 져드의 알루미늄 덩어리, 벽돌 6개 역시 비싼 art commodity 가 되기는 폴락과 매 한 가지였고,  대중에게는 미술이 더 어려워 졌다. ‘현상학이 뭐야? 철학 수업 들어야 하나?’ ‘그들만의 league 인가봐.’ 내게는 보는 거나 경험하는 거나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60년대는 Vietnam 전쟁을 위시해서 여러가지 면으로 힘든 세대였다.  2010년 2월 1일 맨하탄 downtown 의 Woolworth Building 에 있는 International Civil Right Museum 에서 1960년 2월 1일을 기념하는 ribbon cutting ceremony 가 열렸다. 당시의 Segregation 정책은  버스도 흑인 좌석을 지정했으며, African American 대학생들은 Woolworth Building 의 식당에서 먹을 수가 없었는데, 4명의 흑인 학생은 serve 도 받지 못한 채 몇 시간 앉았다 가는 행동을 며칠을 반복했다.  이 침묵 시위가 50개 주로 확산 되었다.


International Humanity Museum
Four young black students, Franklin McCain, Joseph McNeil, Ezell Blair Jr. (later Jibreel Khazan) and David Richmond quietly sat at the Woolworth lunch counter and refused to leave without being served, knowing full well the potential consequences of their actions. This act of bravery sparked other sit-ins throughout America. The sit-in was later used as a civil-disobedience strategy throughout the world to protest all forms of human oppression.

불과 50년 전에 일어난 일로서 흑인들의 침묵 시위에 경찰은 개를 풀어서 물어 뜯게 했다. 미니멀리스트 작가들이 알루미늄 만지작거리고 벽돌을 줄 마쳐 쌓고 있을 때,  밖에서는 흑인 차별 문제, 여성 지위 문제, 베트남 전쟁 등이 동시 다발적으로 터지고 있었고,  Second Wave Feminism, 차별 철폐 운동 등 복잡하고 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던 1960년대 였는데 너희 미니멀리스트 작가들은 가만히 앉아서 무엇을 하느냐는 비판이 일었다.

대다수가 여성 작가인 Post Minimalist 와 Feminist 는 Minimalist 에게 전폭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나는 내 삶의 끈을 놓은 채로 작품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하면 이율 배반적인 느낌이 든다.’  여성 작가들은 천, 고무 등의 말랑 말랑한 재질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얘기, 여성의 얘기들을 들추어 냈다. 

2차 대전 후, 미국 대 소련 구도 속에서 소련은 페쇄적이고 사람을 핍박하는 나라, 미국은 쟈유 평등의 나라로 부상되었지만, 미국의 실상은 사실과 달랐다.  쿠사마의 모마 정원의 happening 사진이--나체의 여자들에게 dot 을 그려 주는-- Daily News 에 ‘Is It Art?’ 라는 title 과 함께 실리자, 사람들은 쿠사마가 정신이 나갔다고 했다. 쿠사마는 ‘정신 나갔다’ 의 standard 가 뭐냐고 되묻고 있다.

쿠사마는 정식으로 서구의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버릇없는 아이를 고치고 싶었던 어머니에게 매를 맞으면서 자랐다. 예전에는 정신 질환을 규정짓는 잣대가 희박했고 우울하다고 하면 ‘배부른 소리’로 치부했다. 정신과 상담을 가도 보험 처리도 않될 뿐더러 사람들은 ‘저 사람 심각한가 봐’ 하고 이상하게 여겼다. 그런 사회 분위기에서 쿠사마 부모님은 쿠사마의 정신적 질환을 인지할 수가 없었다.


Yayoi Kusama, Aggregation One Thousand Boat’s Show 1963
Aggregation One Thousand Boat’s Show 는  readymade boat 를 들고 와서 use value 를 없애고 돈의 가치, commodity 를 벗어 던진다. 똑같은 boat 의 image 를 반복적으로 stencil 해서 벽에 붙였다.  쿠사마가 뉴욕을 떠난 이유는 정신병이 심해진 탓도 있지만 그 당시 같이 활동하던 예술가들과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쿠사마가 이 작품을 내놓은 후에 워홀이 Campbell Soup, Marilyn Monroe 등의 silk screen 을 내놓자, 쿠사마는 워홀이 자신의 것을 빼꼈다 라고 주장했고, 이로 인해 두사람은 관계가 나빠진다



                                             Ann Hamilton, A Round, 1993

A Round  난 한번도 내가 걸치고 있는 옷이 누군가의 피 땀으로 된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앤 해밀턴 textile 을 가지고 숨어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  관광 명소 역시 100년, 200년 거슬러 올라가면 역사가 기록하지 않았던 비참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김수자도 타자, 모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길을 걸을 때 내 곁을 스치는 사람은 나랑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거슬러 올라가 봤더니 나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다.

나라는 사람은 그냥 혼자 존재하지 않고 무수히 많은 사람과 총총히 엮어져 있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도 책임을 져야 할까. 길 가다가 파업 시위를 본다. 내가 그 공장에서 만든 옷을 입고 있다. 나도 저 파업에 책임이 있을까?  해밀턴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녀는 예술 안에서 인생이 미화되는 것aestheticize을 반대한다. 뜨개질, 옷 만드는 행위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닌 사람에게는 재미있을 수 있다. 뭐가 조금만 안 돌아가도 엄마 탓이며, 식구들의 잠재 의식 속에는 주부일이 제일 쉽고 편해 보인다. 살림을 늘 해야 하는 엄마에게는 그 일이 재미있지 않다.

작가 자신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인데, 쿠사마의 작품을 보는 우리들은 그의 작품을 쉽게 받아 들인다.
예술이 생사의 문제가 아닌 단순한 것만 건드린다면 그것이 진정 예술인가? 그러나 다른 한편의 반대 의견은 예술을 볼 때만 이라도 제발 생과 사의 문제를 좀 벗어나자는 의견도 있다.


                            Ann Hamilton, Kaph, 1997                            


         Richard Serra, Torqued Ellipse 11, 1997            

Kaph  전시 공간에 들어가면 퀘퀘한 냄새가 난다. 벽의 3000개의 땀구멍이 눈물 흘린다. 벽 뒤에 튜브관이 설치되어 있고, 술과 증류수를 섞어서 만든 물방울이 벽에서 흘러 나와서 젖고 마르고 축축한 냄새가 난다. 눈물 흘리는 벽-- 예루살렘에 있는 통곡의 벽 Welling Wall 을 얘기한다. 리차드 세라 Torqued Ellipse 11해밀턴Kaph와 비슷하다. 해밀턴은 ‘우리의 삶은 아무 의미가 없는게 하나도 없으며, 우리 모두는 -당신이 인지하던 안하던- 당신과 상관 없어 보여도 실제로는 연관이 있다’ 고 말한다. 삶과 예술은 별개 일수가 없다. 60년대 minimalism  이후 전폭적으로 Post Minimalism 에 속하는 위와 같은 conceptualism 작품이 쏟아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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