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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전 이전의 이탈리아 1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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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6,824회 작성일 10-01-28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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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국가의 근대 미술 3rd  hour: Italy before WW1



Filippo Tommaso Marinetti (centre), the founder of the Futurist movement, with the artists (left to right) Luigi Russolo, Carlo Carrà, Umberto Boccioni, and Gino Severini on Jan. 1912

WW1전의 이태리에는 예술운동이 Futurism 하나 밖에 없다. 르네상스의 발상지이며 미켈란젤로, 레오나도 다빈치 등이 있었고, 15-16세기의 아트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이태리어가 필수였음을 생각하면 서글프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에는 불어, 독어가 미술 공부에 필수이었듯이, 예술의 뒤에는 국가의 힘이 있다. 18-19세기 유럽은 근대국가를 형성해서 나라의 힘이 세어지고, 산업혁명 자본주의의 출현으로 왕권이 무너진다. 그러나 이탤리는 뒤늦게 WW2 가 지나서야 왕권이 무너졌다. 이태리는 도시 중심의 공국 개념이었고 르네상스도 도시 중심으로 부흥했으며, 교황 중심의 르네상스 중심지 베니스, 플로렌스 등은 잘 살았으므로 못사는 시골 지역과 손잡는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주변의 프랑스, 독일에 1870년에 프로이센 전쟁 터지고 독일 국가가 형성되어 힘이 커지니까, 이태리는 불안해졌다. 그래서 통일을 시작했고 이태리의 통일 운동은 1870-71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WW1 1914년에 이태리는 중립이었으나 1915년에 참전한다. 그 무렵의 운동이 Futurism 으로 시인, 극작가, 소설가들의 문학운동에서 출발해서 음악, 미술, 영화 등의 종합 예술로 발전했다.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이 모여서 Futurist Manifesto 를 프랑스 휘가로 신문에 크게 낸다. 휘가로 신문에 낸 이유는 이태리는 유럽 다른 나라에 rival 의식이 있었고 미술의 중심인 파리의 휘가로 신문에 실으면 다른 나라에게도 알려지고, 아울러 이태리의 Futurism 에 다른 나라 예술가들이 동참하기를 바랬다.


Gino Severini, Spherical Expansion of Light 1913-14               

Futurist 작가들이 미술사에서 대접을 못받는 이유는 그들의 예술이 cubism 의 아류라는 이유와 그들이 추구한 파시즘 Fascism 때문이다.  그들의 기본 출발선은 사회운동이지만 전쟁 찬성과 학교, 교회, 박물관 등의 부패 근원지를 불태우라는 급진적 사고를 가졌다. WW1 터졌을 때 러시아는 전쟁을 반대했으나 미래파는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전쟁을 옹호했고, 대포 탱크 등을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서양 미술사에서는 Futurism 을 언급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유태인 모욕 발언을 공공연히 한 바그너ㅡ예술가의 정치에 대한 태도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바그너 음악을 안 듣는다?  한국에서는 친일파 문학을 읽지 말아야 하는가?  Futurist 작가도 훌륭한 그림을 그리는데 그들의 fascist 사상때문에 그림이 환영 못 받았다? —복잡한 issue 임에 틀림없다.


Umberto Boccioni, State  of Mind the Farewells, 1911
큐비즘을 시간과 공간 개념으로 이해하여 한 순간의 snap shot 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을 모아서 dynamic 역동성을 표현한다.
             

Giacomo Balla, Dynamism of a Dog on a Leash, 1912
Movement 를 2차원에 담아내는 도구로 큐비즘을 이해했고 화면 분활시키다 보니까 dynamic 역동적으로 느낀다. 피카소를 보고 movement idea 를 얻었지만 피카소는 still life 만 그렸다. 대부분의 서양 artist 는 피카소를 보고 잘못 이해하고 다르게 해석해서 나름대로의 작품을 내놓았다.


Gino Severini, Dynamic Hieroglyphic of the Bal Tabarin 1912
캬바레의 사람 움직임을 분석적 큐비즘과 파삐에 꼴레를 융합해서 표현하고 글자 polka 를 그림 안에 넣었다. Futurist 는 지적 탐구가 아니라 역동성을 보여주기 위해 글자와 천 등을 종합시켰다. 소리도 그림 안에 담아내고 싶었다.


Carlo Carrà , Patriotic Celebration on Free Word Painting 1914
꼴라쥬이며 화면 분활 방식을 보여주며 단어 의성어 (다다다, 꽝꽝) 를 오려 붙였다. 사람이 '다다다' 하고  읽으면 그림 안에 sound effect 가 있는 것 같다. 큐비즘과 꼴라쥬를 종합하여 증폭시켰다. 하지만 이런 종합 예술을 propaganda 국가 선전 도구로 사용해 애국심에 호소한다. ‘국가 위해서 참전하세요.’


Gino Severini, Red Cross Train Passing a Village, 1915
미래파 작가로서 전쟁을 옹호하고 그림을 통해서 민중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싶었다. 우리가 기차를 이용하여 전쟁 구호물자를 잘 실어나르니 전쟁에 더 많이 참여하라는 message 전달이 목적이다. WW1 후 이태리는1922년 Mussolini 가 정권 잡고 fascist 국가가 되었다. WW1 보다 더 큰 비극인 WW2 의 중심에 이탈리아가 있었고, 거슬러 올라가 보니까  futurist 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futurist 는 그림이 훌륭한데도 불구하고 서양 미술사에서 이야기 안 하고 싶었고 묻혀 있었다.


Umberto Boccioni, The City Rises, 1910—    city 의 움직임과 역동성을 보여준다.


Umberto Boccioni, Development of a Bottle in Space, 1912
Boccioni는 그의 조각 작품 Development of a Bottle in Space 에서 병을 조각 내서 여러 각도에서 동시에 보게 융합을 했다. 3차원을 한눈에 보게 조각을 해서 한면 밖에 못보는 눈의 한계를 한 큐에 해결했다. 다리파, 청기사파는 조각의 장르는 터치하지 않았지만, futurist 는 조각에 있어 추상을 가져온 avant-garde 이며 조각의 장르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Umberto Boccioni, Unique Forms of Continuity in Space 1913
사람의 움직임, 옷의 움직임을 한꺼번에 잡아내서 마치 걷는 동작 중에 있는 것 처럼 보인다.


Pablo Picasso, Maquette for Guitar 1912
위의 기타는 합리적인 기타의 모습이 아님에도 다른  파트가 같이 있으니까 기타라고 읽힌다. 피카소는 그림과 조각의 장르를 애매하게 했다. Picasso 와 Boccioni 이 두 작가 때문에 조각이 낯설어진다. 조각이 더 이상 정지의 개념이 아니라 움직임을 담아낸다.ㅡ 기존의 정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Kandinsky 와 Futurist 는 전쟁을, 다리파는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었지만, 피카소는 어느쪽에도 관심이 없었다.  도전장을 내미는 이들이 꿈은 각각 다르게 꾸지만 대중을 낯설게 하는 효과를 가져옴은 같았다. 전쟁과 사회혁명을 꿈꾸며 추상을 표방한 이 모든 것에 신물이 나서 WW1 후에는 모든 추상은 문을 닫고  figuration 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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