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현대미술4 1950년대, '메시지가 없는' 엥포르멜과 구타이 미술 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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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3,288회 작성일 15-10-24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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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현대미술4 1950년대 구타이와 엥포르멜 운동
Kazuo Shiraga, Please Come in, 1955
전통적으로 예술가들은 작품을 창조하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50년대 일본 전후에 나타난 아방가르드 운동인 구타이(구체화)그룹은 화가의 신적 위치를 무너뜨린다. 미군정이 끝나자 1954년에 요시하라 지로는 구타이 운동을 결성한다. 제도권에 반기를 들고 자유로움을 표방하여, 박물관이나 백화점이 아닌 야외에서 최초의 전시가 열렸다. 오사까에서 젊은 작가들이 나무를 세워놓고 안으로 들어가며 관객 참여를 유도한다. 문화 중심지 도쿄가 아닌 시골에서 열린 이 퍼포먼스는 센세이셔널한 해프닝 정도로 여겨졌다. 요시하라 지로가 72 년에 죽자 이 운동은 끝난다.
도쿄 중심의 르포르타쥬 작가들은 구타이 그룹을 싫어했다. 사회주의 사상에 젖은 르포르타쥬 작가들은 미군정 시대의 아픔을 초현실주의 풍으로 그린다. 하지만 구타이는 정치 및 사상을 배제하며, 의미를 담지 않는 행위예술이다. 구타이의 출발점은 일차 대전 중 취리히에서 논센스 해프닝을 벌였던 다다 운동이라고 할 수있다. 구타이는 50년대에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유럽의 앵포르멜(Art Informel, unformed) 과 발맞추어 나간다. 쟝포트리에(Jean Fautier), 알베르토 부리(Alberto Burri), 윌리엄드쿤닝(Willem de Kooning)등은 형태가 없는 비구상적인 (formless, anti naturalistic, non figurative) 미술 운동을 시작한다.
구타이는 영어로 된 저널을 외국에 보내어 일본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노력을 한다. 또한 라이프 메가진, 뉴욕 타임즈 등에 소개가 된다. 평론가 미셀타피에 MIchel Tapie가 구타이가 일본 전통과 닿아 있다는 글을 발표한 이후, 70년대에 구타이는 재평가된다. 미국의 플럭서스보다 10년을 앞선 구타이는 서구의 happening 작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쇼조 시마모토 Shozo Shimamoto(1928-2013) Work
구타이 미술의 핵심은 그림이다. 화면에 물감을 던지는 기법을 사용한다.
쇼조 시마모토 Shozo Shimamoto(1928-2013) Work: Holes 1950-52
구타이는 캔버스 자체의 물성을 강조하여 제목이 'Work' 이다. 신문지를 여러 겹을 바른 후 물감을 바르고 연필로 구멍을 뚫으니 저절로 구멍이 생긴다.
사부로 무라카미 Saburo Murakami (1925-1996) Work Painted by Throwing a Ball 1954
구타이는 행위에 촛점을 맞춰 흔적으로 남긴다.
사부로 무라카미 Saburo Murakami Opening Six Holes 1955
작가가 벽을 뚫고 나와서 흔적을 남긴다. 일본의 종이문과 유사하여 구타이가 일본 전통과 닿아 있다는 맥락에서 재해석된다.
카즈오 시라게 Kazuo Shirage, Gutai Art on the Stage 1957-8, The Modern Transcendent Sanbaso
가부키, 노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산바소들이 과장된 의상을 입고 무대에 등장한다. 전통을 딛고 나간다.
카즈오 시라게 Kazuo Shirage, Painting with his feet, 1956
구타이는 사물이나 몸을 이용하여 발로 그린다. 작가가 작품과 멀어지는 과정이다. 60년대 초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유사하지만 잭슨 폴락은 제스츄어를 통해 작가의 신적인 위치를 고수한다.
쇼죠 시마모토 Shozo Shimamoto, Work 1961
구타이 작가가 물감을 담은 유리병을 던지니 물감이 흘러서 흔적이 남는다. 형태가 없고 비구상적인 앵포르멜 스타일의 그림이다.
요시하라 지로 Yoshihara Jiro, Red Circle on Black 1965
52년에 서예도 자유로워진다. 묵인회는 추상서예운동을 벌인다. 지로는 젠 부디즘(선불교)을 구타이에 도입한다. '원상'은 전체이지만, 여백이기도 하다.
시라가 푸지코 Shiraga Fujiko (1928-) Work 1955
구타이 작가는 화선지를 붙이기도 한다. 1960년대 모노화에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한다. 모노화는 '물화'로서 물질성을 중요시 한다. 작업을 하는 도구인 돌을 작품으로 놓고 관객과 만나도록 장을 만들어 준다. 물건의 essence 를 중시한다.
한국 현대 미술 1950년대
한국은 50년대 앵포르멜 운동을 거쳐 60년대 모노화, 70년대 초반은 단색화로 넘어간다. 1954년 젊은 화가들은 기성 예술에 반대하는 반국전 선언을 한다. 일본의 제도를 본뜬 국전 시스템에 반대하고 미술 양식도 반대한다. 50 년대 한반도 화가들은 라이프 매거진, 타임지 등 잡지 통해 서양 미술에 접한다. 57 년에 현대 작가 초대전에서 서양 미술이 소개된다.
김환기 19-Vll-71 #209
50년대에 젊은 작가인 김환기, 남관, 이응노 등은 완벽한 추상을 그린다. 이들은 일본에서 미술을 배우고 50년대에 파리로 간다. 현대미술의 중심이 뉴욕으로 옮겨지는 중이었지만 당시 화가들은 비엔날레 등이 열리는 유럽을 여전히 바라보고 있었다.
김환기 피난 열차,판잣집
한국 전중에도 부산의 다방에서 전시회가 열린다.
박서보 회화 No.1 1957
전후에 한국의 대중은 아방가르드 미술 앵포르멜을 부잣집 아들들의 배부른 짓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다가 1984 년에 워커힐 미술관의 개관전을 계기로 앵포르맬이 조명을 받는다. 1950년대에 김종필은 워커힐 호텔 건축 사업을 추진했으며, 박서보 김창렬 등 앵포르멜 작가들에게 호텔에 걸 그림을 커미션을 준다. 이미 앵포르멜 작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던 워커힐 호텔은 20년 후 개관전에서 이 그림들을 전시한다. 이 시기에한국 현대 미술의 시발점은 1957-8년에 시작된 앵포르맬이라고 확립된다.
같은 시기에 민중 미술 및 사회 저항 미술이 나왔지만, 사회적 메시지가 없는 엥포르멜은 정권의 지지를 받는다. 이들은 한국의 대표 화가들이 되고 국가의 nationalism 운동을 동조한다. 엥포르멜, 구타이, 추상 표현주의는 다 안전한 미술로 간주되어 나라를 대표하는 미술로 부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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