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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키워드 ‘변화의 때’를 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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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375회 작성일 15-07-11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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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정점에 있을 때 변화를 주시하고, 모두가 확신할 때 다음의 수를 준비하지 않으면 그것이 기업이든 개인이든, 사업이든 재테크든 결과적으로 실패를 면할 수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바로 나’라는 생각으로 죽을 만큼 정진하고 대중의 생각에 휩쓸리기보다는 대중의 생각을 한발 앞서는 사람이 되도록 스스로 갈고 닦아야만 한다. 


변화’는 성실과 근면에 버금가는 중요한 덕목

「주역」의 ‘계사전’에는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 다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지속된다)”라는 말이 나온다. 

원래 「주역」이란 책은 ‘변화의 책’이다. 하지만 ‘변화’는 역설적으로 수천년을 이어오면서도 변하지 않는 지고지선의 이치다. 공자가 책을 묶은 가죽끈이 일곱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읽었다는 주역의 근본 이치는 ‘어떤 일이 막히면(뜻대로 되지 않거나 그것이 한계에 이르면) 변화하고, 변화하면 통하게 되며, 통함으로써 영원하다’라는 궁즉변의 이치를 설명하는 통변론(通變論)이다.

「주역」에서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달이 차면 이지러지고, 해가 중천에 이르면 기울게 되는데 사물의 이치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것이 다함에도 변하지 않으면 소멸할 것이요, 막혔다고 여겨지면 변화하여 그것이 서로 통하게 하면 영원할 것이다.” 이렇듯 주역은 철저한 부정에서 긍정으로 나아가는 길을 이야기한다.

즉 지금 당신이 막혔다고 여겨지면 즉시 변화를 모색하되 그 변화는 반드시 중천에 이를 때를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아침도 오지 않은 여명기에 햇살이 더디다고 석양을 준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해가 중천에 떠 있다고 어둠을 준비하지 않으면 그것 역시 무모한 일이다. 성공을 꿈꾼다면 그것은 철저한 자기 평가가 선행되고 그 결과 지금 내가 막혀 있다고 여겨지면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은 매너리즘이다. 

요즘 화두가 된 ‘블루오션’ 역시 막히면 변하라는 이치와 같다. 지금 당신이 막혀 있다면 무엇이 변해야 할지를 생각하라. 그러나 당신의 변화는 막힘에 대한 부정이지 도피를 위한 변명이어서는 곤란하다. 지금 당신이 막힌 이유가 나태함이라면 성실을, 자만이라면 근면을, 부족함이라면 단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부정이 전제되지 않은 변화는 도피일 뿐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성실히 살았음에도 여의치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사실 그것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사회구조의 변화로 인해 열심히 산다는 이유만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세상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바로 변화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화란 성실과 근면에 버금가는 중요한 덕목이다.

스스로 최선을 다했음에도 막혔다고 여겨지면 변화하라는 이치는 재테크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지금 처한 상황에서 막히지 않는다면 나아가야 하고, 막힌다면 그것의 원인을 자기중심에서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내 처지가 곤궁한 것은 단지 재테크가 여의치 않기 때문인지, 내가 본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래서 자기 본업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재테크에서 성공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부분적인 문제라 여겨지면 그 안에서 다시 변해야 한다. 당신이 잘못 선택한 주식투자로 막히거나 당신이 업자의 말을 듣고 잘못 산 부동산에서 막히건 간에 그것이 막혔다면 통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오로지 변화를 읽고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다. 

돈의 흐름도 삶처럼 끊임없이 변한다. 경기도 순환하고 유동성도 변화한다. 이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단지 현재의 흐름만 믿고 안주하면 반드시 그르치게 된다. 언제나 그 변화를 주시하고 내가 막히면(상대가 변하면) 반드시 먼저 변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통하게 된다. 그것이 통변론이 가르치는 궁극의 이치다. 

정점에 있을 때는 항상 변화를 주시해야

역사는 지금까지 변화하지 못해 주저앉은 수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너도나도 그 산업에 뛰어들어 거대한 물줄기가 생기면 어느새 블루오션은 거대한 붉은 바다가 된다. 산업혁명 이후 직조­자동차­석유­전기전자­반도체­컴퓨터­IT 그 어느 것을 돌이켜보아도 초기에 발흥하면 어느새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그중에 살아남은 것은 주류가 되고 나머지는 도태된다. 그러나 이때 살아남은 기업들이 다음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그 기업들은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쓰러진다. 지난 50년 전 미국의 상위 1백 대 기업 중 살아남은 기업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굳이 멀리서 찾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혜성처럼 등장하고, 또 사라져간 많은 기업들의 역사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개발경제시대에 설비와 투자를 무한대로 늘리고 늘어난 몸집이 다시 세포분열을 거듭하다가 결국 제풀에 쓰러져간 기업들의 운명은 변화를 그리고 때를 직시하지 못한 대가일 것이다. 항상 정점에 이를 때 변화를 주시하고, 모두가 확신할 때 다음의 수를 준비하지 않으면 그것이 기업이든 개인이든, 사업이든 재테크든 결과적으로 실패를 면할 수 없다. 

최근 부동산 가격의 호황도 마찬가지다. 이제 ‘설마’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을 때 비로소 위험이 잉태되는 것이다. 모두가 조급해질 때 사실은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머지않아 큰 낭패를 당할 것이다. 

투기를 잡을 수 있고 정책으로 차단이 가능하다고 믿던 정책 당국자들이 손을 들고 공급확대를 들고 나오는 순간 그리고 보유자들이 이겼다고 만세를 부르는 순간 이제 거품은 터질 시기만을 재면서 희생양을 찾기 시작한다. 자본시장에서 실수요자라고 불리는 개인들이 초조해하며 금융 부담을 지더라도 그것을 매수해야만 한다고 믿는 순간이 이제 더 이상 아파트를 고가로 사줄 사람이 없다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세상의 어떤 투기열풍도 거품의 정점에서 거품을 인정한 사례는 없다. 살아남으려면 변하라. 당신이 막힐수록, 때로는 당신이 잘나가면 잘나갈수록 더 많이 변하라.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바로 나’라는 생각으로 죽을 만큼 정진하고 대중의 생각에 휩쓸리기보다는 대중의 생각을 한발 앞서는 사람이 되도록 스스로 갈고 닦아야만 한다. 



‘기다림’이 안주가 되지 않도록 조절해야 
「삼국지 연의」에는 조조가 하북을 평정할 때 기다림으로 승리를 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조조에게 패한 원소의 아들 원희·원상은 요동에서 도망쳐 공손강에게 갔다. 하후돈 등 측근들은 조조에게, “공손강이 오랫동안 굴복하지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 원희·원상이 또 가담하였으니 장차 우리의 큰 후환이 될 것입니다. 공손강이 아직 군사를 일으키지 않은 틈을 타서 속히 가서 친다면 요동을 가히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조조는 웃으며 말했다. “제공의 호위를 빌릴 필요도 없을 것 같소. 며칠 후면 공손강이 두 원씨의 머리를 가져올 것이오”라고 답했다. 여러 장수들은 모두 이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공손강이 과연 사람을 보내어 원희·원상의 머리를 가져왔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크게 놀라 조조의 귀신 같은 혜안에 감복해 마지않았다. 

이때 조조는 도리어 크게 웃으며, “과연 봉효(곽가)의 짐작을 못 벗어나는군”이라 말하며 곽가가 죽기 전에 조조에게 남겨준 편지를 꺼내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듣건대 원희·원상이 요동에 가서 가담했다 하니 명공께서는 절대 군사를 쓰지 마십시오. 

공순강은 일찍부터 원씨들이 요동을 병탄할까봐 두려워했는데 이번에 두 원씨가 가서 가담하였으니 반드시 이를 의심할 것입니다. 만약 군사로 치신다면 그들은 힘을 합해 항거할 것이나, 늦추어준다면 공손강과 원씨는 반드시 서로 도모하려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적인 이치입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렇게 기다려서 승리는 취하는 전략을 가리켜 ‘격악관화’(隔岸觀火) 전략이라 부른다. 이것은 소극적으로 넋을 놓고 강건너 불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정황을 잘 살피면서 주시하며 때를 기다리는 적극적인 기다림이다. 즉 기다려서 운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강한 힘을 누르고 억제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승리하는 것이다. 

또 병법의 대가 손자는 “강물에 거품이 일 때는 강을 건너지 마라. 강물에 거품이 일 때는 상류에서 강물이 불어났다는 신호이므로 이때 강을 건너면 화를 입는다”라고 말한다. 강을 건너려 할 때 거품이 인다는 것은 상류에 비가 많이 내려 홍수가 났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적군이 강을 막아 급류가 형성되어 있다는 뜻일 수도 있기 때문에 섣불리 강을 건너지 말고 때를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다.

이때 거품을 보는 것은 안목이다. 강물은 평소와 다름없이 흐르고, 나는 그것을 충분히 건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을 건너기 전에 그것을 잘 살펴 내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미래에 닥칠 화를 없애는 것이 되는 셈이다.

이 두 가지 사례는 기다림으로써 화를 면하는 경우와 기다림으로써 더 큰 이익을 얻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반대로 ‘변화’의 관점에서는 지나치게 소심하고 ‘안주’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변화와 기다림의 사이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함을 알고 변화를 하되, 그 변화는 때를 아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는 삶의 순환이자 생명
때가 이르지 않았는데 무조건 변화를 생각하거나, 다하였음에도 변화하지 않는 것은 모두 잘못된 일이다. 먼저 지금 내가 접하고 있는 모든 상황을 정돈해보자. 가정에서는 변화가 필요치 않은가? 회사에서는 막혀 있지 않은가? 대인관계에서는 궁하지 않은가? 지금 내가 가진 자산의 운용은 그 흐름이 강물처럼 유연한가? 그리고 그중에서 막혔다고 여겨지는 것을 우선순위에 올리고 그것을 소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때를 알아야 하고, 소통의 방식 역시 좀더 쉬운 방향,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닌 독창적이고 힘들면서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만약 그것을 통하기 위해 쉬운 길만 찾는다면 그것은 변화가 아니라 후퇴이며 이러한 후퇴는 곧 스스로를 쇠퇴의 길로 몰아갈 것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혹은 내 안에서 이런 질서를 유연하게 체득해야 한다. 봄­여름­가을­겨울이 변화하고, 낮과 밤이 교대하듯이 성한 것은 쇠하고, 쇠하면 성한다는 이치를 내 안에 받아들이고, 변화를 거부하거나 그렇다고 애써 변화를 꿈꾸지도 말고, 변화를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변화를 기다리지도 않는 것이다.

변화란 지금도 일어나는 순환이며 생명이다. 인체 역시 태어나서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하지만 우리는 단지 10년 전의 사진을 꺼내 볼 때만 그 변화를 깨달을 뿐이다. 불과 10분 전, 한 시간 전과 지금의 내가 다름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사건들과 기회들을 보고도 어제와 오늘의 변화를 알지 못하다가 어느 날 변해버린 세상을 탓하면서 후회하는 것이 인생이다. 

변화는 내가 살아가는 생명이고 몸짓이고, 공기이자 호흡이다. 유연하게 변화하고 궁하기 전에 다함을 깨달아야 한다. 궁하기 전에 변하고 변함으로써 소통하여 쇠퇴함이 없어야만 한다. 다만 그 변함을 정해진 때로 여기거나 맹목적인 목표로 삼아 봄에 추수를 준비하고 가을에 파종을 생각하는 어리석음은 때를 모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변화를 통해 오히려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된다. 항상 변화를 관찰하고 그것을 내 안에 받아들여 하나가 되도록 하라. 그리고 반드시 기억하라. 성공하려면 때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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