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미래에셋 투자손실…50조원 펀드(주식형) 4년 새 22조원 ‘반 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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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칵테일 댓글 0건 조회 2,034회 작성일 11-11-2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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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통 앓는 미래에셋 ◆
사람이 커가며 꼭 한 번쯤 겪게 되는 게 성장통(成長痛)이다. 진찰해 보면 아무 병 아닐 때도 있지만 아픈 증세가 이어진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의욕에 찬 신생기업이 급성장세를 달리다 어느 순간 정체하거나 퇴보하기도 한다. 잘 굴러갔던 조직 안팎에서 이런저런 잡음이 들리고 조직의 수장이 내세웠던 비전이 흔들린다. 위기가 닥칠 때 기업은 스스로 성찰하며 재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장수기업으로 가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요즘 미래에셋이 딱 성장통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1997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설립된 이후 3억원 만들기, 적립식펀드 열풍을 일으키며 한국 펀드 역사를 새로 썼다. 신생 금융사로서는 쉽지 않은 해외 개척의 길에서도 선봉에 섰다. 그러나 2007년 인사이트펀드 열풍 이후 미래에셋 사세는 확실히 움츠러들었다. 펀드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때, 미래에셋이 과거의 영화를 다시 누릴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창립 14주년을 맞은 미래에셋 성장통의 원인은 무엇인지, 극복방안은 없는지 살폈다.

미래에셋금융그룹(이하 미래에셋)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쉼 없이 달려온 미래에셋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진일보(進一步)를 위한 한 차례 성장통을 겪는 듯하다.
창업 이후 10년간 역사는 화려했다. 국내 금융사에 기억될 만한 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미래에셋의 모태는 1997년 설립된 미래창업투자(현 미래에셋캐피탈)다. 이듬해 미래에셋자산운용을, 2년 뒤인 1999년 미래에셋증권을 설립했다.
미래에셋은 창립 초기부터 금융권에서 ‘최초’ ‘처음’이라는 수식어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국내 최초로 펀드매니저 이름을 내건 박현주펀드가 히트를 쳤고 2001년 국내 최초 개방형 뮤추얼펀드인 ‘인디펜던스’와 ‘디스커버리’를 내놓았다. 이 두 펀드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투자에 낯선 일반인들에게까지 ‘미래에셋’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두 펀드의 성적은 한마디로 ‘A+’다. 출시 이후 올해까지 10년간 800%라는 누적수익률을 자랑한다.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연 80%. 매년 원금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의 수익금을 가져간 셈이니 10% 미만의 은행 예금에 익숙했던 투자자에게는 ‘놀랄 노’ 자였다.
이 두 펀드가 출시 이후 2007년까지 주목받으면서 주식을 잘 몰랐던 개미들도 미래에셋 펀드 하나쯤은 갖고 있는 게 투자 상식처럼 여겨졌다. 은행과 증권사 등 판매사들도 회사 불문, 미래에셋 상품을 권하는 경우가 많았다.
적립식 장기투자 문화에 기여했지만…
이뿐 아니다. 미래에셋은 적립식 장기투자 문화를 보급한 공로를 인정받아야 한다. 미래에셋이 적립식 펀드를 선보이기 전만 해도 대부분의 투자란 목돈을 한 번에 넣어두고 또 한 번에 되찾아가는 식이었다. 미래에셋 이후 투자자들은 저축하듯 일정 금액을 꾸준히 납입했다. 주가가 하락할 때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쌀 때 더 사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이른바 코스트 에버리징(cost averaging·평균 매입단가 하락) 투자도 배웠다. 펀드를 판매했던 미래에셋증권도 덩달아 덩치를 키워나갔다.
미래에셋 성장세는 운용 규모에서 한눈에 드러난다. 미래에셋 창립 10주년을 전후한 2006~2008년은 그야말로 초절정기였다. 2006년 1월 15조원이었던 수탁고는 2008년 8월, 불과 2년 6개월 만에 4배인 61조원까지 치솟았다. 당시 2위인 삼성자산운용은 고작(?) 38조원에 그쳤다. 주식형만 따로 보면 그야말로 적수가 없었다. 당시 미래에셋 주식형 펀드에만 50조원 이상의 돈이 모였는데 2위부터는 10조원도 채 모으지 못했다. 당시 펀드 덩치든 수익률이든 언제나 선두는 미래에셋 차지였다.
인사이트펀드 계기 신뢰 무너져
신생기업 10년 차 증후군이었을까. 미래에셋이 창립 10주년을 자축(?)하며 내놓은 펀드가 화근이었다. 인사이트펀드 얘기다. 투자 지역과 자산 종류를 사전에 정하지 않은 채 적극적으로 자산을 배분, 수익을 내겠다고 했다. 그간 미래에셋 성장세를 지켜본 투자자들은 ‘박현주’라는 이름 석 자에 다소 무리해 보이는 운용 방식에도 토를 달지 않았다. 당시 주식형 펀드의 평균 운용보수(연 0.6~0.7%)를 훨씬 웃도는 수수료(연 1.5%)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2007년 10월 31일 출시 당일, 새벽부터 대기표를 받고 긴 줄을 서가며 펀드에 가입하느라 장사진을 이뤘다. 그렇게 인사이트펀드에만 쌓인 돈이 4조8000억원이다.
그러나 10주년 축하파티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껏 달아올랐던 중국 주식시장에 ‘몰빵’하다시피 투자했지만, 중국 거품이 꺼지고 설상가상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금융위기가 닥치자 미래에셋에 위기가 엄습했다.
1등 우등생이 이렇게 무너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금융위기 이후의 성적표는 말이 아니다. 미래에셋 대표상품인 인사이트펀드의 수익률은 2007년 10월 설정 이후 1년 만에 -60%를 기록하기도 했다. 1억원의 돈을 넣었다면 1년여 만에 투자원금의 5000만원 이상 손해 본 셈. 통찰력(insight) 있는 펀드가 됐었어야 할 인사이트펀드는 ‘반 토막 펀드’라는 오명을 얻었다.
당시 ‘모두가 안 좋았는데…’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인사이트펀드는 주식혼합형 펀드로 구분된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1년간 국내 주식혼합형 펀드의 연초 대비 평균 수익률은 -15%대였다. 또 글로벌 자산배분 펀드도 -25%대였으니 인사이트펀드가 상대적으로도 ‘참 못했다’라는 소리를 들을 만했다.
한 국내 운용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당시 돈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투자하겠다는 투자전략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투자할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神)만이 할 수 있는 투자를 하겠다는 얘기처럼 들렸고 미래에셋의 오만함도 느껴졌다. 하지만 미래에셋이 워낙 잘나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크게 비난하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또 인사이트펀드는 애초부터 글로벌 펀드가 아닌 중국 펀드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미래에셋의 톱경영진이 중국 낙관론을 펼쳤고 실제 운용 전문가도 중국에 한정돼 있었다. 마치 요즘 자문형 랩이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에 집중했다가 화를 보는 것과 비슷했다.”
인사이트펀드 출시 후 꼭 4년이 지난 지금, 설정 이후 수익률은 여전히 마이너스 25%다. 지금까지도 수익률 부진→펀드 환매→수익률 회복 지연→펀드 환매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자산운용·증권 실적 덩달아 하락
인사이트펀드 사태의 여파는 컸다. 투자자들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미래에셋 대처 방식에 실망하고 자금을 뺐다. 2008년 60조원에 달했던 운용자산은 불과 3년 만에 33조원대로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미래에셋의 자랑이었던 주식형 펀드 규모도 22조원대로 떨어졌다. 한참 아래로 내려다봤던 삼성자산운용과 1위 다툼을 벌이는 상황에 몰렸다. 위기가 잦아들고 주가가 상승세를 탔던 2010년, 다른 운용사에 돈이 몰릴 때 미래에셋은 외면당했다.
위기 이후 미래에셋은 좀처럼 일어서지 못하는 분위기다. 운용 성적부터 좋지 않다. 올해 연초부터 최근까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펀드 수익률(액티브주식 일반 기준)은 -12.32%로 순자산 200억원 이상을 운용하는 41개사 가운데 38위다. 미래에셋보다 성적이 나쁜 운용사는 3개사에 불과하다. 1년 수익률은 -6.87%, 2년 수익률은 11.34%, 3년 수익률은 61.17%로 37~40위권에서 허덕인다. 5년 동안 전체 41개 운용사의 평균 수익률보다 나은 적이 없다. 그나마 5년 수익률(45.97%)이 평균(46.5%)에 가까울 뿐이다.
인력이 빠져나가는 현상도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올해 들어 미래에셋 간판펀드인 디스커버리를 운용하던 서재형 전 본부장이 회사를 나와 창의투자자문을 설립했다. 박주평, 강두호 본부장이나 양정호, 조문수 매니저 등 간판 운용역도 회사를 떠났다.
주축인 자산운용이 흔들리면서 미래에셋증권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1999년 설립 이후 꾸준히 이익을 늘려왔던 미래에셋증권은 2007년 3687억원 영업수익을 정점으로 하락세의 길을 걷는 중이다. 2008년 거의 반 토막 수준인 2019억원을 기록하더니 지난해엔 1788억원으로 밀려났다.
미래에셋증권 주가도 말이 아니다. 2006년 상장 당시 미래에셋증권 공모가는 4만8000원. 이 주가는 미래에셋이 창립 10주년을 맞으며 정점을 달리던 2007년 11월 19만7100원까지 치솟았다. 우리사주를 받은 직원들은 소위 ‘대박이 났다’며 연일 싱글벙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펀드 열풍이 꺼진 지 4년, 미래에셋증권 주가는 공모가에 훨씬 못 미치는 3만2900원(11월 17일 기준)에 머물고 있다.
2005년 인수한 미래에셋생명도 꺾였다는 지적이다. 미래에셋생명은 2007년 주식시장 ‘붐’을 타고 변액보험 시장에서 맹활약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투자상품 성격이 강한 변액보험이 팔리지 않자 미래에셋생명도 위기에 빠졌다. 보험사의 건정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을 맞추기 위해 2008년 급하게 유상증자도 했다. 미래에셋생명에서 퇴직한 설계사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일도 벌어졌다.
사람이 커가며 꼭 한 번쯤 겪게 되는 게 성장통(成長痛)이다. 진찰해 보면 아무 병 아닐 때도 있지만 아픈 증세가 이어진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의욕에 찬 신생기업이 급성장세를 달리다 어느 순간 정체하거나 퇴보하기도 한다. 잘 굴러갔던 조직 안팎에서 이런저런 잡음이 들리고 조직의 수장이 내세웠던 비전이 흔들린다. 위기가 닥칠 때 기업은 스스로 성찰하며 재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장수기업으로 가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요즘 미래에셋이 딱 성장통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1997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설립된 이후 3억원 만들기, 적립식펀드 열풍을 일으키며 한국 펀드 역사를 새로 썼다. 신생 금융사로서는 쉽지 않은 해외 개척의 길에서도 선봉에 섰다. 그러나 2007년 인사이트펀드 열풍 이후 미래에셋 사세는 확실히 움츠러들었다. 펀드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때, 미래에셋이 과거의 영화를 다시 누릴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창립 14주년을 맞은 미래에셋 성장통의 원인은 무엇인지, 극복방안은 없는지 살폈다.

미래에셋금융그룹(이하 미래에셋)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쉼 없이 달려온 미래에셋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진일보(進一步)를 위한 한 차례 성장통을 겪는 듯하다.
창업 이후 10년간 역사는 화려했다. 국내 금융사에 기억될 만한 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미래에셋의 모태는 1997년 설립된 미래창업투자(현 미래에셋캐피탈)다. 이듬해 미래에셋자산운용을, 2년 뒤인 1999년 미래에셋증권을 설립했다.
미래에셋은 창립 초기부터 금융권에서 ‘최초’ ‘처음’이라는 수식어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국내 최초로 펀드매니저 이름을 내건 박현주펀드가 히트를 쳤고 2001년 국내 최초 개방형 뮤추얼펀드인 ‘인디펜던스’와 ‘디스커버리’를 내놓았다. 이 두 펀드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투자에 낯선 일반인들에게까지 ‘미래에셋’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두 펀드의 성적은 한마디로 ‘A+’다. 출시 이후 올해까지 10년간 800%라는 누적수익률을 자랑한다.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연 80%. 매년 원금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의 수익금을 가져간 셈이니 10% 미만의 은행 예금에 익숙했던 투자자에게는 ‘놀랄 노’ 자였다.
이 두 펀드가 출시 이후 2007년까지 주목받으면서 주식을 잘 몰랐던 개미들도 미래에셋 펀드 하나쯤은 갖고 있는 게 투자 상식처럼 여겨졌다. 은행과 증권사 등 판매사들도 회사 불문, 미래에셋 상품을 권하는 경우가 많았다.
적립식 장기투자 문화에 기여했지만…
이뿐 아니다. 미래에셋은 적립식 장기투자 문화를 보급한 공로를 인정받아야 한다. 미래에셋이 적립식 펀드를 선보이기 전만 해도 대부분의 투자란 목돈을 한 번에 넣어두고 또 한 번에 되찾아가는 식이었다. 미래에셋 이후 투자자들은 저축하듯 일정 금액을 꾸준히 납입했다. 주가가 하락할 때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쌀 때 더 사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이른바 코스트 에버리징(cost averaging·평균 매입단가 하락) 투자도 배웠다. 펀드를 판매했던 미래에셋증권도 덩달아 덩치를 키워나갔다.
미래에셋 성장세는 운용 규모에서 한눈에 드러난다. 미래에셋 창립 10주년을 전후한 2006~2008년은 그야말로 초절정기였다. 2006년 1월 15조원이었던 수탁고는 2008년 8월, 불과 2년 6개월 만에 4배인 61조원까지 치솟았다. 당시 2위인 삼성자산운용은 고작(?) 38조원에 그쳤다. 주식형만 따로 보면 그야말로 적수가 없었다. 당시 미래에셋 주식형 펀드에만 50조원 이상의 돈이 모였는데 2위부터는 10조원도 채 모으지 못했다. 당시 펀드 덩치든 수익률이든 언제나 선두는 미래에셋 차지였다.
인사이트펀드 계기 신뢰 무너져
신생기업 10년 차 증후군이었을까. 미래에셋이 창립 10주년을 자축(?)하며 내놓은 펀드가 화근이었다. 인사이트펀드 얘기다. 투자 지역과 자산 종류를 사전에 정하지 않은 채 적극적으로 자산을 배분, 수익을 내겠다고 했다. 그간 미래에셋 성장세를 지켜본 투자자들은 ‘박현주’라는 이름 석 자에 다소 무리해 보이는 운용 방식에도 토를 달지 않았다. 당시 주식형 펀드의 평균 운용보수(연 0.6~0.7%)를 훨씬 웃도는 수수료(연 1.5%)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2007년 10월 31일 출시 당일, 새벽부터 대기표를 받고 긴 줄을 서가며 펀드에 가입하느라 장사진을 이뤘다. 그렇게 인사이트펀드에만 쌓인 돈이 4조8000억원이다.
그러나 10주년 축하파티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껏 달아올랐던 중국 주식시장에 ‘몰빵’하다시피 투자했지만, 중국 거품이 꺼지고 설상가상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금융위기가 닥치자 미래에셋에 위기가 엄습했다.
1등 우등생이 이렇게 무너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금융위기 이후의 성적표는 말이 아니다. 미래에셋 대표상품인 인사이트펀드의 수익률은 2007년 10월 설정 이후 1년 만에 -60%를 기록하기도 했다. 1억원의 돈을 넣었다면 1년여 만에 투자원금의 5000만원 이상 손해 본 셈. 통찰력(insight) 있는 펀드가 됐었어야 할 인사이트펀드는 ‘반 토막 펀드’라는 오명을 얻었다.
당시 ‘모두가 안 좋았는데…’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인사이트펀드는 주식혼합형 펀드로 구분된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1년간 국내 주식혼합형 펀드의 연초 대비 평균 수익률은 -15%대였다. 또 글로벌 자산배분 펀드도 -25%대였으니 인사이트펀드가 상대적으로도 ‘참 못했다’라는 소리를 들을 만했다.
한 국내 운용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당시 돈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투자하겠다는 투자전략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투자할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神)만이 할 수 있는 투자를 하겠다는 얘기처럼 들렸고 미래에셋의 오만함도 느껴졌다. 하지만 미래에셋이 워낙 잘나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크게 비난하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또 인사이트펀드는 애초부터 글로벌 펀드가 아닌 중국 펀드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미래에셋의 톱경영진이 중국 낙관론을 펼쳤고 실제 운용 전문가도 중국에 한정돼 있었다. 마치 요즘 자문형 랩이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에 집중했다가 화를 보는 것과 비슷했다.”
인사이트펀드 출시 후 꼭 4년이 지난 지금, 설정 이후 수익률은 여전히 마이너스 25%다. 지금까지도 수익률 부진→펀드 환매→수익률 회복 지연→펀드 환매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자산운용·증권 실적 덩달아 하락
인사이트펀드 사태의 여파는 컸다. 투자자들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미래에셋 대처 방식에 실망하고 자금을 뺐다. 2008년 60조원에 달했던 운용자산은 불과 3년 만에 33조원대로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미래에셋의 자랑이었던 주식형 펀드 규모도 22조원대로 떨어졌다. 한참 아래로 내려다봤던 삼성자산운용과 1위 다툼을 벌이는 상황에 몰렸다. 위기가 잦아들고 주가가 상승세를 탔던 2010년, 다른 운용사에 돈이 몰릴 때 미래에셋은 외면당했다.
위기 이후 미래에셋은 좀처럼 일어서지 못하는 분위기다. 운용 성적부터 좋지 않다. 올해 연초부터 최근까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펀드 수익률(액티브주식 일반 기준)은 -12.32%로 순자산 200억원 이상을 운용하는 41개사 가운데 38위다. 미래에셋보다 성적이 나쁜 운용사는 3개사에 불과하다. 1년 수익률은 -6.87%, 2년 수익률은 11.34%, 3년 수익률은 61.17%로 37~40위권에서 허덕인다. 5년 동안 전체 41개 운용사의 평균 수익률보다 나은 적이 없다. 그나마 5년 수익률(45.97%)이 평균(46.5%)에 가까울 뿐이다.
인력이 빠져나가는 현상도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올해 들어 미래에셋 간판펀드인 디스커버리를 운용하던 서재형 전 본부장이 회사를 나와 창의투자자문을 설립했다. 박주평, 강두호 본부장이나 양정호, 조문수 매니저 등 간판 운용역도 회사를 떠났다.
주축인 자산운용이 흔들리면서 미래에셋증권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1999년 설립 이후 꾸준히 이익을 늘려왔던 미래에셋증권은 2007년 3687억원 영업수익을 정점으로 하락세의 길을 걷는 중이다. 2008년 거의 반 토막 수준인 2019억원을 기록하더니 지난해엔 1788억원으로 밀려났다.
미래에셋증권 주가도 말이 아니다. 2006년 상장 당시 미래에셋증권 공모가는 4만8000원. 이 주가는 미래에셋이 창립 10주년을 맞으며 정점을 달리던 2007년 11월 19만7100원까지 치솟았다. 우리사주를 받은 직원들은 소위 ‘대박이 났다’며 연일 싱글벙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펀드 열풍이 꺼진 지 4년, 미래에셋증권 주가는 공모가에 훨씬 못 미치는 3만2900원(11월 17일 기준)에 머물고 있다.
2005년 인수한 미래에셋생명도 꺾였다는 지적이다. 미래에셋생명은 2007년 주식시장 ‘붐’을 타고 변액보험 시장에서 맹활약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투자상품 성격이 강한 변액보험이 팔리지 않자 미래에셋생명도 위기에 빠졌다. 보험사의 건정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을 맞추기 위해 2008년 급하게 유상증자도 했다. 미래에셋생명에서 퇴직한 설계사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일도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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