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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는 옹기, 한약을 머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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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타라곤 댓글 0건 조회 1,792회 작성일 11-11-1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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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풀리지 않는 봄날의 빗장이 겨우 열리자마자 학계와 문화계에 각종 행사와 전시회가 풍성하다. 그중에서도 길가다 우연히 들른 소박한 옹기전시회는 또 다른 감명을 안겨준다. 태어나서 온 생을 거무칙칙한 간장이나 냄새나는 된장, 알싸한 고추장을 가슴에 안고 살았을 항아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우람한 체형에 인심 좋은 아주머니의 품을 닮은 수퉁이가 있는가 하면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청초한 모습으로 한켠에 앉아 있는 옹배기도 있다.

1.jpg애당초 어느 집 뒷뜰 장독대에서 뜨거운 햇살과 거친 눈보라를 마다하지 않고 군소리 없이 갖은 장류와 온갖 음식들을 익혀내었던 그들이었다. 이제는 자신의 역할을 그만둔 지 오래고 그저 장인의 손놀림으로 그려낸 새, 난초, 파도 문양 같은 그림이 그려진 것이나, 유약이 잘못 흘러내려 생겨난 기이한 모습을 한 것, 가마에서 뜨거운 열기에 그만 온몸이 뒤틀려 특이한 태생의 것들이 가끔씩 호사가의 수집 대상이 되어버린 터이다.

손잡이를 붙인 옹기약탕기의 기능성

한 바퀴 휘익 둘러보니 그리 넓지 않은 전시장에 드문드문 놓인 장독들이 장터에 모여 앉은 시골 사람들처럼 수더분하게 보인다. 내가 지나친 뒷자리에선 그들만의 한가하고 오래된 이야기들이 도란도란 들리는 듯하다. 그저 그렇게 잠시 추억여행을 다녀온 듯 쉽게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문가에선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뭉툭한 손잡이가 몸통에 붙어 있는 재래식 옹기약탕관이 눈에 들어 왔다. 초콜릿 색깔의 몸체에 바닥은 펑퍼짐하고 시욱(둥근 가장자리)을 붙여 투박한 모습으로 밖으로 뒤집혀 있다. 손잡이가 달린 점이 다른 옹기와 확실하게 구별되며, 그것은 주전자의 주둥이 모양을 조금 크게 확장하여 옹기쟁이의 거친 손아귀에서 꾹꾹 눌러 붙인 보잘 것 없는 생김새이다.

하지만 이 그릇은 숯불로 끓어오른 뜨거운 약탕기를 맨손으로 움켜쥘 수 있는 좋은 손잡이 기능을 한다. 아마도 이 그릇의 원형태는 삼국시대부터 사용했던 탕기바닥에 세발이 달리고 몸체에 기다란 손잡이를 붙인 약두구리[초두鐎斗]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대개 이러한 약탕관은 1회 분량에 상당하는 1첩을 달이는데 사용되는데, 두 그릇 사이에 담긴 용량이 차이가 나는 것은 세월이 지나면서 1회 복용량이 점차 늘어났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한편 재질 측면에서 구리나 철제, 혹은 은제 용기를 사용하다가 옹기로 바뀐 것은 음약(飮藥) 문화가 점차 일반 민중들에게 확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선사시대 음식문화의 유품, 질그릇

인류가 흙을 빚어 질그릇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서기전 10,000년∼6,000년경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실물로 전해지는 것은 대략 서기전 6,000년∼5,000년 전의 것이다. 처음에는 흙을 빚어 햇볕에 말려 사용하다가 불에 구워 사용하면 훨씬 단단하고 편리한 용구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우연히 깨달았다. 초기에는 600℃에서 구워 연질 토기를 만들어 쓰다가 이후 서기1세기 무렵 가마와 물레 기법을 도입하면서 1100∼1200℃의 고열로 구워 흡수성이 적은 경질 토기를 만들 수 있게 발전되었다고 한다. 옹기는 선사시대부터 사용하던 질토기에 잿물로 만든 유약을 발라 구은 형태로 우리 민족이 수천 년 동안 갖가지 음식을 저장하고 발효시켜 가공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던 도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옹기는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무겁고 보관하기 어렵다는 이유와 무엇보다도 주거형태가 아파트 중심의 실내생활 위주로 급격하게 전환되고 냉장고의 보급으로 저장기능이 확보되면서 주부들로부터 점차 외면 받게 되었다.

안전한 한약, 전탕과 정성이 아우러져야

근래 수입산 약재의 중금속 오염이나 잔류농약의 검출로 인하여 전통적인 한약 복용까지 불신을 받고 있다. 그러나 다른 먹거리에 비해 한약재 오염이 심각한 지경은 아닐뿐더러 이들 한약재를 한데 넣어 가열하여 혼합 탕전할 경우, 대부분의 중금속이 자체 화합반응을 일으켜 제거된다는 사실이 실험결과로 밝혀졌다. 역시 우리 민족의  끓여서 먹는 관행은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화로 위의 약탕관에서 탕약이 끓어오르는 것을 두고 이어령 선생은 “김과 함께 아련히 피어오르는 생명과의 화해”라고 문화적으로 해석하였다.
 
2.jpg전래의 탕전방식은 약탕기에 약재와 맑은 물을 붓고 입구를 한지로 덮어 네 귀퉁이를 비틀어 봉하고 수분이 한꺼번에 증발되거나 끓어 넘치는 것을 방지한다. 약탕기의 입구가 좁고 바닥이 넓은 것은 가열할 때의 열효율을 좋게 하고 우러나온 약액이 쉽게 증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또한 입구의 가장자리인 시욱과 밑바닥은 유약을 바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시욱은 약포지를 위에 덮어 김이 세지 않도록 동여매고 달여진 약물을 따라낼 때 약 찌꺼기가 약물을 따라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지혜이고 밑바닥은 열기를 쉽게 전달시키기 위한 배려일 것이다.

근래에는 필요한 분량을 한꺼번에 달여 1회 분량씩 포장하여 주고, 집에서 간편하게 달여 먹을 수 있는 전기제품도 다양하게 출시되고, 대부분 필요한 분량을 한꺼번에 달여 복용하기 편리하게 1회 분량씩 포장하여 주기 때문에 굳이 약탕기를 사용해야할 일이 없게 됐다. 이제는 어엿하게 전시장의 미술품이 되어버린 약탕기를 보고서 난 어려서 감기몸살 뒤 끝에 어질했던 눈으로 탕약이 끓기 시작하여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모습을 바라보면서 생명의 훈김을 느꼈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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