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인의 꿈, 장생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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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타라곤 댓글 0건 조회 1,053회 작성일 11-11-1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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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근교에서 신축건물을 세우기 위해 터 닦기 공사를 하던 부지에서 백제시대 목간과 몇 가지 유물이 출토되었다. 오랜 역사 문화의 고장인지라 새로운 유물이 발견되는 것은 그다지 놀랄 일만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출토가 유달리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백제시대에 마약이 다량 유통된 증거가 나왔다기 때문이다. 또한 대서특필한 기사 덕분에 네티즌들이 백제인의 역사를 마약중독으로 몰았다라고 하면서 파장도 커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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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돌가루 약재로 만든 만능약
문제의 발단은 짐을 보낼 때 화물 꾸러미에 물건의 종류와 양, 받는 사람 등속을 적어 보낼 때 쓰이는 하찰(荷札) 즉 요즘으로 말하자면 물표나 화물꼬리표에 해당하는 나무 조각에 쓰인 몇 글자의 기록 때문이다.
고문자학 전문가에 의해 ‘오석구십근’[五石(九)十斤]이라고 판독된 이 나무 조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오석(五石)은 물론 돌 이름이나 약재명이 아니며 다섯 가지 돌가루로 만든 약방을 의미한다. 오석이 무엇인가는 아직 명확하진 않으나 혹자는 여석(礜石), 자석영(紫石英), 백석영(白石英), 종유석(鐘乳石), 적석지(赤石脂)라고 하며, 혹은 여석대신 석유황이 등장하기도 한다. 중국의 진(晉)나라때 연단술사이자 의학자로 유명한 갈홍(葛洪)이 지은『포박자(抱朴子)』에 등장하는 오석은 단사(丹砂), 웅황(雄黃), 백반(白礬), 증청(曾靑), 자석(磁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오석은 먹고 나면 몹시 열이 나서 몸을 항상 차갑게 해야만 했다. 그래서 차거운 음식을 먹고 찬바람을 쏘이고 시원한 옷을 입고 서늘한 곳에 거처해야만 했기에 일명 한식산(寒食散)이라고 불렀다. 당대의 수많은 유명 인사들과 도사들이 이 한식산에 매료되어 약을 복용했다는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오석은 중국의 위진남북조 즉 『삼국지(三國志)』의 시대배경이 되었던 시기가 끝날 무렵부터 그 뒤를 이은 분열의 시기에 복석(服石)의 풍조가 만연했던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물증이라 할 수 있다.
석약(石藥) 복용의 문화사
기존의 학설에 의하면 당시 조조의 양아들로 입적되어 총애를 받던 하안(何晏)이란 인물은 상서벼슬을 지내고 현학자로서도 대단한 명성이 있었는데, 그는 요즘 말로 자기애[나르시즘]가 심하여 걸을 때 자신의 뒷모습이나 그림자를 물끄러미 뒤돌아보고 서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바꿔 말하자면 그는 당시 유행의 첨단을 주도하는 사교계의 총아로 이 오석산을 즐겨 애용했던 모양인데, 당대 명의 황보밀(皇甫謐)은 「한식산론(寒食散論)」에서 하안이 음악에 탐닉하고 여색을 즐겼으며, 이 약을 복용하자 마음이 탁 트이고 체력이 충만해짐을 느꼈다[開神明朗]고 적었다.
복석의 위험을 경고하고 폐단을 지적한 그의 이 논설은 수양제 재위시절 태의박사(太醫博士)를 지냈던 의학자 소원방(巢元方)이 자신의 책, 『제병원후론(諸病源候論)』에 실어 전하였기에 오늘날 그것을 증좌할 수 있었으며, 이후 의학자들은 석약을 복용하는 것에 신중하게 되었다.
이러한 복석 풍조는 도교 국가를 지향한 당나라 시대에 더욱 풍미하였는데 황제들과 귀족들이 모두 단약을 구하여 먹는 것이 유행하였다. 연단술의 유행은 사회적으로 복석의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하였지만 제약화학의 발전을 가져와 여러 가지 합금기술과 제약법이 다양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조선의 『의방유취』에도 오석을 탐하는 것은 성적 쾌락(房中之樂)을 구하는 것이니 병의 근원이 여기서 비롯된다고 지적하였다.
고대 중국에서 행해진 복석의 문제점과 복약문화를 현대에 알리고 역사적 교훈을 삼고자 했던 이는 다름 아닌 근대 중국의 대문호 노신(魯迅)이었다. 1927년 학술강연회에서「위진풍도급문장여약급주지관계(魏晉風度及文章與藥及酒之關係)」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지적되었다. 한때 의학을 공부하고 청나라 말엽 부조리에 휩싸인 중국의 미래를 걱정했던 그의 입장에선 아편에 찌든 중국인민의 몰골에서 역사의 오류가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현대판 장생불사의 꿈, 잘못은 없는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인간의 무병장수, 장생연년의 바램은 여전하다. 진시황이 삼신산의 영약[不老草]을 구하려다 미처 소망을 이루지 못한 이후에 불로장수를 향한 인간의 염원은 현실성이 없는 한낱 헛된 꿈으로 치부되어 왔다.
21세기 이제 풍부한 영양공급과 생활환경의 개선으로 인간의 기대수명은 100세를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오염된 먹거리와 부적절한 생활습관으로 인하여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현대병을 안고 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즐겨먹는 기호식품과 건강식품 가운데도 우리의 막연한 바램과 달리 고대의 오석과 같은 병폐는 없는가?
범람하는 인공합성제제나 항생물질의 남용은 이제 인간의 몸을 망치는 것뿐만 아니라 가축과 환경, 온 지구촌을 위협하고 있다. 고대의 오석은 그 부작용이 다른 사람의 눈에 확연히 드러나고 당대에 폐해가 노정되어 일신을 망치게 하였다. 오늘날 현대산업사회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환경호르몬과 유해성 폐기물질의 양산은 온 지구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안겨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장생불사의 꿈, 그것은 백제인들만의 바램은 아니었을 것이다. 장구한 의약의 역사 속에서 시행착오한 경험을 교훈으로 되새겨 보아야만 한다. 적절한 대비 없이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오늘날 한국 땅에서 우리는 그 끝없는 소망을 위하여 또 어떤 무모함을 감내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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