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꿈을 멀리하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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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729회 작성일 10-11-05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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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또는 꿈 해몽을 본인에게 유리하게 펼치는 선지자들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가 여러 곳에 나오게 된다. 경고의 내용이 아주 강력하다. 그 경고 때문에 사람들은 겁을 먹게 되었고 아예 꿈을 부인하게된다. 자동차 사고가 무서우니 아예 자동차를 없애버린다는 것 같이,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 `(신 13 : 1-5).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신 18 : 20).
사실 신명기 18장 9-22절은 아주 중요한 뜻을 갖고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 들어가거든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하신다.(9절) 하나님께서는 토속문화를 배우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이어서 하나님은 나와 같은 선지자(15절)를 세우신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나와 같은 선지자는 모세를 비롯하여 사무엘부터 말라기까지 알려진 선지자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21절)라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걱정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22절)라고 답하신다.
신명기 18장 9-22절에 나오는 말씀을 들으면 어디까지가 하나님 말씀이고 어디부터 거짓 선지자들의 말인지 구별이 안됨에 대하여 걱정부터 된다. 그렇다고 해서 꿈을 모두 없애 버린다는 것은 차사고가 무서우니 자동차를 없애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의도는 꿈을 이용해서 자기의 이익을 구하는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인 것이다.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그들이 거짓 계시와--- (렘 14 : 14).
너희는 신접한 자나 박수를 믿지 말며--- (렘 19 :31).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렘 23 : 16).
몽사를 얻었다---예언하는 선지자--- (렘 23 : 25).
거짓 몽사를 예언하며--- (렘 23 : 32).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너희 복술이나 너희 꿈꾸는 자나--- (렘 27 : 9).
너희의 꾼바 꿈도 신청하지 말라 (렘 29 : 8).
깨어나 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렘 31 : 26). 예레미야서에서는 꿈의 달콤함을 이용한 거짓 선지자들을 말하고 있다.
다음은 이상을 이용한 거짓 선지자들의 모습을 말한다. 예레미야는 다른 어떤 선지자들 보다 거짓 선지자들에 대하여 많은 걱정과 염려를 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를 얻은 선지자는 몽사를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와 밀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브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렘 23 : 28-29).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 (렘 28 : 9).
결국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는 것은 각자의 임무에 속한다. 즉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신명기와 예레미야 두 책에서 꿈으로 거짓 예언하는 사람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내린다. 그러나 다른 책들에서도 거짓 꿈이나 이상으로 사람들을 혼란시키는 바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로 경고하고 있다.
이 유다 사람들도 포도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사 28 : 7-8). 연결된 내용으로 13장까지 계속된다. 이상을 그릇되게 푸는 거짓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경고이다.
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 (겔 13 : 7). 이와 같이 백성들에게 헛 희망만 주는 지도자도 있었다.
회칠한 담을 내가 이렇게 훼파하여 땅에 넘어뜨리고 그 기초를 드러낼 것이라 담이 무너진즉 너희 가운데서 망하리니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이와 같이 내가 내 노를 담과 회칠한 자에게 다 이루고 또 너희에게 말하기를 담도 없어지고 칠한 자들도 없어졌다 하리니 이들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의 묵시를 본다 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겔 13 : 14-16). 여기서도 회칠하면서 거짓 증거 하는 선지자들이 묵시를 본다고 말하고 있다.
대저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치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슥 10 : 2).
그 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이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슥 13 : 4).
그 날에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유 1 : 8). 신약성경에서는 유일하게 꿈에 대하여 주의를 주는 대목이다. 여기서 꿈꾸는 사람은 신명기 13장 1절에 나오는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를 따온 것으로 여겨진다.
인간들의 두뇌는 본시 인간들이 살아남는데 필요한 조건을 찾기에 좋게 만들어져 있다. 보고 싶은 것을 보게되고, 듣고 싶은 것을 듣게되는 것이 인간이다. 다시 말한다면, 인간들은 자기가 원하는 식대로 기억하고 또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 것이다. 즉 어떤 일에나 선택할 자유를 준 것이다. 이로 인해서 자기의 생각을 고집할 수 있기도 한 것이다. 이를 보수적이라고 불러보자. 보수적이란 말은 자기가 간직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관하려고 하는 자세를 유지함을 의미한다.
인간들의 언어는 인간들이 보고들은 바를 표현하게 되어있다. 즉 인간들이 본 세상에 대한 표현방법은 극히 인간적인 것이다. 인간위주로 되어있다.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니 인간들이 보고 듣지 못한 사실에 대하여는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되어 있다. 그것이 꿈으로 나타날 때 인간들이 평소에 쓰고있는 언어가 아닐 때에는 이를 알아듣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그런 꿈에 대하여도 이를 일단은 부정해버림으로서 편안해지는 입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신화적인 사실이나 이상 및 꿈에 대한 전형적인 태도는 일단은 이를 부인해 놓고 보는 것이다. 극히 인간적인 것이다. 잘 모르는 사실에 대하여는 일단은 부인해놓고 보는 것이다. 그래야만 편안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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