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본 꿈의 중요성
페이지 정보
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500회 작성일 10-11-05 20:30
본문
첫째는 꿈이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자세이고,
둘째로는 꿈을 두뇌의 작용으로서 많은 뜻을 갖고있다고 여기는 자세이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전자의 입장을 취한 것임에 틀림없다. 꿈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틀림없이 꿈이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자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자세를 취한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고 오류를 범하고 있는 입장인지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사도행전 11장 1-10절에 나오는 내용은 기독교 역사상 아마 가장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일 것이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가로되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같은 그릇을 네 귀를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워 내 앞에까지 드리우거늘 이것을 주목하여보니 땅에 네발 갖은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내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또 하늘로부터 두 번 소리 있어 내게 대답하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 가더라.
본문의 내용을 보면 베드로의 사건이 있기 전에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제한되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전달된 하나님의 뜻은 이방인들까지도 구원계획에 들어가 있음을 알려주는 내용인 것이다. 엄청난 사건인 것이다. 비몽사몽간의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베드로에게 전달된 것이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구원을 하겠다고 본래의 계획을 바꾼 것이다.
오늘날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된, 이스라엘 민족을 제외한, 모든 민족은 베드로의 환상에 크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베드로의 환상을 통한 하나님 계획의 변경을 알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틀림없이 무종교이거나 아니면 세상에 많이 있는 다른 종교에 몰두해 있을 것이다.
환상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매개체가 되는데 꿈 자체를 부인한다는 입장은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창밖으로 내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들을 수 있음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직접 대면하고 하나임의 얼굴과 맞대고 볼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것을 교회의 지도자들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있다. 너희는 백성을 위하여 사면으로 지경을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지경을 범하지 말지니 산을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 (출19 :12) 앞으로 환상, 비몽사몽간 및 꿈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한 논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이들은 모두 두뇌작용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Why God won`t go away, Andrew Newberg 2001)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영계와의 관계에 대하여 좀 더 알아야 이들의 관계가 드러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 우리는 낮에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만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에 관해서만 관심을 두고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하여는 눈감고 모른다는 자세를 갖고있지는 않은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르게 일을 하시는 일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여러 통로를 통해 인간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계시다.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시 74 : 16).
하나님의 뜻이 아주 명확하게 드러나는 성경말씀이 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인간들과 대화하기를 원하고 계시다. 전에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인간들과 대화를 계속해 왔다. 인간들이 하나님에게 일방적으로 하는 대화가 아니라, 인간의 대화를 들으신 후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인간들에게 전달됨을 의미한다. 인간들에게 주시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이 많은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암 3 : 7).
그러다가 인간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저버리고 이방 신을 섬기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나님께서는 인간들로부터 얼굴을 숨기신다.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을 좇는 모든 악행을 인하여 내가 그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신 31 : 18). 이제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얻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대화할 수 있는 모든 창구를 다 닫으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말씀하고 싶으신 심정을 감추지 않는다. 얼굴을 숨기신 하나님께서도 답답하신 면이 있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멍청하게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시고, 자기들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모르고 있는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일차적으로 먼저 접근하시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이상(vision)과 꿈을 택해서 인간과 대화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우리는 종종 이상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이에 대하여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꿈에 대한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눈초리를 보낸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이상과 꿈을 통해서 알리기도 하시고 말하기도 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신데 우리는 그 중 한가지만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선택이지 결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전부는 아닌 것이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민 12 : 6).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알려줄 만한 것들을 알려주려고 노력하신다. 사람들이 기도를 통해서 요청할 때에도 꿈을 통해서 응답을 주시지만, 하나님 스스로 인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과 메시지를 꿈을 통해서도 알려 주시는 것이다.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 치듯 교훈하시나니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그는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으로 칼에 멸망치 않게 하시느니라. (욥 33 : 15-18). 이 말씀에 포함된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다. 잠들어 꾸는 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귀를 여시고 가르치시기를 원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인간들의 꾀를 버리고 사람들의 교만을 막고 인간들의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원대한 계획을 알려 주시려는 것이다.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었나니 이는 네가 궤휼하고 궤휼하여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라 칭함을 입은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사 48 : 8). 그러나 인간들은 하나님의 뜻에 예로부터 저항하고 반항하는 속성을 갖고있다.
이런 속성이 옛날에만 있었고 오늘날에는 없어진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때나 이 때나 다 적용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망각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인간들의 모습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꿈과 이상을 통해서 우리가 알고있건 모르고 있건 간에 태고로부터 역사하고 계신 것이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전 1 : 9-11).
우리가 꿈에 대하여 새롭게 공부하고 이를 알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지으시고 만드시고 마련해 놓으신 것을 우리는 이제 알게 된 것뿐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내고 계신데 인간들은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집에 배달된 편지를 읽어보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탈무드) 그 편지의 내용이, 너는 이제 구원을 받았다. 그러니 구원받은 자의 역할에 대해서 너에게 다음과 같이 알려줄 말이 있다.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편지를 뜯어서 읽어보지도 않고 내어다 버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각자에게 각자 맡은 바 사명이 무엇이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데, 우리는 계속해서 딴청만 부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구원을 받은 사람이 그 구원받은 바를 모르고 지내는 것처럼 허망한 일도 없는 것과 같이 구원받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하여 보내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외면한 채, 자신이 현재 하고있는 일들에 대해서만 옳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밖에는 여길 수 없는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