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눈물로 얼룩져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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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782회 작성일 15-07-05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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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5년차인 임효정 씨. 언제부터인가 출근 카드만 찍고 나면 기분이 저조해진다. 입사하고 초반에는 불편한 것을 개선하겠다던가, 특별한 기획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욕에 가득 찼었는데, 지금은 별 감흥이 없다. 그저 지시받은 내용, 회의에서 결정된 대로 따르면 된다는 생각뿐이다.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하는 게 손해 보지 않는 길 아니겠어.' 회사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맞물려, 퇴근한 후에도 기분이 상쾌하지 않다.

'빙수야, 팥빙수야, 녹지마 녹지마!' 라는 가사가 들어있는 노래가 있다. 여름만 되면 들리는 음식송 '팥빙수'다. 이 노래를 들으면 사랑이나 이별을 음식으로 은유한 것이리라는 추측이 마지막까지 배반당하는 반전에 놀라고, 더위에 녹을 수밖에 없는 팥빙수에게 '녹지 말아 달라'는 불가능한 부탁을 하는 점에도 놀란다. 녹아버린 팥빙수와 비슷한 현상은 직장에서도 찾을 수 있다. 최근의 한 취업포털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외 기업의 직장인 70%가 '회사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중 대다수가 회사 밖에서는 활기차지만, 출근만 하면 무기력하고 우울하다고 답했다. 더위 때문에 액체가 되고 만 팥빙수처럼 축 쳐진 직장인들의 어깨, 원인이 무엇일까?"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짜증나요"엘렌 랭거(Ellen Langer)와 주디스 로딘(Judith Rodin)은 한 요양원의 노인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간단한 실험에 들어갔다. 첫 번째 그룹의 노인들에게는 본인들의 생활을 본인 스스로가 독립적으로 조정하도록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꽃을 키웠고, 언제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계획해서 생활했다. 반면 두 번째 그룹의 노인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금지했다. 그들은 그저 주어진 대로 생활해야 했다. 이후 두 그룹에게 삶을 어느 정도 행복하게 여기느냐고 물었더니, 첫 번째 그룹의 노인들이 훨씬 행복하다고 답했다.
헤이트와 로딘(Haidt&Rodin)도 일련의 연구를 지속한 다음, 어떤 조직이든 그 구성원들에게 통제권을 주면, 즉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어느 정도 부여해 주면 그들은 행복을 느꼈으며 조직에 참여하려는 적극성을 띄었고 삶을 활력 있게 이끌어갔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내 삶의 깃발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어야 사람들은 행복했다.
반면 통제감을 상실하면 어떻게 될까? 여러 학자들(Gall & Singer, 1972/ Brehm, 1981 / Abramson 등, 1978)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많을 때 고통스러워했고, 일을 진행하는 능력이 떨어졌으며, 분노와 무력감을 느끼고, 우울증에 걸렸다. 개인 사정 상 어쩔 수 없이 불투명한 전망의 회사에 계속 다녀야 한다던가, 모욕적인 언사를 참고 지내야 한다던가, 내 업무이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상사의 지시대로 따라야 한다던가, 덮어놓고 싸울 수도 없고 맞서 쟁취해낼 수도 없어서 이를 악물고 못 본 척 해야 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다. 이런 식의 억압은 깊은 우울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회사 우울증, 이렇게 탈피하자 5 Step

1. 눕지 마세요, 움직이세요.
사람은 정신적으로 피곤하면 일단 드러눕는다. 하지만 계속 몸을 눕힌 채로는 거듭되는 생각으로 정신적 피곤이 더욱 커지게 마련. 몸을 바쁘게 움직이면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기 한결 수월해진다. 정신이 피곤할 때는 몸을 괴롭히자. 집안 청소를 하고, 축구를 하고, 애완묘의 털을 깎고,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집의 인테리어를 고치고, 산에 오르고, 근처 야구연습장에 가고, 헬스장에 출석하여 다른 사람들의 근육을 구경하고, 혼자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자. 야근이 많아서 회사 안에서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하는가? 2시에는 잠시 휴게실에서 국민체조를 하고, 3시에는 내 자리의 비품을 재정비하고, 4시에는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바탕화면의 배경화면을 꾸며 보라.
2. 이야기하고 털어놓고 사람을 만나자
1970년대에 영국에서 한 무리의 심리학자들이 인터뷰 방식으로 조사에 나섰다. 여기에서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을 분석해본 결과, 솔직하게 대화할 가까운 사람이 있는 이들은 우울증에 빠질 확률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배우자, 가족, 친구 등 상대는 다양했다. 속을 터놓거나, 취미생활을 함께 하거나, 일상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면 우울증에서 멀어졌다. 반면 이런 대화자가 없는 경우 우울증에 걸리는 비율이 무려 4배였다. 회사 안에서만 우울할 뿐이라고 안심하지 말자. 의욕이 저하되고 걱정이 많아지는 등 전조증상이 보인다면, 일단 계획적으로 사람을 만나면서 저조한 기분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하자.
3. 한 시간 단위로 계획하고 목록을 작성하자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일단, 한 시간 단위로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를 작성하자. 친구를 만난 것, 빨래를 한 것, 세차를 하거나 회의에 참석한 것을 일일이 적어 목록으로 만든다. 자신의 행동반경과 패턴을 파악한 다음에는 다음날의 비어있는 시간을 미리 목록으로 채워 놓는다. 계획은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다.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할 지 정해놓으면 쓸데없는 잔걱정을 줄일 수 있고, 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우쿨렐레 문화 교실에 나가거나, 하루 종일 주말영화를 봐도 좋고, 일주일에 한 명씩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예정해도 괜찮다.
4. 이건 실라칸스야
'나는 실패했다'는 한 사람을 괴롭히기에 아주 적합한, 부정적인 관점의 대표적인 문장이다. 이 문장의 블랙박스를 통과하고 멀쩡한 사람은 드물다. 이를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문제에 직면한다. 이는 지극히 정상이다'로 대체해 보자. 부정적인 관점을 전환하는 데는 실라칸스의 예를 떠올리는 것도 좋다. 실라칸스는 공룡보다도 앞선 3억5000만 년 전부터 살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화석이었다. 진화론자들은 실라칸스의 특이한 지느러미가 바다생물이 육지생물로 진화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938년, 마다가스카르 섬 근해에서 실라칸스가 산채로 발견되었다. 화석이 산 채로 발견된 것이다. 게다가 어류에서 육상동물의 진화 증거로 설명되었던 것과는 달리, 실라칸스는 전혀 진화하지 않은 채였다. 현재 이 생물은 2억여 년간 진화를 멈춘 특이한 동물로 제시되고 있다. 진화의 증거로 여겨졌던 생물이, 진화하지 않는 증거로 관점이 180도 바뀐 것이다. 나에겐 실력이 없고 회사엔 전망이 없으니 비관적 미래는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지금은 나의 생활의 첫걸음에 불과하며 원래 사소한 것에서 위대한 역사가 시작한다고 생각을 전환해보자.
5. 오늘은 눈물로 얼룩져도 괜찮아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잠만 자거나, 혹은 하염없이 눈물만 난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걱정하는 자신을 다시 걱정하고 있었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하는 아주 획기적인 방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걱정하는 자신을 '그래도 괜찮다'고 믿고 지켜봐주는 것이다. 오늘은 눈물에 취해도 좋다. 감정은 휘발성이라 언젠가는 날아간다. 어둠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기준점이다. 내가 어디 있는지 안다면 어둠 따위는 문제가 될 수 없다. 고막이 터져 아래쪽을 위쪽이라고 착각하고, 수면 위로 떠오르기 위해 바닥으로 내려가고 만 스쿠버다이버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라. 혼자이고, 어둠 속에 있고, 쓸쓸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도, 당신이 누구인지 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글 이현수(일상심리 전문 작가) 사진 멀티비츠]
매일경제 Citylife 제3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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