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달리 보는 이 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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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551회 작성일 15-07-03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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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칼트(Rene Descartes, 1596-1650)를 이원론의 원로로 친다. 철학, 수학, 생리학의 대가로 마음과 몸을 완전하게 분리시켜 놓은 장본인으로 치고 있다.
이원론을 다른 표현으로는 카테시안주의(Cartesianism)이라고 하는데 이는 데칼트의 라틴어 이름이 카테시안이기 때문이다. 데칼트는 현대의학의 아버지라고 할 정도로 의학을 과학으로 정착시킨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의과대학 학생들에게 해부학을 가르쳐야 하겠는데 인간의 육체(시체)를 얻을 수 있는 유일의 길은 카톨릭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했었다. 결과로 교회는 영과 혼 그리고 감정을, 과학은 육체를 엄격하게 나누어서 다루는 격이 되었다.
그 때부터 몸은 하나의 관찰의 대상이고,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된다는 산술식 육체관을 정립시키게 된다. 결과적으로 몸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다음 차 급으로 취급을 받게 되었다. 데칼트 자신이 마음과 몸을 완전히 구분하여서 논문을 쓴 바 있다.
그러나 데칼트는 영혼과 육체의 접촉점이 송과선이라고 기술했고, 마음은 뇌와 신경계통에 있다고 말하면서, 마음은 순수한 생각이며 몸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고 결론을 지은 바 있다. 데칼트 이원론의 한계점을 보인 대목이다.
몸과 마음은 별개의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주변환경에 승복은 했지만, 몸과 마음이 같이 있는 곳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고 더 나아가 영혼이 깃들인 곳까지 언급하고 있다. 데칼트의 이와같은 가르침은 다음 수 백년 동안 그대로 답습되어 내려오게 된다.
그러나 거의 같은 시대에 살고있던,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가 데칼트의 이원론에 반기를 들게된다. 그는 마음과 몸은 단순히 한 물질의 양면이라고 갈파했고 그 물질이 바로 신이라고 말했다.
그의 논조가 데칼트의 이원론을 부인했다는 데에는 뜻이 있으나 너무 지나친 결론으로 많은 사람들의 동조를 얻지 못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데칼트의 이원론을 뛰어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8세기에 들어 와서는 사람들이 이원론 자체에 대한 논의를 꺼리게 된다. 그 이유는 마음과 몸에 대한 논의를 하자면 자연히 마음과 몸을 구별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배경 아래에서 이원론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원론을 다른 표현으로는 카테시안주의(Cartesianism)이라고 하는데 이는 데칼트의 라틴어 이름이 카테시안이기 때문이다. 데칼트는 현대의학의 아버지라고 할 정도로 의학을 과학으로 정착시킨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의과대학 학생들에게 해부학을 가르쳐야 하겠는데 인간의 육체(시체)를 얻을 수 있는 유일의 길은 카톨릭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했었다. 결과로 교회는 영과 혼 그리고 감정을, 과학은 육체를 엄격하게 나누어서 다루는 격이 되었다.
그 때부터 몸은 하나의 관찰의 대상이고,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된다는 산술식 육체관을 정립시키게 된다. 결과적으로 몸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다음 차 급으로 취급을 받게 되었다. 데칼트 자신이 마음과 몸을 완전히 구분하여서 논문을 쓴 바 있다.
그러나 데칼트는 영혼과 육체의 접촉점이 송과선이라고 기술했고, 마음은 뇌와 신경계통에 있다고 말하면서, 마음은 순수한 생각이며 몸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고 결론을 지은 바 있다. 데칼트 이원론의 한계점을 보인 대목이다.
몸과 마음은 별개의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주변환경에 승복은 했지만, 몸과 마음이 같이 있는 곳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고 더 나아가 영혼이 깃들인 곳까지 언급하고 있다. 데칼트의 이와같은 가르침은 다음 수 백년 동안 그대로 답습되어 내려오게 된다.
그러나 거의 같은 시대에 살고있던,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가 데칼트의 이원론에 반기를 들게된다. 그는 마음과 몸은 단순히 한 물질의 양면이라고 갈파했고 그 물질이 바로 신이라고 말했다.
그의 논조가 데칼트의 이원론을 부인했다는 데에는 뜻이 있으나 너무 지나친 결론으로 많은 사람들의 동조를 얻지 못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데칼트의 이원론을 뛰어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8세기에 들어 와서는 사람들이 이원론 자체에 대한 논의를 꺼리게 된다. 그 이유는 마음과 몸에 대한 논의를 하자면 자연히 마음과 몸을 구별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배경 아래에서 이원론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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