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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의 최종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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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2,335회 작성일 10-11-2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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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사지만 박사가 아니다. 박사가 아니라서 아쉽거나 주눅든 적은 없다. 임상의로서 필수적인 최종자격증은 전문의 자격증이라고 생각해서다. 학위를 취득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만큼을 나는 내 자신이 정신분석을 받는 일에 투자했다. 그게 정신과 전문의로서 더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문적 필요에 의해서든 환자의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해서든 박사 학위를 가진 의사들이 유난히 많은 까닭에 사람들은 으레 나를 박사로 부른다. 처음엔 호칭 문제에 대해 일일이 설명했지만 정황상 매번 정색을 하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기업체 등에서 강의를 할 때 미리 경력 등을 자세히 적어 보내도 많은 경우 기업의 담당자가 청중에게 나를 소개하는 호칭은 박사다. 그래야 강의의 후광이 생긴다고 믿는, 무릎반사 같은 자동 행동이다.

동국대 가짜 학위 사건은 간판 효과의 결정판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학위라는 것이 업적이나 전문영역의 활동과 아무 인과관계가 없다고 의심할 만한 상황들을 접하게 되면서 오히려 증명서에 많은 것을 의존했던 간판 시스템의 부작용이 부각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학위와 관련된 어설픈 검증을 탓하며 앞으로 더 철저한 검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대담한 거짓말을 일삼아온 당사자의 어처구니없는 행태와는 별개로, 사람들이 주장하는 과학적 검증 시스템이 갖춰지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 예술계는 특정인의 예술적 내공을 정확하게 감정할 능력이 부족해서 그들의 학력이나 이력을 통한 기능적 검증에 의지하다가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인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평단과 대중이 모두 인정하는 중견 소설가와 또 다른 중견 시인은 학위를 따기 위해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강단에 서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필수 코스라서 그럴 것이다. 이미 문학적 검증을 충분히 끝낸 그들에게 어째서 그와 관련한 간판을 따로 요구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기능적 검증 제도에서 비롯하는 폐해다.

때로 과학과 학문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검증의 과정이,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나 예술성을 따져 보는 일에도 ‘그 모습 그대로’ 적용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검증의 최종목적 자체를 고민하지 않는 듯한 검증 시스템을 접하게 되는 경우 더 그렇다. 전투기나 원전기술의 도입, 소믈리에나 위폐감별사처럼 기능적 검증이 필요한 영역이 아닌 경우 물리적으로 인간을 줄세우는 검증은 어떤 경우에도 옳지 않다.

수능시험 자체의 변별력을 검증하는 일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은 수능점수로 사람을 줄세우는 파괴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도 대학에서 원하는 학생을 선발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검증의 잣대에 대한 다양하고 치열한 고민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지난 1년간 경험했던 자연의 현상 중 가장 강렬했던 소리의 기억은 무엇인가’ ‘지난 3년간 가족 이외의 어린 아이를 안아준 경험은 얼마나 되는가’ ‘지난 1년간 나 이외 타인의 고통으로 심장의 통증을 느낀 적이 있는가.’

이렇게 질문은 소박하지만 과학적 합리성을 갖춘 검증 시스템을 도입해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찬찬히 음미하고 분석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그 대상이 수험생이든 대학교수든, 대선 후보든 검증의 최종 목적에 좀더 근접할 수 있을 것이다. 진짜로 효율적인 검증 시스템이 필요한 경우는 검증의 본래 목적에 적합한 ‘기준’을 검증하는 일을 할 때다.

어떤 이를 검증하고자 할 때 검증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따지다 보면 그에 꼭 맞는 검증 시스템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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