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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디스코 여왕' 도나 서머, 1948~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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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954회 작성일 15-07-16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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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투병 끝에 17일(현지시간) 숨을 거둔 미국 가수 도나 서머(64)는 '디스코의 여왕'으로 통한다. 1970년대 대히트곡 '핫 스터프'로 유명하다.

본명은 에이드리언 도나 게인스로 1948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침·점심·저녁을 먹기 전 꼭 노래를 하는 등 어렸을 때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1960년대 보스턴에서 TV 가스펠쇼에 출연하며 록밴드 멤버로 활약한 서머는 1968년 유럽으로 건너가
독일 뮤지컬 '헤어'의 멤버로 유럽을 순회하며 공연했다. 그러다 1971년 흑인 걸그룹 '더 제이넷츠'의 '샐리 고 라운드 더 로지스(Sally Go Round the Roses)'를 커버한 첫 싱글을 발표했다.

이탈리아의 전자팝 편곡자 조지오 모로더(72)와의 만남은 그녀의 음악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1974년 그가 소유한 오아시스 레이블을 통해 발표한 '호스티지', '레이디 오브 더 나이트'가 유럽에서 크게 히트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1975년 에로틱한 신음이 1분 이상 지속되며 성적인 욕망을 들끓게 하는 '러브 투 러브 유 베이비(Love To Love You Baby)'로 전성기를 맞았다. 역시 모로더와 작업한 이 곡을 통해 서머는 관능적 외모와 야릇한 음성을 지닌 '섹시 디스코'의 아이콘이 됐다.

이후 모로더가 독일 뮌헨 스튜디오에서 신시사이저로 주조한 '아이 필 러브(I Feel Love)', '헤븐 노스' 등 '유로 디스코'로 유럽뿐 아니라 미국까지 평정했다.

1979년 미국으로 와 디스코 음악 '배드 걸'을 발표하며 또 한번 전성기를 맞았다. 디스코 음악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던 서머는 1980년 R & B 성향이 강한 게펜 레코드와 계약했다. 하지만 기대만큼 팬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1983년 포스트 디스코 계열 '쉬 워크스 하드 포 더 머니'로 다시 한번 인기몰이를 했다. 1994년 베스트앨범 이후 공식적으로 음악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다 2008년 17년 만에 장기인 디스코가 주축이 된 새 앨범 '크레용'을 발표했다. '스탬프 유어 피트' 등을 히트시키며 건재를 과시했다.

그래미 어워드를 5차례 안으며 실력을 인정 받은 서머는 유럽과 미국 댄스음악 결합의 통로라는 평을 받았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디스코 음악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자신이 디스코의 수혜자임을 인정했다.

서머는 두 번 결혼했다. 1974년 오스트리아 배우 헬무트 서머와 결혼, 딸 미미를 낳았다. 자신의 예명인 서머는 이 때부터 사용한 것이다. 1970년대 후반 서머와 이혼한 뒤 1980년 가수 브루스 수다노와 재혼, 브루클린과 아만다 등 두 딸을 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나와 미셸은 서머의 사망 소식에 슬프다"면서 "도나는 진정한 '디스코의 여왕'이다. 너무나 일찍 또 하나의 전설을 잃었다"고 애도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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