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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렁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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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805회 작성일 10-11-2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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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초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아버지와 자녀사이의 관계인식은 흥미롭다 못해 충격적이다. 아버지의 50.8%가 ‘자녀가 고민이 생길 경우 가장 먼저 나와 의논한다’고 자신을 평가했지만 실제로 ‘아버지와 고민을 나눈다’는 자녀는 4%밖에 되지 않았다. 이 자료를 분석한 김소희 기자에 따르면 ‘썰렁한 착각’이다.

성추행과 관련된 문제에서 대다수 남성과 제도권 세력의 인식은 ‘썰렁한 착각’의 극단적 사례라 부를만 한다. 피해 여성의 고통이나 충격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한다. 겨우 3,4초 가슴을 만진걸 가지고 뭘 그러느냐는 식이다. 자동차 사고로 평생 불구가 되거나 벼락을 맞아 목숨을 잃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3,4초다. 성추행 문제를 비유하는 사례치고는 너무 극단적인가. 그렇지 않다. 아는 선배가 30대 였던 어느 날, 집 앞 골목에서 마주오던 남자가 옆을 지나가면서 느닷없이 선배의 치마에 손을 넣어 밑에서부터 위로 훓고는 유유히 지나갔단다. 그 충격으로 선배는 몇 달 동안 생리가 끊겼다. 1-2초간의 스침이 신체기능의 구체적 마비로 이어질 만큼 성추행의 파괴력은 막강하다.

2006년 3월 교도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자살을 기도했던 여성 재소자가 끝내 목숨을 잃었다. 성추행 충격으로 소변도 가리지 못할 만큼 급성 스트레스와 우울증 증상을 겪었지만 구치소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해주지 않았다. 구치소 측에서는 ‘가슴과 엉덩이를 조금 만진’ 정도의 일에 너무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렇지도 않게 가석방을 조건으로 합의를 종용했을 것이다. 별거 여부 등 성추행과 무관한 조사를 하기도 했다. 피해 여성의 처지에서는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성추행 범죄는 늘 그런 식으로 본질을 비껴나 피해자에게 2차적인 정신적 피해를 입힌다. 가해자들이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떠밀려 추행 사실을 시인할 경우에도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 여성에게 끼친 피해를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린 시절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를 20년이 넘은 후에 찾아가 살해한 어느 여성의 참혹한 사연을 기억할 것이다. 성폭행 당한 여성의 기억은 그 상황에서 멈추어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반복된다. 마치 어제 당한 일을 오늘 가서 복수한 것 같았을 것이다.

개인적 경험담을 하나 덧붙이자. 전공의 시절의 일이다. 입원중이던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데리고 외출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한 환자가 병원 입구에서 나를 벽으로 밀어 부치며 입을 부벼댔다. 내 비명소리를 들은 행인들이 몰려들어 그를 떼어놓고 주먹다짐을 하려 했는데 나는 순간적으로 정신과 환자이니 때리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날 이후 그가 주먹세례를 받도록 놔두지 않은 내 자신에 대해 대책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수도 없이 입을 씻으면서 불쾌감과 모멸감에 고통스러웠다. 정신과 환자의 한 증상이라고 생각하면 그뿐일 일이었음에도 그렇다.

성추행은 ‘그까이꺼’라고 썰렁하게 착각하고 말 일이 아니다. 피해자의 몸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불도장을 남긴다.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일삼아 온 교도관이 사법처리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성추행을 저지른 국회의원도 지역구민이나 자신이 속했던 정당이 아니라 피해 여기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어느 남자의 짜증섞인 한탄처럼 그까짓 가슴 하나 만진 일에 온 나라가 뒤집힐 듯이 이렇게 떠들썩해서야 되겠느냐고 말해선 안된다. 한 개인의 내상을 보듬고 치유하는 당연한 일에 뒤집힐 나라라면 애초부터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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