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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독재자의 개별적 관심 - 히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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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201회 작성일 10-11-21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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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에서 4강의 기적을 이룩한 후 ‘히딩크 따라하기’가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면서 그의 리더십의 실체와 ‘히딩크식 경영’의 노하우를 분석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창조적 발상,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치밀한 장기전략, 독특한 카리스마, 기본 중시, 엄격한 공사 구분, 과학적 훈련 등 수많은 탁견들을 보면서 나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우리 속담을 떠올린다. 얼핏 남들도 가지고 있음직한 ‘구슬’들을 ‘보배’로 둔갑시키는 히딩크 능력의 핵심은 과연 무엇일까.

히딩크는 인간에 대한 ‘개별적 관심’이 특출한 인물로 보인다. ‘개별적 관심’을 받는 사람은 '나‘라는 존재를 무리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여 자발성이 향상되고 잠재능력이 극대화된다.

대역전극을 펼친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전후반을 마친 선수들이 연장전을 앞두고 바닥에 앉아 숨을 고르는 사이 히딩크는 선수 하나하나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눈을 맞추면서 무슨 말인가를 전한다. 월드컵 최종 엔트리를 발표하면서 이동국, 고종수 등에겐 히딩크가 직접 전화를 걸어 탈락 사실을 개별적으로 통보했단다. 언론의 인터뷰가 스타 선수들에게 집중되자 ‘가급적 후보선수와도 인터뷰를 해달라’고 기자들에게 부탁한 사람도 히딩크다. 히딩크의 장점들이 선수 각자에게 스며들어 내면화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러한 ‘개별적 관심'이었을 것이다. 차범근 전 감독은 “선수들이 감독을 인간적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팀 전체로 보아서는 매우 위험한 신호등이 켜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의 개별적 관심이란 단순히 ‘인간적’이라는 의미 그 이상이다.

히딩크도 전술적 차원에선 골은 11명 전체가 넣거나 11명 전체가 먹는다는 집단적 사고방식을 강조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는 선수 하나하나를 공차는 기계가 아니라 독립된 인격체로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한국 축구팀의 ‘작은 독재자’란 말을 듣기도 하는 히딩크에 대해서 선수에겐 절대 인격적으로 수모를 주는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는 감독이라고 굳게 믿는다. 축구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히딩크의 ‘사람관리술’일 수도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꼭 인간적이고 정서적 차원에서만 이해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히딩크는 선수들 각자가 무리의 구성원인 동시에 독립된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했다. 그렇게 되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힘은 놀랄 만큼 커지고 입체적이 되었다. 그것은 마치 주인공과 기타의 무뇌아 그룹만 등장하던 삼류드라마가 완숙한 작가의 손을 거쳐 저마다 개별적 존재 이유가 있는 인물이 등장하는 흥미로운 드라마로 탈바꿈한 것과 같다.

예전엔 공격수 한두 명의 이름밖에 알지 못했던 사람도 히딩크 사단을 보면서는 자연스럽게 선수 전원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 분명 토털 사커를 지향하는 스타일에서 비롯하는 변화는 아니다. 개별성을 획득한 11명의 자유로운 영혼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까닭이 아닐까. 김훈은 그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의 입을 통해 “온 바다를 송장이 뒤덮어도, 그 많은 죽음들이 개별적인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개별적인 관심을 받아 마땅한 독립적인 존재다. 히딩크는 그 당연한 사실을 지금 한국 축구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

사람은 자기 안의 실체를 깨닫게 해주는 이를 사랑한다고 했다. 선수들이 히딩크에게 보내는 신뢰와 애정이 남다르다면 그건 아마도 자신의 개별성을 깨닫게 해준 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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