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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와 그의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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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inceton 댓글 0건 조회 1,798회 작성일 10-08-22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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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그를 찾아온 독일 청년 3명이 ‘당신이 추구하는 예술의 미학적 ‘본질’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피카소(사진)는 돌연 권총을 빼들고는 천장을 향해 발사했다. (과연, 남미를 피로 물들인 스페인 제국의 후예답지 않은가?) 그것도 정확히 3발! 그 청년들 마음 속의 ‘본질’을 향해 불을 뿜은 것이다.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본질’적으로 필요한 최후의 낙점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고 외치던 당돌한 스페인 화가의 낙점(落點)은 이처럼 폭력적이었다.
당연하지만, 그는 이른바 화룡점정을 믿지 않았다. 자유의 실현과 더불어 역사의 종말에 이른다던 헤겔의 지론처럼, 현대 미술이 현시한 그 현란한 자유의 환등(phantasmagoria) 속에는 표현의 부나비떼만 일희일비할 뿐, 재현해야 할 그 어떤 ‘본질’도 없었다. “예술로서의 예술의 역사는 완전한 개방성 속에서 종말을 고하였다”는 단토(A.C. Danto)의 선언 역시 헤겔적 상식을 반복한 것에 불과했다. 미술사 속의 피카소는 20세기가 열어젖힌 이 완전한 개방성으로서의 종말을 총체적으로 예시한 인물인 셈이다.
20세기 문화예술계는 피카소의 자유와 개방에 무한한 찬탄을 보냈다. 그러나 그가 그 자유와 개방을 ‘자유롭게’, 그리고 ‘개방적으로’ 이용한 것만은 아니다. 비본질주의자였던 그는 응당 그림 속의 낙점 따위를 믿지 않았지만, 실은 그의 기질과 재능과 명성과 권위는 이미 그 자체로 낙점의 권력을 행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 낙점의 방식이 그의 기질과 성격과 어울리면서 이기적으로 표출되고, 심지어 폭력적인 양상을 띤다는 사실에 있었다.
비본질주의가 정신사적 진보를 뜻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가령 루터나 틴들(W. Tyndale)이 성서를 독일어나 영어로 번역한 일은 라틴어 본질주의를 깨뜨리며 근대의 물꼬를 튼 사건이었다. 요컨대, 근대든 현대든 정신의 진보는 갖은 본질의 따개비들을 까뭉개는 사건들과 인물들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다. 피카소 역시 그같은 전위이자 걸물임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테다. 그러나 정신사적 진보가 생활의 진보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신과 유행의 첨단에 얹힌 탓으로 인한 허위의식이나 자유의 과용은 종종 생활 속의 이기주의와 독단으로 흐르곤 한다. 그의 예술적 비본질주의는 그의 기질적 이기주의와 거의 영웅적으로 내통했던 것!

피카소의 예술적 영감에 불쏘시개 된 숱한 여인들
결국 그에게 버림받고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다 에바는 요절했고 올가는 반신불수가 됐다
마리는 목을 맸고 도라는 정신병원을 들락거렸다

피카소는, “진리? 어떤 진리 말입니까? 진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내가 그림에서 진리를 추구한다면 그 진리로 수백장을 그릴 수 있을 것이오!”라고 외쳐댔다. 본질도 낙점도 완성된 목적(telos)도 있을 수 없는 그의 작품은 그에게는 하나의 행복한 사건이자 경험일 뿐이었다. 따라서 그의 예술은 ‘본질’적으로 천재적 파토스가 자신을 탕진하는 ‘과정 속의 향락’이었다. “무엇을 그리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리기 시작해 보아야 한다”는 그의 말은 그의 지론에 비추어 정직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사랑해 보아야 한다’고 했다면, 바로 그곳이야말로 정직한 천재의 희생제의가 시작되는 곳이다.
피카소의 천재가 발동하면서 작품을 탄생시키는 곳은 곧 그 천재의 자장 속에 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곳이기도 했다. 실제로 여자가 바뀔 때마다 그의 화풍이 달라졌고, 그의 회화사를 여성편력사로 엮어내는 호사가의 얘기에 우리는 이미 익숙하다. 이 점에서 그는 호색한 사르트르와 낭만주의자 괴테를 매우 거칠게 섞어 놓은 꼴이다.

피카소는 천재의 에고이즘을 그 누구보다도 냉철하고 화려하게 보여주었으며, 그 에고이즘의 불꽃 속에 든 애정의 약자들은 그 예술적 영감의 불쏘시개가 되어 바스라졌다. 피카소의 첫째 부인 올가의 손녀인 마리나 피카소는 <나의 할아버지, 피카소>(2001)에서 이 사정을 다소 과장스레 요약한다: “그가 여자들을 좋아한 것은 그들이 그에게 불러일으키는 동물적 성 충동 때문이었다. 여자들은 자신들의 신비를 토해내야만 했다. 신선한 육체를 좋아하는 그는 그들을 서둘러 죽였고, 강간했으며, 영양분으로 섭취했다. 피와 정액으로 범벅이 된 그들을 자신의 화폭에 열광적으로 되살렸으며, 그들에게 자신의 폭력을 받아들이기를 강요했고, 그들이 불러일으키는 성적 힘이 무뎌졌을 때는 가차없이 그들에게 죽음을 선고했다. 그가 섹스와 그림에서 끌어내는 관능은 본질이 동일했다.”

에바 구엘은 31살로 요절했고, 올가 코흘로바는 그의 애정을 잃은 뒤에 정신이상에 빠졌고 반신불수로 삶을 끝낸다. 마리 테레즈도 그에게 버림받은 뒤 그의 죽음과 함께 목을 맨다. 도라 마르도 그와의 이별을 삭이지 못한 채 정신병원을 들락거렸고, 자클린 로크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마리나 피카소는 오빠 파블리토의 자살,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이자 피카소의 장남인 파울로의 자살을 모두 할아버지 피카소의 탓으로 돌린다. 피카소를 정점으로 그녀의 가족사를 뒤덮은 먹구름 속으로부터 힘겹게 빠져나와 사회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녀는 절규한다: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절망에 빠뜨릴 권리가 위대한 예술가들에게는 있는가? 그들의 작품이 제아무리 찬란할지언정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킬 만한 가치가 있는가? 나의 가족은 저 천재가 쳐놓은 덫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 하나하나를 완성해가는 데 타인의 피를 필요로 했다. 나의 아버지, 오빠, 어머니, 할머니의 피와 나의 피, 그리고 한 인간을 사랑한다고 여기며 피카소를 사랑한 모든 이들의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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