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과 유방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inceton 댓글 0건 조회 1,929회 작성일 10-08-12 13:38
본문
중국 최초의 통일 왕국, 진나라를 멸하고 다시 한번 통일 제국 한나라를 건설한 두 명의 주역. 당시 신분, 재산, 재능, 어느 것 하나 변변한 바탕이 없던 유방과 그의 군사 참모 한신은 최강의 제후 세력이었던 항우를 제압하고 천하를 제패하는 기적을 연출한다.
BC 247년에 태어난 유방(劉邦)은 별볼일 없는 지방 한량에 불과했다. 그는 신분이나 능력은 보잘 것 없었으나 대신 천재를 알아보고 적극 활용하는 재능이 있었다. 성격도 불안하고 제멋대로였으나 사람들을 포용하고 고언에 귀 기울이는 느긋한 품성도 갖고 있었다.
유방은 도적 떼의 우두머리로 산속에 숨어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패현이란 지방의 현령이 된다. 이후 진나라의 폭정을 종식시키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킨다. 반란 세력의 우두머리가 된 유방은 장량이라는 천재 지략가를 만나고 장량의 활약에 힘입어 진나라를 멸하고 진나라 수도 관중의 영주가 된다. 진나라 관중에서 일개 노동자로 노역을 하던 유방이 10만 대군의 정복자로 돌아온 것. 그는 이후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만들었던 진나라의 악법을 모두 폐지하는 약법삼장을 발표,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다.
이때 유방의 독주를 견제하고 나선 세력이 항우였다. 강동의 정예병을 이끌고 파죽지세로 진나라 군대와 제후 세력들을 격파한 항우는 유방이 먼저 함락한 진나라의 수도로 돌격, 유방과 그의 추종세력을 몰아내고 자신이 중국 대륙의 정복자 자리에 앉는다. 이때 유방은 장량의 계책으로 목숨을 부지한 채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다. 당시 항우의 졸병 중엔 한신이라는 천재 군사참모가 있었는데 그는 항우의 푸대접에 지쳐 유방의 편에 서게 된다.
한신은 춘추전국 시대 말, 한(韓)나라의 왕족으로 나라가 망한 뒤 거지 꼴이 돼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녔는데, 거지 주제에 귀족 차림을 하고 다닌다고 수많은 이들로부터 수모를 당했고 심지어 거리의 건달들 시비에 가랑이 사이를 기어 지나가기도 했다.
한신이 유방의 밑으로 들어갔을 때는 그가 항우에 쫓겨 파촉이라는 고립된 지역에 갇혀 있을 때. 이곳에서 한신은 유방에게 중요한 군사 전략을 알려주었고, 이에 탄복한 유방은 한신을 자신의 군사 사령관으로 삼는다. 유방의 군대를 지휘하게 된 한신은 기적적인 연승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는 유방의 군대를 몰고 중원 땅으로 진격, 파촉을 포위하고 있던 제후들을 순식간에 멸망시키고 유방을 중원의 새로운 강자로 우뚝 세운다.
그리고 대군을 몰고 유방을 제압하러 온 항우에 맞서 4년간 치열한 접전을 벌인다. 처음부터 무적의 항우 군에 상대가 되지 않을 싸움이었으나 한신은 빈틈 없는 군사작전에 상식을 깨는 지략으로 엄청나게 많은 적군을 괴멸 시켰다. 그는 압도적인 병력으로 포위해 오는 조나라 군대를 맞아 강을 등 뒤에 두고 결사항전을 벌여 승리하는 "배수진(背水陳)"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신은 항우 국토의 뒤를 돌아 동북면의 드넓은 땅을 점령했고, 중국 대륙을 유방의 서진, 항우의 동남오, 한신의 동북으로 삼등분 한다. 이때 한신은 대륙의 새로운 패자가 됐고, 유방을 돕느냐 마느냐에 따라 중원의 판도가 바뀔 양상이었다. 그러나, 한신은 스스로 군주에 올라 중원의 평화를 도모하자는 주변의 말을 물리치고 끝내 유방의 참모로 남는다. 그는 무적의 항우 군대를 해하 땅에 끌어들이고 철저하게 지형을 이용한 포위 작전을 구사, 항우를 죽음으로 몰아 넣는다.
한신의 충성스러운 활약 덕분에 유방은 중국 대륙의 통일 군주로 우뚝 서고 한나라를 세운다. 유방의 성공 요인은 참모들에 대한 신뢰였다. 유방은 스스로 부족했기에 재능 있는 참모들에 더 깊은 신뢰를 가졌고 그의 밑에서 장량, 한신 같은 당대 최고의 천재들이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지방 건달에 불과했던 유방은 당대 최강의 호걸들을 제압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유방은 자신을 황제의 자리에 앉게 해준 일등 공신 한신을 반란을 꾀했다는 죄목으로 끓는 가마솥 기름에 들어가 죽게 만든다. 한때 유방, 항우와 대치하며 새로운 대륙의 왕이 될 수 있었던 한신은 이렇게 비참한 2인자의 최후를 맞는다
BC 247년에 태어난 유방(劉邦)은 별볼일 없는 지방 한량에 불과했다. 그는 신분이나 능력은 보잘 것 없었으나 대신 천재를 알아보고 적극 활용하는 재능이 있었다. 성격도 불안하고 제멋대로였으나 사람들을 포용하고 고언에 귀 기울이는 느긋한 품성도 갖고 있었다.
유방은 도적 떼의 우두머리로 산속에 숨어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패현이란 지방의 현령이 된다. 이후 진나라의 폭정을 종식시키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킨다. 반란 세력의 우두머리가 된 유방은 장량이라는 천재 지략가를 만나고 장량의 활약에 힘입어 진나라를 멸하고 진나라 수도 관중의 영주가 된다. 진나라 관중에서 일개 노동자로 노역을 하던 유방이 10만 대군의 정복자로 돌아온 것. 그는 이후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만들었던 진나라의 악법을 모두 폐지하는 약법삼장을 발표,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다.
이때 유방의 독주를 견제하고 나선 세력이 항우였다. 강동의 정예병을 이끌고 파죽지세로 진나라 군대와 제후 세력들을 격파한 항우는 유방이 먼저 함락한 진나라의 수도로 돌격, 유방과 그의 추종세력을 몰아내고 자신이 중국 대륙의 정복자 자리에 앉는다. 이때 유방은 장량의 계책으로 목숨을 부지한 채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다. 당시 항우의 졸병 중엔 한신이라는 천재 군사참모가 있었는데 그는 항우의 푸대접에 지쳐 유방의 편에 서게 된다.
한신은 춘추전국 시대 말, 한(韓)나라의 왕족으로 나라가 망한 뒤 거지 꼴이 돼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녔는데, 거지 주제에 귀족 차림을 하고 다닌다고 수많은 이들로부터 수모를 당했고 심지어 거리의 건달들 시비에 가랑이 사이를 기어 지나가기도 했다.
한신이 유방의 밑으로 들어갔을 때는 그가 항우에 쫓겨 파촉이라는 고립된 지역에 갇혀 있을 때. 이곳에서 한신은 유방에게 중요한 군사 전략을 알려주었고, 이에 탄복한 유방은 한신을 자신의 군사 사령관으로 삼는다. 유방의 군대를 지휘하게 된 한신은 기적적인 연승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는 유방의 군대를 몰고 중원 땅으로 진격, 파촉을 포위하고 있던 제후들을 순식간에 멸망시키고 유방을 중원의 새로운 강자로 우뚝 세운다.
그리고 대군을 몰고 유방을 제압하러 온 항우에 맞서 4년간 치열한 접전을 벌인다. 처음부터 무적의 항우 군에 상대가 되지 않을 싸움이었으나 한신은 빈틈 없는 군사작전에 상식을 깨는 지략으로 엄청나게 많은 적군을 괴멸 시켰다. 그는 압도적인 병력으로 포위해 오는 조나라 군대를 맞아 강을 등 뒤에 두고 결사항전을 벌여 승리하는 "배수진(背水陳)"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신은 항우 국토의 뒤를 돌아 동북면의 드넓은 땅을 점령했고, 중국 대륙을 유방의 서진, 항우의 동남오, 한신의 동북으로 삼등분 한다. 이때 한신은 대륙의 새로운 패자가 됐고, 유방을 돕느냐 마느냐에 따라 중원의 판도가 바뀔 양상이었다. 그러나, 한신은 스스로 군주에 올라 중원의 평화를 도모하자는 주변의 말을 물리치고 끝내 유방의 참모로 남는다. 그는 무적의 항우 군대를 해하 땅에 끌어들이고 철저하게 지형을 이용한 포위 작전을 구사, 항우를 죽음으로 몰아 넣는다.
한신의 충성스러운 활약 덕분에 유방은 중국 대륙의 통일 군주로 우뚝 서고 한나라를 세운다. 유방의 성공 요인은 참모들에 대한 신뢰였다. 유방은 스스로 부족했기에 재능 있는 참모들에 더 깊은 신뢰를 가졌고 그의 밑에서 장량, 한신 같은 당대 최고의 천재들이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지방 건달에 불과했던 유방은 당대 최강의 호걸들을 제압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유방은 자신을 황제의 자리에 앉게 해준 일등 공신 한신을 반란을 꾀했다는 죄목으로 끓는 가마솥 기름에 들어가 죽게 만든다. 한때 유방, 항우와 대치하며 새로운 대륙의 왕이 될 수 있었던 한신은 이렇게 비참한 2인자의 최후를 맞는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