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의 왕’ 버드와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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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inceton 댓글 0건 조회 1,942회 작성일 10-08-11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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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맥주 브랜드를 헤아리면 2만개가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라거스(lagers)·에일스(ales)·필제너(pilsner)·스타우츠(stouts) 등 제조법에 따른 종류도 180가지가 넘는다. 이렇게 수많은 맥주 가운데 세계 최강자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맥주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라거맥주 버드와이저(Budweiser)다. 이 맥주는 그 위용을 자랑이라도 하듯 모든 맥주에 ‘더 킹 오브 비어즈’(The King of Beers)라는 수식을 붙이고 있다.
6,000년전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에 처음 등장하는 맥주는 고대 중국이나 아시리아·잉카 문명에서도 확인된다. BC 1600년 전의 이집트 기록에서는 맥주를 이용한 100가지의 의학적 처방까지 나타난다. 이러한 맥주는 로마와 그리스를 통해 유럽 대륙으로 전파된 뒤 독일에서 꽃피웠다. 그러나 현재의 세계 맥주시장에서는 미국 브랜드가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데, 그 이름이 바로 ‘버드와이저’다.
앤호이저家와 부시家의 만남
미국 내에서 처음 제조된 맥주는 1587년 버지니아에서 영국계 월터 롤리(Walter Raleigh)경에 의해 만들어진 에일 맥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판매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본격적인 맥주 양조장은 1633년에야 등장했고, 이로써 대부분 당시 영국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던 맥주 양조업은 미국에서도 관심산업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맥주 제조업자였고 지독한 맥주 애호가로 손꼽히는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1732∼99)은 대통령 취임 전부터 미국의 맥주산업을 지키기 위해 영국맥주 수입제한 켐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그 결과 19세기초 미국에는 130여개의 양조장이 생겨날 정도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미국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이정표들 가운데서도 맥주 양조기술만큼은 독일계 이민자들에 의한 성공사례로 남아 있다. 그 중심에 앤호이저-부시(Anheuser-Busch·이후 AB사로 줄여 표기함)사의 버드와이저와 버드 라이트(Bud Lighit)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서부와 동부를 잇는 관문에 해당하고 미시시피와 미주리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세인트루이스. 우리에게는 메이저리그 카디널스 구단의 연고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1857년, 이 도시에 18세의 한 독일인 소년이 대양(大洋)을 건너와 막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독일 카스텔 출신의 아돌푸스 부시(Adolphus Busch·1839∼1913)였다. 이 소년이 바로 오늘날 세계 최고의 맥주 브랜드로 우뚝 선 버드와이저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1876년 앤호이저부시사가 ‘버드와이저’를 내놓았을 때 미국에는 같은 이름의 맥주들이 한 때 난립했지만 최후 승자는 하나였다. 독일에서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울리히 부시(Ulrich Busch)와 릴리(Lilly) 사이에서 태어난 22명의 아이들 가운데 둘째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뤼셀대학 연구소 등에서 수학한 뒤 미국 땅을 밟았다. 그의 형제들은 세인트루이스와 워싱턴 등지에서 이미 맥주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가 신대륙으로 건너오기 5년 전인 1852년 조지 슈나이너(George Schneider)는 세인트루이스에서 AB사의 전신(前身)에 해당하는 배버리언(Bavarian) 양조장을 설립했다. 그러나 몇년만에 양조장은 파산했고 1859년 독일계인 에버하르트 앤호이저(Eberhard Anheuser)가 이를 인수해 ‘앤호이저사’(Anheuser & co.·1860)로 이름을 바꾸었다.
안호이저는 얼마후 세인트루이스에서 맥주 공급업자로 이름을 날리던 아돌푸스를 점찍은 뒤 자신의 딸(Lily)과 결혼시켰다. 사실 다른 부시 형제들도 양조업에 몸을 담고 있어 안호이저가(家)와 부시 형제들은 친밀한 관계였다. 안호이저는 릴리뿐만 아니라 릴리의 언니(Anna)까지 부시가의 형제에게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시집보냈다.
1864년부터 안호이저는 자신의 양조장 판매사업을 아돌푸스 부시에게 맡기면서 경영을 분담해 갔다. 1869년 아돌푸스는 자신이 별도로 운영하던 양조장을 앤호이저사에 합병시키고 회사 경영에 발벗고 나섰다. 그는 새로운 시장개척을 비롯해 기술개발·비즈니스 분야에서도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그는 당시 프랑스의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개발한 ‘저온살균법’을 이용해 혁신적인 맥주 저장법을 개발해냈고, 이를 유통과정에 도입했다. 이 첨단 방법을 통해 1872년부터 그는 세인트루이스에서 텍사스 등 서부까지 이 냉장기차를 이용해 맥주를 대량으로 유통시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장기간 이동에도 맥주의 질과 향은 전혀 변질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앤호이저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양조장들이 만들어내는 맥주는 사실 수준이 낮은 것들이었다.
초창기 버드와이저를 실어나르던 앤호이저부시사의 마차. 부시 가문의 역대 경영자들은 모두 초창기에 강력한 유통수단으로 이용됐던 클라이즈데일 (Clydesdale·스코틀랜드産 명마)을 소중히 여겨 종마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이러한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은 부시家가 동물들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를 만드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아돌푸스는 양조기술 개선 등을 위해 수차례 체코슬로바키아의 필젠으로 양조기술을 배우러 유럽을 여행했다. 필젠에서 65마일(100여km) 가량 떨어진 부드바이즈(Budweis:당시 합스부르크 왕조 치하에 있어 독일식 지명을 갖고 있었지만 1차대전후 합스부르크 왕조 몰락과 함께 체코식 지명인 ‘Ceske-Budojovice’로 바뀌었다)라는 마을이었다.1876년 그는 결국 친구이자 동업자인 칼 콘래드(Carl Conrad)와 함께 정제된 발리 몰트와 호프·쌀을 원료로 부드바이즈의 전통식 제조기술을 도입해 새로운 개념의 맥주를 선보였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AB사의 최고 히트 상표이자 세계 맥주시장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는 ‘버드와이저’의 출발점이었다. 사실 당시에는 AB사뿐만 아니라 미국내 경쟁회사들도 앞다퉈 버드와이저를 출시했지만 그 경쟁에서 AB사가 최종 승리했다.
3년 후인 1879년 회사는 이름을 앤호이저-부시 양조회사(Anheuser-Busch Brewing Association)로 바꾸었고 이듬해 그는 회사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그의 장인인 안호이저는 이듬해 사망했다). 버드와이저라는 이름은 체코의 지명을 독일식 표기로 붙인 것으로, AB사는 맥주의 본산에 해당하는 독일에서의 판매까지 겨냥해 붙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AB사의 버드와이저가 등장한 지 20년뒤 체코의 국영 맥주회사가 ‘부드바이저 부드바’라는 이름의 브랜드로 유럽에서 제품을 선보였고, 이로 인해 유럽에서는 보통 버드와이저의 원조는 체코산 맥주로 통한다. 똑같은 이름으로 양쪽 회사는 최근까지 오랜 상표권 분쟁을 치렀다).
아우구스트 부시 3세 회장은 1977년부터 ‘버드와이저’를 비롯한 자사의 맥주 브랜드들에 스포츠마케팅을 접목시켜 오늘날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기초를 쌓았다. 버드와이저는 각종 국제 카레이스 시리즈를 비롯해 MBA 농구나 NHL아이스하키, 하계·동계 올림픽, 월드컵 대회의 막강한 후원자다. 120년 이어진 패밀리기업 傳統
아돌푸스 부시는 33년 동안 AB사를 이끌면서 회사를 단번에 미국 최고의 맥주회사로 키웠다. 20세기가 시작되던 1901년 AB사는 미국내 최대 양조업체로 발돋움했고, 오늘날에는 세계 최대의 맥주시장인 미국에서 50%에 육박하는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는 기반을 만들어 냈다. 아돌푸스는 AB사의 설립자로서의 명성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맥주 양조기술과 미국 내에서 냉장기차의 발명을 포함해 새로운 유통 시스템을 도입한 맥주업계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세상을 하직하고 120여년 동안 AB사의 경영권은 4대(代)째를 거슬러 내려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패밀리 기업으로서 과거의 전통과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오는 보기 드문 경우다. 1913년 창업자가 숨을 거두자 그의 아들인 아우구스트 부시가 경영을 이었고, 34년부터는 손자인 아돌푸스 부시3세, 46년부터는 아우구스트 A. 부시 주니어가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1974년에는 증손자 아우구스트 A.부시 3세가 회장직에 올랐고, 지난 92년에는 아우구스트 A.부시 4세가 부회장에 올라 4대째까지 버드와이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부시 4세는 현재 37세의 나이로 AB사의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
한 세기가 훌쩍 넘은 장구한 세월 동안 굳건히 회사를 지켜온 부시가의 후계자들은 창업자 아돌푸스로부터 차례로 전승되어온 맥주의 품질에 대한 가치와 신념을 계승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부시가에서 새로이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주는 첫번째 음식은 우유가 아니라 버드와이저 맥주 한방울이라는 재미있는 일화까지 있다. 미국의 최고 경제지인 ‘포브스’지에 의해 최근까지 미국내 10대 재벌가로 꼽힐 정도로 부시가는 막강한 부(富)도 축적했다. 그러나 AB사도 지난 1세기를 달려오면서 몇차례 위기를 맞기도 했다.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된 1919년 이후 회사는 한때 이스트와 옥수수, 몰트 시럽,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회사로 명맥을 유지해야 했다. 그런 ‘외도’(外道)는 금주법이 폐지될 때까지 지속됐다.
1933년 8월 뉴욕에서 열린, AB사 부시 회장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에서 알 스미스(Al Smith) 당시 주지사에게 버드와이저 두 상자를 헌정하는 의식과 함께 금주법은 역사적인 종말을 고했다. 부시가는 당시 대통령이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도 똑같이 버드와이저를 선물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찾아온 미국사회의 풍요로움은 맥주 메이커들간의 활발한 경쟁을 낳았다. 이 싸움에서 승리한 것도 역시 AB사의 버드와이저였다. 1957년 AB사는 그때까지 최대 맥주 메이커이던 슈리츠(Schlitz)를 제치고 다시 미국 내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것이다.
가격경쟁을 벌이던 슈릿츠의 이미지는 계속 추락했고 블루칼라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은 AB사는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최고 맥주로서의 명성을 이어가던 버드와이저는 1970년대 들어 다시 한번 커다란 도전에 직면했다.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가 밀러(Miller)를 인수한 후 새로운 개념의 맥주를 선보이면서 시장에서 버드와이저를 위협한 것이다. 당시 밀러는 저칼로리 라이트 맥주를 통해 전체 라이트 맥주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기까지 했다.
상처받은 버드와이저의 자존심을 회복시킨 것은 1974년에 AB사의 경영을 승계한 젊은 CEO 아우구스트 부시 3세였다. 1977년 7월 아우구스트 회장은 회사에 새로운 마케팅 프로그램을 도입해 맥주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왔다. 아우구스트의 뉴 프로그램의 세가지 축은 인종집단별 시장 세분화, 가정시장 중심, 스포츠마케팅으로 대별된다. 그것은 당시 밀러의 대도약에 대한 대응전략이었고 위기 타개책이었다.
‘버드와이저’는 ‘왓섭’(Whassup?) 광고 시리즈로 2000년 칸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는 등 그동안 기발한 CF 아이디어로 주목받아왔다. 사진은 미녀들의 각선미와 ‘버드와이저’의 상표가 시선을 끄는 인쇄매체 광고. 스포츠마케팅은 역동적 에너지의 분출구
아우구스트 회장은 프로그램의 성공적인 이륙을 위해 최고 브랜드로 꼽히던 펩시·코카콜라, 프록터 앤 갬블 등에서 최고의 마케팅 전문가들을 스카우트해 AB사를 마케팅 중심의 회사로 완벽하게 변신시켰다. 1994년 이 회사의 버드 라이트 맥주는 밀러 라이트 맥주를 14년만에 앞지르고 라이트 맥주시장에서 선두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마케팅 전략에서 영향받은 바 크다.
1953년 2월, 아우구스트 부시 주니어는 메이저리그의 유명 구단 가운데 하나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구단을 인수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카디널스의 인수 결정은 당시 AB사의 모태가 된 세인트루이스 로컬 야구팬들로부터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카디널스 구단은 당시 최악의 경우 밀워키나 휴스턴 등으로 연고지를 옮기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현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홈구장은 부시 스타디움이다). AB사를 이끌고 있는 부시 가문과 스포츠의 인연은 각별하게만 느껴진다. 이러한 인연은 오늘날 AB사가 맥주회사 가운데 스포츠마케팅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앞서 언급한 대로 버드와이저는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의 16개 공식 스폰서 가운데 하나로, 대회중에도 활발한 마케팅과 판매활동을 벌이고 있다. 경기장 내에 주류에 해당하는 맥주를 반입하는 것은 FIFA의 상업주의와 AB사의 가공(可恐)할 마케팅 능력을 고스란히 증명하는 것이다. 버드와이저는 월드컵과 하계·동계 올림픽의 공식 스폰서(Official Partner) 참여 등 메이저 스포츠대회 후원뿐만 아니라 슈퍼볼 미식축구와 프로농구, 각종 카레이스, 아이스하키, 골프, 리치발리볼 등 세계 최고의 스포츠 무대와 스타들을 전방위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 대회나 선수의 프로모션과 스포츠 광고 외에 버드와이저가 보다 강조하는 것은 맥주의 최종 소비자인 스포츠팬들을 타깃으로 한 것이다. AB사는 스포츠 종목에 따라 자사가 생산해내는 맥주 브랜드들을 차별화시켜 스폰서로 참여시킨다. 골프는 최고급 맥주인 ‘Michelob’, 아이스하키는 ‘Bud Ice’, 비치발리볼은 ‘Bud Light’등과 연계시키는 식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버드와이저의 마케팅과 판매활동 가운데 직간접적으로 스포츠 관련 마케팅은 전체의 65% 이상을 차지한다. 이같은 스포츠마케팅은 세계 각국의 맥주 소비자들이 대부분 스포츠를 선호한다는 과학적인 조사를 토대로 한 것이다. 이러한 마케팅 전략은 ‘친구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비즈니스’(Making friends is our business)라는 회사의 모토와 부합한다. AB사는 1950년대 이후 이 모토를 회사의 기본정신으로 삼고 있다. 세계를 통틀어 베스트셀러 맥주 브랜드의 랭킹 가운데 1, 2위는 AB사의 브랜드가 휩쓸고 있다. 버드와이저와 버드라이트가 그것이다.
미국에서만 버드 계열 맥주 1억배럴 생산
2001년의 몇가지 통계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금방 확인된다. 지난 한햇동안 AB사가 맥주사업으로 벌어들인 순익은 무려 19억달러에 달했다. 미국내 맥주시장 점유율도 48.8%를 기록해 밀러(Miller:19.3%)나 쿠어스(Coors:11%) 등 경쟁 브랜드를 멀찌감치 제쳐놓고 있다. 이같은 점유율은 지난 1980년의 30%에 비해서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으로, 한동안 버드와이저의 아성을 허물 만한 경쟁자는 나타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 내에 있는 12개 AB사 양조장에서 만들어내는 전체 생산량도 같은해 1억배럴을 돌파했다. 이 기록도 5,200만배럴의 생산량을 기록했던 1980년보다 두배 가량 증가한 것이다(AB사의 전신인 배버리언의 1852년 첫해 생산량은 50배럴에 불과했다).
AB사의 유통 시스템은 각주에 퍼져 있는 12개의 양조장과 600개가 넘는 도매상들에 의해 최단거리로 이어져 물류비용과 이동시간에서도 최저가격·최단시간을 자랑한다. 심지어 AB사는 미국 내에 들어와 팔리는 수입맥주를 통해서도 수익을 챙긴다. 현재 미국 내에서 판매중인 수입 맥주 가운데 수위를 기록하고 있는 코로나(Corona:데킬라 향이 첨가된 멕시코 브랜드 맥주)의 제조업체인 모델로(Modelo)사의 지분을 56%나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 AB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중국에서 17%의 매출증가를 이루어 처음으로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아일랜드에서는 1위, 캐나다에서는 2위의 판매율을 기록하는 등 세계 80여개국에서 선전하고 있다. 세계 13개국에 로컬 양조장이 세워져 있고 국내에서는 1987년 OB맥주가 AB사와의 기술협력 하에 버드와이저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AB사는 맥주를 생산하는 단순한 주류회사가 아니다. 맥주에서 파생된 부시사의 외연은 차라리 ‘화려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미국의 3대 테마파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부시가든(Busch Gargen)을 비롯해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의 시월드(Sea World) 등 9개의 테마파크가 AB사의 관계회사다. 이곳 테마파크들에서는 예외 없이 버드와이저를 비롯한 맥주와 음료들이 팔려나간다. 제조업뿐만 아니라 레저·오락산업과 메스컴산업을 포괄하고 있는 버드와이저는 이미 세계시장을 주무르는 복합기업적인 형태로 발전해 있다. 현재 앤호이저-부시사의 사령탑인 아우구스트 부시 3세는 AB사의 회장이자 이사회 의장으로 줄기차게 새로운 비즈니스와 마케팅 프로그램을 도입해 회사의 이미지를 젊고 역동적인 회사로 변신시키고 있다.
6,000년전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에 처음 등장하는 맥주는 고대 중국이나 아시리아·잉카 문명에서도 확인된다. BC 1600년 전의 이집트 기록에서는 맥주를 이용한 100가지의 의학적 처방까지 나타난다. 이러한 맥주는 로마와 그리스를 통해 유럽 대륙으로 전파된 뒤 독일에서 꽃피웠다. 그러나 현재의 세계 맥주시장에서는 미국 브랜드가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데, 그 이름이 바로 ‘버드와이저’다.
앤호이저家와 부시家의 만남
미국 내에서 처음 제조된 맥주는 1587년 버지니아에서 영국계 월터 롤리(Walter Raleigh)경에 의해 만들어진 에일 맥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판매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본격적인 맥주 양조장은 1633년에야 등장했고, 이로써 대부분 당시 영국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던 맥주 양조업은 미국에서도 관심산업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맥주 제조업자였고 지독한 맥주 애호가로 손꼽히는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1732∼99)은 대통령 취임 전부터 미국의 맥주산업을 지키기 위해 영국맥주 수입제한 켐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그 결과 19세기초 미국에는 130여개의 양조장이 생겨날 정도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미국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이정표들 가운데서도 맥주 양조기술만큼은 독일계 이민자들에 의한 성공사례로 남아 있다. 그 중심에 앤호이저-부시(Anheuser-Busch·이후 AB사로 줄여 표기함)사의 버드와이저와 버드 라이트(Bud Lighit)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서부와 동부를 잇는 관문에 해당하고 미시시피와 미주리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세인트루이스. 우리에게는 메이저리그 카디널스 구단의 연고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1857년, 이 도시에 18세의 한 독일인 소년이 대양(大洋)을 건너와 막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독일 카스텔 출신의 아돌푸스 부시(Adolphus Busch·1839∼1913)였다. 이 소년이 바로 오늘날 세계 최고의 맥주 브랜드로 우뚝 선 버드와이저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1876년 앤호이저부시사가 ‘버드와이저’를 내놓았을 때 미국에는 같은 이름의 맥주들이 한 때 난립했지만 최후 승자는 하나였다. 독일에서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울리히 부시(Ulrich Busch)와 릴리(Lilly) 사이에서 태어난 22명의 아이들 가운데 둘째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뤼셀대학 연구소 등에서 수학한 뒤 미국 땅을 밟았다. 그의 형제들은 세인트루이스와 워싱턴 등지에서 이미 맥주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가 신대륙으로 건너오기 5년 전인 1852년 조지 슈나이너(George Schneider)는 세인트루이스에서 AB사의 전신(前身)에 해당하는 배버리언(Bavarian) 양조장을 설립했다. 그러나 몇년만에 양조장은 파산했고 1859년 독일계인 에버하르트 앤호이저(Eberhard Anheuser)가 이를 인수해 ‘앤호이저사’(Anheuser & co.·1860)로 이름을 바꾸었다.
안호이저는 얼마후 세인트루이스에서 맥주 공급업자로 이름을 날리던 아돌푸스를 점찍은 뒤 자신의 딸(Lily)과 결혼시켰다. 사실 다른 부시 형제들도 양조업에 몸을 담고 있어 안호이저가(家)와 부시 형제들은 친밀한 관계였다. 안호이저는 릴리뿐만 아니라 릴리의 언니(Anna)까지 부시가의 형제에게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시집보냈다.
1864년부터 안호이저는 자신의 양조장 판매사업을 아돌푸스 부시에게 맡기면서 경영을 분담해 갔다. 1869년 아돌푸스는 자신이 별도로 운영하던 양조장을 앤호이저사에 합병시키고 회사 경영에 발벗고 나섰다. 그는 새로운 시장개척을 비롯해 기술개발·비즈니스 분야에서도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그는 당시 프랑스의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개발한 ‘저온살균법’을 이용해 혁신적인 맥주 저장법을 개발해냈고, 이를 유통과정에 도입했다. 이 첨단 방법을 통해 1872년부터 그는 세인트루이스에서 텍사스 등 서부까지 이 냉장기차를 이용해 맥주를 대량으로 유통시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장기간 이동에도 맥주의 질과 향은 전혀 변질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앤호이저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양조장들이 만들어내는 맥주는 사실 수준이 낮은 것들이었다.
초창기 버드와이저를 실어나르던 앤호이저부시사의 마차. 부시 가문의 역대 경영자들은 모두 초창기에 강력한 유통수단으로 이용됐던 클라이즈데일 (Clydesdale·스코틀랜드産 명마)을 소중히 여겨 종마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이러한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은 부시家가 동물들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를 만드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아돌푸스는 양조기술 개선 등을 위해 수차례 체코슬로바키아의 필젠으로 양조기술을 배우러 유럽을 여행했다. 필젠에서 65마일(100여km) 가량 떨어진 부드바이즈(Budweis:당시 합스부르크 왕조 치하에 있어 독일식 지명을 갖고 있었지만 1차대전후 합스부르크 왕조 몰락과 함께 체코식 지명인 ‘Ceske-Budojovice’로 바뀌었다)라는 마을이었다.1876년 그는 결국 친구이자 동업자인 칼 콘래드(Carl Conrad)와 함께 정제된 발리 몰트와 호프·쌀을 원료로 부드바이즈의 전통식 제조기술을 도입해 새로운 개념의 맥주를 선보였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AB사의 최고 히트 상표이자 세계 맥주시장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는 ‘버드와이저’의 출발점이었다. 사실 당시에는 AB사뿐만 아니라 미국내 경쟁회사들도 앞다퉈 버드와이저를 출시했지만 그 경쟁에서 AB사가 최종 승리했다.
3년 후인 1879년 회사는 이름을 앤호이저-부시 양조회사(Anheuser-Busch Brewing Association)로 바꾸었고 이듬해 그는 회사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그의 장인인 안호이저는 이듬해 사망했다). 버드와이저라는 이름은 체코의 지명을 독일식 표기로 붙인 것으로, AB사는 맥주의 본산에 해당하는 독일에서의 판매까지 겨냥해 붙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AB사의 버드와이저가 등장한 지 20년뒤 체코의 국영 맥주회사가 ‘부드바이저 부드바’라는 이름의 브랜드로 유럽에서 제품을 선보였고, 이로 인해 유럽에서는 보통 버드와이저의 원조는 체코산 맥주로 통한다. 똑같은 이름으로 양쪽 회사는 최근까지 오랜 상표권 분쟁을 치렀다).
아우구스트 부시 3세 회장은 1977년부터 ‘버드와이저’를 비롯한 자사의 맥주 브랜드들에 스포츠마케팅을 접목시켜 오늘날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기초를 쌓았다. 버드와이저는 각종 국제 카레이스 시리즈를 비롯해 MBA 농구나 NHL아이스하키, 하계·동계 올림픽, 월드컵 대회의 막강한 후원자다. 120년 이어진 패밀리기업 傳統
아돌푸스 부시는 33년 동안 AB사를 이끌면서 회사를 단번에 미국 최고의 맥주회사로 키웠다. 20세기가 시작되던 1901년 AB사는 미국내 최대 양조업체로 발돋움했고, 오늘날에는 세계 최대의 맥주시장인 미국에서 50%에 육박하는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는 기반을 만들어 냈다. 아돌푸스는 AB사의 설립자로서의 명성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맥주 양조기술과 미국 내에서 냉장기차의 발명을 포함해 새로운 유통 시스템을 도입한 맥주업계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세상을 하직하고 120여년 동안 AB사의 경영권은 4대(代)째를 거슬러 내려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패밀리 기업으로서 과거의 전통과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오는 보기 드문 경우다. 1913년 창업자가 숨을 거두자 그의 아들인 아우구스트 부시가 경영을 이었고, 34년부터는 손자인 아돌푸스 부시3세, 46년부터는 아우구스트 A. 부시 주니어가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1974년에는 증손자 아우구스트 A.부시 3세가 회장직에 올랐고, 지난 92년에는 아우구스트 A.부시 4세가 부회장에 올라 4대째까지 버드와이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부시 4세는 현재 37세의 나이로 AB사의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
한 세기가 훌쩍 넘은 장구한 세월 동안 굳건히 회사를 지켜온 부시가의 후계자들은 창업자 아돌푸스로부터 차례로 전승되어온 맥주의 품질에 대한 가치와 신념을 계승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부시가에서 새로이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주는 첫번째 음식은 우유가 아니라 버드와이저 맥주 한방울이라는 재미있는 일화까지 있다. 미국의 최고 경제지인 ‘포브스’지에 의해 최근까지 미국내 10대 재벌가로 꼽힐 정도로 부시가는 막강한 부(富)도 축적했다. 그러나 AB사도 지난 1세기를 달려오면서 몇차례 위기를 맞기도 했다.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된 1919년 이후 회사는 한때 이스트와 옥수수, 몰트 시럽,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회사로 명맥을 유지해야 했다. 그런 ‘외도’(外道)는 금주법이 폐지될 때까지 지속됐다.
1933년 8월 뉴욕에서 열린, AB사 부시 회장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에서 알 스미스(Al Smith) 당시 주지사에게 버드와이저 두 상자를 헌정하는 의식과 함께 금주법은 역사적인 종말을 고했다. 부시가는 당시 대통령이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도 똑같이 버드와이저를 선물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찾아온 미국사회의 풍요로움은 맥주 메이커들간의 활발한 경쟁을 낳았다. 이 싸움에서 승리한 것도 역시 AB사의 버드와이저였다. 1957년 AB사는 그때까지 최대 맥주 메이커이던 슈리츠(Schlitz)를 제치고 다시 미국 내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것이다.
가격경쟁을 벌이던 슈릿츠의 이미지는 계속 추락했고 블루칼라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은 AB사는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최고 맥주로서의 명성을 이어가던 버드와이저는 1970년대 들어 다시 한번 커다란 도전에 직면했다.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가 밀러(Miller)를 인수한 후 새로운 개념의 맥주를 선보이면서 시장에서 버드와이저를 위협한 것이다. 당시 밀러는 저칼로리 라이트 맥주를 통해 전체 라이트 맥주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기까지 했다.
상처받은 버드와이저의 자존심을 회복시킨 것은 1974년에 AB사의 경영을 승계한 젊은 CEO 아우구스트 부시 3세였다. 1977년 7월 아우구스트 회장은 회사에 새로운 마케팅 프로그램을 도입해 맥주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왔다. 아우구스트의 뉴 프로그램의 세가지 축은 인종집단별 시장 세분화, 가정시장 중심, 스포츠마케팅으로 대별된다. 그것은 당시 밀러의 대도약에 대한 대응전략이었고 위기 타개책이었다.
‘버드와이저’는 ‘왓섭’(Whassup?) 광고 시리즈로 2000년 칸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는 등 그동안 기발한 CF 아이디어로 주목받아왔다. 사진은 미녀들의 각선미와 ‘버드와이저’의 상표가 시선을 끄는 인쇄매체 광고. 스포츠마케팅은 역동적 에너지의 분출구
아우구스트 회장은 프로그램의 성공적인 이륙을 위해 최고 브랜드로 꼽히던 펩시·코카콜라, 프록터 앤 갬블 등에서 최고의 마케팅 전문가들을 스카우트해 AB사를 마케팅 중심의 회사로 완벽하게 변신시켰다. 1994년 이 회사의 버드 라이트 맥주는 밀러 라이트 맥주를 14년만에 앞지르고 라이트 맥주시장에서 선두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마케팅 전략에서 영향받은 바 크다.
1953년 2월, 아우구스트 부시 주니어는 메이저리그의 유명 구단 가운데 하나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구단을 인수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카디널스의 인수 결정은 당시 AB사의 모태가 된 세인트루이스 로컬 야구팬들로부터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카디널스 구단은 당시 최악의 경우 밀워키나 휴스턴 등으로 연고지를 옮기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현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홈구장은 부시 스타디움이다). AB사를 이끌고 있는 부시 가문과 스포츠의 인연은 각별하게만 느껴진다. 이러한 인연은 오늘날 AB사가 맥주회사 가운데 스포츠마케팅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앞서 언급한 대로 버드와이저는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의 16개 공식 스폰서 가운데 하나로, 대회중에도 활발한 마케팅과 판매활동을 벌이고 있다. 경기장 내에 주류에 해당하는 맥주를 반입하는 것은 FIFA의 상업주의와 AB사의 가공(可恐)할 마케팅 능력을 고스란히 증명하는 것이다. 버드와이저는 월드컵과 하계·동계 올림픽의 공식 스폰서(Official Partner) 참여 등 메이저 스포츠대회 후원뿐만 아니라 슈퍼볼 미식축구와 프로농구, 각종 카레이스, 아이스하키, 골프, 리치발리볼 등 세계 최고의 스포츠 무대와 스타들을 전방위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 대회나 선수의 프로모션과 스포츠 광고 외에 버드와이저가 보다 강조하는 것은 맥주의 최종 소비자인 스포츠팬들을 타깃으로 한 것이다. AB사는 스포츠 종목에 따라 자사가 생산해내는 맥주 브랜드들을 차별화시켜 스폰서로 참여시킨다. 골프는 최고급 맥주인 ‘Michelob’, 아이스하키는 ‘Bud Ice’, 비치발리볼은 ‘Bud Light’등과 연계시키는 식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버드와이저의 마케팅과 판매활동 가운데 직간접적으로 스포츠 관련 마케팅은 전체의 65% 이상을 차지한다. 이같은 스포츠마케팅은 세계 각국의 맥주 소비자들이 대부분 스포츠를 선호한다는 과학적인 조사를 토대로 한 것이다. 이러한 마케팅 전략은 ‘친구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비즈니스’(Making friends is our business)라는 회사의 모토와 부합한다. AB사는 1950년대 이후 이 모토를 회사의 기본정신으로 삼고 있다. 세계를 통틀어 베스트셀러 맥주 브랜드의 랭킹 가운데 1, 2위는 AB사의 브랜드가 휩쓸고 있다. 버드와이저와 버드라이트가 그것이다.
미국에서만 버드 계열 맥주 1억배럴 생산
2001년의 몇가지 통계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금방 확인된다. 지난 한햇동안 AB사가 맥주사업으로 벌어들인 순익은 무려 19억달러에 달했다. 미국내 맥주시장 점유율도 48.8%를 기록해 밀러(Miller:19.3%)나 쿠어스(Coors:11%) 등 경쟁 브랜드를 멀찌감치 제쳐놓고 있다. 이같은 점유율은 지난 1980년의 30%에 비해서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으로, 한동안 버드와이저의 아성을 허물 만한 경쟁자는 나타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 내에 있는 12개 AB사 양조장에서 만들어내는 전체 생산량도 같은해 1억배럴을 돌파했다. 이 기록도 5,200만배럴의 생산량을 기록했던 1980년보다 두배 가량 증가한 것이다(AB사의 전신인 배버리언의 1852년 첫해 생산량은 50배럴에 불과했다).
AB사의 유통 시스템은 각주에 퍼져 있는 12개의 양조장과 600개가 넘는 도매상들에 의해 최단거리로 이어져 물류비용과 이동시간에서도 최저가격·최단시간을 자랑한다. 심지어 AB사는 미국 내에 들어와 팔리는 수입맥주를 통해서도 수익을 챙긴다. 현재 미국 내에서 판매중인 수입 맥주 가운데 수위를 기록하고 있는 코로나(Corona:데킬라 향이 첨가된 멕시코 브랜드 맥주)의 제조업체인 모델로(Modelo)사의 지분을 56%나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 AB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중국에서 17%의 매출증가를 이루어 처음으로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아일랜드에서는 1위, 캐나다에서는 2위의 판매율을 기록하는 등 세계 80여개국에서 선전하고 있다. 세계 13개국에 로컬 양조장이 세워져 있고 국내에서는 1987년 OB맥주가 AB사와의 기술협력 하에 버드와이저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AB사는 맥주를 생산하는 단순한 주류회사가 아니다. 맥주에서 파생된 부시사의 외연은 차라리 ‘화려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미국의 3대 테마파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부시가든(Busch Gargen)을 비롯해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의 시월드(Sea World) 등 9개의 테마파크가 AB사의 관계회사다. 이곳 테마파크들에서는 예외 없이 버드와이저를 비롯한 맥주와 음료들이 팔려나간다. 제조업뿐만 아니라 레저·오락산업과 메스컴산업을 포괄하고 있는 버드와이저는 이미 세계시장을 주무르는 복합기업적인 형태로 발전해 있다. 현재 앤호이저-부시사의 사령탑인 아우구스트 부시 3세는 AB사의 회장이자 이사회 의장으로 줄기차게 새로운 비즈니스와 마케팅 프로그램을 도입해 회사의 이미지를 젊고 역동적인 회사로 변신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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