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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정치철학과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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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873회 작성일 10-08-0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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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사상에서 정치 철학은 도덕 철학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사실 그는 국가를 "큰 글씨로 쓰여진 인간"이라고 생각하였다. 정의(正義)가 도덕적인 사람이 갖는 일반적인 덕인 것처럼, 선한 사회를 특징짓는 것도 정의인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정의로운 인간과 정의로운 사회 사이의 관계를 단순히 논리적으로 일치하는 것으로 만족하지는 않았다. 그에 의하면 인간과 국가간에도 논리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구조적이며 본질적인 관계가 존재한다고 논의하고 싶어했다. 그는 "우리는 우선 한 국가에서 정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탐구함으로써 시작해야 한다. 그 다음에야 우리는 동일한 이데아의 좀더 작은 규모를 개인 속에서 추구해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정의롭고 선한 인간에 대해서만 탐구하려고 하는 사람을 이렇게 묘사하였는데, "근시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떨어져서 깨알같은 글씨로 쓰여진 비명(碑銘)을 읽고 있는 사람이다. 만일 누군가가 어떤 곳에 더 큰 글씨로 쓰여진 동일한 비명이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준다면, 그는 이를 대단한 행운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1. 큰 글씨로 쓰여진 인간으로서의 국가


 우리는 플라톤의 순서와 반대로 정의로운 인간부터 고찰해왔다. 비록 플라톤이 국가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작하고 있지만, 그의 주장 전체를 통해 그는 국가를 개인의 본성에서 추론하고 있으며, 따라서 논리적으로는 개인이 국가에 선행하는 것이 된다. 그에 의하면 국가는 하나의 자연적인 사회제도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 본성의 구조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기원은 인간의 경제적 욕구의 반영이라고 플라톤은 주장한다. 즉 "어떤 개인도 스스로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말해 인간은 모두 많은 욕구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가 발생하게 되었다." 우리의 많은 욕구들은 많은 테크놀로지를 요구하며, 어느 누구도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소유할 수는 없다. 그 밖의 다양한 기술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노동의 분화는 필수적이다. "모든 사람이 모든 다른 업무에서 벗어나 그에게 본성적으로 적합한 한 가지 일에 전념할 때, 좀더 많은 것들이 생산될 수 있고, 작업도 좀더 쉽고 훌륭하게 실현된다." 더욱이 인간의 욕구는 그의 육체적 필요 조건들로 제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의 목적은 단순히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보다 고매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논의는 신자유주의를 선도했던 현대의 하이에크의 이론을 생각나게 하는 논리적 구성을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강한 국가는 광범위한 영역의 갈망들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며, "어떤 단순한 필요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직업들이 팽배하게 될 것이다." "사냥꾼들, 어부들, 조각가들, 미술가들, 음악가들, 직업적인 시인들, 배우들, 무희들, 연출가들, 주부들의 장신구를 제조한 사람들"이 존재하게 될 것이며, "우리는 좀더 많은 노예들.. 하녀들, 이발사들, 요리사들, 제빵업자들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물에 대한 이러한 갈망은 국가의 자원을 소모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웃들의 땅을 한 뼘이라도 잘라 가져야 할 것이며 그들도 우리의 땅 한 뼘을 원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웃들간의 싸움은 불가피하다. 투쟁의 기원은 "갈망이 있으며 투쟁은 개인과 국가 모두에 대해 죄악의 가장 충실한 근원이 된다."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모든 재산과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할 군대를 보유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수호자들이 출현한다. 그들은 처음에는 침입자를 격퇴하고 군 내부의 질서를 공고히 하는 엄격하고 힘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두 계층으로 분명히 구분된다. 한 계급은 생산 계급- 농부, 장인, 상인들 -이며 다른 한 계급은 공동 사회를 수호하는 전사(戰士) 계급이다. 후자로부터 가장 잘 훈련된 전사들이 선택되는바, 그들은 국가의 통치자가 되어 제 3의 엘리트 계급을 형성한다.

  개인과 국가의 관계는 명백해진다. 왜냐하면 국가 내의 세 계급은 영혼의 세 부분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기술자나 장인 계급은 영혼의 가장 낮은 단계, 즉 욕망을 나타내며, 전사들은 영혼의 기개 부분을 체현(體現)하고 있다. 또한 최상의 계급인 통치자들은 이성적 요소를 나타낸다. 이러한 분석은 논리적 엄격성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쉽게 다음과 같은 관련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개인의 욕망과 이 욕망들을 충족시키는 노동 계급간의 관계, 2) 인간의 기개의 요소와 그 역동적 힘을 거대한 규모로 변형한 군대 조직간의 관계, 3) 이성적 요소와 지배자의 영도력이라는 특수한 기능간의 관계.

  그러나 플라톤은 시민들이 국가 내의 이러한 계급 조직을 받아들이는 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기회가 있다면 결코 선택하지 않을 계급에 자신이 속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을 폭넓게 교육시켜 본 다음에야 계급을 정해 주어야 할 것이며, 그 계급 내에서 임무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더 높은 계급에로의 진출이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론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최상의 계급에까지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타고난 적정 수준에 머물고 마는 사태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을 그의 운명에 만족하도록 하기 위해 플라톤은 "하나의 편의적인 허구"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고상한 거짓말은 결국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민을 설득하고 있다. 즉 모든 인간을 창조했던 신(神)은 통치자가 될 사람에게는 "황금을 섞었고", 전사가 될 사람에게는 "은을 섞었으며", "농부들과 장인들에게는 쇠와 구리를 섞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본성에 따라 통치자가 되기도 하고 장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은 사회에 완전한 위계 질서를 위한 기초를 마련해준다. 그러나 후세의 계급 사회에 있어, 유아들은 그들이 태어난 계층과 동일한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하였던 반면에, 플라톤은 유아의 경우는 그들의 양친과 동일한 품성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플라톤은 아무리 지배 계층에 속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만일 그들의 자식이 구리나 쇠의 성분을 지니고 태어나면, 동정의 여지없이 그에게 맞는 직위를 주어 수공인이나 농부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장인에게서 금이나 은의 성분을 지닌 자식이 태어난다면 "그들은 그를 그의 가치에 맞게 대우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아무튼 중요한 사실은 플라톤의 생각에 시민은 누가 지배자가 될 수 있는가에 동의해야 하며, 그들이 지배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에 동의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2. 철학자 군주

플라톤에 있어 권위의 자격이 능력이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국가의 지배자는 그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들을 갖춘 사람이어야 했다. 국가의 무질서는 개인들에게 발생하는 무질서와 동일한 상황에 의해 야기된다고 그는 파악하였다. 즉 더 낮은 요소들이 보다 높은 임무들의 역할을 방해하려는 시도에 의해 야기된다는 것이다. 개인과 국가에 모두, 욕망과 기개가 통제되지 않는 행위는 내부의 무질서를 초래한다. 양자의 경우에 모두 이성적 요소가 통제력을 발휘하고 있어야 한다. 누가 배(船)의 선장이 되어야 하는가? -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아니면 항해술에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할까? 혹은 전쟁에서 훈련된 사람이어야 할까. 또는 상업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어야 할까? 플라톤에 의하면, 통치자는 충실히 교육받은 사람이어야 하며 그래야만 했다. 왜냐하면 가시계(可視界)와 가지계(可知界)의 차이를, 속견과 지식의 영역의 차이를, 현상과 실재의 차이를 이해하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어야 분할된 선(線)을 거슬러 올라가 선(善)의 이데아에 대한 지식을 소유할 수 있고 그래야만 비로소 모든 진리들의 상호 관련성을 개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철학자 군주는 여러 단계의 교육을 거쳐야 한다. 적어도 18세가 될 때까지 그는 문학을 비롯한 음악, 기초 수학 및 교양을 훈련해야 하며, 그의 문예(文藝) 역시 검열받아야 한다. 음악도 향락적인 음악보다 좀더 건전하고 전투적인 음조로 대치되어야 할 것이고, 그 후 몇 년 동안은 육체 단련과 군사 훈련이 광범위하게 시행된 후, 20세에는 고등 수학을 배우고, 30세가 되는 해에 변증술과 도덕철학의 5년 코스를 마쳐야 한다. 그 다음 15년간은 공공 봉사를 통해 실제적인 경험을 축적하는 데 소비되어야 할 것이고, 결국 50세에 이르러 그 중 가장 유능한 사람이 가장 높은 지식의 이데아를 인식하게 될 것이며, 그는 그제서야 한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3. 국가의 덕목들


  플라톤에 의하면 정의가 한 국가에서 성취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과연 사회의 철학적 요소가 지배력을 획득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그는 "나는 올바른 철학을 옹호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하나의 장점을 제공한다. 그 장점은 우리가 그것을 통하여 어떤 경우에서든지 국가와 개인을 위해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가를 식별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였다. "올바르고 참되게 철학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정치 권력을 획득하든지 아니면 도시에서의 권력을 소유한 계급이 신의 섭리에 의해 실재적인 철학자들로 되든지 하기 이전에 인간은 결코 죄악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앞서 소개한 플라톤의 철학에서처럼 정의는 일종의 보편적인 덕목이다. 그것은 모든 부분들이 그들의 고유한 기능을 실행하고 있으며, 그들 각각의 덕을 성취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가의 정의는 그 세 계급들이 그들의 기능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는 결코 획득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욕망의 요소를 체현하는 장인(匠人)들은 절제(節制)의 덕을 보여주어야 한다. 절제는 장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 방식으로 장인들과 연결되며 그것은 그들이 최하 계급이며 지배자와 전사라는 두 계급에 복종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덕목이 되는 것이다. 국가를 수호하는 전사들은 용기의 덕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 전사들이 항상 그들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으려면 훈련과 감독이 그들에게 부과되어야 하며, 결혼도 하고 사유 재산을 소유하는 장인들과는 달리 전사들은 재산과 부인을 공동으로 소유한다. 플라톤이 생각하기에 이러한 원칙은 전사들이 참된 용기를 획득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용기는 두려워해야 할 것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지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사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도덕적 죄악이다. 그들은 결코 가난이나 빼앗김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들의 생활 양식은 사적 소유와 격리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플라톤은 생각했다. 여기에 잠깐 부인의 공동 소유에 대해 오늘날의 관점으로 이해될 수 없을 것이기에 부언하면, 플라톤이 제시한 부인의 공동 소유는 결코 난혼(亂婚)의 형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밝혀야겠다. 그와는 반대로 플라톤은 남성과 여성이 어떤 면에서 동등하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한 남자와 여자가 둘 다 의학에 대한 재능이 있다면 그 둘은 동일한 본성을 지닌 셈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동일한 임무가 부가 될 것이며, 이러한 이유에서 플라톤은 여성들도 남성처럼 전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사 계급의 구성원들의 단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독립 가족의 형식은 폐지되어야 하고, 전계급이 하나의 단일한 가족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 부인의 공동 소유라는 제안이 되었던 것이다.

  사회주의적 사상은 플라톤의 정치철학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플라톤이 말하는 전사와 지배 계급의 덕목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플라톤은 말하기를, 전사 계급에 속한 이들은 재산을 모으고 싶은 유혹, 심지어는 자기 가족의 이익을 국익에 우선하고 싶은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심지어 그들 계급에 속한 계층은 성관계까지 엄격히 통제되어야 하며, 특별한 축제일에만 허용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 축제는 국가가 정한 날에 거행되어야 하며, 그것도 지배자의 세심한 조정에 의해 가장 높은 우생학적 가능성이 보증될 수 있을 때 맺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플라톤은 이렇게 주장하였다. "전쟁 및 기타 업무에서 훌륭한 기량을 발휘한 젊은이들은 다른 보상과 특권 중에서도 특히 부인과 잠잘 수 있는 좀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공리적(公利的)인 목적을 위한 것일 뿐 개인적 감정과 욕망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다. 전사들에 의해 태어난 아이들은 곧, 공리적 목적에 따라 관리들의 손에 넘겨져 공동으로 양육될 것이며, 그렇게 해야만 그들이 지닌 참된 기능과 재능이 다른 관심과 자극에 의해 동요됨이 없이 국가를 수호하는 기능으로 보다 용이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그들은 용기라는 그들의 고유한 덕을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플라톤은 보았다.

  그러므로 국가의 정의는 개인에 있어서의 정의와 동일하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 머물러 그의 특수한 임무를 수행할 때 발생하는 것이며, 결국 정의는 절제와 용기와 지혜의 적절한 조화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국가는 개인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우선 이 각각의 덕목들은 개인에 의해 달성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장인들조차 지혜의 덕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속해 있는 위치와 자신이 지배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전사들도 두려워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인식하기 위해 충분한 지혜를 가져야 하며, 이를 통해 참된 용기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배자가 선(善)의 이데아에 대한 지식에 가능한 한 가까이 접근해 가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국가의 행복은 그의 지식과 인품에 달여 있기 때문인 것이다.


            4. 국가의 몰락

  만일 국가가 "큰 글씨로 쓰여진 인간"이라면, 하나의 국가는 하나의 공동 사회가 이루어 온 인격을 반영하는 것일 것이다. 플라톤의 생각에 따르면, 비록 인간의 본성이 세 부분으로 구성된 영혼을 소유한다는 점에 동일하지만, 그들이 이루고 있는 내적 조화의 정돈에 따라 종류가 구분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국가는 인성(人性)에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그대로 보여 줄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플라톤은 "정체(政體)란 식물이나 돌로부터 발생할 수 없다. 정체는 그 사회의 나머지 인원들을 그들의 잠(睡眠)에서 깨어나게 하는 어떤 인물들의 역량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다섯 가지의 정부 형태가 존재한다면, 개인들간에도 다섯 종류의 정신적 체질이 존재함에 틀림없다."고 하였다. 그는 이 다섯 가지의 형태를 귀족제, 명예제, 금권제, 민주제, 참주제로 분석하였다.

  플라톤에 의하면 국가의 몰락은 귀족제로부터 참주제에 이르는 몰락의 과정이었다. 이 몰락은 지배자와 시민들의 도덕적 성격의 점진적인 타락과 대응한다. 그러므로 그의 이상 국가는 귀족 국가였다. 귀족제는 철학자 군주로 체현된 이성적 요소가 가장 우위에 있으며, 시민들의 이성이 자신들의 욕망을 통제하고 이데아의 세계에 대한 우라니아적 염원을 지니고 있다. 플라톤에게 있어 귀족국가는 지향해야 할 목표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으나 단지 그것은 하나의 이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테네 시민들이 소크라테스를 처형하고 계속해서 훌륭한 지도자를 배출하는 데 실패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가 느낀 것은 상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공공 생활의 소용돌이를 자세히 응시해 보았다. 그 때 나는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국가들의 경우, 예외 없이 그 정부 제도가 잘못되어 있음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혹은 그렇기 때문에 귀족제는 모든 국가의 규범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 형태 속에 모든 계급들의 적절한 습속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이상 국가가 실현된다 하더라도, 역사와 사회의 변화 가능성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고, 그 또한 진리의 한 측면이라는 것을 플라톤은 이해하고 있었다. 귀족제는 우선 명예제(timocracy)로 몰락한다. 이는 귀족제에 대해 퇴보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 제도하에서 지배 계급의 욕망이 명예에 대한 사랑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며, 공익보다도 자신들의 명예에 더 집착하기 때문이다. 지배자의 용기가 이성이 역할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단지 영혼의 구조상의 미세한 균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구성원이 명예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비이성적인 부분의 역할이 점차 비대해지는 과정이 진행될 것이며, 이는 끝내 명예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재산에 대한 욕심으로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욕망에게 통치의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다.

  명예제에서 이미 사유 재산 제도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 이제 부에 대한 갈망은 금권제(plutocracy)라고 불리우는 정부 제도를 가능하게 한다. 이 사회에서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는 부(富)이다. 플라톤은 말하기를, "부자의 사회적 명망이 상승함에 따라 덕있는 자의 명망은 하락한다." 그에 의하면, 금권제에 잇어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제한된 기회와 제한된 부가 국가를 서로 싸우는 두 계급, 즉 부자와 빈자로 갈라 놓는다는 점이었다. 더욱이 금권가(자본가)는 상품의 생산자이며, 빈자는 그 상품의 소비자이다. 그러므로 빈자는 부자에게 종속되지 않을 수 없고, 금권가는 더 많은, 끊임없는 욕망으로 빈자들에게 더 많은 상품의 소비를 촉진하도록 강구한다. 즉 더 많은 재산의 축적을 갈망하여 혹심한 노력, 마치 밑 빠진 독이 채워질 때까지 끝없이 확장된다. 그럼에도 "금권가는 군중보다는 좀더 점잖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 플라톤의 금권제에 대한 평가였다.

플라톤에게 있어 민주제(democracy)는 금권제보다 좀더 퇴보된 사회체제였다. 평등과 자유의 원리는 퇴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평등한 자유라는 명목하에 자행되는 온갖 욕망의 소용돌이를 보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확실히 플라톤의 민주제에 대한 비판은 그가 경험하고 있었던 아테네라는 소규모 도시 국가의 특수한 민주제, 즉 18세 이상의 자유 시민이 정치 집회에 참여하여 그들의 의사를 밝히는 것으로 대중의 의지가 직접 반영되는 정치제도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근대적인 자유 민주제나 대의제를 경험하지 못했고, 또 사회제도를 공격하지는 않았다. 아테네의 민주제는 국가의 통치는 특수한 재능을 본유하여 통치를 위해 교육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그의 신념과 배치되는 것이었으며, 밀집된 다수의 횡포가 소수의 진실을 훼손하거나 왜곡하는 행태를 양산하기도 하였다.

  삶의 목적을 가능한 한 부자가 되는 것으로 설정했던 금권제는 모든 욕망을 합법화하여 "이 만족할 줄 모르는 갈망이 합법적으로 민주제로의 전환을 야기했다."민주제하에서는 개들조차도 제멋대로 날뛰면서 평등과 자유, 그리고 독립을 과시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생각이었다. 금권제에서 부자와 빈자가 대결하고 반목하면서, 어느 극적인 시기에 어떤 전환이 야기되며, 그리하여 "방종과 자유 분방한 주장들이 여기저기서 난무하여 모든 사람에게는 그가 원하는 대로 행할 기회가 주어진다." 이러한 정치적 평등과 자유는 질서가 흩어진 영혼으로부터 발생하는 것과 같은 이치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지적이었다. 영혼의 욕망들은 이제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격정이라는 폭도로서 활개친다. 자유와 평등의 생활은 "하나의 욕망은 다른 것만큼 선하며, 모든 것은 나름대로의 동등한 권리들을 소유한다."고 선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욕망에의 끊임없는 탐닉은 불가피하게 인간을 욕망의 노예로 만드는 단계에까지 전락하게 된다.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욕망은 가장 강하고 가장 지속적인 격정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며, 이 단계에 이르러 인간은 자신의 지배적인 욕망의 독재에 모든 것을 소모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다. 돈과 쾌락에 대한 갈망은 대중들이 부자를 강탈하도록 고무하며, 부자들이 항거할 때, 대중들은 한 명의 강자를 뽑아 그들의 투사로 삼는다. 그러나 그 투사는 명백하게 절대적이며 위압적인 권력을 요구하며, 실제로 대중의 목적을 대변할 경우에조차 대중을 자신의 노예로 삼아버리는 독단을 서슴치 않게 되는 것이다. 대중들은 그들이 얼마나 깊이 그에게 종속돼 버렸는가를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그들이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의 희생을 지불하고 난 다음이며, 결국 민주제는 참주제(despotism)로 자연스럽게 몰락하고 마는 것이라는 것이 플라톤의 생각이며 분석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몰락이 있다면 또한 상승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상 국가는 모든 정치제의 이상을 인도하고 제시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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