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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인식론과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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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827회 작성일 10-08-0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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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는 믿을 만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숙련된 대화를 통해 도달하는 방법, 지적(知的)인 산파인 변증술(dialectic)을 통해 획득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것은 항상 어떤 문제의 다양한 측면을 논의함으로써 시작된다. 그는 대화의 과정을 통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들을 분명하게 하도록 강요함으로써, 마침내는 의도하고자 했던 것에 대한 분명한 결론에 도달하게 할 수 있었다. 이 기술은 간단해 보이지만 소크라테스와 함께 논의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반어법에 대한 불쾌함과 아울러 엄정한 엄격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는 대부분 어떤 주제에 대해 무지(無知)를 가장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 주제에 관한 가장 충실한 지식을 유도해 내고 있다. 그는 이 변증술의 방법을 일종의 지식의 산파술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그에 따르면 이 산파술은, 어떤 사람이 불완전하고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그를 점차적으로 교정해 줌으로써 그 자신이 스스로 진리를 끌어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영혼의 영원한 구조에, 다시 말해 숨어 있는 모순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인간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인간의 정신은 어떤 대상을 인식할 수 없다고 말하더라도, 소크라테스는 이 주장 역시 증명해야 하는 것으로 믿었다. 왜냐하면, 그는 되는대로 사는 삶이 살 가치가 없는 것처럼, 심사숙고하지 않는 생각 역시 소유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대화의 경우에는 결론 없이 끝나곤 했는데, 이는 듣는 이에게 독단적인 관념에 붙잡혀 있도록 하기보다는 그를 질서 정연한 사유 과정을 통해 스스로 확실한 지식으로 인도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에 관한 좋은 예는 그와 유티프론과의 대화에서 발견된다. 장면은 아르콘 왕의 궁전 앞이었다. 그 곳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불경죄로 고소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 고발이 뜻하는 바를 알기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유티프론은 부친의 불경죄를 고발하기 위해 온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를 만난 자신의 행운을 기뻐한다. 왜냐하면 유티프론이 그의 부친에게 행했던 비난은 소크라테스가 받았던 비난과 동일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풍자적으로 소크라테스는 유티프론에게 이렇게 말한다. "단지 몇몇 사람만이 당신이 행하고 있는 것을 옳게 행할 수 있을 것이오, 잘 교육받은 지혜로운 사람만이 말이오." 불경죄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만이 그러한 죄목으로 누군가를 고발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자신의 부친을 고발할 정도의 행동은, 고소자가 그가 비난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가정을 더욱 확실히 해줄 것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불경죄의 의미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면서 유티프론에게 그것의 의미를 설명해 달라고 청한다. 왜냐하면 유티프론은 그 죄목으로 부친을 고발했기 때문이었다. 유티프론은 소크라테스에게 "잘못한 사람을 고발하는 것"이 경건성이며 그 반대가 불경이라고 정의해 준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당신에게 청하고 있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경건한 행동들 중 한두 가지를 말해 달라는 것이 아니오, 나는 모든 경건한 행동을 경건하게 만들어 주는 경건성의 본형(本形)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것이오." 자신의 첫 번째 정의가 불만족스러웠던 유티프론은 다시 정의하기를 "신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경건한 행동이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신들 사이의 잦은 싸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신들 사이에도 무엇이 더 좋고 무엇이 더 나쁜지에 대한 의견의 일치가 존재하지 않음을 제시한다. 즉 동일한 행동도 어떤 신에게는 기쁘지만 다른 신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티프론의 두 번째 정의도 부적당한 것이 된다. 궁지를 벗어나기 위해 그는 또 다른 정의를 내세운다. "모든 신이 사랑하는 것이 경건이며, 모든 신이 싫어하는 것이 불경이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되묻는다. "도대체 신들은 어떠한 행동이 경건하기 때문에 그 행동을 사랑하는 것인가 아니면 신들이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행동이 경건한 것인가?" 즉, 경건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라고 묻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유티프론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경건은 "신들에게 바쳐야 할 정성과 관계가 있는 정의의 부분이오." 소크라테스는 어떠한 종류의 정성이 신에게 바쳐져야 하는가를 물음으로써 더욱 명석한 정의를 요구한다. 유티프론은 여기서 우물쭈물하고 만다.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다시 한번 보다 분명한 정의를 요구한다. "만일 당신이 경건과 불경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은 결코 당신의 아버지를 고발할 수 없었을 것이오." 유티프론은 "소크라테스여, 나는 지금 바쁩니다. 지금 난 떠나야 하오."라는 대답밖에 하지 못하고 되돌아가고 말았다.

  경건성이라는 주제에 대한 대화는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여기서 끝난다. 그렇지만 그 대화는 소크라테스의 변증술의 생생한 예를 보여주며 철학적 삶에 대한 그의 사고 방식을 제시해 주고 있다. 또한 여기에서 명석한 사유의 도구로서의 정의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각별한 관심이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정의의 과정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지대한 관심은 그의 인식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정의는 하나의 확고부동한 개념이었다. 비록 개별적인 사건들이나 사물들은 어떤 점에서는 변화하고 또 사라지지만 항상 동일한 어떤 것이 그것들에 대해 존재하는데, 이것은 변화하지도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그것들의 정의(正義) 혹은 본형(本形)이었다. 그가 유티프론에게 "경건한 행위를 경건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이 영원한 의미에서였다. 소크라테스는 비슷한 방식으로, 정의의 본형(本形 : 어떤 행동을 정의롭다고 평가할 수 있게 하는), 미(美)의 원형(개별 사물들의 아름다움을 측정하는), 그리고 선(善)의 원형(우리로 하여금 어떤 행동이 선하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을 추구했다. 어떠한 개별적인 사물이 완전히 아름다울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조금이라도 아름답다면, 이는 그것이 미의 원형을 분유(分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믿었다. 더욱이 하나의 아름다운 사물이 사라진다 해도, 완전한 미의 원형은 언제까지나 계속 남아 있다고 하는 것이 그의 태도였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개별 사물들뿐만 아니라 그 개별 사물을 포괄하는 일반 개념들에 대해서도 사유(思惟)할 수 있는 정신의 능력을 믿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정신이 어떤 것에 대해 사유할 때는 언제나 두 가지 종류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라고 추론하였다. 하나의 아름다운 꽃은 특정한 꽃인 동시에,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의미의 미(美)의 한 사례이거나 분유자(分有者)인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 인식의 과정은 정신이 사유의 두 가지 대상을 구별해 나가는 과정, 즉 개체(個體)와 보편자(普遍者 : 이데아) 사이를 구분하는 과정이었다. 만일 소크라테스가 "아름다운 꽃은 무엇인가?" 혹은 "경건한 행동은 어떤 것인가?"를 물었을 때 우리가 이 꽃 혹은 저 행동을 제시한다면 그는 결코 그 대답에 만족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어떤 사물에 어느 정도의 아름다움이 함유되어 있다고 해도 그 사물이 미의 이데아와 동일하거나 그 전부를 표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꽃이든 사람이든 다양한 사물이든 서로 다른 미를 표현하고 있음에도 그 각각의 사물을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들이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게 하는 어떤 요소를 그 각각이 분유(分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소크라테스는 생각한 듯 하다. 그러므로 인식은 정의(正義)의 과정을 통해서만 정신은 특수한 사물과 보편적인 개념 사이의 차이를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결국 소크라테스가 표현했던 정의의 과정은 확고부동한 개념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과 같은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정의의 기술을 통해 참된 지식이란 사실들에 대한 단순한 배려(配慮)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정신의 힘은 사실들 속에서 그 사실들이 사라진 후에도 남아 있는 영원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참된 지식은 바로 이 정신의 힘과 관계를 갖는다. 장미가 시든 후에도 미(美)의 이데아는 남아 있다. 불완전한 삼각형은 삼각형의 이데아를 정신에게 암시해 주며 불완전한 원은 완전한 원의 근사 도형으로 간주된다. 사실들은 다양한 생각들을 유발한다. 두 송이의 꽃은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두 사람 혹은 서로 다른 문화도 같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지식을 해석되지 않는 사실들에 제한시킨다면, 만물은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어떠한 보편적 유사성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밖에 없다.

   소피스트의 주장이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문화들로부터 수집했던 사실들에 근거하여 모든 정의와 선(善)의 개념들이 상대적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주장에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다. 그에 의하면, 사람들 사이의 사실적인 차이들, 키나 힘이나 정신 능력상의 모든 차이들은, 그들 모두가 인간이라는 또 하나의 확실한 사실을 흐리게 할 수 없다. 그의 정의의 과정을 통해, 그는 명백한 사실적 차이들을 무시하고, 모든 인간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하는 그 무엇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인간의 이데아의 개념은 그에게 인간에 대해 사유하기 위한 확고한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 이와 유사하게 문화들은 서로 다르고, 문화마다의 법률과 도덕률도 다르지만 법률의 이데아, 정의의 이데아, 선의 이데아들 역시 인간의 이데아만큼 엄밀하게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자 생각이었다. 지적 회의주의나 도덕적 상대주의 대신에, 소크라테스는 만일 우리가 분석과 정의의 기술을 사용한다면 다양한 사물들은 확고부동한 개념들을 산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사실의 세계 배후에는 사물들의 질서가 존재하며, 그 질서는 정신에 의해 발견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우주 만물을 조망하는 한 방식을 그의 철학에 부과시키는 것이기도 하였으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더욱 발전하였다. 그리고 그 방식은 분명 목적론적 개념이었는데 그 사고방식에 의하면 만물은 하나의 기능 혹은 목적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어떤 것이 정의될 수 있는 본성을 소유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의 본성에 적합한 하나의 활동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만일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면,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행동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으로부터 점차 인간은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주장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소크라테스가 믿었던 것은 만물의 본성을 발견함으로써, 만물 내의 질서 역시 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견해에서 볼 때, 사물들은 사물의 전체계 속에서 몇 가지의 부가적인 목적들을 갖는다. 우주 안에 많은 사물이 존재하는 것은 우연한 혼합의 결과가 아니다. 그 사물들 각각은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그것들 모두가 함께 작용함으로써 질서 있는 우주를 형성한다. 소크라테스는 지식의 두 수준을 명백히 구분할 수 있었다. 하나는 사물들에 대한 면밀한 조사에 기초하며, 다른 하나는 사실들의 해석에 기초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전자는 개별적인 사물들에 근거하며, 후자는 보편적 이데아나 개념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미(美), 직선, 삼각형, 인간 등에 있어서의 저 보편적 이데아들은 항상 그것들의 사용을 위한 근거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을 때 사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사용에 커다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즉 이 보편적 이데아나 보편 개념이 어떤 기존의 실재에 관해 사용될 때 특정한 언어들이 사용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되어 있는가 혹은 그렇지 아니한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유찬(아들 이름)이라는 언어가 지금 이 방에 있는 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보편적 인간이라는 언어도 어떤 장소에 있는 어떤 실재를 언급하는 것인가? 과연 소크라테스가 보편자들의 형이상학적 위치에 대한 이러한 난점을 취급했던가 하는 문제는 확실하지 않다. 왜냐하면 형상론(形相論), 이데아론의 창시자가 플라톤인가 아니면 소크라테스인가를 규명하는 문제가 그보다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학자에 따라, 또는 연구하는 방향에 따라 그 의견은 각기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 아무튼 플라톤은 이 이데아들이 존재하는 사물들 중에서 가장 실재적이며 개별적인 사물들과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의 존재가 사물과 분리되어 있다는 이론을 반박하면서, 이 보편적 이데아들은 오직 우리가 경험하는 사물들 안에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의 경우에는 이 이데아들과 사물들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비록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타나는 형상론의 창시자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는 가시계(可視界)의 배후에 있는 가지계(可知界)의 개념을 형성했고 사용했던 사람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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