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메니데스 (Parmenides B.C 475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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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234회 작성일 10-08-0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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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에 관한 합리적 열정
파르메니데스의 연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단지 기원전 450년경에 65세였다는 사실만이 전해지고 있다. 그는 엘레아 학파의 창시자이며 존재(being)하는 것만이 실재하는 것일 뿐, 비존재는(nonbeing) 실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고(思考)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여 참된 실체는 완전히 충실한 '존재' (to eon)이며, 이것이 유일하고 불변하며 불멸하는 것이라고 논증하였다. 그러므로 여타의 철학이 인정하는 사물의 다양성이나 운동 및 변화를 일체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모두 허위이거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하였다. 이러한 사유(思惟)는 형이상학적인 세계와 물리적인 세계의 차이를 거의 구분하지 못했던 밀레토스 철학과 피타고라스 철학으로부터 실체를 본질과 형상으로 극명하게 구별하게 하는 시금석이 되었으며 이 후의 철학으로 하여금 그와 같은 논리적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권고하는 합리주의를 낳게 되었다.
그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를 다양성 속의 제일성(齊一性)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거부하면서 동시에 사물의 기원에 관한 밀레토스 학파의 이론을 철저히 배격하였다. 그들의 철학은 만물이 하나의 근본 재료로부터, 혹은 유일자(有一者)에 의해 변화의 과정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는 그러한 변화의 개념에 반대하면서, 만물의 배후에 단일한 실체가 존재한다면 변화의 개념은 논리적으로 모순된다는 논거와 변화하는 현상이란 근본적으로 일종의 환상이라고 논리적 논증에 의해 비판하였다.
파르메니데스에게 있어 변화의 개념은 논리적으로 볼 때 생각할 수 없는 것이거나 표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에 의하면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존재한다는 것만을 의미한다. 그는 "어떠한 것도 비존재로부터 존재로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존재화(存在化)라는 개념이나 생성된다는 개념은 매우 불합리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모든 것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이 그의 기본 주장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어떤 것이 비존재로부터 존재로 변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결코 어떤 것에 관해 그것이 한때 비존재였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하나의 '그것'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을 생각할 수 없다면 그것이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사물이나 한 사물의 상태가 비존재로부터 혹은 비존재로 변환될 수 없기 때문에 변화의 과정 역시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에게 생각될 수 있는 것과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동일한 것이었다. 존재 혹은 실재란 현존하는 것 자체일 뿐 다른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판명한 논리에 의해 변화에 관한 어떤 것도 생각될 수 없으며,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인간이 유일하게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은 존재 혹은 현존하는 것일 뿐이며, 그러므로 존재란 절대적이며 변화 생성될 수 없고 충만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는 전적으로 연속적이다. 왜냐하면 존재는 존재한다는 사실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점을 강조하기 위해 그는 어떤 것이 비존재로부터 존재하게 된다는 주장을 일축함으로써 생성이나 변화의 개념이 갖는 모순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어떤 것이 존재화한다"는 명제는 어떤 모순을 포함하고 있을까? 파르메니데스는 그 모순은 어떤 것이 존재나 비존재 둘 중의 하나로부터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을 조리 있고 일관성 있게 내세울 수 없다는 데 있었다. 변화의 개념의 배후에 있는 가정(假定)은 어떤 것이 비존재로 혹은 존재로부터 존재로 변화한다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에 의하면 이러한 가정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모순을 이미 포함하고 있다. 즉 만일 누군가가 탈레스나 헤라클레이토스가 주장했던 것처럼 어떤 것이 실체로부터 발생한다고 논거한다면, 거기에는 어떠한 존재도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만일 그것이 존재로부터 발생하였다면 그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것이 비존재로부터 발생하였다고 한다면 그는 비존재가 어떤 것이라고 가정해야 할 것이다. 비존재가 어떤 것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분명한 모순이다. 왜냐하면 모든 실재하는 어떤 것은 이미 명백히 존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실재의 전구조의 기원에 관한 광범위한 문제를 설명하려 하든, 아니면 단순히 작고 특수한 사물을 설명하려 하든 간에 변화를 설명하는 일은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것이다. 각각의 경우에 난점은 동일하다. 즉 어떤 형태의 존재가 존재나 비존재로부터 발생해야 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는데, 존재가 존재로부터 발생한다면 그 존재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며, 비존재로부터 발생한다면 그 비존재를 유(有 : being)로 상정할 수 없는 것이므로 따라서 변화와 생성은 있을 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변화"가 생겨나기 전에 이미 어떤 것이 존재하며, 변화 후에도 그것은 계속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변화와 운동은 있을 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모든 실재를 그러한 방식으로 파악한 파르메니데스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것이 존재한다 라는 사실이다. 이 경로에는 말하자면 만들어질 수도 파괴될 수도 없는 대단히 많은 징표들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전하고 확고부동하며 끝이 없기 때문이다." 존재에는 다양한 차이들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존재하거나 그것이 존재하지 않거나 하는 둘 중 어느 하나의 차이일 뿐이다. 따라서 한 공간의 존재는 다른 공간의 존재만큼 많으며 빈 공간도 없다. 이러한 생각에서 파르메니데스는 실재는 물질적이며 거기에는 어떠한 공백도 없을 뿐 아니라 또한 변화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실재는 생성되지도 파괴되지도 않으며 따라서 존재는 불가분적이며, 영원하며 완전하다.
변화의 개념에 관한 내용을 그것이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는 점을 증명하여 그 개념을 부정하더라도 그 개념을 상식으로부터 완전히 배제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평범한 범부(凡夫)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삶으로부터 변화하는 상황과 사물을 매순간 목격하며 그 사실이 엄연한 현존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는 현상과 실재를 구분함으로써 변화에 대한 상식적인 사고 방식을 거부하였다. 그에 의하면 변화란 현상을 실재와 혼동한 결과일 뿐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단순한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며, 현상과 실재에 대한 명료하고 분명한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현상과 실재에 대한 이러한 구분의 배후에는 파르메니데스가 믿었던 통념과 진리의 차이가 존재하며, 그 점이야말로 철학사적 의의를 갖는 것이었다. 실재가 진리의 토대라면 현상은 통념의 오류를 조장할 뿐이다. 비록 상식은 사물과 존재가 변화의 과정에 있으며 언제나 연속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더라도 감각에 근거한 이 견해를 이성의 활동에 의해 충분히 검토하여 올바른 사실을 유추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조류를 그는 충분히 조성하였던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 즉 만일 만물을 구성하는 단일한 실체가 존재한다면 어떠한 운동이나 변화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탈레스도 이와 유사한 점을 지적하였는데, 우리의 감각으로는 실재하는 참된 구성 요소나 재료가 감각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파르메니데스의 이러한 생각은 플라톤의 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플라톤은 존재의 무변화성과 완전성에 관한 파르메니데스의 이념으로부터 가시계(可視界)와 가지계(可知界)를 확실히 구분하는 철학을 구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원한 이데아의 개념을 추출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는 망명한 그리스 인들에 의해 세워진 식민지였던 엘레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거의 평생을 보냈다. 그는 실재가 단일 실체로 구성된다는 철학적 주장에 논리적 합의를 추론해 내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했으나 결국 그는 인간의 감각과 상반되는 결론, 즉 운동이나 변화를 부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의 이러한 엄격한 논리 철학은 많은 이들로부터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비난과 냉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제자 제논으로 하여금 당대의 철학을 논박하는 논증을 펼 수 있도록 하였다. 파르메니데스가 65세에 이르렀을 때 제자였던 제논과 아테네를 방문하여 젊은 소크라테스와 만나 담소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나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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