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 (Pythagoras B.C 570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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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276회 작성일 10-08-0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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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제단에 수(數)를 바친 이
지금으로부터 2600년쯤 전 에게 해 연안의 사모스(samos)라는 조그만 섬에서 정말 현명했고 비범했던 한 인간이 태어났는데, 우리는 그를 피타고라스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여러 군데에서 긁어모은 지식으로부터 우리는 그의 새로운 철학적 시도에 나타나는 불완전하지만 매혹적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폴리크라테스(Polycrates)의 폭정 기간에 이오니아 또는 사모스 섬의 상황에 만족할 수 없었던 피타고라스는 남부 이태리로 이주하여 크로톤이라는 도시에 정착하였다. 그곳에서의 그의 능동적인 철학 활동은 대개 기원전 525에서 500년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역사가들은 기록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록에 의하면, "피타고라스 학파는... 수학에 몰두했고 그 연구를 최초로 발전시켰다. 또한 수학 속에서 그들은 수학의 원리야말로 만물의 원리라고 생각하였다..." 밀레토스 학파와는 대조적으로 피타고스 학파는 사물은 수(數)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주장은 매우 낯선 것이긴 하지만 이 원리의 난해한 면과 독특한 면은 피타고라스가 왜 수(數)에 관심을 갖았으며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수의 개념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거의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시대에는, 혹은 그 후대의 어느 부분에까지 철학은 종교적 행위의 일정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종교적이라고 생각되는 이유에서 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며, 그것을 당연하게 또는 정당하게 믿었다. 그의 독창성은 수학의 연구야말로 가장 훌륭한 영혼의 정화 역할을 해준다는 그의 신념 속에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한 종파의 교조(敎祖)이면서 동시에 한 수학 학파의 창시자로 지칭될 수 있는 것이다. 피타고라스 교단이 생겨나게 된 것은 좀더 심오한 영적 종교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열망 때문이었고, 그들에게 그 종교는 영혼의 정화를 위한 수단과 영혼의 불멸성을 보증해 주는 수단을 제공할 수 있어야 했다. 호머의 신들은 당시에 이미 신학적 의미에서의 신들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비도덕적이었으며, 따라서 숭배의 대상일 수도, 어떤 영적인 힘의 근원일 수도 없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신은 도덕적 부정(不淨)을 극복해 줄 수도 없었고, 짧은 인생과 죽음이라는 종말에 대한 인간의 불안을 씻어 줄 수도 없었다.
피타고라스보다 먼저 이러한 인간 문제의 영역에서 전개되었던 종교 운동은 디오니소스의 종교였고, 이 종교는 기원전 7 세기와 6 세기에 널리 퍼져 있었다. 디오니소스 숭배는 그러한 정화와 불멸성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어느 정도 만족시켜 주었다. 비밀스럽고 신비적인 소규모 집단들로 구성된 채, 광신자들은 다양한 동물 형상을 통해 디오니소스를 숭배하였다. 그들은 격렬한 춤과 노래의 광란 속에 취해 흥분 상태(ecstasy)에서 동물의 피를 마셨고 지쳐 쓰러졌다. 이러한 극적인 행위를 통하여 그들은 디오니소스의 영혼이 그들의 육체에 들어와 육신을 정화하고 그들의 영혼에 디오니소스의 불멸성을 불어넣어 준다고 확신했다.
우리는 피타고라스와 그 학파를 이해하는 데 대하여 그들이 왜 철학과 수학에 집중해야 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단서를 영혼의 정화와 불멸성의 획득이라는 신비적인 문제와 명백히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수학과 철학에 대한 연구를 영혼을 위한 가장 훌륭한 정화라고 믿고 있었으며 철저히 신념하였다. 철학적이며 수학적인 사유(思惟)와 내성(內省)에서 그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순수한 양식을 발견하였으며, 그것은 생존이나 생활의 여러 비속하고 처연한 생태(生態) 및 명예를 위한 경쟁 등과 명백하게 대비되는 것이기도 하였다.
피타고라스는 세 가지 종류의 삶을 분명하게 구별했고, 영혼에도 세 부류가 존재함을 암시적으로 표현했다. 그에 의하면 올림프스 경기에 나가는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뉠 수 있다고 하였다. 최하 부류는 그곳에서 물건을 사거나 팔아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이며, 두 번째 부류는 경쟁을 위해, 승리를 얻기 위해 가는 사람들이고, 가장 훌륭한 부류는 구경하러 가는 사람들, 즉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반성하고 분석하려는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구경한다 (look on)>는 말은 희랍어의 <이론>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론적인 사유나 순수한 철학 및 순수한 수학은 영혼을 정화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그들은 특히 이론적인 수학적 사유는 인간을 개별적인 사물들에 대한 생각에서 해방시켜 영원하고 질서 있는 수의 세계로 이끈다고 믿었다. 또한 피타고라스 학파는 그리스 신화에 의해 수렴된 운명의 수레바퀴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데 기여하였는데, 인간의 영혼이 생사의 끊임없는 변화 노상(路上)에 있는 다른 현상들로 변이(變移)한다는 사회 정서적 집단표상으로부터, 최상의 부류에 속하는 구경꾼이란 신(神)과의 합일을 통하여 신(神)의 불멸성을 분유(分有)할 수 있는 존재일 수 있으므로 그들은, 혹은 그들의 영혼은 영원불멸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종교적 관심을 피타고라스 학파의 철학적 측면과 연결시키려면 우선 그들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이해하여야 한다. 그들은 음악을 신경 질환을 위해 매우 좋은 치료라고 생각했음에 틀림이 없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음악의 화음과 인간의 내적 생활의 조화는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음악에서 진정으로 발견한 것은, 마디 사이의 음정이 정수(定數)로 표현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악기의 현의 길이가 그것들이 내는 음들의 실제의 음정과 비례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다른 음정들도 모두 정수비로 유사하게 표현될 수 있으며, 따라서 피타고라스 학파에 있어서 음악은 만물에 수들이 충만해 있다는 사실의 결정적인 증빙이었으며 사례였다. 그러한 그들을 두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기를, "그들은 음계(音系)의 속성과 비율이 수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또한 그들에게는 만물이 생겨나기 전에 이미 수(數)가 있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수들은 자연 전체 내에서 최초의 사물로 간주되었고, 천체는 하나의 음계이며 모든 수라고 생각하였다."고 전했다.
[만물은 수(數)이다] 라는 그들의 교의(敎義)의 발전을 가속화했다고 믿어지는 것은 피타고라스 학파가 수들을 계산하고 쓰는 방식을 실행하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조약돌을 세듯이 개개 단위들로부터 수를 만들어 나갔다. 따라서 하나라는 수는 하나의 조약돌이었고 그 밖의 다른 수들은 조약돌을 더하거나 빼기에 의해 만들어졌다. 중요한 점은 피타고라스 학파가 그러한 방식을 통해 대수와 기하의 관계를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조약돌은 하나의 점과 마찬가지로 하나이다. 그러나 둘은 두 개의 조약돌이나 두 점으로 구성되며 이 두 점은 하나의 선분을 이룬다. 삼각형의 세 꼭지점처럼, 세 점은 하나의 평면을 이루며 네 점은 하나의 입방체를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은 수와 크기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피타고라스 학파에게 시사해 주었으며, 피타고라스는 직각 삼각형에 있어 직각을 낀 두 변의 제곱의 합은, 나머지 한 변의 제곱과 같다는 사실을 정의했다. 이러한 수와 크기와의 상호 관계는 우주 내의 구조와 질서의 원리에 대한 증거를 찾으려 했던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존중할만한 것이 되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힙파소스(Hippasus)가 직각 2등변 삼각형의 경우에 직각을 낀 대변 사이의 관계가 정수비에 의해서 표현될 수 없고, 오로지 무리수에 의해서만 표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람들은 그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를 헬레스폰트(hellespont) 해협에 수장시켜버렸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피타고라스 학파를 비난하거나 조롱하기 위해 누군가 날조했을 것이다)
피타고라스에 있어서 수(數)란 어떤 도형들, 예를 들면 삼각형, 정사각형, 직사각형 같은 도형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수와 크기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또는 순수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개개의 점들은 영역들을 표현하는 "경계석"들이며, 더욱이 이들 삼각형의 수와 정사각형의 수와 직사각형의 수와 구형의 수는 피타고라스 학파에 의해 홀수와 짝수로 구분됨으로써 그것들에 대립되는 것들의 상충 현상을 다루는 방식을 부여하였다. 그러므로 이 모든 형상들, 수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체들이 될 수 있었다. 피타고라스 학파에 따르면, 만물은 수이다 라고 하는 주장에는 모양과 크기를 갖는 만물의 기원이나 기초가 수에 의해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수로부터 기하로, 더 나아가 실재의 구조로 나아갔던 것이다. 만물은 수를 가지며, 그 수들의 짝수성이나 홀수성은 하나와 다수, 정방형과 장방형, 직선과 곡선, 정지와 운동 같은 사물의 대립된 성격을 설명해 주는 것이었으며, 밝음과 어둠, 남자와 여자, 선과 악도 마찬가지였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이러한 방식으로 수를 이해함으로써 그들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개념을 형성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들이 철학에 미친 가장 의미 있는 공헌은 형상(form)의 개념이었다. 밀레토스 학파는 만물을 구성하는 제 1의 질료(matter) 혹은 재료의 개념을 착안해 냈지만 어떻게 구체적 사물들이 이 단일한 질료로부터 개별화되는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들 모두는 물이나 공기나 비결정적 무한성 같은 무제한적인 재료를 통해 어떤 제 1 질료를 표현하려 했을 뿐이다.
이제 피타고라스 학파는 형상의 개념을 가지고 나타나 밀레토스가 뿌린 논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형상은 한계(limit)를 의미했고, 한계는 특히 수적으로 이해 가능한 것이었다. 피타고라스 학파에게 음악과 의학이 그 한계의 개념을 가장 잘 예시하는 두 가지 기술이었다는 사실은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 양자의 기술에 있어 중심이 되는 것은 조화이며, 조화는 비율들과 한계들을 설명함으로써 얻어지기 때문이다. 음악에는 하나의 정수비가 존재하며, 그 비율에 따라 각 음절들을 조화로운 음정을 이루기 위해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조화란, 정수비라는 제한적 구조를 악기의 현이 낼 수 있는 무한히 다양한 음조에 부과하는 형식인 것이다.
의학에 있어서도 동일한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건강이란 온과 냉, 습과 건 같은 대립자들(opposites)의 조화와 균형이나 적정비이며 후에 생화학적 원소들이라고 알려진 다양한 구체적 원소들의 부피상의 균형이었다. 사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육체를 하나의 악기로 간주했다. 건강은 육체가 조율되어 있는 것이며, 질병은 현이 적절하게 조율되지 않거나 너무 팽팽하게 당겨졌을 때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인체의 구성과 관련된 초기 의학 서적에 수의 개념이 건강이나 질병과 관계를 가진 채 자주 인용되었다. 그러므로 참된 수(數)나 도형은 육체의 모든 원소들과 기능들의 적절한 균형과 관련된 것이며, 따라서 수는 무한적인 것(질료)에 대한 한계(형상)의 적용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또한 피타고라스 학파는 그들의 매우 폭넓은 개념, 즉 만물은 수이다 라는 개념의 생생한 설명을 위해 음악과 의학에 대해 자주 그리고 끈질기게 언급하였다.
피타고라스 및 그의 추종자들의 천재성은, 그들이 이후의 철학과 철학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미친 영향은, 만약 피타고라스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러한 기반을 조성하지 않았다면 플라톤의 형상의 개념 및 이데아와 관련된 모든 철학적 진보와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서구의 철학과 철학을 주축으로 조성된 모든 학문, 추상적 개념을 다루거나 사유에 의거하는 모든 학문은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數)야말로 가장 확실한 것을 가장 확실하다고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입증 가능한 수단이며, 추상적 개념을 다룰 가장 적절한 성능의 하나였으므로. 확실성이 확보되지 않는 길은 그 어느 길보다 멀고 험한 것이므로. 사실 서양의 문화와 학문의 배후에는 수(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피타고라스의 종교적 열정이 담겨 있는 것이라는 것을 오늘날의 대부분의 사람은 기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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