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스 (Thales : B.C 6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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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375회 작성일 10-08-0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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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모든 학문의 발화자
밀레토스(Miletos : 에게 해의 이오니아 서쪽 해변에 자리잡은 작은 항구도시)에서 철학의 불꽃을 점화시킨 탈레스에 관해 오늘날 우리가 원하는 것만큼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도 단지 일화(逸話)적인 성격을 갖으며, 그것으로 그의 실제적 성향과 관점을 판단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저술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단지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 기억될 만한 사건들이거나 그 단편적인 기록, 또는 언급뿐이다. 그는 솔론(solon) 및 크뢰수스(Croesus)와 동시대인이었고, 그의 모든 활동은 기원전 624년에서 546년 사이에 행하여졌다. 페르시아와의 전쟁 기간에 그는 강물의 흐름을 바꾸는 수로를 파고 더 좁아진 두 개의 강에 다리를 놓음으로써 리디아 왕의 군대로 하여금 넓은 할리스 강을 건널 수 있게 하는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했다고 한다. 또한 탈레스는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피라미드의 높이를 측정하는 방식을 고안해 내었는데, 그것은 어떤 사람의 그림자가 그의 키와 같아지는 시간에 피라미드의 그림자를 재는 간단한 방식이었다. 그는 또한 이집트 여행기간에 습득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식을 통해 기원전 585년 5월 28일의 일식 현상을 예견할 수 있었다. 밀레토스에서도 그는 실용적인 목적에서 해상에 보이는 배의 거리를 측정하는 도구를 만들었고, 항해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선원들에게 작은곰자리가 북쪽을 가리키는 가장 확실한 안내자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탈레스처럼 비범한 사람에게 많은 일화가 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Theaetetus)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탈레스가 하늘의 별을 쳐다보다가 개울에 빠졌을 때 한 영리하고 재치 있는 트라키안인 하녀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일화가 있다. 그녀는 탈레스가 하늘에 떠있는 것을 알려는 열망이 너무 강해서 자신의 발 앞에 있는 것을 볼 수 없었다고 놀렸다." 플라톤은 계속해서 "이것은 모든 철학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의 주변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것들을 열심히 알려고 했던 탈레스의 다른 약점을 모르고 있는 모든 철학자들에게 말이다." [정치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적고 있다. "탈레스가 말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하나의 이야기는 돈을 버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그는 가난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았다. 왜냐하면 가난은 철학의 무용성을 증명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기상학적 지식으로부터 얼마 안 되는 금액으로 그 해 초 밀레토스와 키오스의 모든 올리브 창고들을 선약했다. 더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매우 낮은 값으로 창고를 확보할 수 있었다. 여름이 되자 갑작스럽고도 동시적인 수요가 생겨났다. 그는 자신이 선약해 두었던 창고들을 모두 풀었다. 많은 재산을 모은 그는 철학자들도 그들이 원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러기를 원하지 않을 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러나 탈레스가 유명한 것은 그의 일상적인 지혜나 명민함 때문이 아니라, 그가 사유(思惟)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기 때문이며, 그러한 이유에서 그가 최초의 철학자라는 칭호 및 모든 학문의 발화자라는 존경을 받는 것이다.
탈레스의 새로운 탐구는 사물들 본성에 관한 것이었다. 만물은 무엇으로 되어 있으며, 어떤 종류의 [재료]가 사물을 구성하는가?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그가 파악하려 했던 것은, 우선 땅과 구름과 바다 같은 서로 다른 사물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과 이들 중 몇몇 사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어떤 것으로 변화한다는 사실과 또한 그것들이 어떤 점에서는 서로 닮았다는 사실을 모두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착상이었다. 즉 다양한 사물들간에는 차이점들이 존재하지만, 그것들 모두에게는 어떤 근본적인 유사점이 존재한다는 생각, 다시 말해 다자(多者 : the many)는 일자(一者 : the one)와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의 생각으로는, 모든 물질적 실재의 근저에는 몇 개의 단일 요소들, 몇 개의 재료(stuff)들, 즉 그 자체의 행동이나 변화의 원칙을 내포하는 어떤 재료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이 일자(一者) 혹은 이 재료는 바로 물(水)이었다.
탈레스는 우주(cosmos)가 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행위는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롭고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을 가졌왔다. 또한 universe 나 world 라는 용어 대신 cosmos 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여, 이 후의 그리스인들은 cosmos 라는 말을 사용할 때 모든 현상에 대해 질서있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이고, 포괄적인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러한 까닭에 탈레스를 유물주의 철학의 창시자로 보는 견해가 널리 인정되었으며, 그 추종자들은 우주가 어떤 간단한 것으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물질의 기본적인 요소가 우리 주변에 있는 다양한 물질로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왜 탈레스가 물이 모든 사물의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단순한 사건들의 관찰에서 그 결론을 이끌어 내었을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아마도 만물의 영양소가 수분이라는 사실을, 또한 열이 수분에서 발생하여 수분에 의해 유지된다는 사실을 관조함으로써 .... 또한 만물의 씨앗들이 수분을 가지며 그 수분의 근원이 물이라는 사실로부터 그는 그의 생각을 끌어냈다."고 하였다. 또한 동양철학의 노자(老子) 역시 물을 만물의 원천으로 생각하여 찬미하였으나 탈레스의 물과 노자의 물은 그 성격이 판이하다고 할 수 있다. 노자의 물은 하나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은유에 불과한데 비해 탈레스의 물은 물질의 본원적 근원이며, 모든 물질의 궁극적 형태라는 논조를 취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논의되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레스의 만물의 구성에 대한 분석은 그가 세계의 본질에 관계된 질문을 제기하였다는 사실 자체에 비할 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며, 그의 그러한 자세는 새로운 탐구로의 길을 열어 주어 이후의 분석을 통해 그의 주장의 타당성을 논의할 수 있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지되거나 반박될 수 있게 하였다. 비록 그에게는 "만물은 신(神)들로 충만되어 있다."는 사고방식 - 탈레스에게 있어 그것은 어떤 신학적 의미를 갖는다기보다 암석들 자체가 품고 있는 자기력(磁氣力)이나 그 외 여러 속성과 같이 사물들이 본유(本有)한 힘을 설명하기 위한 것 -이 있긴 하지만, 탈레스는 사유(思惟)의 초석을 신화적 근거로부터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탐구의 지평으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도 선택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탈레스의 이러한 원초적인 출발점을 따랐으며, 그것은 그들의 역사에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열도록 촉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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