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platonism 플로티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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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2,564회 작성일 10-08-0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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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1세기와 3세기에 이르는 동안 로마 시대의 사람들은 그들의 삶과 운명을 설명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시도하는 동시에 여러 사상들과 교의(敎義)가 다양한 철학과 종교와 절충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플로티누스(Plotinus 204 ~ 270 A.D.)는 시대의 특별한 관심사를 만족시켜 줄 만한 철학적 교의가 없는, 혹은 너무나 많은 시대의 한 가운데 위치해 있었다. 그는 너무나 혼란스러운 여러 교단이 혼재된 채 흐르는 가운데 철학적 희망을 붙잡으려는 최후의 선지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대 철학은 플로티누스에 이르러 최후의 정점에 도달하여 거장의 백열(白熱)을 보여주고는 급격히 산화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로마는 여러 사상과 신앙이 혼합되는 실험실과 같았다. 이시스(Isis : 이집트 신화의 농사와 수태를 관장하는 여신) 교단은 그리스 신과 이집트 신의 개념을 결합하였으며, 로마 인들은 황제단(皇帝團)을 발전시켜 살아 있는, 혹은 죽은 제왕들을 숭배하였다. 미트라(Mithra : 옛 페르시아의 태양신) 교단은 태양을 숭배하였으며, 소아시아의 프리지마 인들은 신들의 대모(代母)를 숭배하였다. 기독교의 신앙을 체계적으로 특징화하고 지적인 기반을 마련하고자 노력한 몇몇 기독교의 사상가들, 순교자 유스티누스(Justinus, 100~165), 클레멘스(Climens 113~220), 터툴리아누스(Tertullianus 160~230),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4) 등이 나타났지만 아직까지 기독교는 하나의 교단에 지나지 않았다.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는 기독교에 플라톤과 스토아 학파의 체계를 도입하려 하였으나 아우구스티누스가 기독교와 플라톤의 철학을 견고하게 결합시켜 놓은 후에야 비로소 그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런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이 완성되기까지 고대 철학의 유산을 물려준 이가 플로티누스라 할 수 있는데, 그러나 플로티누스의 철학 어디에도 기독교적 요소는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으며 그에 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그가 본래 의도한 것은 플라톤의 철학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그의 철학적 사조를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라고 하였다.
플로티누스는 A. D. 204년 이집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암모니우스 삭카스(Ammonius Sakkas 175~242) 밑에서 철학을 배웠다고 알려져 있다. 이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세계의 지성의 교차로였으며 여기에서 플로티누스는 피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큐로스, 스토아 학파를 포함하는 고대 철학을 광범위하게 접할 수 있었다. 이것들 가운데 그는 진리의 가장 확실한 원천으로서 플라톤 철학을 내세우게 되었으며, 이 플라톤의 사상을 재해석함으로써 이외의 사상들을 비난 혹은 반대하게 되었다. 그는 40세가 되던 해에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로마로 갔는데, 당시 로마는 도덕과 종교가 부패할 대로 부패하고 사회와 정국은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로마에서 그는 자신의 학원을 세워 그 곳에 황제 부처를 포함한 몇 명의 엘리트를 불러 모았다. 한동안 그는 플라토노폴리스(Platonopolis)라 불리우는, 플라톤의 이상 국가론에 기반을 둔 도시를 세우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실현하지는 못하였다. 그는 특별한 순서 없이 54편의 논문을 집필하였으나 그의 연설보다는 덜 웅변적이라고 평가되었다. 이 논문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애제자인 포르피리오스에 의해 편찬되었으며 그는 이것을 9편씩 묶어 6부분으로 분류하였으며 「엔네아데스(Enneades)」라고 명명하였다. 플로티누스는 훌륭한 연설가였으며 동시에 정신적 관념론을 입안한 사람이었다. 그의 동시대인들뿐만 아니라 성아우구스티누스에 영향을 미친 것은 지적인 엄밀성과 결부된 그의 도덕 및 정신의 우월성에 대한 신념 때문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로티누스를 “단지 몇 마디만” 바꾸면 기독교인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하였을 정도였으며, 이런 플로티누스의 사상이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중세 철학자들에게 강력하고 거부할 수 없는 사념의 기안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플로티누스 철학이 독특한 점은 그가 실재의 체계에 대한 사색적인 기술을 종교적인 구원론과 결부시켰다는 데 있다. 그는 세계를 기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원천과 그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세계 안에서 자신의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가를 설명해 주었다. 요컨대 플로티누스는 만물의 원천으로서 그리고 인간이 회귀해야 하는 근원으로서의 신(神)에 대한 교의를 전개하였다. 기존의 사상은 영혼의 참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그의 확신이 대개의 철학이나 종교를 거부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플로티누스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시킬 때 거의 언제나 스토아 학파, 에피큐로스 학파, 피타고라스 학파,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사상을 분석한 후 이들 사상이 어떤 이류로 부적당한 것이라고 증거하고 그에 따라 거부하였다. 스토아 학파는 영혼을 물질적인 육체 즉 물질적인 “호흡”이라고 묘사하였는데, 그러나 플로티누스에 의하면 유물론자들인 스토아 학파와 에피큐로스 학파 양자가 모두 물질적인 육체로부터의 영혼의 원초적인 독립성을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비판하였다. 마찬가지로 영혼은 육체의 “조화”라고 말한 피타고라스 학파는 육체가 조화롭지 못한 경우에 그것은 영혼을 갖고 있지 않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며, 마지막으로 영혼은 육체의 한 형태이며 육체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은 육체의 일부분이 그 형태를 잃으면 영혼도 그 정도로 손상을 받게 된다는 입증이 되는 바 이러한 논술은 영혼의 완전성에 위배됨이 분명하고 그것은 영혼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입증이 되기 때문에 거부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견해들은 육체를 원초적, 또는 근본적인 것으로 상정하지만 플로티누스에게는 정신이 원초적이며 또한 정신이 육체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근본적인 관계였던 것이다. 플로티누스는 혼란한 시기에 인간의 근본적인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추구하는 데 전념한 전형적인 사람이었다.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그는 플라톤의 생생한 신화와 비유에서 보여 주는 사상을 따라갔다. 그는 실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플라톤의 설명, 즉 물질로 세계를 형상하는 조물주(Demiurge), 영혼은 육체에 들어가지 전에 이미 존재를 가지며, 육체 속에 갇혀 있는 죄수이고, 이 포로 생활에서 탈피하여 자신의 원천으로 회귀하려고 투쟁하는 개념일 뿐 아니라, 선(善)의 이데아는 태양에서 발산되는 빛줄기와 같다는 교의, 진정한 실재는 물질 세계가 아니라 정신 세계에서 발견된다는 개념 등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플로티누스는 이러한 기본적인 사상을 취하였으며 특히 영혼만이 진정한 실재라는 플라톤의 핵심 사상을 강조하고 그의 사상을 새로운 담론으로 재구성하였다.
1) 일자(一者)로서의 신(神)
복합적인 사물들로 구성된 물질 세계는 항상 변하기 때문에 참된 실재일 수 없다고 고대인들은 믿었다. 플로티누스 역시 불변하는 것만이 존재 가능하며 따라서 이 불변의 실재는 물질 세계와 구별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역설에 동의하였으며, 따라서 그는 참된 실재는 신(神)이며, 신은 세계 내의 모든 사물을 초월한다는 것 외에 신에 대하여 기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을 들어 실재가 곧 신(神)임을 강조하였다. 신에 대해 기술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신이 물질적인 것도 아니고 유한하지도 않으며 불가분적이고 변화하는 물질이나 영혼 같은 특별한 형상도 가지지 않는다는 이유가 되었다. 또한 그는 지성의 어떠한 관념으로도 한정되지 않으며 감관으로도 감지되지 않고 다만 어떠한 이성적 혹은 감각적 경험과도 무관한 신비적인 무아(無我)의 경지 속에서만 도달 가능하다는, 이러한 이유로 그는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 불가능한 존재이며, 이 때문에 신은 절대적이며 완전하고 무한한 동시에 실재라고 추론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은 일자(一者)라고 생각하였으며 그것을 나타내는 바는, 신은 불변하고 불가분적이며, 어떠한 다양성도 없고, 창조되지도 소멸하지도 않으며 모든 면에서 변형 가능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절대적인 통일체라는 것이었다.
일자(一者)는 특별한 사물들의 총체가 될 수 없다고 플로티누스는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일자는 그것들의 유한한 존재를 설명해 주는 원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플로티누스의 주장에 의하면, “일자(一者)는 존재하는 어떤 사물일 수 없으며 모든 현존재에 선행(先行)한다.” 속성들의 모든 관념은 유한한 물질적 사물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일자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명백한 속성은 없다. 그러므로 신에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과정은 신을 어떤 한계 내에 한정시키기 때문이다. 신이 하나(one)라고 말하는 것은, 신은 있다, 신은 세계를 초월한다, 신은 어떠한 이중성, 가능성 혹은 물질적인 제한을 가지지 않고 단순하다, 신은 모든 차별을 초월한다는 말과도 같다. 어떤 의미에서 신은 자기 인식적인 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활동이란 활동이 일어나기 전과 후의 각각의 생각을 통한 복합성을 내포하며 따라서 변화를 내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을 전혀 닮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하나이며 절대적인 통일체이라는 것이 플로티누스의 일자(一者)에 관한 결론이었다.
2) 유출(流出)의 비유
신이 하나라면 그는 창조할 수 없다고 플로티누스는 이야기하였다. 왜냐하면 창조란 그 역시 하나의 행위이며 활동은 변화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세계의 많은 사물들을 설명할 수 있는가? 플로티누스는 신의 유일성에 대해 일관된 견해를 유지하면서 사물들은 창조의 자유 행위가 아닌 필연에 의해 신에게서 비롯된다고 하는 사물들의 기원을 제기하였다. 필연의 의미하는 바를 나타내기 위해 플로티누스는 여러 가지 비유를 사용했으나 특히 유출(流出)의 비유가 유명하였다. 빛이 태양에서 방출되듯이, 물이 그 자체 이외의 어떠한 원천도 없는 샘에서 솟아 나오듯이 사물들은 신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태양은 결코 고갈되지 않으며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 그것은 본질 그 자체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빛을 방출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신은 만물의 원천이며 만물은 신을 현현(顯現)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플로티누스는 범신론자는 아니었다. 빛줄기가 태양과 같지 않은 것처럼 어떤 것도 신과 같은 것은 없다. 그의 유출론은 본질의 위계 질서적인 견해의 토대를 이루었다. 태양에 가까운 빛이 가장 밝은 것처럼 최상의 존재 형태는 제일 먼저 유출된다는 것이다. 플로티누스는 일자(一者)로부터의 최초의 유출물을 정신(nous)이라고 기술하였다. 그것은 일자에 가장 근사(近似)하지만 절대적이 아니므로 특정한 속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었다. 이 nous는 사유 혹은 보편적인 지성이며 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이성 능력이라는 것이다. 어떠한 공간적 시간적인 경계를 가지 않은 것이 바로 이것의 본질이다. 그러나 사유가 모든 개별적인 사물들에 대한 관념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이성 능력은 복합성을 내포한다고 하였다.
a. 세계의 영혼
빛이 태양에서 방출되어 나오면서 점차 그 강도가 감소하듯이 신으로부터 유출되는 존재의 등급은 완전성의 감소를 나타낸다. 더구나 연속적인 유출은 마치 모든 본질이 자기보다 바로 아래에 있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작용 원리가 있기나 한 것처럼 다음에 나오는 더 낮은 유출의 원인이 된다. 이런 식으로 정신은 영혼의 원천이 된다. 세계의 영혼은 두 가지 양상을 가지고 있다. 위로 올려다 볼 때, 즉 nous나 순수 이성 능력을 향할 때 영혼은 만물의 영원한 관념을 바라보려고 한다. 아래 쪽을 내려다 볼 때, 그것은 한 번에 한 사물을 추론하며, 모든 본질에게 삶의 원리를 부여해 주고, 사물들의 관념과 자연적 질서의 현실적 영역과의 간격을 이어 줌으로써 유출한다. 플로티누스는 영혼의 활동은 시간 현상을 설명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사물들이 생겨나고, 사물들 상호간의 관계는 곧 사건으로 귀결되며, 사건은 차례로 이어서 일어나고, 또한 사건들의 이러한 상호 관계는 곧 시간이 의미하는 바이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일자(一者), nous, 그리고 세계의 영혼 모두는 영원히 공존하며, 세계의 영혼 밑에는 자연(自然), 즉 변화하면서 시간 속에서 영원한 관념들을 반영하는, 개별적인 사물들의 영역이 놓여 있다고 플로티누스는 역설하였다.
b. 인간의 영혼
인간의 영혼은 세계의 영혼으로부터 유출되었다. 세계의 영혼과 같이 그것도 두 가지의 양상을 가진다. 위를 바라볼 때, 인간의 영혼은 정신(nous) 혹은 보편적 이성을 공유하며 아래 쪽을 내려다 볼 때, 그 영혼은 육체와 연관되지만 그것과 동일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플로티누스는 플라톤의 영혼의 선재론(先在論)을 재확인하며 영혼과 육체와의 결합을 타락으로 간주하였다. 더구나 사후에 영혼은 한 육체에서 또 다른 육체로 이동하는 일련의 윤회계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이고 참으로 실재하는 그 영혼은 소멸되지 않으며 다시 세계의 영혼 속에서 다른 모든 영혼과 만나게 될 것이며, 육체에 있을 동안에 영혼은 그 육체에 해당하는 여러 정보들, 예를 들면 이성 능력, 감수성, 생명력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c. 물질의 세계
존재의 질서에서 최하위의 단계, 즉 일자(一者)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물질이라고 플로티누스는 기술하였다. 유출될 때 작용하는 원리가 있는데 그 원리가 요구하는 것은, 더 높은 등급의 존재는 그 다음의 영역을 따라 흘러 넘쳐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따라서 이것은 관념과 영혼 뒤에는 기계론적인 질서 -모든 대상들을 인과 법칙에 귀속시키는 추론 작용- 속에서 이루어진 물질적 대상 세계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결과하였다. 물질 세계도 더 높은 양상과 더 낮은 양상을 보여 준다. 더 높은 것은 운동 법칙에 대한 감수성이며 더 낮은 것, 측 최하위의 물질적 본질은 충돌과 소멸을 향하여 목적도 없이 움직이는 조잡한 물질의 어두운 세계였다. 플로티누스는 물질을 가장 어둡고 멀리 떨어져 있는 빛, 그리고 그 자체가 어둠인 빛의 최극한에 비유한다. 분명히 어둠은 빛과 정반대이며 마찬가지로 물질은 정신과 정반대이고 일자와 정반대이다. 물질이 영혼-개별적인 영혼이건 세계의 영혼이건-과 결합되어 존재하는 한, 물질은 그만큼 완전한 어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빛이 완전한 어둠의 지점까지 가려고 하는 것처럼 물질은 그것이 비존재로 되어 사라져 버리게 되는 무의 경계선에 서 있다고 하였다.
d. 악의 원천
플로티누스는 유출설(流出說)에 의해 신은 자신의 완전성을 가능한 한 많이 공유하게 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흘러넘친다고 하였다. 신은 자신을 완전하게 모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유일하고 가능한 방식으로, 다시 말하자면 유출 속에서 완전성의 모든 가능한 정도를 표출함으로써 그것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nous뿐만 아니라 최하위의 존재인 물질을 가져야한 한다. 거기에 도덕적인 악, 죄, 고통, 그리고 정욕들의 갈등, 그리고 죽음과 슬픔이 있다. 궁극적으로 모든 사물이 유출되는 원천인 완전한 일자(一者)는 어떻게 이러한 종류의 불완전성을 인간에게 부여할 수 있었는가? 플로티누스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악의 문제를 설명하고자 노력하였다.
그에 의하면 악은 나름대로 완전성의 위계 질서 속에 한 위치를 점유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악이 없다면 사물들의 체계 속에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악은 이미지에 대한 아름다움을 더해 주는 초상화의 어두운 암영과 같다고 하였다. 스토아 학파의 주장대로, 모든 사건은 필연적으로 일어나며 따라서 선한 사람은 그것들을 악이라고 생각지 않는 반면 죄를 지은 사람들은 그것들을 벌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플로티누스는 악에 대한 가장 만족할 만한 설명을 물질에 대한 그의 구조 속에서 찾아내었다.
플로티누스에게 물질은 일자(一者)로부터 유출되는 필연적이고 최종적인 종착지였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유출의 본질은 더 높은 단계는 항상 더 낮은 단계로 이동하며, 일자는 nous를 생성하고, 개별적인 영혼은 육체 즉 물질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물질 그 자체는 마치 그것이 일자로부터 더욱더 멀어져 가는 것처럼 유출의 과정을 계속한다. 그것은 빛이 태양에서 멀어짐에 따라 점점 희미해지는 것과 같다. 물질은 정신의 활동을 넘어서가나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움직이려는 성향이 있으며, 또한 이성적으로 지향되어 있지 않은 운동에 들어서려는 성향이 있다. 물질이 위로 향할 때 그것은 영혼 혹은 이성 능력의 원리와 마주친다. 자연에 있는 대상들에 대한 이 같은 사실은 그것들의 운동의 질서 정연함을 설명해 준다. 반면에 개인의 경우 그 사실은 육체가 이성 능력, 감수성, 욕구, 생명력의 단계에서의 영혼의 활동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물질이 아래로 향할 때-유출의 하향 운동량 때문에 그것이 자연적인 성향이다- 그것은 어둠 그 자체와 마주치게 되며, 여기에서 물질은 이성 능력과 분리된다.
영혼이 물질적인 육체와 결합된다는 사실은, 영혼의 이성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물질을 하향으로 움직이게 하며 이성적인 통제에서 멀어지게 하는 물질적인 본질을 지닌 육체와 영혼은 투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곧바로 유도한다. 바로 이 점이 도덕적인 악의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육체가 이성 능력 밑의 단계에 도달할 때, 그것은 무한히 많은 가능한 행동 방식에 종속된다. 즉 육체는 정념에 의해 모든 종류의 욕구에 대한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악이란 영혼의 올바른 의도와 그것의 실제적인 행동간의 불일치이다. 또한 그것은 영혼과 육체간의 배열에서의 불완전성이며 이 불완전성에 대한 원인의 대부분은 물질적인 육체가 갖는 최종적인 비이성적 운동에 기인한다.
물질 혹은 육체가 유출의 가장자리에 있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악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장자리는 이성 능력이 없으므로 형상의 부재를 결과하며 따라서 완전성의 정도가 최소에 이른다. 그러나 만물이 일자로부터 유출된다는 의미에서 (물질은 신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에) 신(神) 역시 악의 원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플로티누스에게 악은 적극적인 파괴가 아니며 선한 신과 싸우는 악마도, 경쟁하는 신도 아니었다. 또한 페르시아 인의 생각처럼 그것은 빛과 어둠의 동등한 힘 사이의 대립도 아니었다. 악은 단순히 무언가의 부재요, 완전성의 결핍이며, 그 자체는 근본적으로 악이 아닌 물질적인 육체에 있어서의 형상의 결핍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도덕적인 갈등은 어떤 외적인 힘에 반대하는 갈등이 아니라 내부에서 어떤 상태로 변형되려는, 그리고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성향에 대항하는 갈등의 이름이었다. 악은 어떠한 사물이 아니고 단지 질서의 부재(不在)이다. 마찬가지로 육체는 악이 아니다. 어둠이 빛의 부재인 것처럼 악은 물질의 형상 부재이다. 플로티누스는 서로 모순되는, 영혼은 그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진다는 사실과 모든 사건은 결정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동시에 주장하고자 하였다. 이 두 견해가 어떻게 상충될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플로티누스의 매력은 그의 철학이 제공하고 있는, 또는 할 수 있다고 제안한 구원의 문제에 더욱 집중되었다.
3) 구원(救援)
플로티누스는 유출론의 철학적인 분석에서 종교적이고 신비적인 구원의 문제로 관심을 돌렸는데 이는 그의 주요 관심이었을 뿐 아니라 당시의 풍토에서 자연스러운 발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구원은 신과 융합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재빠르게 만족시켜 준 당대의 신비적인 교단들과는 달리 신(神)과 합일을 이루려는 영혼의 상승을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묘사하였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상승을 이룩하려면, 인간은 도덕적이고 지적인 덕을 꾸준히 실천하거나 성취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육체와 물질 세계는 본래 악이라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전적으로 부정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세계의 물질적인 사물들 때문에 영혼이 더욱 높은 목적을 향할 수 없어서는 안 된다는 통찰이 그의 핵심이었다.
그러므로 지성은 철학과 과학에서처럼 영혼을 지적인 활동으로 승화시키는 일을 촉진시키는 수단으로 여겨지게 된다. 사람들은 엄격하고 올바른 사유를 할 수 있도록 수양 또는 연마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그러한 사유 활동을 통하여 인간은 자신의 개체성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사물들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을 통해 자아를 세계의 전배열에 관여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정신(nous)의 사다리를 모두 밟고 올라가면 자아와 일자(一者), 즉 신과 합일(合一)에 도달하며 그 상태는 무아의 경지이고, 그 속에서는 신과 자아가 분리되어 있다는 어떠한 의식도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무아의 경지가 올바른 행위와 올바른 사유 그리고 인간적인 애착을 적절하게 처리한 최종적인 결과라고 그는 믿었다.
플로티누스에 의하면, 이 합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각 영혼의 많은 화신(化身)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플라톤이 [향연]에서 밝혔듯이 영혼은 그것의 사랑 속에서 정제되고 정화되며 가장 충만한 자아 몰입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다. 이 때에 유출의 과정은 완전히 전도(顚倒)되어 자아는 다시 한번 일자(一者)와 융합된다는 것이다.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는 상당한 종교의 힘을 지니고 있었으며 기독교에 대단히 근접해 있었다. 복잡한 지적 체계 때문에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될 수 없었지만, 신플라톤주의는 이 시대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기독교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플로티누스의 [엔네아데스]에서, 악에 대한 매우 새로운 설명과 정화된 사랑을 통한 구원의 설명을 발견한 사람이 중세 철학의 거두 성아우구스티누스이었다. 그를 통해 신플라톤주의는 중세로 진입하는 동안 기독교의 지적인 활동에 있어서 핵심적인 키워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마무리
내가 플로티누스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통해 세계와 인간에 관한 철학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이해하고 난 뒤였다. 당시 젊은 혈기에 휩싸여 있었던 나는 스피노자로부터 강렬하고 회복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았으며, 그에게 숭경 이상의 감정에 압도되어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의 독자적인 노선을 찾았다고 믿었던 순간, 플로티누스는 갑자기 등장하여 스피노자의 철학이 오로지 그의 독창성에 기인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었고 스피노자는 그 순간 하나의 희극이 되었다. 알려진 바는 없지만 스피노자는 분명 플로티누스의 철학을 접하였을 것이며, 그로부터 일정량의 자양을 취하였을 것이다.
나는 플로티누스가 없었다면 스피노자의 철학이 가능하였을까? 하고 물었다. 또 플로티누스가 그의 사상을 정립하지 않았다면 기독교적 교의가 제대로 정립될 수 있었을까? 플라톤이 없었다면 신플라톤주의가 생겨날 수 있었을까? 소크라테스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플라톤의 철학이 성립 가능한 것이었을까? 소피스트나, 피타고라스나 헤로도토스가 그들의 사념이나 역사적 서술 또는 이념을 내놓지 않았다면 소크라테스의 정신세계는 얼마나 변형되었을까? 나는 그 모두가 가역적 필연을 포함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으나 그 모두가 일관된 필연성을 지닌 인터렉티브한 관련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이 플로티누스가 나에게 전해준 통찰이었다. 그의 철학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다. 더욱이 그가 말하고 있는 구원이 이 시대에도 통용 가능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고 그것은 서로 연기되어 서로가 무한히 유출되는 동시에 서로가 무한히 표상된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모든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며 서로가 서로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죄는 그 단독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며, 악은 그 자신으로부터 연원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선(善) 또한 그러하며 아름다움이나 진실, 또는 진리라는 것 역시 그러하다. 고대 철학은 플로티누스라는 점등을 끝으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철학은 저 유대의 땅에서 들려온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감화되어 하나의 목적을 위해 그 영혼을 내놓게 되었다. 소크라테스에서부터 발원한 인간 중심의 철학은 영혼과 가치의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은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종교적 내용으로 변형되어 마침내 신앙의 교의를 더욱 정교하게 서술하는 수사적 언어로 그 역임을 변환하게 되었다. 그에 대한 회의는 일체 허용되지 않았고 거부는 몰락과 같았다. 시대가 무서운 것은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항의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과 행복, 또는 적정한 소명을 느끼도록 한다는 점이다. 시대는 거의 언제나 개인을. 또는 그 취향이나 재능을 무한정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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