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투스의 진정한 scepticism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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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2,488회 작성일 10-08-0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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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회의주의를 현실 규범과 의미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냉소적인 시각을 지닌 이들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회의주의의 어원인 ‘skepsis'는 약간 다른 의미, 즉 검사 혹은 탐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로마철학으로 옮겨가는 시기에 회의주의에 입각한 회의주의자란 질서나 상태를 부정하게 응시하고 불만족스럽게 여기는 이보다 그것이 진리인가 거짓인가 의심하는 자들을 지칭했었다. 그들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세계에 대한 진리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는 제안을 의심하며, 에피쿠로스학파나 스토아학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회의했다. 그와 더불어 이 모든 회의는 부단히 평정된 생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이나 방법으로 추구되었다.
초기의 회의주의를 피론니즘이라고 한 것은 이 학파의 창시자가 피론(Pyrrhon 361~270 B.C)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원전 3세기에 회의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아르케실라오스(Arkesilaos 316~241 B.C)가 아카데미아의 수장이 되어 플라톤의 형이상학을 부정하고 개연성(蓋然性)을 강조한 후에 피론니스트를 아카데미아파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유명한 회의주의자들 중에 카르네아데스(Karneades 214~129 B.C)와 섹스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가 있으며, 특히 섹스투스 엠피리쿠스는 대부분 소실된 회의주의자들의 저서들과 달리 전집 중 몇 권이 남아 회의주의 입장과 의미와 목적을 기술해 주고 있다.
그는 [피론개요]에서 무엇이 회의주의를 낳게 하는가를 말하며 회의론은 마음의 평화 혹은 평정을 얻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말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여러 가지 현실적 부조리와 모순에 의해 혼란해지고 믿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선택의 경계에서 고통을 받는 존재라고 하였다. 따라서 회의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제안한 방식, 즉 탐구에 의해 거짓으로부터 진리를 밝혀 낼 수 있다면 마음의 평정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회의주의자들은 다른 철학자들이 제안한 진리에 대해 집요하게 반박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누었다. 첫째로 그들이 독단론자라고 부르는 부류인, 자신들이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다. 두 번째로 자신들은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였으며 또한 그것을 발견할 수도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이들도 또한 독단론적 입장에 사로잡혀 있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세 번째로 진리를 꾸준히 탐구하는 이들이 있으며, 이들이 회의주의자이며 “회의주의자란 계속 탐구하는 자이다”라고 하였다.
회의주의의 근본 원리는 모든 명제에 대해 반대되는 명제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의주의자들이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현상들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서로 반대되는 논거들도 마찬가지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힘의 균등성이 설명의 개연성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회의주의자들은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어떤 것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현명한 자세라고 권고하게 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판단을 중지하는 일은 판단함으로써 짊어지게 되는 혼란과 동요로는 진정한 평온한 정신 상태에 도달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회의론자들 역시 강력한 사상 체계와 토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그들은 인간이 갈증을 느끼고 배고프게 된다는 사실, 그리고 벼랑 끝에 가까이 가면 위험하다는 따위와 같이 삶에 자명한 사실들을 부인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실재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단지 이 세계가 정확하게 기술되었는가에 대한 사항을 의심하였던 것이다. 섹스투스는 말하기를, 어떤 사람도 대상이 이런 모양을 가졌느니 저런 모양을 가졌느니 하고 논의하지 못할 것이며, 문제는 “그 대상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그대로의 실재 속에 있는가” 하는 점을 논의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회의주의자들은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네 가지 항목을 제시하였다. 섹스투스의 분류에 의하면, 1) 본성의 인도 2) 감정의 억제 3) 법과 관습의 전통 4) 문예과목의 교육이 그것이며, 이들 각각은 성공적이고 평화로운 생활에 기여하며 어떠한 독단적인 해석이나 평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수용만을 필요로 한다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우리가 자연적으로 감각과 사유를 할 수 있는 것은 본성의 인도 때문이며 배고프면 음식을 먹게 되고 갈증을 느끼면 물을 마시게 되는 것은 생체적 대사 때문이고, 또한 일상생활에서 경건을 선(善)이라 생각하고 불경(不敬)을 악(惡)이라 생각하는 것과 우리가 특정한 과목들을 배우는 것은 법과 관습의 전통, 또는 교육 때문이라는 것이다.
회의주의자들이 감각적 지각의 명백한 사실들을 전혀 부정하지 않았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섹스투스는 회의주의자가 현상을 부정한다고 말하는 자들에 대해서 “그들은 우리 학파의 이론을 잘 모르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하였다. 회의주의자들은 현상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설명”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현상에 대한 회의주의의 논거는 현상의 실재를 부인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독단론자들의 “무분별함”을 지적하고자 의도된 것이었다. 섹스투스는 감관적 대상에 대한 이러한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강한 확신을 가졌다. 인간의 이성이 현상에게 그렇게 쉽게 속는다면 다시 말해 “이성이 아주 잘 속기 때문에 우리의 눈앞에 있는 현상에 쉽게 따른다면” 우리는 명백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는 이성을 따를 때 조심해야 하면 무분별한 행위를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명백하지 않은 일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스토아학파의 철학체계에 있어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여기에서 회의주의자들은 정교한 이론 특히 물질적 사물들의 본질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였다. 그러나 어떻게 명백하지 않은 일들을 다루는 물리학이 신뢰할 수 있는 진리를 줄 수 있는가? 회의주의자들은 물리학의 연구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다. 첫째로 그들은 마치 “어떤 한 사물들에 대해서도 견실하고 믿을 만한 의견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물리학에 대해 이론화하기를 거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든 논거에 대해서 그와 반대되는 논거를 제시하기 위해 그리고 마음의 평정을 위해” 물리학에 접근하였다. 윤리학과 논리학에 대해서도 유사한 접근을 시도하였다. 각각의 경우에 마음의 평정을 추구하기 위해 사유하기를 거부하는 따위의 수동적인 접근을 할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판단중지”에는 “상반되는 사물들을 대응시키는” 활동이 포함되었다. 섹스투스가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현상에는 현상을, 사유에는 사유를 혹은 현상에다 사유를 대립시킨다.”는 것이 그와 같은 행위를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회의주의자들은 탐구에 있어 두 가지를 구별하였다. 즉 명백한 일을 다루는 탐구와 명백하지 않은 일을 다루는 탐구가 그것이었다. 밤이냐 낮이냐와 같은 명백한 일들은 지식의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 범주에서는 사회 및 개인의 평정에 필요한 조건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법과 관습이 사회를 결속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질의 재료가 원자 혹은 불의 실체로 구성되어 있는가 하는 명백하지 않은 일들은 지적인 논란을 일으키고 충분히 의심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에 있어서의 명백한 영역을 넘어서서 나아갈 때마다 항상 우리는 창조적인 회의에 의해 지식을 탐구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하였다. 하여 만일 우리가 우주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회의주의자들은 우리는 아직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인간이 진리에 도달할 수도 있으며,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진리를 가지고 있는지, 오류에 빠져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명백하지 않은 일들에 대한 진리를 결정할 신뢰할 만한 기준이나 정보가 아직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으며 사용된 바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1) 감관은 거짓이다.
스토아학파의 주장대로 우리의 지식이 경험이나 감관 인상에서 비롯된다면 모든 지식의 타당성을 회의할 이유는 충분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관은 같은 대상에 대해서 다른 시간과 다른 상황 하에서는 다른 정보를 주기 때문이다. 먼 거리에서 볼 때 사각진 모서리는 둥글게 보이고, 풍경은 낮이나 밤의 여러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달콤한 포도주조차 쓰다. 극장 무대 배경의 평평한 스크린 위에 그려진 창문이나 문은 실제와 같은 인상을 준다. 우리가 물에 비친 휘어진 노를 볼 때처럼 우리가 잘못된 인상을 가진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물론 그 노를 물 속에서 꺼내 지각의 오류를 밝힐 수 있지만 모든 지각에 대해서 그 정확성을 밝힐 수 있는 검증 방법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지식의 대부분은 우리가 진리의 기준을 정할 수 없는 지각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물들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참인지 거짓인지 밝힐 수 없다는 것이 회의주의의 결론일 수밖에 없었다.
2) 도덕 또한 회의적이다.
물질적인 대상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개념들도 회의를 낳기에 충분하다. 서로 다른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들은 선(善)과 정의(正義)의 관념 또한 다르다. 관습과 법은 각 공동체에 따라 다르며 같은 공동체라 하더라도 시대와 역사적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스토아학파에 의하면 만인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이성이 있으며 이것에 의해 만인은 일반적으로 어떤 일치에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회의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함으로써 이론과 사실을 모두 부정하였다. 즉 만인은 보편적인 도덕 원리의 진리에 대해 합의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증거도 없고, 사실 인간이 이러한 보편적인 합의를 보여 주고 있다는 증거 또한 없다. 사람들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존재한다. 더구나 불일치하는 사람들은 각각 자신들의 견해에 대한 나름대로의 강한 증거를 보여 줄 수 있다. 도덕성의 문제에 대해서 여하한의 절대적인 지식도 없고 단지 속견(俗見)만이 있을 뿐이다.
스토아학파는 몇몇 문제에 있어서 진리의 검증은 “불가항력적인 지각”이라고 주장한 반면, 회의주의자들은 속견이 얼마나 강력하게 주장되든지 결국 그것은 속견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에 대한 반대 속견을 지지할 수 있는 증거가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슬픈 사실을 알림으로써 스토아학파의 주장에 대해 답하고 있다. 우리가 독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 그 결론은 항상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이 곧 우리의 생각이 참이라는 증거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사물들의 본질과 도덕의 진리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대해 갖는 이러한 회의주의적 입장에서 회의주의자들은 지식의 타당성을 회의할 권리가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문제에 대해 판단을 보류해야 한다고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판단을 보류하기 힘든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윤리의 문제였다. 사람이 행위의 문제에 직면하였을 때 그는 어떤 일을 해야 옳은 것인가를 알기 원한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옳음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고, 그 지식이 진정한 것인가 어떤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회의주의자들에게는 윤리학이 불가능하였으며, 그들은 결국 인간에게서 인간의 행위의 기준을 제거해 버린 결과 앞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3) 지적인 확실성 없이도 가능한 도덕률
회의주의자들은 분별 있는 행위를 위해 지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다만 그들의 말에 의하면 적당한 확신-그들이 개연성(蓋然性)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결코 절대적인 확실성이란 없다. 우리가 우리의 관념에 의해 행복하고 평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확실한 개연성이 있다면 우리가 이러한 관념을 따르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일상적 경험에서 우리는 분명하지 않은 개념과 거의 분명한 개념을 구별할 수 있다. 옳음의 개념이 높은 명확성을 지닌다면 그것에 의해 우리는 그것이 옳다는 강한 신념을 갖게 되며 우리가 행동하는 데 필요한 것은 이것으로 족하다.
이런 이유로 회의주의자들은 관습, 일상의 법률, 도덕적 합의, 일반적 가치, 그리고 우리의 기본적인 욕구들은 대부분 신뢰할 만한 기준이라 설명하였다. 그러나 여기에도 회의주의는 어느 정도 주의(注意)를 요구하며, 그래야만 우리가 현상을 실재(實在)로 오인하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광신과 독단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비록 우리가 진리의 규준 없이도 정열적으로 행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안정하려면 우리는 항상 탐구의 창구를 열어 놓아야 한다. 안정되게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는 관념의 절대적 진리에 대해 회의하는 것이다. 사람이 이러한 회의에 의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 때가 그에게는 행복한 삶을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회의주의자들이 “어떤 체계”를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를 묻는다면 (여기서 체계라 함은 “독단 서로간에 의존하고, 현상에 의존하는 많은 독단에 집착함”을 말하며 독단은 “분명하지 않은 명제에 대한 동의”를 뜻한다) 섹스투스는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체계가 “끝으로나마 올바르게 사는 방법을 밝혀 주는 일련의 추론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회의주의자들은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섹스투스의 말대로, “우리는 일련의 추론에 의해 우리의 관습과 법률과 제도를 그리고 우리 자신의 본능적인 감정에 일치하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마무리
아이들을 데리고 저녁 산책을 다녀와 다급한 이의 메일을 열어보고는 위안이 될 몇 마디를 쓰고는 막막한 심정이 되었다. 세상의 일이란 사람의 선함이나 악함을 묻지 않고 일어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고민하고 또 괴로워하였다. 과거의 현인(賢人)이나 지식생산자들은 이러한 부조리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집단표상을 통하여 각각의 사람들을 의식화시켰고, 그것이 일정한 권위를 지니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권위로 인해 일어나는 몇몇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도록 하였다. 불가피한 희생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사회가 형성된 이 후 그에 비판하는 일은 일종의 배신이었으며 또 불온한 이탈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거의 모든 것이 분명하였다. 선한 것은 선한 것이었고, 악한 것은 악한 것이었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었으며 나쁜 것은 나쁜 것이었다. 그에 관한 열정은 없었어도 그것을 의심할 하등의 이유는 없었다. 주인공은 좋은 사람이었고 적은 나쁜 사람이었다. 정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승리했고 불의를 지닌 이들은 패배하였으며, 승리는 대부분의 행운을 포함하는 필연적 결과였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현실이 무엇이고 또 어떻게 건조되고 형성되어온 것인가를 이해하면서 입력되었던 대부분의 사항이 위조(僞造)처럼 무가치한 것이 되어 오히려 나를 괴롭혔다. 그처럼 싸구려였다면 우리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붙잡고 있어야 했던가. 단지 일시적인 필요에 의해 제청된 기안이었다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진하여 희생되어야 했던가. 나는 이 논제를 붙들고 오랫동안 고민했으나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건강하게 적응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고뇌를 붙잡고 있다고 믿었다. 비록 그들의 의식에, 얼굴에, 행동에 그것이 포함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안의 어디엔가 나와 같은 논제가 숨어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질문은 그것이 단지 질문으로 끝나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최소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진실인가 거짓인가를 알아내어야 할 이유를 확보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하나의 사실을 밝히기에도 충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의 입자들 하나 하나가 모여 끝내 바다를 이룰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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