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가지 않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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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2,535회 작성일 10-11-2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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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가지 않은 길>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난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곳을
끝 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이 지난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던가 봅니다.
.................중략...................
먼 훗날 난 어디선가 한숨지으며 얘기하겠지요.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난 사람이 적은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누구의 삶에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이 있다.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 미련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래서인가, 우리에겐 나쁜 버릇이 한 가지 있다. 과거를 가정하는 버릇이다. 숲속에 난 두 갈래 길 중에서 사실은 ‘가지 않은 길’을 택했어야 한다고, 그랬더라면 모든 것이 지금과는 달랐을 거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어땠을지는 살아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과거를 가정한다. 좀 더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더라면, 좀 더 치열하게 살았더라면, 그처럼 불운한 경험이 없었더라면 하고 상상하면서 과거에 갇혀 지내는 것이다.
성장과정에서 심각한 학대와 경제적 궁핍을 겪어야 했던 한 여성은 그로 인해 세상을 증오하고 있었다. 그 불운한 경험들로 인해 그녀는 인생의 다른 면들---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에서부터 가슴 벅찬 성취감에 이르기까지---에 결코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내가 힘들게 살아온 만큼 다른 사람들도 아프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이 그녀의 모든 생각과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심리가 그녀의 경우에는 남들에게 모욕을 주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기가 보기에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가차가 없었다. 그 방식도 독특했다. 얼핏 보기에는 조언을 하고 충고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조언과 충고에는 무수히 많은 가시가 달려 있었다.
그런 그녀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럴수록 그녀는 점점 더 자기만의 세상으로 파고들었다. 결국 문제가 생겨 상담을 진행하게 됐을 때도 그녀는 한동안 과거에서 잘 벗어나지 못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과거의 경험은 분명 뼈아픈 것이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라는 것 그리고 자기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단지 운이 나빠 그런 일을 겪었을 뿐이란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비로소 과거 때문에 현재와 미래를 망치기에는 자신의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사람들 중에는 나쁜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도 있으며 대부분은 그 중간을 왔다 갔다 한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되었다.
덕분에 일상의 웃음을 되찾은 그녀는 외모도 예쁘게 가꾸고 하고 싶은 일도 찾기에 이르렀다. 물론 더 이상 사람들에 공격적인 언사를 하는 일도 없어졌다.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찾은 것이다.
우리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몸과 마음이 따로 놀기 때문이다. 몸은 현재에 있으면서 마음은 과거에 가 있으니 당연히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과거에 가 있는 마음이 현재로 올 수 있도록 애쓰라”는 것이다. 그래야 몸과 마음이 일치해서 현재를 받아들이고 매사에 힘을 합해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이 아닌 이상 우린 어제를 돌이킬 수는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가장 집요하게 매달리고 반추하는 것 역시 과거라는 건 분명 커다란 아이러니다.
크든 작든 그와 같은 아이러니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지나친 경우에는 거기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에 대한 자책과 후회가 큰 만큼 현재에 집중하는 힘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현재에 집중하지 못할 때 우린 잠재력과 에너지의 크나큰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지혜란 내가 마음먹은 대로 현실을 자유롭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상황과, 변화가 불가능한 현실을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상황을 올바르게 구분하는 것이다.”하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변화가 불가능한 현실’ 중의 하나가 곧 과거다. 그러므로 평온한 마음으로과거를 받아들이는 길만이 지혜로운 행동인 것이다.
물론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린 누구나 과거로 인해 아이러니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현재와 미래를 방해한다면 서둘러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그때 A를 택하지 말고 B를 택했더라면 내 인생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하고 생각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때 내가 B를 택했다면 지금쯤은 A를 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을 테니, 피장파장인 셈이다.
그러므로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과거로 인해 현재를 망치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가 나를 괴롭힐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는 일단 자책 모드를 멈추어 보는 것이 상책이다. 인생은 매순간 경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잘했든지 잘 못했든지 간에 매순간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나를 이룬다고 생각해 보라. 최소한 그와 같은 경험을 한 나를 비판하거나 자책하는 일은 멈추게 될 것이다.
거리를 두고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실제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과거까지 포함해)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다.
어느 정도 훈련을 거듭하다 보면 이윽고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하고 자책하는 대신 “아하, 내가 이런 생각과 감정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구나. 나에게 그런 면이 있었구나” 하고 과거의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도 그저 나일 뿐이라는 분명한 자아 인식에 이르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데도 우리가 계속해서 과거를 가정하거나 심지어 과거가 나아지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숲속에 난 두 갈래 길 중에서 하나를 택함으로써 나의 모든 것이, 어쩌면 운명조차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달라진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이룬다면 난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그것 때문에 나의 미래 역시 달라질 것이므로.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난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곳을
끝 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이 지난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던가 봅니다.
.................중략...................
먼 훗날 난 어디선가 한숨지으며 얘기하겠지요.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난 사람이 적은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누구의 삶에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이 있다.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 미련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래서인가, 우리에겐 나쁜 버릇이 한 가지 있다. 과거를 가정하는 버릇이다. 숲속에 난 두 갈래 길 중에서 사실은 ‘가지 않은 길’을 택했어야 한다고, 그랬더라면 모든 것이 지금과는 달랐을 거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어땠을지는 살아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과거를 가정한다. 좀 더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더라면, 좀 더 치열하게 살았더라면, 그처럼 불운한 경험이 없었더라면 하고 상상하면서 과거에 갇혀 지내는 것이다.
성장과정에서 심각한 학대와 경제적 궁핍을 겪어야 했던 한 여성은 그로 인해 세상을 증오하고 있었다. 그 불운한 경험들로 인해 그녀는 인생의 다른 면들---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에서부터 가슴 벅찬 성취감에 이르기까지---에 결코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내가 힘들게 살아온 만큼 다른 사람들도 아프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이 그녀의 모든 생각과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심리가 그녀의 경우에는 남들에게 모욕을 주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기가 보기에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가차가 없었다. 그 방식도 독특했다. 얼핏 보기에는 조언을 하고 충고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조언과 충고에는 무수히 많은 가시가 달려 있었다.
그런 그녀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럴수록 그녀는 점점 더 자기만의 세상으로 파고들었다. 결국 문제가 생겨 상담을 진행하게 됐을 때도 그녀는 한동안 과거에서 잘 벗어나지 못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과거의 경험은 분명 뼈아픈 것이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라는 것 그리고 자기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단지 운이 나빠 그런 일을 겪었을 뿐이란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비로소 과거 때문에 현재와 미래를 망치기에는 자신의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사람들 중에는 나쁜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도 있으며 대부분은 그 중간을 왔다 갔다 한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되었다.
덕분에 일상의 웃음을 되찾은 그녀는 외모도 예쁘게 가꾸고 하고 싶은 일도 찾기에 이르렀다. 물론 더 이상 사람들에 공격적인 언사를 하는 일도 없어졌다.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찾은 것이다.
우리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몸과 마음이 따로 놀기 때문이다. 몸은 현재에 있으면서 마음은 과거에 가 있으니 당연히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과거에 가 있는 마음이 현재로 올 수 있도록 애쓰라”는 것이다. 그래야 몸과 마음이 일치해서 현재를 받아들이고 매사에 힘을 합해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이 아닌 이상 우린 어제를 돌이킬 수는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가장 집요하게 매달리고 반추하는 것 역시 과거라는 건 분명 커다란 아이러니다.
크든 작든 그와 같은 아이러니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지나친 경우에는 거기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에 대한 자책과 후회가 큰 만큼 현재에 집중하는 힘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현재에 집중하지 못할 때 우린 잠재력과 에너지의 크나큰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지혜란 내가 마음먹은 대로 현실을 자유롭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상황과, 변화가 불가능한 현실을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상황을 올바르게 구분하는 것이다.”하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변화가 불가능한 현실’ 중의 하나가 곧 과거다. 그러므로 평온한 마음으로과거를 받아들이는 길만이 지혜로운 행동인 것이다.
물론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린 누구나 과거로 인해 아이러니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현재와 미래를 방해한다면 서둘러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그때 A를 택하지 말고 B를 택했더라면 내 인생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하고 생각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때 내가 B를 택했다면 지금쯤은 A를 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을 테니, 피장파장인 셈이다.
그러므로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과거로 인해 현재를 망치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가 나를 괴롭힐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는 일단 자책 모드를 멈추어 보는 것이 상책이다. 인생은 매순간 경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잘했든지 잘 못했든지 간에 매순간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나를 이룬다고 생각해 보라. 최소한 그와 같은 경험을 한 나를 비판하거나 자책하는 일은 멈추게 될 것이다.
거리를 두고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실제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과거까지 포함해)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다.
어느 정도 훈련을 거듭하다 보면 이윽고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하고 자책하는 대신 “아하, 내가 이런 생각과 감정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구나. 나에게 그런 면이 있었구나” 하고 과거의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도 그저 나일 뿐이라는 분명한 자아 인식에 이르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데도 우리가 계속해서 과거를 가정하거나 심지어 과거가 나아지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숲속에 난 두 갈래 길 중에서 하나를 택함으로써 나의 모든 것이, 어쩌면 운명조차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달라진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이룬다면 난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그것 때문에 나의 미래 역시 달라질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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