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교육의 열풍과 그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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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114회 작성일 10-11-2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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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꼭 덫에 걸린 기분이에요."
어느날 한 젊은 엄마가 그렇게 하소연을 시작했다.
앞집에 평소 친정부모님 뵙듯 가까이 지내던 노인 내외분이 이사를 나가고 젊은 사람들이 이사를 온 것이 사건(?)의 빌미가 되었다고 했다.
"그집도 우리 딸애랑 나이가 같은 다섯살짜리 딸애가 있더군요.잘하면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아 그 엄마한테도 제딴에는 상냥하게 대하고 아이도 귀여워해주곤 했지요."
그런데 사귀어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자꾸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더란다.
상대방 엄마는 이른바 최고 명문 대학 출신이었는데 말끝마다 자기 출신학교를 들먹이는 것까지는 봐준다해도 아이를 두고 자기 딸과 턱없는 비교를 해대는 데는 정말 딱 싫은 기분이 들더라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봐도 두 아이가 차이가 난다는 거예요.저나 제 남편이나 아이들이란 자연스럽고 조금은 순진하게 키워야 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가능한 아이를 자유스럽게 키우려고 애써왔거든요."
당연히 이들 부부는 남들 다 시킨다는 조기교육에도 별 관심이 없고 또 나름대로 분명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던 덕분에 별다른 갈등도 없었다.
그런데 앞집의 젊은 엄마는 그들과는 스타일이 완전히 달랐다.아이란 부모 하기 나름이라며 다섯살 짜리 딸애를 벌써부터 미술학원,영어학원,심지어 한문학원까지 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아닌게 아니라 그집 아이는 그 나이에 이미 어려운 영어단어를 술술 외우는가 하면 그것을 적절히 써먹는 영특함(?)마저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저와 제딸애가 그 재주를 과시하는 상대가 돼줘야 할 때는 정말 당혹스러운 거예요.게다가 언제부터인가 나 자신 그들 모녀 앞에서 기가 죽고 주눅이 들기 시작한 것을 알았을 때는정말 싫더군요.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딸애는 순진한데다 놀기에 바빠서 아무튼 전혀 그런 기미가 없이 언제나 생기발랄하지만 말예요."
그러면서 이 젊은 엄마는 과연 자기가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지에 대해 점점 확신이 없어져간다고 털어놓았다. 한 예로 국민학교에 입학해 자기 딸애가 앞집 애와 같은 아이들과 경쟁관계에 놓일 때를 생각하면 아찔한 기분이 들며 자기가 뭔가 크게 잘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제 가치관이나 소신까지 굽혀가며 뒤늦게 아이에게 영어며 한문이며 가르치자니 갈등이 오는 거예요. 아무튼 요즘은 영 맘이 편칠 못해요.꼭 함정에 빠진 기분이라니까요."
이 젊은 엄마의 `어찌하오리까?'에 나는 뾰족한 대답을 해줄 수 없었는데 그녀가 겪고 있는 갈등을 나 역시 큰 애가 중학생이 된 오늘날까지 느끼고 있는 탓이다.
다음의 예는 내가 책에서 쓴 적이 있는 케이스이다.
언젠가 다섯살짜리 딸애를 둔 젊은 엄마가 아이와 함께 찾아왔다. 엄마는 아이의 지능을 정확하게 검사하고 싶어했다.
그녀는 자신이 아이의 임신을 안 순간부터 열심히 태교를 했으며 외국어는 5세 이전에 가르쳐야 한다고 해서 이미 세 살때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영재 프로그램에 등록시켜 가르치고 있는데 아이가 제대로 따라 하려고 들지 않는 거예요.정말 속상해 죽겠어요.다른 애들은 벌써 한자숙어까지 외워 집에 놀러온 손님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는데--"
그러면서 그녀는 자기 아이가 발달이 늦는 이유를 아무래도 알 수 없다며 지능검사를 원했다.
아이는 겁먹은 표정으로 아주 조용하게 앉아 있었다.그 나이의 아이에게서 볼 수 있는 아이다운 활달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이의 하루 스케줄은 아침 8시에 피아노 레슨을 시작으로 유치원에 갔다가 1시에 끝나면 미술학원으로 거기서 다시 발레학원까지 들렀다 와야하는 벅찬 것이었다.
"아이야 다 저 위하는 일이지만 매일처럼 데려갔다 데려와야 하는 전 정말 힘이 들어요.언젠가 하루 몸이 아파 시어머니께 부탁드렸더니 딱 하루 하시고는 두손 드시더군요."
말로는 힘들다고 했지만 그 표정에는 자기가 아이를 위해 얼마나 헌신적인 엄마인지에 관한 자랑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검사 결과 아이의 지능은 지극히 평균적이었다.게다가 불안과 우울반응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었다.어머니에게 검사결과를 설명해주고 아이의 정서적 문제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해주었다.하지만 이 어머니에게는 아이의 지능이 그저 보통 수준이라는 사실만이 충격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다른 곳에 가서 정밀검사를 더 받아봐야겠어요."
그녀는 아이의 손목을 잡아끌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내 아이만은 `특별하고 튀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이 어머니에게 자식은 덫이고 함정인 셈이다.물론 그 아이 역시 성장하면서 더 심하게 자기 어머니를 그렇게 느낄 것이지만.
그 모녀를 돌려보내고 나 자신 한동안 처참한 심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얼마전 의학 세미나 참석차 미국에 다녀왔다.그곳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드넓은 땅과 푸르고 맑은 하늘은 부러움을 넘어서 질투의 감정마저 불러일으킨다.
그 땅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여유와 당당함이 그런 환경의 소산이지 싶은 생각에 공연히 억울한 마음까지 품게 된다.그러면서 우리의 국민성이 매사에 조급하고 진득하지 못한 것 역시 우리의 환경 탓인 것 같아 속이 상한다.비좁은 땅에 빼곡한 인구밀도,게다가 단군 이래 1천 번은 될 외침에 견뎌온 우리의 역사와 배경이 우리를 조급증에 빠뜨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참 바쁘고 바쁘게도 살아왔다.길거리에 나가면 당장 무언가를 터뜨리고 싶어하는 화난 표정의 사람들과 만나고 실제로 그들은 쉽게 분노한다.이렇듯 쫓기는 듯한 사회적 조급증이 교육현실에도 그대로 나타나 많은 어머니들을 덫에 빠진 기분으로 몰아간다.
부모에게 자녀의 탄생과 성장은 인간으로서 완성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가장 기쁜 일 중의 하나이다.동시에 그 아이들을 올곧고 훌륭하게 키워야 한다는 막중한 부담감을 안겨주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앞서 예를 든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어느 쪽이든 조금씩 우리의 자화상을 닮고 있다고 할 수 있다.우리나라의 어머니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 언젠가 미국 작가 샐린저의 다음과 같은 말을 발견하고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을 쪽집게처럼 표현한 것 같아 혼자 몹시 재미있어하며 실소를 터뜨린 일도 있다.
` 이 세상의 어머니들은 누구나 다 조금씩은 미치고 있다. 누구의 어머니이든 다 그렇지만 세상의 어머니들은 자기 아들이 얼마나 우수한 인물인지를 듣고 싶어한다.'
그러니 우리의 어머니들이 아이의 재능을 고려에 넣기보다는 `남들이 다 하니까 내 아이도' 하고 조기교육 열풍에 편승한다고 해서, 혹은 너나없이 매달리는 조기교육을 내 아이만 시키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자기의 가치관을 의심하고 갈등에 빠진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왜 우리로 하여금 아이 문제라면 종종걸음을 내딛게 하는지에 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하고 있다.
첫째는 아이를 하나나 많아야 둘 정도 두다 보니 가정에서 아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졌다는 사실이다. 결혼해 아이를 낳게 되면 어느새 모든 것이 아이 중심이 돼버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부부가 있고 아이가 있는 법인데 우리는 어찌 된 셈인지 아이가 우선이고 부부는 뒷전이다.아이가 그 가정의 대표주자가 돼버리는 것이다.대표선수가 잘 뛰어야 그 팀이 빛나는 법,자연히 모든 가족구성원들이 아이를 중심으로 뛰다보니 전통적인 가족윤리마저 설 자리가 없다.그저 아이만 빛나면 되는 것이다.
둘째는 아이중독증이다.아직도 대부분의 남편들은 가장의 역할을 돈벌어오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한다.사회생활에 바쁘다 보니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도 아내에게 따뜻한 마음을 표현할 여유가 없다.여기에는 잔정을 표현하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는 우리의 유교적 교육환경도 한몫을 하고있다.
남편에게서 정서적 지지와 의존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아내들은 남편이 일에 빠져 있는 동안 아이들에게 빠져 있다.아이의 성취를 통해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때 어머니의 눈에 비치는 아이의 성취란 우선 공부 잘하고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어머니들이 한살 짜리 아이를 놓고 남들이 다한다는 조기교육, 영재교육을 어떻게 시킬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셋째는 부모의 보상심리이다.누구든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이때 그 자신의 현재 위치에 대한 열등감과 보상심리가 내 아이에게로 이어져 그 아이만은 나와는 다른 완벽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이들이란 마치 스폰지와 같아서 자극을 주는 대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잘못된 사회적 통념과 아이들을 내 소유물로 여기는 개념도 영향을 미친다.아이들에게 완벽함을 기대하는 심리는 아이를 한 인간이 아닌 내가 빚어내는 대로 모양을 갖추는 장난감(?)으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유치원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가 구구단을 외우고 뜻도 모르는 한자숙어를 사용하고 영어단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 내 아이가 튀는 아이이고 나는 부모 역할에 성공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한 어머니는 국민학교 1학년 짜리 공부를 봐주면서 자신이 교과서를 외워 아이에게 들려준다고 했다.그러면서 덧붙이는 말--"내가 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학교도 들어가고 남았을 텐데---"
그러나 그 어머니가 또 하나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무리 책을 달달 외워서 들려줘도 아이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어른들이 보기에는 쉽게 이해되고 술술 외워지는 문제들도 아이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극히 소수인 진짜 천재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왜냐하면 그들은 말 그대로 소수이고 그들 나름대로 사회에서 영재교육에 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우리는 내 아이를 포함해 나머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평범한 아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떤 부모들은 이러한 진리를 무시하고 자기 아이를 천재교육으로 몰아붙이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나는 정신과의사라는 직업 탓에 어린시절부터 부모로부터 무자비하게 천재가 되도록 강요당하다가 문제를 일으켜 오는 많은 청소년들을 만난다.이때 부모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정해져 있다.
어릴 때부터 영재교육을 시킬 만큼 똑똑했으며 국민학교에 들어가서는 전체 수석에 전교 회장을 도맡았고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1,2등을 놓치지 않던 아이가 중3이 되거나 고등학생이 되면서 갑자기 공부를 외면하고 문제만 일으키고 다닌다는 것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에는 부모가 세상의 전부이다.따라서 부모가 원하는 대로 몰아붙일 수도 있고 때려서라도 부모가 바라는 모양을 일시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그러나 그 효과는 얼마가지 못한다.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동안 아이의 마음 속에서 계속 억압돼 온 분노와 적개심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억압당한다고 느끼면 언제라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아이가 대소변을 가리는 2,3세만 돼도 부모의 권위에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서 자유를 주장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독립성의 추구를 무시하고 아이를 부모 뜻대로 만들려고 하면 아이는 마음 속으로 분노하게 되고 이것은 더욱 나쁜 죄책감으로 이어진다.그리고 이러한 죄책감은 다시 불안과 우울한 감정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어느날 한 젊은 엄마가 그렇게 하소연을 시작했다.
앞집에 평소 친정부모님 뵙듯 가까이 지내던 노인 내외분이 이사를 나가고 젊은 사람들이 이사를 온 것이 사건(?)의 빌미가 되었다고 했다.
"그집도 우리 딸애랑 나이가 같은 다섯살짜리 딸애가 있더군요.잘하면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아 그 엄마한테도 제딴에는 상냥하게 대하고 아이도 귀여워해주곤 했지요."
그런데 사귀어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자꾸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더란다.
상대방 엄마는 이른바 최고 명문 대학 출신이었는데 말끝마다 자기 출신학교를 들먹이는 것까지는 봐준다해도 아이를 두고 자기 딸과 턱없는 비교를 해대는 데는 정말 딱 싫은 기분이 들더라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봐도 두 아이가 차이가 난다는 거예요.저나 제 남편이나 아이들이란 자연스럽고 조금은 순진하게 키워야 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가능한 아이를 자유스럽게 키우려고 애써왔거든요."
당연히 이들 부부는 남들 다 시킨다는 조기교육에도 별 관심이 없고 또 나름대로 분명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던 덕분에 별다른 갈등도 없었다.
그런데 앞집의 젊은 엄마는 그들과는 스타일이 완전히 달랐다.아이란 부모 하기 나름이라며 다섯살 짜리 딸애를 벌써부터 미술학원,영어학원,심지어 한문학원까지 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아닌게 아니라 그집 아이는 그 나이에 이미 어려운 영어단어를 술술 외우는가 하면 그것을 적절히 써먹는 영특함(?)마저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저와 제딸애가 그 재주를 과시하는 상대가 돼줘야 할 때는 정말 당혹스러운 거예요.게다가 언제부터인가 나 자신 그들 모녀 앞에서 기가 죽고 주눅이 들기 시작한 것을 알았을 때는정말 싫더군요.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딸애는 순진한데다 놀기에 바빠서 아무튼 전혀 그런 기미가 없이 언제나 생기발랄하지만 말예요."
그러면서 이 젊은 엄마는 과연 자기가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지에 대해 점점 확신이 없어져간다고 털어놓았다. 한 예로 국민학교에 입학해 자기 딸애가 앞집 애와 같은 아이들과 경쟁관계에 놓일 때를 생각하면 아찔한 기분이 들며 자기가 뭔가 크게 잘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제 가치관이나 소신까지 굽혀가며 뒤늦게 아이에게 영어며 한문이며 가르치자니 갈등이 오는 거예요. 아무튼 요즘은 영 맘이 편칠 못해요.꼭 함정에 빠진 기분이라니까요."
이 젊은 엄마의 `어찌하오리까?'에 나는 뾰족한 대답을 해줄 수 없었는데 그녀가 겪고 있는 갈등을 나 역시 큰 애가 중학생이 된 오늘날까지 느끼고 있는 탓이다.
다음의 예는 내가 책에서 쓴 적이 있는 케이스이다.
언젠가 다섯살짜리 딸애를 둔 젊은 엄마가 아이와 함께 찾아왔다. 엄마는 아이의 지능을 정확하게 검사하고 싶어했다.
그녀는 자신이 아이의 임신을 안 순간부터 열심히 태교를 했으며 외국어는 5세 이전에 가르쳐야 한다고 해서 이미 세 살때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영재 프로그램에 등록시켜 가르치고 있는데 아이가 제대로 따라 하려고 들지 않는 거예요.정말 속상해 죽겠어요.다른 애들은 벌써 한자숙어까지 외워 집에 놀러온 손님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는데--"
그러면서 그녀는 자기 아이가 발달이 늦는 이유를 아무래도 알 수 없다며 지능검사를 원했다.
아이는 겁먹은 표정으로 아주 조용하게 앉아 있었다.그 나이의 아이에게서 볼 수 있는 아이다운 활달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이의 하루 스케줄은 아침 8시에 피아노 레슨을 시작으로 유치원에 갔다가 1시에 끝나면 미술학원으로 거기서 다시 발레학원까지 들렀다 와야하는 벅찬 것이었다.
"아이야 다 저 위하는 일이지만 매일처럼 데려갔다 데려와야 하는 전 정말 힘이 들어요.언젠가 하루 몸이 아파 시어머니께 부탁드렸더니 딱 하루 하시고는 두손 드시더군요."
말로는 힘들다고 했지만 그 표정에는 자기가 아이를 위해 얼마나 헌신적인 엄마인지에 관한 자랑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검사 결과 아이의 지능은 지극히 평균적이었다.게다가 불안과 우울반응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었다.어머니에게 검사결과를 설명해주고 아이의 정서적 문제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해주었다.하지만 이 어머니에게는 아이의 지능이 그저 보통 수준이라는 사실만이 충격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다른 곳에 가서 정밀검사를 더 받아봐야겠어요."
그녀는 아이의 손목을 잡아끌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내 아이만은 `특별하고 튀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이 어머니에게 자식은 덫이고 함정인 셈이다.물론 그 아이 역시 성장하면서 더 심하게 자기 어머니를 그렇게 느낄 것이지만.
그 모녀를 돌려보내고 나 자신 한동안 처참한 심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얼마전 의학 세미나 참석차 미국에 다녀왔다.그곳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드넓은 땅과 푸르고 맑은 하늘은 부러움을 넘어서 질투의 감정마저 불러일으킨다.
그 땅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여유와 당당함이 그런 환경의 소산이지 싶은 생각에 공연히 억울한 마음까지 품게 된다.그러면서 우리의 국민성이 매사에 조급하고 진득하지 못한 것 역시 우리의 환경 탓인 것 같아 속이 상한다.비좁은 땅에 빼곡한 인구밀도,게다가 단군 이래 1천 번은 될 외침에 견뎌온 우리의 역사와 배경이 우리를 조급증에 빠뜨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참 바쁘고 바쁘게도 살아왔다.길거리에 나가면 당장 무언가를 터뜨리고 싶어하는 화난 표정의 사람들과 만나고 실제로 그들은 쉽게 분노한다.이렇듯 쫓기는 듯한 사회적 조급증이 교육현실에도 그대로 나타나 많은 어머니들을 덫에 빠진 기분으로 몰아간다.
부모에게 자녀의 탄생과 성장은 인간으로서 완성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가장 기쁜 일 중의 하나이다.동시에 그 아이들을 올곧고 훌륭하게 키워야 한다는 막중한 부담감을 안겨주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앞서 예를 든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어느 쪽이든 조금씩 우리의 자화상을 닮고 있다고 할 수 있다.우리나라의 어머니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 언젠가 미국 작가 샐린저의 다음과 같은 말을 발견하고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을 쪽집게처럼 표현한 것 같아 혼자 몹시 재미있어하며 실소를 터뜨린 일도 있다.
` 이 세상의 어머니들은 누구나 다 조금씩은 미치고 있다. 누구의 어머니이든 다 그렇지만 세상의 어머니들은 자기 아들이 얼마나 우수한 인물인지를 듣고 싶어한다.'
그러니 우리의 어머니들이 아이의 재능을 고려에 넣기보다는 `남들이 다 하니까 내 아이도' 하고 조기교육 열풍에 편승한다고 해서, 혹은 너나없이 매달리는 조기교육을 내 아이만 시키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자기의 가치관을 의심하고 갈등에 빠진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왜 우리로 하여금 아이 문제라면 종종걸음을 내딛게 하는지에 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하고 있다.
첫째는 아이를 하나나 많아야 둘 정도 두다 보니 가정에서 아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졌다는 사실이다. 결혼해 아이를 낳게 되면 어느새 모든 것이 아이 중심이 돼버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부부가 있고 아이가 있는 법인데 우리는 어찌 된 셈인지 아이가 우선이고 부부는 뒷전이다.아이가 그 가정의 대표주자가 돼버리는 것이다.대표선수가 잘 뛰어야 그 팀이 빛나는 법,자연히 모든 가족구성원들이 아이를 중심으로 뛰다보니 전통적인 가족윤리마저 설 자리가 없다.그저 아이만 빛나면 되는 것이다.
둘째는 아이중독증이다.아직도 대부분의 남편들은 가장의 역할을 돈벌어오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한다.사회생활에 바쁘다 보니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도 아내에게 따뜻한 마음을 표현할 여유가 없다.여기에는 잔정을 표현하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는 우리의 유교적 교육환경도 한몫을 하고있다.
남편에게서 정서적 지지와 의존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아내들은 남편이 일에 빠져 있는 동안 아이들에게 빠져 있다.아이의 성취를 통해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때 어머니의 눈에 비치는 아이의 성취란 우선 공부 잘하고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어머니들이 한살 짜리 아이를 놓고 남들이 다한다는 조기교육, 영재교육을 어떻게 시킬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셋째는 부모의 보상심리이다.누구든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이때 그 자신의 현재 위치에 대한 열등감과 보상심리가 내 아이에게로 이어져 그 아이만은 나와는 다른 완벽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이들이란 마치 스폰지와 같아서 자극을 주는 대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잘못된 사회적 통념과 아이들을 내 소유물로 여기는 개념도 영향을 미친다.아이들에게 완벽함을 기대하는 심리는 아이를 한 인간이 아닌 내가 빚어내는 대로 모양을 갖추는 장난감(?)으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유치원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가 구구단을 외우고 뜻도 모르는 한자숙어를 사용하고 영어단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 내 아이가 튀는 아이이고 나는 부모 역할에 성공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한 어머니는 국민학교 1학년 짜리 공부를 봐주면서 자신이 교과서를 외워 아이에게 들려준다고 했다.그러면서 덧붙이는 말--"내가 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학교도 들어가고 남았을 텐데---"
그러나 그 어머니가 또 하나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무리 책을 달달 외워서 들려줘도 아이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어른들이 보기에는 쉽게 이해되고 술술 외워지는 문제들도 아이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극히 소수인 진짜 천재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왜냐하면 그들은 말 그대로 소수이고 그들 나름대로 사회에서 영재교육에 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우리는 내 아이를 포함해 나머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평범한 아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떤 부모들은 이러한 진리를 무시하고 자기 아이를 천재교육으로 몰아붙이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나는 정신과의사라는 직업 탓에 어린시절부터 부모로부터 무자비하게 천재가 되도록 강요당하다가 문제를 일으켜 오는 많은 청소년들을 만난다.이때 부모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정해져 있다.
어릴 때부터 영재교육을 시킬 만큼 똑똑했으며 국민학교에 들어가서는 전체 수석에 전교 회장을 도맡았고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1,2등을 놓치지 않던 아이가 중3이 되거나 고등학생이 되면서 갑자기 공부를 외면하고 문제만 일으키고 다닌다는 것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에는 부모가 세상의 전부이다.따라서 부모가 원하는 대로 몰아붙일 수도 있고 때려서라도 부모가 바라는 모양을 일시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그러나 그 효과는 얼마가지 못한다.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동안 아이의 마음 속에서 계속 억압돼 온 분노와 적개심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억압당한다고 느끼면 언제라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아이가 대소변을 가리는 2,3세만 돼도 부모의 권위에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서 자유를 주장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독립성의 추구를 무시하고 아이를 부모 뜻대로 만들려고 하면 아이는 마음 속으로 분노하게 되고 이것은 더욱 나쁜 죄책감으로 이어진다.그리고 이러한 죄책감은 다시 불안과 우울한 감정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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