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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30초 해결


 

아버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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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233회 작성일 10-11-2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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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치료에 `역할 바꾸기'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부부 상담 치료를 할 때 아내와 남편이 서로 역할을 바꾸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쉬운 말은 아니지만 부부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해소하고 치료하는 데 퍽 유용한 방법이다. 역할 바꾸기를 통해 지금까지 상대방에게만 원인과 책임이 있다고 믿어왔던 많은 문제들이 사실은 내 안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나아가서 상대방에 대해 배려할 수 있는 시각도 갖게 된다.
그런 맥락에서 `내가 만일 아버지라면'하는 질문은 기발하고도 재미있다.
이 질문이 내게 주어졌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아버지상'이 있다.
소설<압록강은 흐른다>에 나오는 아버지이다.
소설에서 아버지는 엄격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하긴 그 시대에 선비로서 엄격하지 않은 아버지가 있었으리오만) 아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많은 것들을 가르친다.
아름다운 달밤이면 아버지는 샘뜰 아래 자리를 만들게 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아들에게 당시대에 전해져 내려오는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일화를 들려준다. 그때마다 어린 아들의 머리속은 상상으로 부풀고 가슴은 마냥 울렁거린다. 아버지는 가끔 큰소리로 시를 읊기도 하는데 만일 좋은 운이 떠올라 기분이 내키면 농담을 건네어 아들을 감동시키기도 한다. 그 자리에서 아들은 아버지가 처음으로 건네는 술잔을 받기도 한다.
`달빛은 하염없이 밝고 살구꽃 향기 그윽한 밤'에 술상에 마주앉아 아들은 아버지의 친구가 되었던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바둑을 배우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처음에 스무집을 놓고 대국을 시작하면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돌을 놓을 때 무슨 일이 있어도 경솔해서는 안된다. 천천히, 언제나 처음에 잘 생각해야 하느니라' 하며 인생을 가르친다. 찌는 듯한 여름 더위를 피해 정원의 나무 그늘에서 몇 시간이고 바둑을 두고 또 두는 부자의 모습에서는 요즘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여유와 멋이 한껏 느껴진다.
만일 아버지가 된다면 나는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다. 달 빛 아래서 아들에게 시를 들려주고 술마시는 법을 가르치고 여름이면 나무그늘 아래서 바둑과 인생을 가르치는 아버지의 모습은 얼마나 근사한가.
하지만 요즘 같은 때 그것은 아마도 바랄 수 없는 꿈일 테니 다음의 아버지는 어떨까.

초등학교 저학년인 그의 아들은 공부에는 도무지 취미가 없었다. 그저 시간만 나면 텔레비젼 앞에 앉아 있거나 밖에 뛰어나가 놀 궁리만 했다. 고민하던 아버지는 아이의 집중력을 길러주기 위해 독서교육을 시키기로 했다. 어느날 아이에게 <파브르 곤충기>를 사다주고 읽으라고 했다. 당연히(?) 아이는 읽지 않았다. 여름방학이 되자 아버지는 한 가지 궁리를 해냈다. 3분짜리 모래시계를 사다가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이 시계는 위쪽의 모래가 아래로 흘러내리는데 꼭 3분이 걸린단다. 이제부터 방학동안 매일 3분씩 너에게 책을 읽어주려고 한다. 괜찮지?"
책보다는 모래시계에 더 흥미를 느낀 아이는 재미있어하며 동의했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아이를 불러다 앞에 앉혀놓고 모래시계가 흘러내리는 3분 동안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처음에 아이는 조금도 책 내용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모래시계가 흘러내리는 것만 쳐다보았다. 아이가 책읽기에 조금씩 흥미를 보인 것은 일주일이 다 되어서였다. 나중에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조금 더 오래 읽어달라고 졸랐다. 그렇지만 약속은 약속이므로 책읽기는 언제나 3분 동안만 계속되었다.그러자 아이는 아버지가 읽어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가 먼저 나머지 부분을 다 읽어치우게 되었다. 그러더니 놀랍게도 다른 책을 더 사달라고 졸랐다.
그가 3분 동안의 책읽기를 생각해 낸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은 그로서는 집중해서 아이와 뭔가를 해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실행 시간이 있다 해도 아이와 하루 종일 놀아줄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3분이라면 아버지도 아이도 서로에게 충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일본의 어느 교육전문가의 글에 나오는 사례이다.30분도 아니고 고작 3분 동안의 책읽기가 무슨 큰일이라고 예까지 드느냐고 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다같이(특히 자녀교육을 아내의 손에만 맡겨놓고 방임하는 아버지라면 더욱 더) 가슴에 손을 얹고 정직하게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아마도 하루에 단 3분이라고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아이에게 시간을 내주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너남직없이 다 바쁜 탓이다. 덕분에 시간을 정해 놓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버지, 잠깐이라도 식탁에 마주앉아 아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들려주는 아버지의 모습조차 요즘은 귀한 풍경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누구인들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을까.
나 역시 `만일 아버지가 됐다면'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다. 이 세상에서 부모 마음 다른 법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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