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4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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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249회 작성일 10-11-2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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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숫자 4를 싫어한다. 4란 숫자가 한문의 죽을사자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란 것이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보다 더 터무니없는 연결도 없다. 아라비아 숫자의 4와 한문의 죽을 사자는 발음이 같다는 것 외에 도무지 처음부터 아무런 연결도, 상관도 없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린 아무튼 숫자 4를 싫어한다. 막연하게 싫어하는 걸 넘어서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질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렇긴 해도 대개는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김미정씨(가명, 23세) 역시 이 숫자 4에 대한 강박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는 병적인 데가 있었다. 그런 증상이 시작된 것은 사춘기때부터였다. 그녀에게 있어서 숫자는 3 다음엔 5여야 했다. 4란 숫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우연히라도 4란 숫자가 눈에 들어온 날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불안감의 원인은 어머니에게 있었다. 미정씨에게 숫자 4는 곧 어머니에게 불길한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로 여겨졌다. 그러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별일이 없는지 확인하지 않고는 아무일도 할 수가 없었다.
미정씨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특별한 증상은 없었다. 여러 가지 검사를 시행한 끝에 병원에선 신체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곳에서 권유해 정신과에 가게 됐다. 정신과에선 우울증이라고 했다. 시어머니와의 오랜 갈등과 불화, 그 사이에 끼어든 시누이와의 반목, 그 가운데서 갈팡질팡하는 남편에 대한 원망 등이 합쳐져서 화병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미정씨의 어머니도 생활에 아무런 의욕을 느끼지 못했다. 덕분에 집안살림은 늘 엉망이었다. 청소도 안돼 있고 음식도 형편없었다.
어쩌다 친구 집에 놀러가면 깨끗한 집안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겨운 미소를 띠고 자기네들을 맞이해 주는 친구의 어머니가 미정씨는 부러웠다. 그러는 사이에 그녀는 언제부턴가 4자를 보면 미친 듯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사춘기도 지나고 학업도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그런 증상은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더 심해져만 갔다. 어머니의 우울증 역시 나아질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젠 겉모습마저 황폐해져 있었다. 이혼을 하진 않았지만 아버지가 가정을 외면한 지도 한참 지나 있었다. 한 마디로 가족이나 가정이란 말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 미정씨와 부모님의 생활이었다.
그녀가 자기 안에 "차라리 저렇게 자기 구실을 못하는 엄마라면 죽는 게 낫지"하는 마음이 숨어 잇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뭐든지 3번 아니면 5번을 되풀이하는 강박증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과를 방문한 다음이었다.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는 우울증으로 인해 가정과 딸을 돌보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크나큰 원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원망은 어느 때부턴가 쓰디쓴 미운 감정으로 바뀌었고, 때때로 그녀는 어머니를 깊이 증오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착한 딸로서 어머니에 대해 증오심을 갖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따라서 그녀는 그 감정을 억압했고, 억압이 심할수록 그녀 내면의 죄책감도 커져만 갔다. 그리고 그 죄책감은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을 불러일으켰고,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 그녀는 강박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처럼 그녀의 의식세계는 어머니에 대해 증오심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 증오심을 무의식의 세계로 밀어넣었지만, 그녀는 자기 무의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따라서 오히려 의식의 세계에서는 어머니의 건강을 더욱 걱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단지 우리가 흔히 죽음과 연결하는 4라는 숫자만 보면 내심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불안감이 무의식적으로 튀어올라 그토록 병적인 강박증상을 보이게 됐던 것이었다.
살아가면서 죄책감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다. 의사이자 작가인 폴 투르니에의 표현을 빌면 "어떤 무덤이건, 그 주변에서 죄책감의 홍수가 마음을 괴롭게 하지 않는 무덤은 없다"고 봐야 한다.
물론 어느 정도의 죄책감은 자아의 양심을 살아 있게 한다는 점에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미정씨의 경우처럼 병적인 증상으로 나타나선 곤란하다.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해 나가는 데 심각한 방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감정을 너무 억압하지 말고 그때그때 풀어버리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는 주변의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신의 속생각들을 털어놓는 것이 가장 좋다. 미움이나 환멸, 그로 인한 죄책감과 불안의 감정들까지 다 털어놓으면 더이상 그런 감정들을 억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겐 그럴 만한 상대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편에서 그런 사람을 만들지 않는 것뿐이지 처음부터 없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 편에서 먼저 마음을 여는 것이다. 그것이 죄책감이나 나의 결점에 관한 문제라 할지라도.
김미정씨(가명, 23세) 역시 이 숫자 4에 대한 강박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는 병적인 데가 있었다. 그런 증상이 시작된 것은 사춘기때부터였다. 그녀에게 있어서 숫자는 3 다음엔 5여야 했다. 4란 숫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우연히라도 4란 숫자가 눈에 들어온 날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불안감의 원인은 어머니에게 있었다. 미정씨에게 숫자 4는 곧 어머니에게 불길한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로 여겨졌다. 그러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별일이 없는지 확인하지 않고는 아무일도 할 수가 없었다.
미정씨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특별한 증상은 없었다. 여러 가지 검사를 시행한 끝에 병원에선 신체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곳에서 권유해 정신과에 가게 됐다. 정신과에선 우울증이라고 했다. 시어머니와의 오랜 갈등과 불화, 그 사이에 끼어든 시누이와의 반목, 그 가운데서 갈팡질팡하는 남편에 대한 원망 등이 합쳐져서 화병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미정씨의 어머니도 생활에 아무런 의욕을 느끼지 못했다. 덕분에 집안살림은 늘 엉망이었다. 청소도 안돼 있고 음식도 형편없었다.
어쩌다 친구 집에 놀러가면 깨끗한 집안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겨운 미소를 띠고 자기네들을 맞이해 주는 친구의 어머니가 미정씨는 부러웠다. 그러는 사이에 그녀는 언제부턴가 4자를 보면 미친 듯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사춘기도 지나고 학업도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그런 증상은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더 심해져만 갔다. 어머니의 우울증 역시 나아질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젠 겉모습마저 황폐해져 있었다. 이혼을 하진 않았지만 아버지가 가정을 외면한 지도 한참 지나 있었다. 한 마디로 가족이나 가정이란 말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 미정씨와 부모님의 생활이었다.
그녀가 자기 안에 "차라리 저렇게 자기 구실을 못하는 엄마라면 죽는 게 낫지"하는 마음이 숨어 잇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뭐든지 3번 아니면 5번을 되풀이하는 강박증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과를 방문한 다음이었다.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는 우울증으로 인해 가정과 딸을 돌보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크나큰 원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원망은 어느 때부턴가 쓰디쓴 미운 감정으로 바뀌었고, 때때로 그녀는 어머니를 깊이 증오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착한 딸로서 어머니에 대해 증오심을 갖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따라서 그녀는 그 감정을 억압했고, 억압이 심할수록 그녀 내면의 죄책감도 커져만 갔다. 그리고 그 죄책감은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을 불러일으켰고,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 그녀는 강박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처럼 그녀의 의식세계는 어머니에 대해 증오심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 증오심을 무의식의 세계로 밀어넣었지만, 그녀는 자기 무의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따라서 오히려 의식의 세계에서는 어머니의 건강을 더욱 걱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단지 우리가 흔히 죽음과 연결하는 4라는 숫자만 보면 내심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불안감이 무의식적으로 튀어올라 그토록 병적인 강박증상을 보이게 됐던 것이었다.
살아가면서 죄책감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다. 의사이자 작가인 폴 투르니에의 표현을 빌면 "어떤 무덤이건, 그 주변에서 죄책감의 홍수가 마음을 괴롭게 하지 않는 무덤은 없다"고 봐야 한다.
물론 어느 정도의 죄책감은 자아의 양심을 살아 있게 한다는 점에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미정씨의 경우처럼 병적인 증상으로 나타나선 곤란하다.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해 나가는 데 심각한 방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감정을 너무 억압하지 말고 그때그때 풀어버리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는 주변의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신의 속생각들을 털어놓는 것이 가장 좋다. 미움이나 환멸, 그로 인한 죄책감과 불안의 감정들까지 다 털어놓으면 더이상 그런 감정들을 억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겐 그럴 만한 상대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편에서 그런 사람을 만들지 않는 것뿐이지 처음부터 없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 편에서 먼저 마음을 여는 것이다. 그것이 죄책감이나 나의 결점에 관한 문제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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