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삶의 선물 - 형이 보내온 마지막 소포 > 행복 체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김준기(가명·현재 38살)씨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대학 3학년 때 이미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던 그는 2차, 3차도 무리 없이 붙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도록 그는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며칠 전에 2차 시험을 치르고 고향에 내려가는 그의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경남 하동에서 가난한 농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좋아 천재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를 위해 형은 기꺼이 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누나는 시집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족은 그를 위해 너무나 많은 것들을 희생했습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이제 그만 고시를 포기하자, 그는 각오를 굳혔습니다. 고향집 대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누나가 그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준식이가, 네 형이...... 죽었어!”
그는 식구들의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형이 왜 죽어? 우리 형은 지금 강원도 화천에서 이 나라를 지키고 있는 군인이란 말이야! 그것도 몇 달 후면 제대하는 병장이라구!
형의 시체를 보기 전에는 절대로 형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고, 울고 소리치고 허공에다 대고 주먹질을 해대는 그를 부둥켜안고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군대에서 수색을 나갔다가 지뢰를 잘못 밟아 죽었다고 형의 사고 소식을 알려왔지만 그의 시험 날짜가 며칠 남지 않아서, 그래서 그에게만은 형의 죽음을 알릴 수 없었다고.
그 여름, 그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뿐인 형의 마지막 가는 길도 함께 해주지 못할 만큼 사법고시가 그게 그렇게 중요했단 말인가? 그가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유일한 길은 고시를 포기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그는 신림동의 고시원으로 올라왔습니다. 모든 것을 정리할 생각이었지요. 고시원의 총무가 그의 방으로 들어와 소포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포장을 뜯자, 이재상의 <형법총론>과 <형법강론> 두 권이 나왔습니다. 죽은 형이 강원도에서 보낸 소포였습니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막판에 이 책이 도움이 될까 해서 그의 형은 모아두었던 월급으로 이 책을 사서 붙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형은 기쁜 마음으로 부대로 돌아갔겠지요. 이 책으로 열심히 공부할 동생의 모습을 상상하며 형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지도 모릅니다.
김준기씨는 지금 38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판사가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