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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미혼남 15% 시대 2011년 가을 어느 풍경… 노총각 구보씨의 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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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729회 작성일 15-06-11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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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구보씨1)는 요즘 수염을 잘 깎지 않는다. TV드라마 주인공 ‘독고진’처럼 코밑과 아래턱에 모양 좋게 수염을 진열해 놓는다기보다는,
단지 면도를 2∼3주씩 안 할 뿐이다. 대한민국, 아니 세계 문명국 성인 남성들의 기계적인 아침 과제를 방기하는 것은 그가 마흔이 넘은 노총각이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
이성(異性)의 관찰 및 주목을 제풀에 포기한 심정은 맨들맨들한 하관을 유지하기 위한 매일의 귀찮은 일과를 언젠가부터 게을리하게 만들었다.
탐스럽기는커녕 미적 가치와는 별 무관한 헙수룩한 수염의 구보씨를 만나면 친구들은 “솔직히, 보기 흉하다”고 하고,
만혼의 극치를 달리는 아들이 안 그래도 근심거리인 어머니는 미간까지 살짝 찡그린다. 하지만 구보씨는 개의치 않고 오늘도 감숭한 수염 그대로인 채 집을 나섰다.
주말이지만 딱히 약속은 없다. 저마다 악전고투의 나날인 대한민국에서 휴일 낮부터 직장 동료나 학교 동창을 만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다.
연인들끼리라면 물론 얘기가 다르겠지만. 집에 있긴 답답하다. 여행도 귀찮아하는 그는 가까운 청계천에 가서 산책이나 하며 호젓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못 볼 꼴을 보다
하지만 청계천 주변은 시끄러웠다. 모전교 아래 수로에서부터 시작해 ‘2011 서울 등 축제’ 준비가 한창이어서 구경하는 시민들로 북적댄다. 보신각 네거리 쪽에서는 어떤 단체의 ‘생존권 보장 촉구를 위한 결의대회’가 가열차게 열리는 가운데 경찰과 의경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무엇보다 구보씨 눈을 어지럽힌 건 아베크족들이다. 쌀쌀한 날씨에 서로 찰싹 달라붙어 시시덕거리는 연인들이 도처에 창궐해 있다. 이들을 힐끔거리며 어깨를 늘어뜨린 채 맞은편에서 오는 한 시쁘둥한 분위기의 사내와 눈이 마주치자 구보씨는 자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에 곧 고개를 돌렸다.
구보씨는 절로 자신의 신세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시인 최승자는 한 시에서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고 했는데, 구보씨는 우리 나이로 마흔 세 살이다. ‘무한도전’2)에서 늘 늙은이 취급받는 박명수보다도 한 살이 더 많다. 게다가 미혼이다. 정말 살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심정이다.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는 ‘여자는 되도록 빨리 결혼해야 한다. 그러나 남자는 가능한 한 늦추는 게 낫다’고 했다. 문제는 구보씨가 결혼을 늦춘 게 아니고 짝을 못 만나서 그냥 못했다는 것이다. 40대 남성 중 미혼자 비율이 무려 14.8%나 된다는 한국노동연구원의 최근 통계가 그나마 위안이 될까.
얼마 전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설문조사를 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미혼남녀들을 대상으로 노총각과 노처녀를 구분하는 기준을 물었더니, 여성들은 평균 36세 이상의 남자를 노총각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보씨는 뭔가. 대개의 처녀들이 거부하는 노노(NO! NO!)총각인가. ‘애정남’ 최효종3)은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딱 봤을 때 아저씨 필(느낌)이면 노총각”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구보씨는 딱 봤을 때 자신이 아저씨 느낌인지 새삼 자기 행색을 살펴봤다. 아저씨 맞네….
구보씨는 마침내 광교 모퉁이까지 이르렀다. 걸음을 멈추고 다리쉼을 하던 중 그만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교각 아래 천변에 한 산뜻한 남녀 커플이 다정하게 앉아 도시락을 까먹고 있다. 남자만 먹고 여자는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모습을 보아하니 여자가 도시락을 싸온 모양이다. 자세히 보니 초밥도시락이다. 오후 2시가 넘었는데 저게 대체 점심인가 간식인가. 공연히 분통이 터진다. 후드 점퍼를 입은 남자는 연신 싱글벙글거리며 먹다가 떠들다가 밥알이 튈 지경이고, 무릎 담요를 다리 위에 걸친 여자는 급기야 플라스틱 통에 담긴 누런 미소(된장)국까지 건넨다. 자기야 추운데 따뜻할 때 먹어, 이러는 것 같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결혼
구보씨는 더 이상 바라보지 못하고 분연히 발길을 돌렸다.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4)라고 중얼거리며 광교 옆 횡단보도를 건너자 우악스럽게 솟은 종로타워5)가 눈에 들어왔다. 타워 안에 들어가니 대형 서점 반디앤루니스가 있다. 며칠 전 출간된 스티브 잡스 자서전이 단연 인기다. 구보씨는 잡스의 다른 얘기보다 7년 연하의 부인 로렌 파월과의 러브 스토리에 가장 눈길이 쏠렸다. “당신과 함께 황홀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고백했다나. 구보씨 눈에는 이런 내용만 들어온다.
잡스에 대한 연상은 방정맞은 비관으로까지 나아갔다. 황홀한 부인을 둔 잡스도 암으로 죽었는데, 부인은커녕 반려견도 없는 나는 암으로 죽을 가능성이 얼마나 높을 것인가. 노총각들의 암 사망률이 기혼 남성에 비해 훨씬 높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 연구팀이 1970∼2007년 암으로 진단받은 44만명의 의료기록을 분석했는데, 결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노총각들은 다른 남자들에 비해 폐암, 전립선암 등 가장 일반적인 암 13가지에 걸려 목숨을 잃을 확률이 두 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보씨는 노총각이 오래 못 산다는 기사를 여러 번 본 기억이 난다. 독신 남성의 사망률이 기혼 남성에 비해 독신기간 10년마다 3.4%씩 더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었고, 45세 이상의 독신 남성은 기혼남에 비해 각종 질병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23%나 높다는 통계도 있었다. 이런 현상은 독신자들이 과음이나 흡연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하고 정신적으로도 더 불안정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결혼은 해야 하는 것이다.
서점에 온 김에 여기저기 서가를 둘러보니 연애 지침서도 다양하게 꽂혀 있다. 그중 모 결혼정보업체의 연애전문 파티 플래너(기획자)가 쓴 책을 꺼내 목차를 살펴봤다. ‘part 6. 상황에 따라 효과적으로 말하기’, ‘세상에서 가장 자신감 넘치는 남자처럼 말하기’, ‘세상에서 가장 죽이 잘 맞는 남자처럼 말하기’, ‘세상에서 유일한 당신 편인 남자처럼 말하기’…. 구보씨는 한숨이 나왔다. 이런 것도 기술로 연마해야 한단 말인가.
미국의 상담가 시드니 스미스가 쓴 ‘결혼 전에 질문해야 할 101가지 질문’ 목차를 보니 더욱 모골이 송연하다. ‘배우자의 가정 병력은 어떠한가?’, ‘성적으로 이상한 습관을 지니고 있는가?’, ‘배우자에게 다른 연인이 생길 경우에는?’, ‘배우자의 친구가 마음에 안 들 때에는?’…. 이런 걸 101가지나 따지고 결혼해야 한단 말인가.
독신생활에 좀 의연할 수 없을까? 구보씨는 예컨대 ‘바람의 딸’ 한비야의 사고방식이 부럽다. 나이 쉰이 넘었지만 아직 싱글인 그녀는 “독신이라 더 외롭죠?” 이런 질문을 숱하게 받는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렇게 말한다. “외로움은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인생 패키지 안에 있는 품목 같은 게 아닐까. 장미에 가시가 있는 것처럼 독신으로서의 자유로움과, 독신이라서 좀 더 외로운 것은 한 묶음이다. 자유로움만 택할 순 없다. 단독 포장이 아니라 패키지니까. 그러니 내 몫의 외로움이 없을 리 없다. 그 존재를 인정하고 같이 사는 수밖에.”6)
이렇게 체념하면 독신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기혼자들의 잔뜩 얽매인 삶을 가련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구보씨는 아직 그런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결핍에만 더 집착할 뿐이다. 예전에 그가 읽은 ‘멋진 신세계’7)라는 소설에는 가족관계도 없고 부부관계도 없는 미래 사회가 그려져 있다. 여기서 만인은 만인의 소유물이어서 극단적인 자유연애와 완전한 잡혼이 장려된다. 통치자 무스타파 몬드는 말한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는 최대의 신경을 쓰고 있네.” 구보씨는 현재의 비장한 독신생활보다는 모든 여성이 내 소유물인 그런 신세계에서 살고 싶다는 부질없는 망상에 잠깐 잠겼다.
나쁜 남자가 부럽다
종로타워를 나와 서성이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철이 왔다. 사람들은 내리고 또 탔다. 구보씨는 잠깐 멍하니 그곳에 서 있었다. 자기와 더불어 있던 사람들이 모두 차에 오르자, 그는 저 혼자 남아 있는 것에 외로움과 애달픔을 맛본다. 다음 지하철에 올라타며 구보씨는 속으로 시를 한 수 읊조린다. ‘타인 속에 섞여 있다는 안도감이 그의 튼튼한 시민 근성을 지탱한다/ 서 있는 K는 앉아 있는 K가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역과 역으로 이어지는 오늘 하루 가장 긴 수평 이동/ 차량 옆구리로 또 다른 시민 K들이 밀려든다’8)
오늘 하루 가장 긴 수평 이동을 하는데, 구보씨의 안도감을 방해하며 객차 안에서 한 젊은 남녀가 다툰다. 아니, 남자가 일방적으로 신경질을 부리며 말을 툭툭 내뱉고 있고, 여자는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묵묵히 인내하고 있다. 오호라! 저런 게 바로 요즘 여자들이 맥을 못 춘다는 ‘나쁜 남자’ 스타일이로군. 본래 사랑은 극단의 이타주의를 근본으로 한다. 나는 힘들어도 너는 편해야 하고, 나는 불행해도 너는 행복해야 한다는 이 순박한 논리가 수많은 사랑의 기적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나쁜 남자에게는 그런 게 없다. 여자는 진저리를 치면서도 그 야수 같은 매력(?)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한단다.
구보씨는 남자의 거친 매력을 지켜보다 입맛을 쩝, 하고 다셨다. 순애보를 추구하는 구보씨로서는 도저히 흉내 내기 어려운 스타일이다. 그렇다고 구보씨가 화이트데이의 사탕바구니나 커플티, 백일반지 같은 걸 잘 챙기는 성격도 아니다. 그럼 어쩌자는 건가? 구보씨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연식(年式)이 오래 되다 보니 이제 주변 사람들한테 누구 소개해 달라는 말 꺼내기도 객쩍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네이버에 ‘노총각 노처녀의 몸부림’, 다음엔 ‘노총각 발전소’ 등의 카페가 있던데, 그런 동호회엘 가입하기도 낯간지럽다. 구보씨는 번민 끝에 결혼정보업체에 한번 가보자고 결심했다. 얼마 전 만난 대학동창 조태석의 권유가 다시 떠올랐다. “사실 말이지, 나도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했었어. 맨 처음 소개받은 여자가 지금 내 와이프야. 가입비로 100만원 넘게 냈는데 한 번에 성공해서 돈이 좀 아깝더라. 자네도 한번 가보라고.”
결혼정보업체에서 홀리다
구보씨는 일단 상담이나 받아보자 하고 스마트폰으로 업체를 검색해본 뒤 지하철에서 내려 결혼정보업체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안내된 방에 들어가 긴장감과 민망함에 경직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는데, 커플매니저가 들어와 말을 꺼냈다. “제가 선생님에 대해 전혀 모르니까 몇 가지만 여쭤볼게요. 나이는 어떻게 되시죠? 어떤 일 하세요? 학교는 어디 나오셨고요?”
구보씨는 묻는 대로 순순히 진술한 뒤 각종 신상명세와 재산상태 등의 문항으로 가득한 질문지를 건네받아 역시 순순히 자술했다. 이 회사에서 13년째 일하고 있다는 커플매니저는 회사의 우수성과 높은 성혼율(成婚率)을 힘주어 설명한 뒤 즉석에서 계약서에 사인을 권했다. 구보씨는 얘기나 한번 들어보자고 온 터라 사양했다. 그러나 커플매니저는 집요했다.
“지금 바로 사인하라고요? 가입할지는 생각을 좀….”
“더 생각하셔도 어떤 결론이 안 나요. 나이가 어느 이상이 되면 주변에서 소개받기도 힘들어요.”
“와서 바로 계약할 줄 몰랐는데….”
“아우, 바로 하셔도 돼요. 저희 전문가들 도움을 받으세요.”
“그럼 딱 하루만 생각해보고….”
“이런 일도 다 타이밍이 있어서 또 하루 이틀 늦추다보면 에이, 관두지 뭐, 그렇게 돼요.”
“그래도 철학적으로다가 업체를 통해서 소개받는 게 실제로 어떨지 좀 생각해보고….”
“선생님이 지금 길에서 누굴 보고 쫓아갈 순 없잖아요.”
“너무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럼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하세요. 호호”
“흐미…. 그런데 제가 지금 현금카드밖에 없어서 잔고가 그렇게 없을 텐데….”
“일단 결제해볼게요. 카드 주실래요?”
커플매니저의 노련한 화술에 급기야 모종의 기대감을 싹 틔우게 된 구보씨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카드를 내주고야 말았다. 업체 사무실을 나온 구보씨는 다시 정처 없는 발걸음을 옮겨 서울역, 신세계백화점, 한국은행 부근 등을 떠돌다 집으로 향했다. 마음이 씁쓸했다. 업체를 통해 진정 짝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네가 나에게 창을 던졌을 때/ 작살에 찔려 허공에 버둥거리는 물고기처럼/ 눈은 휘둥그레졌고/ 세상은 놀라움의 광채를 띠게 되었다’9)고 할만한 짝을 100여만원의 가입비로 인해 상봉하게 될 것인가? 이런 만남의 방식이 맞는 건가? 그러나 안 맞을 건 또 뭐냐?
밤늦게 집에 돌아온 구보씨는 또다시 고적한 기분에 휩싸였다. 프랑스의 시인 베를렌이 ‘단 한 사람이 없으니, 세상은 텅 비어 있다’10)고 했던 그런 느낌인가. 구보씨는 TV를 켜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 SBS 리얼 애정 다큐 ‘짝’이 재방송되고 있다. 하필 노총각·노처녀 특집이다. 남자 출연자들이 고백한다.
“마지막 키스요? 생각도 안 나요. 이건 뭐 그냥 달려 있는 게 입이지 쓸 데가 없어서 참….”
“나이가 40을 훌쩍 넘으니까 주로 어르신들이…. 이런 얘기 방송에서 해도 되나? 남자로서 성적 능력에 문제 있는 것 아니냐 많이 물어봐요. 너 혹시 남자 좋아하느냐는 말도 하시고.”
구보씨는 TV를 확 꺼버리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어쩌면, 어머니가 이제 혼인 얘기를 꺼내더라도, 구보씨는 쉽게 어머니의 욕망을 물리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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