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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 부부 충돌처방


 

사랑과 질투, 그리고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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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베이질 댓글 0건 조회 806회 작성일 11-07-26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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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배우자의 외도와 관련된 문제 때문에 정신과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졌다. 이들을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실제로 배우자의 외도가 있고 그 때문에 우울증 내지 홧병이 생겨 정신과를 찾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실제로는 외도가 없었는데 배우자를 의심하는 경우이다. 물론 실제 상황에서는 이 두 가지 문제가 섞여 있는 경우도 많고 두 가지 모두 급속히 확산된 성개방 풍조나 결혼관의 변화와 같은 사회문화적 현상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둘을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객관적이고 타당한 이유 없는데도 배우자가 외도를 했다고 믿는 것을 의처(부)증이라고 한다. 이런 믿음은 일종의 망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정신의학에서는 이런 병을 질투형 망상장애(Delusional disorder, jealous type)라고 부른다. 이런 환자들은 매우 모호하고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단서들(예를 들면 배우자가 외출할 때 겉치장에 신경을 많이 썼다든지, 잠자리에서 안하던 행동을 한다는 등)을 나름대로 엮어서 배우자의 부정이라는 시나리오를 만든다. 이러한 망상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어떤 불안이나 충동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반대의 증거를 제시해도 결론이 수정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바로 이것이 정상인과 다른 점이다. 즉, 정상인은 그런 모호한 증거는 누구한테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는 그냥 배우자를 믿는다.

물론 배우자의 외도를 의심하고 걱정한다고 모두 의처(부)증인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자존감이 낮아져 있는 상태에서 배우자의 사소한 행동을 보고 "혹시 이 사람도 외도를 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에 불안해하고 안그럴려고 해도 자꾸 그 생각이 떠올라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경우라도 어렴풋이 나마 자신이 틀릴 수 있고 자신의 걱정이 너무 지나치다는 것을 안다면 이는 의처(부)증 즉, 망상장애 보다는 우울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치료에 협조가 잘 되고 따라서 예후도 훨씬 좋다.
의처(부)증을 너무 사랑해서 질투하고 의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의처(부)증으로 인해 당사자들과 가족들 겪는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안다면 그렇게 미화시켜서 말할 수 없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의처(부)증 환자들이 질투하고 의심하는 것은 사랑해서 라기 보다는 사랑 받고 싶은 데 그러지 못할까봐, 즉 스스로가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은 욕구가 많은 반면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고 마음속에 분노가 많은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이들은 자신도 못 믿고 남도 못 믿는, 어떻게 보면 아주 약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의처(부)증은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치료가 쉽지 않다. 

우선 이들은 병원에 와서 치료를 시작하는 것부터 잘 안된다. 왜냐하면 이런 환자들의 유일한 증상인 배우자가 바람을 피고 있다는 망상이 비전문가가 듣기에는 상당히 그럴 듯 할뿐 아니라 그 망상 이외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거의 정상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주위사람들이 그를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물론 환자 본인도 자신이 병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문제가 아주 심각해지고 난 뒤에서야 배우자나 가족들의 강력한 요구(예를 들면 병원에 가지 않으면 이혼하겠다는 식의)로 할 수 없이 정신과에 오게 되지만, 일단 병원에까지는 오더라도 치료에 잘 협조하지 않거나 얼마 안가서 아예 병원에 오지 않아 치료가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강제로라도 입원을 시켜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본인의 의사에 반해 정신과에 입원시키는 것을 가혹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입원치료 외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끌수록 사태가 점점 악화될 뿐 근본적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입원치료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입원해서건 외래에서건 약물치료가 중요하다. 적절한 약물이 투여되면 망상에 강력히 고착되는 것을 줄이고 사고를 다소 유연하게 해주기 때문에 약물치료는 이후의 상담치료를 위한 일종의 전처치라고도 할 수 있다. 상담치료에서는 우선 환자가 배우자가 외도를 했다는 망상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심리적 이유를 공감해 주고 환자의 손상된 자존감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이 과정을 통해 환자와의 신뢰관계가 형성되면 환자와 함께 배우자가 외도를 했다는 논리의 전개과정을 검토해서 결론을 수정할 수 있게 돕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의심과 질투가 이미 망상 수준이라면 배우자나 가족들만의 노력으로 그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가족들이 지혜를 모아 해야할 일은 어떻게든 환자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다. 다만 배우자를 의심은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틀리 수도 있다는 생각이 한편에 있는 정도라면 왜 그렇게까지 생각이 발전했는지, 배우자가 겪고 있는 다른 정서적 어려움은 없는지에 대해 진솔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해볼 필요가 있다. 배우자의 따뜻하고 지지적인 태도는 환자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고 그로 인해 배우자를 의심하게 된 근원적 이유가 해결될 수도 있다. 물론 배우자가 그런 역할을 잘 하기 위해서도 정신과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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