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죽지만 어떤 죽음은 품위가 있다. 그 차이는 바로 ‘자신의 죽음을 미리 준비했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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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1,750회 작성일 15-06-08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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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마지막 성공은 좋은 죽음이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건, 뜨거운 태양을 너무 오래 바라보다가 마침내 서늘하고 어두운 방 안에 들어섰을 때 느끼는 안도감 같은 것이 아닐까요?” 자신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인 암 환자의 글이다. 스스로의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없다 해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어깨울음을 한 적 있는 사람은 이 글 앞에서 쉽게 고개를 주억거리지 못할 것이다. 죽음은 사랑하는 것을 한마디 동의 없이 앗아 가는,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도적이며, 세상과 맺은 관계를 강제로 끊어버리는 불한당과 같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순간에 느닷없이 터져 나와 다 쓸어버리고 가는 죽음을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나.
당신도 죽는다. 나도 죽는다. 이 단순한 사실 하나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허리가 휜다. 삶의 시작과 함께 죽음도 시작된다는데, 여전히 붉은 뺨과 유연한 무릎으로 사는 당신은 이 죽음과 다정해질 수 있나? 하늘이 수고했다고 덤으로 준 나이가 됐다 해도 두려움이나 죄책감 없이 ‘이제 할 일을 다 했으니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네 숨이 끊어지는 순간 너는 어떨 것 같으냐?’란 물음에 수월하게 대답할 수 있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병이나 자동차 사고에 대비하려고 보험에 가입하고, 노년을 위해 연금을 준비하지만 삶을 단숨에 종결 짓는 죽음, 그 죽음을 지금까지 얼마나 준비해왔는가란 질문 앞에선 허둥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의 죽음이라도 되는 듯이 아무 준비 없이 황망하게 죽어도 되는 건가? 나에겐 내일과 내생 중 내생이 먼저 찾아올 수도 있는 법인데, 내일보다 가까운 죽음에 아무런 준비 없이 다가설 수 있는 건가?
아무런 준비 없이 자신의 인생을 마쳐야 하는 허무한 죽음, 그리고 아무런 대책 없이 남겨진 가족들에게 사별의 충격은 또 다른 종류의 고통을 남긴다고 한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는 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의미나 가치를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는 허무한 사건밖에 되지 않는다. 좋은 죽음이란 반드시 준비가 이루어진 후에 맞이하는 죽음이다. 죽음에 대한 준비 없이 사는 사람은 삶을 준비하지 않은 채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죽을 준비가 아니라 바로 삶의 준비다. 죽음에 대한 준비, 우리 삶에서 이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
한순간 자신이 죽었다고 여기게 되는, 잠시 죽었다가 깨어난 ‘임사 체험자’들은 그 체험 뒤로 삶이 완벽하게 변한다고 한다. 북망산천이 멀다 해도 대문 밖이 저승인 것을, 부귀영화 어느 것 하나 안고 갈 수 없음을 알게 된 그들은 오직 마음만으로 새로운 여행을 떠나기 전, 더 사랑하고 더 베풀고 떠나려고 애쓰게 된다. 같은 시간에 태어나 함께 지구호를 타고 가는 여행의 동반자들이니, 함께 살아남아줘서 고맙다고, 그대 때문에 행복하다고 자꾸 고백하게 된다. “어쩌면 죽음은 살아남은 자들의 최고의 스승일지도 모른다. 죽은 자는 혼자 새로운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이 산 자를 새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중)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말처럼 죽음은 인생 최고의 스승인 것이다.
죽음을 바르게 생각하기
생사학(죽음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 학자들은 존엄한 죽음, 준비된 죽음, 편안한 죽음을 위해 먼저 죽음을 바르게 생각하라고 말한다. 다음은 죽음을 바르게 생각하는 아홉 가지 명제다. 죽음은 누구라도 피할 수 없다. 갓 태어난 아이도 기껏해야 백 년이 지나면 죽고 없어질 것이다. 수명 또한 연장할 수 없다. 잠을 잘 때도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잠을 자지만 그 순간에도 수명은 염라대왕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 사는 동안 참다운 자기를 위해 보내는 시간은 많지 않다. 잠자는 시간, 먹는 시간, 놀러 다니는 시간을 모두 빼고 나면 자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죽을지 모른다. 내일과 내생 중 어느 것이 먼저 올지 모른다. 죽게 되는 원인은 많아지고 살 수 있는 기회는 적어진다. 심지어는 자신을 살리기 위한 원인들(육신을 지탱해주는 음식물,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자동차나 집처럼)이 자신의 목숨을 빼앗아 갈 수도 있다. 우리의 육신은 매우 약한 것이다. 조그만 가시에도 사람은 죽을 수 있다. 죽음 앞에서 재산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큰 돌을 다듬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어디에 쓸 것이냐고 물었다. 돌을 다듬던 사람이 말하기를 버리는 일 말고는 쓸데가 없다고 했다. 우리가 생에서 만들고 있는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들이다. 친지들 역시 내 죽음 앞에선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그 길은 홀로 가야 할 길이다. 자신의 몸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자신과 함께한 이 보석같이 귀한 몸 역시 두고 가야만 한다. 도움말 동국대 불교대학원 조용길 교수
어른을 위한 죽음 준비 교육
죽음의 필연을 막연하게나마 들여다봤다면, 그다음에는 삶의 마침인 죽음을 잘 맞기 위해 의도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죽음 준비 교육에 참여하는 일이다. 꼭 이런 모임에서 배워야 제대로 죽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게으르고 무관심해서 의도적인 충격이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참으로 좋고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인데도 놓치곤 한다. 현재 선진국에선 노년층이나 성인뿐만 아니라 유아나 청소년을 위한 죽음 준비 교육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영아를 위한 죽음 준비 교육도 시도하고 있다. 먼저 죽음 준비 교육은 ‘만일 자신의 수명이 반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겠는가’라는 테마로부터 시작한다. 자신의 죽음을 논리적, 정서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다음은 죽음 준비에 들어가기 앞서 짚어봐야 할 것들이다. 자신이 암과 같은 불치병에 걸려 의사로부터 반년밖에 살 수 없음을 통보받았다고 가정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잘 생각하면서 쓰도록 한다.
당신도 죽는다. 나도 죽는다. 이 단순한 사실 하나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허리가 휜다. 삶의 시작과 함께 죽음도 시작된다는데, 여전히 붉은 뺨과 유연한 무릎으로 사는 당신은 이 죽음과 다정해질 수 있나? 하늘이 수고했다고 덤으로 준 나이가 됐다 해도 두려움이나 죄책감 없이 ‘이제 할 일을 다 했으니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네 숨이 끊어지는 순간 너는 어떨 것 같으냐?’란 물음에 수월하게 대답할 수 있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병이나 자동차 사고에 대비하려고 보험에 가입하고, 노년을 위해 연금을 준비하지만 삶을 단숨에 종결 짓는 죽음, 그 죽음을 지금까지 얼마나 준비해왔는가란 질문 앞에선 허둥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의 죽음이라도 되는 듯이 아무 준비 없이 황망하게 죽어도 되는 건가? 나에겐 내일과 내생 중 내생이 먼저 찾아올 수도 있는 법인데, 내일보다 가까운 죽음에 아무런 준비 없이 다가설 수 있는 건가?
아무런 준비 없이 자신의 인생을 마쳐야 하는 허무한 죽음, 그리고 아무런 대책 없이 남겨진 가족들에게 사별의 충격은 또 다른 종류의 고통을 남긴다고 한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는 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의미나 가치를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는 허무한 사건밖에 되지 않는다. 좋은 죽음이란 반드시 준비가 이루어진 후에 맞이하는 죽음이다. 죽음에 대한 준비 없이 사는 사람은 삶을 준비하지 않은 채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죽을 준비가 아니라 바로 삶의 준비다. 죽음에 대한 준비, 우리 삶에서 이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
한순간 자신이 죽었다고 여기게 되는, 잠시 죽었다가 깨어난 ‘임사 체험자’들은 그 체험 뒤로 삶이 완벽하게 변한다고 한다. 북망산천이 멀다 해도 대문 밖이 저승인 것을, 부귀영화 어느 것 하나 안고 갈 수 없음을 알게 된 그들은 오직 마음만으로 새로운 여행을 떠나기 전, 더 사랑하고 더 베풀고 떠나려고 애쓰게 된다. 같은 시간에 태어나 함께 지구호를 타고 가는 여행의 동반자들이니, 함께 살아남아줘서 고맙다고, 그대 때문에 행복하다고 자꾸 고백하게 된다. “어쩌면 죽음은 살아남은 자들의 최고의 스승일지도 모른다. 죽은 자는 혼자 새로운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이 산 자를 새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중)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말처럼 죽음은 인생 최고의 스승인 것이다.
죽음을 바르게 생각하기
생사학(죽음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 학자들은 존엄한 죽음, 준비된 죽음, 편안한 죽음을 위해 먼저 죽음을 바르게 생각하라고 말한다. 다음은 죽음을 바르게 생각하는 아홉 가지 명제다. 죽음은 누구라도 피할 수 없다. 갓 태어난 아이도 기껏해야 백 년이 지나면 죽고 없어질 것이다. 수명 또한 연장할 수 없다. 잠을 잘 때도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잠을 자지만 그 순간에도 수명은 염라대왕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 사는 동안 참다운 자기를 위해 보내는 시간은 많지 않다. 잠자는 시간, 먹는 시간, 놀러 다니는 시간을 모두 빼고 나면 자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죽을지 모른다. 내일과 내생 중 어느 것이 먼저 올지 모른다. 죽게 되는 원인은 많아지고 살 수 있는 기회는 적어진다. 심지어는 자신을 살리기 위한 원인들(육신을 지탱해주는 음식물,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자동차나 집처럼)이 자신의 목숨을 빼앗아 갈 수도 있다. 우리의 육신은 매우 약한 것이다. 조그만 가시에도 사람은 죽을 수 있다. 죽음 앞에서 재산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큰 돌을 다듬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어디에 쓸 것이냐고 물었다. 돌을 다듬던 사람이 말하기를 버리는 일 말고는 쓸데가 없다고 했다. 우리가 생에서 만들고 있는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들이다. 친지들 역시 내 죽음 앞에선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그 길은 홀로 가야 할 길이다. 자신의 몸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자신과 함께한 이 보석같이 귀한 몸 역시 두고 가야만 한다. 도움말 동국대 불교대학원 조용길 교수
어른을 위한 죽음 준비 교육
죽음의 필연을 막연하게나마 들여다봤다면, 그다음에는 삶의 마침인 죽음을 잘 맞기 위해 의도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죽음 준비 교육에 참여하는 일이다. 꼭 이런 모임에서 배워야 제대로 죽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게으르고 무관심해서 의도적인 충격이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참으로 좋고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인데도 놓치곤 한다. 현재 선진국에선 노년층이나 성인뿐만 아니라 유아나 청소년을 위한 죽음 준비 교육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영아를 위한 죽음 준비 교육도 시도하고 있다. 먼저 죽음 준비 교육은 ‘만일 자신의 수명이 반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겠는가’라는 테마로부터 시작한다. 자신의 죽음을 논리적, 정서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다음은 죽음 준비에 들어가기 앞서 짚어봐야 할 것들이다. 자신이 암과 같은 불치병에 걸려 의사로부터 반년밖에 살 수 없음을 통보받았다고 가정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잘 생각하면서 쓰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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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과정은 ‘남은 시간을 사용하는 법’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생사학의 권위자 알폰스 데켄은 사람들에게 다섯 가지 제안을 순서대로 건넨다.
①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열 가지 열거해보세요.
② 그중에서 가장 잃어버리기 싫은 것을 첫 번째로 해서, 자기에게 중요한 것부터 차례차례 번호를 붙여보세요.
③ 실제로 당신이 지금 자기 삶의 시간을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사용하는지 적어보고 2번 항목과 비교해보세요.
④ 동일한 항목에서 양쪽이 똑같은 순서라면 당신은 지금 충분히 조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⑤ 그러나 만일 첫 번째로 중요한 것으로 가정의 단란함을 거론했으면서도 지금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다면, 이제부터 생활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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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차분한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이성과 감성의 언어로 자신의 죽음에 한 발짝 깊숙이 발 디뎌봤다면 이제는 죽음에 대해 차분한 준비를 하는 단계가 됐다. 알폰스 데켄은 중년기 때부터 ‘인생의 재평가’라는 방법을 자주 사용해보도록 권하고 있다. 사람이 품고 있는 미해결의 문제를 정리하는 단계라고 하는데 유언 쓰기, 나의 사망기 쓰기, 인간관계에서 감정적 엇갈림이 있던 사람과 화해하기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성과 감성의 언어로 자신의 죽음에 한 발짝 깊숙이 발 디뎌봤다면 이제는 죽음에 대해 차분한 준비를 하는 단계가 됐다. 알폰스 데켄은 중년기 때부터 ‘인생의 재평가’라는 방법을 자주 사용해보도록 권하고 있다. 사람이 품고 있는 미해결의 문제를 정리하는 단계라고 하는데 유언 쓰기, 나의 사망기 쓰기, 인간관계에서 감정적 엇갈림이 있던 사람과 화해하기 등이 그런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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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가족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무런 준비 없이 남겨진 가족들에게 사별의 충격은 또 다른 종류의 고통으로 다가온다. 가족을 위해 미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점에서 법률적인 문제의 처리, 유족에 대한 경제적 배려를 문서로 정리해두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런 일을 이성적으로 처리하는 일은 남겨진 가족들에게 구체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좋은 방법이다. 자신의 장례식 절차를 정리해 두는 일도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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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이 미리 쓰는 유언
삶은 참으로 찬란하지만 죽음은 그보다 더 찬란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죽음을 미리 준비한 많은 이들이 우리에게 남겼다. 마지막으로 만화가 강철수 씨와 연세대 명예교수 김동길 교수가 미리 쓴 유언을 싣는다.
“내 사랑하는 자식들아! 아빠가 다시 말한다. 미안해”
(전략) 다시 못 올 다리를 건넌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절절이 내 애간장을 뒤집는다. 하찮기만 하던 일상이 모두 소중한 나의 분신이었다.
내 인생에 후회가 있다면 좀 더 빨리 행복의 실체를 읽지 못한 점이다. 미련이 있다면 양손에 가득 움켜쥐고 있던 행복의 꽃씨를 더 많이 이웃에 나누어주지 못한 것이리라. 그래서 너무 미안하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미안하고 저승에 가서도 미안할 것이다. 술을 아주 좋아하던 어떤 시인이 만약 자기가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면 소주로 태어나고 싶다고 해서 좌중을 웃긴 적이 있었다.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고 선택권이 부여된다면 나는 아스팔트가 되고 싶다. 내가 사는 동안 잘해주지 못했던 사람들, 상처 주었던 사람들이 나를 마음껏 밟고 다닐 수 있게 말이다. 나는 거리에 납작 엎드려 매일 매일 미안했노라 참회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기에 길이 되고 싶은 것이다.
나를 사랑하고 신뢰해주었던 내 가족, 내 친구들, 늘 내게 깨달음을 주던 선후배들, 내 만화를 읽어주어서 나를 먹고살게 해준 독자들 고맙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자식들아! 아빠가 다시 말한다. 미안해._강철수
“떠나면서 내가 부탁하는 것은 내 조카 지순이 하나뿐이다”
(전략) 겸손하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나는 한 일이 없기 때문에 남길 말도 없다. 나는 한평생 정직하게 살고 싶었지만 정직하게 살지 못하였다. 용감하게, 고상하게 살고 싶었지만 돌이켜보면 비겁하게, 지저분하게 산 것이 분명하다. 그런 한심한 인간이 무슨 말을 감히 하겠는가. 다만 나에게는 좋은 부모, 좋은 형제,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떠날 날을 저만치 바라보는 오늘, 나는 모든 이들에게 고마운 뜻을 전하고 싶다. 그들이 나의 거짓됨을, 나의 너절함을 감싸주어서 남들은 내가 괜찮은 사람인 줄 잘못 알고 있다.
나에게는 매우 예쁜 조카가 하나 있다. 이름은 지순이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내 눈에는 그 아이가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이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마음에 가장 걸리는 것은 이 어린 소녀 하나뿐이다. 물론 이 아이의 부모가 건강하게 살아 있으니 내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사랑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어린이를 위해서 대한민국은 튼튼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사랑하는 지순이가 앞으로 훌륭한 교육을 받고 훌륭하게 자라서 행복한 세상에 살게 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떠나면서 내가 부탁하는 것은 지순이 하나뿐이다. _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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