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더욱 바빠진 그들 - 유병우 전 주일대사와 아내 조선숙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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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815회 작성일 11-03-1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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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에 한 가지 조건을 덧붙이자면 무료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취미 생활이다. 평균 연령 1백 세를 바라보는 지금, 60세에 은퇴를 한다면 남은 40년은 무엇을 하면서 보낼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직장 생활 때문에 하지 못했던 여행이나 독서만으로 그 긴 시간을 채울 수는 없는 노릇. 혼을 뺄 만큼,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즐거운 ‘놀이’를 발견하는 것이 남은 생을 후회 없이 보낼 수 있는 열쇠다.
일을 그만두기 10년 전부터 즐거운 노후를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온 부부가 김포에 살고 있다. 은퇴 후, 이들은 각자의 취미 생활을 즐기느라 한 집에 살면서도 얼굴 마주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예순이 넘어서야 ‘진짜 인생’을 찾았다는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유병우 전 주일 대사와 그의 부인 조선숙 부부 이야기.
은퇴 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이 시간부터 저는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이제 제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매일매일 놀면서 살 생각입니다. 여러분들을 남겨두고 나만 즐거우려니 그게 제일 마음에 걸리네요.” 34년의 공직 생활을 끝내며 유병우 대사가 후배들 앞에서 읊었던 은퇴사 중 일부분이었다. 누군가를 떠나(?) 보내는 이런 자리는 엄숙하게 마련이지만 행복과 기대감이 듬뿍 묻어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처 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세월을 보내고 있는 청중들의 부러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평소에도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가장 좋아하는 일은 남겨두었다가 은퇴 후에 하라’고 말하곤 했는데 드디어 꿈을 이룬 것이다. “살면서 인생이 억울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태어나서 서른 살이 될 때까지는 부모님 밑에서 이래저래 간섭받으며 살다가 서른 살 이후로 30년 동안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합니다. 정작 나를 위해 온전하게 쓸 수 있는 시간은 은퇴 후부터인데 그 기간만큼은 가장 즐겁게 살아야 그나마 덜 억울하지요.” 유병우 씨 부부는 퇴직 후 황금 같은 30년을 ‘신나게 놀기’ 위해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준비를 한 것이다.
나무를 만지고 있으면 1시간이 10분처럼 느껴지는 그 외교관이라는 직업 덕에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견문을 쌓을 수 있었다. 10년 전에 근무했던 일본에서는 은퇴 후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노령 인구가 워낙 많은 일본은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시설과 프로그램이 잘 발달되어 있다.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기에 자기에게도 곧 닥칠 일이라고 생각한 유병우 씨는 취미를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했으며 부인에게도 권했다. 농부가 흙냄새를 맡으면 흐뭇해지듯 평소 나무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타고난 성품이 꼼꼼하고 섬세한 그는 목공에 관심이 많아서 예전부터 전문 서적과 비디오 테이프 등으로 독학을 할 정도였다. 나무 다듬는 일을 은퇴 후 주된 소일거리로 삼기로 결정한 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일본에는 초보자를 위한 목공 클래스가 많았고 유병우 씨는 주말마다 목공 수업을 들었다.
전문적으로 목공 수업을 받은 덕분에 현재 유병우 씨 집에는 직접 만든 가구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의 작업장은 전문 목수의 목공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장비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필요한 가구가 있으면 공을 들여 설계를 하고 이곳에서 뚝딱 만들어낸다. 아내가 아침마다 사용하는 화장대와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는 사이드 테이블, 늘 곁에두는 실타래함, 역사책을 꽂아놓은 책장도 그의 손길을 거친 작품들이다. “가구를 만들 때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에요. 책임감과 섬세한 마음 씀씀이가 필요하지요. 모서리가 뾰족해서 부딪히면 다치지는 않을까, 앉았을 때 너무 높지 않을까 등등 상상을 많이 하는 사람이 더욱 실용적인 가구를 만든답니다. 앞으로 손자가 생기면 모서리가 둥글고 부드러운 모양새의 가구를 많이 만들겠지요?” 유병우 씨의 설명이다. 목공을 시작하고 나서 가족들에게도 많은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필요한 가구를 척척 만들어주니 그의 아내는 ‘목수와 함께 사니 편리하다’고 연신 자랑이다. 식탁과 티 테이블, 책장 등 집안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가구가 남편이 손수 만든 ‘작품’이니 세상 어느 여자가 부러워하지 않을까. 딸이 결혼할 때, 며느리가 들어왔을 때도 손수 정성껏 만든 액세서리 상자를 선물했다. 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모양을 끼워 맞추고 결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사포질을 하며 가족의 행복을 바랐던 그의 마음이 오롯이 담긴 귀한 선물이다.
가구를 만드는 일이 슬슬 지겨워지거나 힘들 때면 목각을 하기도 한다. 목각은 목공처럼 큰 기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힘이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다. 통나무를 손에 들고 조각칼을 이용해 형태를 만드는 그 과정은 차라리 명상과도 같다. 한번 떨어져나간 나무는 다시 붙일 수가 없기 때문에 손끝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가 자주 만드는 것은 아내를 닮은 인형. 모델에게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해 보게 하고 그 모습대로 나무를 깎는다. 얼굴 부위를 만질 때면 손끝은 바짝 긴장한다. 1mm라도 어긋나면 심술궂은 사람처럼 인상이 이상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각은 목공보다 더욱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작업이라고 말한다. 양복보다는 오버롤즈 진(일명 멜빵바지)이 편하고 호주머니에는 늘 다목적 칼과 소형 자를 가지고 다녀야 안심이 된다는 그는 타고난 ‘나무쟁이’다.
최근에는 첼로도 배우고 있다. 시작한 지 1년이 채 안 되어서 누구에게 자랑할 만한 솜씨는 아니지만 연주회도 한 차례 열었다. 일주일에 김포 시내에 나가는 기회가 두 번 있는데 모두 첼로 수업을 받기 위해서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은 낯설지 않았다. 바이올린 연주가 취미였던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종종 음악을 들려주곤 하셨다. 악보는 볼 줄 알지만 다루는 악기는 없어서 언젠가 배워야겠다고 마음만 먹던 차였다. 결국 은퇴 후 악기를 배우게 되었고 깊은 음색이 마음에 들었던 첼로를 선택했다. “어렵긴 하나 첼로를 시작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아요. 하루에 1시간씩 끙끙 대면서 악보를 외우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지만 암기는 노화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지요. 요즘 유일하게 긴장되고 스트레스 받는 순간이 첼로 연주하는 때예요. 앞으로 20년 정도는 문제없이 할 것 같습니다. 목표는 성당 행사 때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를 연주하는 것이지요.”
아름다운 꽃을 캔버스와 수틀에 옮기는 그녀 일본에서 남편이 즐거운 노후를 위해 무언가를 배우자고 했을 때 부인 조선숙 씨는 결혼해서 처음으로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림이었다. 유병우 씨가 목공 수업을 들을 때 조선숙 씨는 화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수채화를 배웠는데 동료들과 화구 박스를 들고 유럽으로 스케치 여행을 다닐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모네, 고흐 등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에 나왔던 장소를 찾아다녔고 그때 그렸던 그림은 지금 살고 있는 집 벽면에 군데군데 걸려 있다. 풍경화뿐만 아니라 정물화에도 관심이 있었다. 특히 꽃은 그의 스케치북에 등장하는 단골 소재. “우리 집 양반이 늘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정원에서 꽃 기르는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는 거였죠. 저도 꽃을 무척 좋아해서 함께 가드닝 공부를 했어요. 그러나 꽃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지만 금세 시드는 것이 단점이잖아요. 아까운 마음에 그림으로 남겨놓으면 놓겠다 싶었고 본격적으로 꽃 그리기를 배웠어요.” 일본에는 꽃, 풍경, 인물 등 주제에 따라 전문적으로 그림을 가르친다. 그는 꽃만 집중적으로 그리는 화실에서 배웠다. “너무 잘 그리려고 노력하면 인위적인 느낌이 나요. 꽃이 시들면 시든 채로, 꽃잎이 찢어지면 찢어진 채로 그대로 그리는 것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김포에 이사 온 지금도 그는 여전히 일주일에 두 번, 수채화로 꽃 그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일본에 있을 때는 꽃을 키울 공간이 안 되어서 꽃집에서 사거나 사진에 나온 것을 참고했지만 이곳에 정원을 일군 후로는 직접 키운 꽃을 그린다. 꽃은 지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으면 그림 그리는 시기를 놓치고 만다. 여름에는 꽃이 핀 순간을 재빨리 종이에 스케치해두고 사진도 찍어놓는다. 겨울이 되면 찍어놓았던 꽃 사진을 보면서 밑그림을 그려두었던 꽃에 색을 칠한다. 그는 정원과 바로 이어지는 공간에 화실을 마련해놓고 부지런히 꽃을 화폭에 옮겨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그림 외에 수예도 배웠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3년 꼬박 개인 지도를 받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아침잠이 없는 그가 새벽에 눈뜨자마자 잡는 것이 수틀이다. 오늘은 꽃 한 송이, 내일은 잎사귀 한 개 이런 식으로 천천히 시간을 들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하루를 차분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몰라요.” 테이블 클로스와 냅킨, 쿠션 커버 등에 백합이나 장미 등 여러 가지 야생화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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