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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은 또 하나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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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808회 작성일 15-06-08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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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하지 않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현직에 있는 것이 좋다고 하는 시대인데 왜 그럴까.  얼핏 들으면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수긍이 간다. 서울 마포에서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그의 시아버지는 다선 국회의원으로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국회부의장을 마친 후 지역주민에 대한 ‘마지막 봉사’라며 구청장에 출마해 7년간 재임했다. 40년 가까이 현직 정치인으로 뛰다가 80세를 눈앞에 두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나름 보람차고 화려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은 어찌할 수 없는지 은퇴 이후에는 심신이 예전 같지 않았다. 눈에 띄게 노쇠해졌다. 평생 지역주민에 둘러싸여 길흉사 챙기느라 휴일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린 인생이다 보니 어찌 회한(悔恨)이 없을까. 인생은 유한(有限)하니 아쉬움이 남았을 것이다. 그는 좀 더 일찍 은퇴해 인생을 관조하고 즐기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았을 뻔했다.


 일본인 소설가 소노 아야코가 쓴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책이 있다. 노년에 경계해야 할 것들을 담담한 필체로 써 내려간 계로록(戒老錄)이다. 그녀는 저서에서 ‘평균수명을 넘어서면 공직에 오르지 말라’고 조언한다. 사람이 70세를 넘어서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으며 혹은 죽지 않더라도 갑자기 체력이 쇠약해진다든지 치매에 걸린다든지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녀는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는 연령을 넘어서서 선거직에 나서는 것이란 정말로 무책임한 일이라고 통박한다.


 소노 아야코는 정년을 일단락으로 하고, 그 후는 새로운 출발로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정년까지의 자신의 경력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해 새로운 출발을 비참하다거나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두 번 다시 되풀이할 수 없는 인생을 다시 음미하는 자세로 새출발하라는 당부다.
 퇴직을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인 여건과 남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이다.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느냐 보다 얼마만큼 풍요로운 삶을 사느냐가 중요하다. 반드시 돈이 많아야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며 현재 쓸 수 있는 돈으로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활동을 선택해야 노년의 삶이 다채롭고 풍요로워진다.


 퇴직 이후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이자 편견이다. 이제는 퇴직 이후 제2의 직업을 갖거나 자원봉사를 하거나 여행을 하거나 스포츠활동을 하는 것으로 바꿔 생각해야 한다. 젊어서는 지루한 일에 매달려 인생을 허비하고, 나이 들어서는 따분한 생활에 지쳐가는 일이 없도록, 퇴직 후의 생활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50대 중반의 나이에 은퇴 아닌 은퇴를 해야 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와 함께 600명의 주민이 살아가는 작은 마을로 돌아갔다. 그 곳에는 일자리도 없었고, 그럴 가능성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대통령이 되면서 ‘백지신탁’(공직자가 재임기간에 재산을 공직과 무관한 대리인에게 맡기고 절대 간섭할 수 없게 만든 제도)에 맡긴 땅콩농장이 조지아주에 3년간 가뭄이 들면서 100만 달러의 부채만 남았다.


 그러나 카터는 퇴직 이후를 인생의 황금기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는 퇴직을 공포, 불확실성 두려움이라는 측면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카터는 개도국에서 치러지는 선거를 모니터하는 일에서부터, 정당 사이의 싸움을 중재하고, 외국 고위인사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해비타트운동에 참여해 노숙자를 위한 보금자리를 지어주고, 자선운동에도 몸을 아끼지 않는다. 카터부부는 킬리만자로, 에베레스트, 후지산을 올랐고 1년에 두세번 콜로라도에 스키를 타러 간다. 틈틈이 인터넷을 검색하고 세계 각 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자녀들이나 손자들과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카터는 이 모든 일은 모두 퇴직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라며 행복해한다.


 카터는 퇴직생활을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었던 열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는 관심 있는 일을 하면서 활기차게 생활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를 실천한다면 TV 앞에 앉아 소일하며, 자신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다른 누군가가 대신 해 주기를 바라는 무기력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퇴직은 무덤이 아니다. 퇴직은 잠자리에 들 시간이 아니라 깨어날 시간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마음속에 혼란과 불안을 일으켰던 부정적인 요소를 모두 벗어버리고 평온을 되찾을 때에야 비로소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퇴직은 제대로 활용한다면 인생의 황금기를 여는 새로운 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퇴직 이후를 대비해 저축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얽매이다 보면 오히려 퇴직 이후의 삶을 즐길 수 없게 된다. 현직에 있을 때 자신이 퇴직하고 나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퇴직 후 즐길 만한 활동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보지 않은 탓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든지 마음만 먹는다면 새로운 취미를 개발하거나, 이제까지 하지 못했던 스포츠나 기술을 배울 수 있다. 지금 하고 싶은 일, 과거에 정말 좋아했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그만둔 일, 생각은 했지만 한번도 시도해보지 못했던 일을 기본으로 목록을 작성해보자. 사람은 누구에게나 숨겨진 재능이 있기 마련이다.


 미시간 대학의 경제학자 커윈 코피 찰스는 미국 노인들에 대한 대규모 리서치자료를 활용해 ‘퇴직과 행복은 서로 반비례한다’는 종래의 사고방식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다시 말해 퇴직자가 일을 가진 사람보다 우울증에 빠지는 사례가 더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커윈 코피 찰스는 놀랍게도 퇴직으로 인해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미 우울증을 겪은 사람들 때문에 퇴직자의 수가 증가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연구보고서에 “퇴직은 실제로 행복감을 향상시켜 준다”라고 썼다.


 사람들은 무엇을 얻을 것인가 대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퇴직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퇴직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퇴직 후 생활을 기쁨이나 즐거움 도전 흥분 만족으로 가득 채워나갈 삶의 단계로 인식해야 한다.


  『퇴직을 즐기는 101가지 방법』을 쓴 어니 J.젤린스키는 퇴직 이후 다양한 레저활동을 경험하고 싶다면 적어도 55세에서 60세 이전에는 그만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65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게 되면 그 때는 이미 그런 활동을 즐길 만큼의 기운도 열정도 건강도 사라지고 말게 된다. 건강이 좋지 않다면 시도해 볼 수 있는 활동의 종류도 제한되기 마련이다.  저자는 “40년 동안 피땀흘려 밑천은 장만했지만 퇴직 이후 갖가지 혜택과 기회를 즐길만한 건강이 이미 사라져 버렸다면 무슨 소용인가?”라고 되묻는다.


  우리를 위축시키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세월을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육체적 노화는 있어도 정신적 퇴화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육체적인 젊음을 위해서는 꾸준히 운동해야 하고, 정신적인 젊음을 위해서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 인류학자 애슐리 몬테뉴는 성인이 되어도 어렸을 때 특성을 갖는 ‘유형성숙인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개방적인 마음과 호기심,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실험, 즐거움, 흥분, 웃음, 장난기 같은 특성이 젊음의 비결이다.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칼융은 자기내면의 어린아이를 다시 일깨우는 것이 궁극적인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얼마만큼 장수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얼마나 깊이있는 삶을 살아왔느냐가 중요하다. 늘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다면 나이 때문에 정신이 약해지지는 않는다. 나이가 너무 많아 다른 목표를 세우거나 새로운 희망을 꿈꾸기에는 늦었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인생은 달리기가 아니라 여행이다. 여행의 종착역이 행복이라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거쳐가는 수많은 역들의 소중한 의미를 애써 무시하고 목표를 향해 질주한다. 빨리 출세하고 돈 벌어, 은퇴 후 편히 살겠다는 강박관념은 쫓기는 삶을 살게 한다. 완벽한 행복도 없고, 처절한 불행도 없다. 다만 그러한 것이 있다고 믿는 환상이 존재할 뿐이다.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산다는 건 어찌보면 위선이다. 진심으로 가족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먼저 스스로 행복해지는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건 누가 뭐래도 생명의 주인인 자기 자신이다. 그 다음이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사람이다. 어느 정신과의사는 죄의식을 갖지 말고 좀더 뻔뻔하게 하나뿐인 인생을 즐기라고 조언한다.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라. 지금 이 순간,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들리는가?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삶에 충실하라. 모든 것을 기꺼이 누려라.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내일을 두려워 마라. 오늘을 만끽하라.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 존 블룸버거의 『카르페 디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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