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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이에게 화를 내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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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975회 작성일 15-06-0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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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늘 예쁜 것만은 아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화를 낼 때도 많다. ‘화’의 근원은 어디 있는 걸까? 호연심리상담클리닉의 한기연 박사는 “엄마의 내면을 살펴보고 ‘잘못된 모성의 대물림’을 먼저 정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애들은 원래 맞으면서 크는 거야” “진작 내 말을 들었으면 이렇게는 안 됐지”…. 무심코 이런 말을 뱉을 때가 있다. 부모는 자신이 옳다고 믿고, 내가 한 말로 아이가 받는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가 많다. 아이에게 화를 내기 전에 나의 내면을 먼저 들여다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어른이 되어도 내가 어릴 때 부모와 겪었던 어떤 사건들은 아직 소화가 되지 않은 채 남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가 있다. 이런 ‘찌꺼기 이슈’들은 평상시에는 별일 없이 정리된 듯 보이다가도 애인이나 부모 자식 관계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아이의 어떤 행동에 화가 나는 상황에는 이런 내적인 경험이 개입돼 있을 때가 많다.


아이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니다
‘모성’이 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한기연 박사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유전적 요인을 포함하여 사람됨의 80퍼센트는 태어나서 5세까지의 적응 과정과 체험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학설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진다(훗날 배움과 결단을 통해 얻는 20퍼센트로 어마어마한 인격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물론 중요하다).

질문의 핵심은 “내가 정말 아이 때문에 화가 났느냐”다. 내 아이에게 소리치고 싶어 하는 부모는 없다. 화를 내지 않고 자식을 키우는 완벽한 부모도 없다. 그럼에도 정상적인 ‘화’의 범주를 넘어서서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격렬한 감정에 휘말릴 때가 있다. 이럴 때 부모는 당황한다. 이런 감정에는 아이가 아닌 내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 내 안에 숨어 있던 불안이나 좌절 같은 감정의 찌꺼기들이 ‘화’로 표출되었다고 보면 된다. 아이의 어떤 행동이 계기가 되었을 뿐, 실은 자신의 내면에 원래부터 자리하고 있던 것들의 부추김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친밀한 인간관계의 핵심 갈등은 ‘누가 힘이 더 센가’에서 온다. 아이들은 약자일 수밖에 없다. 사고의 패턴도 성숙한 어른과는 다르다. “내 기분이 좋은 걸 보니 내가 괜찮은 행동을 한 거야”가 아니라 “엄마가 기뻐하는 걸 보니 내가 좋은 행동을 한 것 같네”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아이는 자신을 돌봐주는 부모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다.



내 유년을 껴안을 때 아이와 공감할 수 있어
초기 양육에서 부모의 역할은 ‘거울 되어주기’란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부모 자식 간의 공감을 뜻한다. 아이의 상황과 생각, 기분을 그대로 느낄 때 공감이 이뤄진다. 아이가 불편하거나 슬픈 기분일 때 ‘자기 거울’인 부모가 웃거나 무관심하다면 문제가 된다. 배가 고파서 그러는 줄 알고 음식을 입에 넣어주면 아이는 ‘슬프다’는 자신의 감정을 의심하게 된다. 다 큰 어른도 내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고 싶어 하고, 내 생각과 행동을 지지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저녁 식사 전에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과 “엄마는 네가 얼마나 아이스크림을 원하는지 알아. 하지만 곧 밥을 먹어야 하니까 그 후에 먹자”라고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초기 양육에서 부모의 역할은 ‘거울 되어주기’란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부모 자식 간의 공감을 뜻한다. 아이의 상황과 생각, 기분을 그대로 느낄 때 공감이 이뤄진다. 아이가 불편하거나 슬픈 기분일 때 ‘자기 거울’인 부모가 웃거나 무관심하다면 문제가 된다. 배가 고파서 그러는 줄 알고 음식을 입에 넣어주면 아이는 ‘슬프다’는 자신의 감정을 의심하게 된다. 다 큰 어른도 내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고 싶어 하고, 내 생각과 행동을 지지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저녁 식사 전에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과 “엄마는 네가 얼마나 아이스크림을 원하는지 알아. 하지만 곧 밥을 먹어야 하니까 그 후에 먹자”라고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잘못된 부모 노릇은 어린 시절에 겪은 자신과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 시절의 상처를 확인하고 부모를 찾아가 과거와 맞닥뜨리는 일은 매우 조심스럽다. 한기연 박사는 “치료자의 도움과 지지 없이 혼자서 그렇게 하는 건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보다는 내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는 방법이 좋다. ‘자기 위로’는 스스로 감정을 달래는 방법과 더불어, 남이 날 위로하는 것까지 잘 받아들이는 태도를 포함한다. 나쁜 감정이 들면 목욕을 해서 기분을 전환하거나, 친한 친구를 만나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도 위로의 한 방편일 수 있다.


잘못된 ‘부모 노릇’에서 벗어나기
과잉보호 스스로 ‘걱정’이 많은 부모가 과잉보호를 한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다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베란다에 모래를 부어놓고 여기서 놀라는 식이다. 과잉보호 속에 자란 아이들은 부모에게 더 의존하게 되고 쉽게 불안을 느낀다. “애가 잘못되면 어떡하죠?”라는 생각을 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변덕 철저하게 자기 기분에 맞춰서 산다. 아이를 체벌한 뒤에 붙들고 앉아 자기가 왜 그랬는지 장황하게 설명하는 부모도 있다. 똑같은 일을 두고 부모의 행동이 매번 다르면 아이는 당황한다. 커서도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정체성 없이 주눅 든 삶을 살 수 있다.

냉담 감정을 억제하는 유형이다. 애정 표현이 거의 없고 농담에도 서툴다. 부모가 냉담하면 아이는 뒷말을 이어가기가 어렵다. 날마다 겪는 사소한 감정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그것들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있는지가 아이들에게는 중요하다.

희생 희생적인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법을 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너도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던진다. 희생하는 부모가 훌륭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성취를 아이를 통해 충족하려는 면이 강할 때 문제가 된다. “나는 바라는 거 없다”는 말이 아이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

금지와 통제 해도 되는 행동과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의 선 긋기, 즉 ‘한계 설정’은 아이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의 의존성 때문에 부모는 원하지 않아도 권력을 갖게 된다. 내 아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금지’를 남발하면 아이의 행동을 제약할 뿐 아니라 “나는 안 돼”라는 위축된 감정을 가질 수 있다.


여성중앙 2011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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