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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화 (LA-월셔은행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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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592회 작성일 10-05-1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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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화 (LA 월셔은행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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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통한 부의 축적은 인생의 마지막 목적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 보람된 일이다.-

고석화(65, 사진) 월셔은행 회장은 지난 1971년 처음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온 동포다. 한국에서 철강회사에 근무하다 학문의 뜻을 두고 건너왔지만 미국에서 곧바로 철강비즈니스에 뛰어들게 됐다고.


이렇게 설립된 퍼시픽스틸이 미국 경제성장과 함께 커나갔고 이후 고스 인터네셔널을 설립해 운영하던 중 25년전 동포가 운영하는 중소기업이 금융적지원을 절실히 요구하지만 현지 은행벽을 넘기 쉽지 않았던 것에 기인해 한인과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월셔은행을 처음 설립했다고 한다.


월셔은행은 매년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해 86년도 500만 달러에서 올해 자산규모가 20억 달러로 규모가 커졌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포춘지에 미 100대 기업중 70위에 선정되는 우수 은행으로 자리 잡았다.


고회장이 2년전 사제 500만달러를 출연해 설립한 고선재단은 선은 높고 많이 할수록 좋다는 뜻으로 이름지은 사회사업재단으로 본인 세대에서 뿐만 아니라 나중에도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이름지었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경제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는 부모의 가르침을 받으며 사업가로 성공해 자선사업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던 고 이사장은 이번 재단 출범으로 궁극적인 성취감은 자선사업을 실현했을 때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게 됐다고 말했다.


고 이사장은 이제는 자선사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믿고 3년전부터 구체적인 재단 설립에 착수했다며 2남1녀의 자녀를 포함한 10명의 이사진으로 구성된 가족 재단으로 출범했는데, 이는 내 아이들에게 남과 어울려 사는 법, 베푸는 참 뜻을 알려주고 싶었던 데다가 신규 재단이 겪을 수 있는 한계들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연세대를 졸업한뒤 연합철강에 입사했고 1년간 공부하자며 1971년 미국 땅을 밟았던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퍼시픽스틸을 설립해 철강 관련 사업을 시작해 한국 철강제품의 수출에 일익을 담당한다.

종합무역회사 코스인터내셔널(Koss International), 투자사 코스인베스트먼트 등도 설립했던 고 이사장은 1980년 자본금 500만 달러로 시작한뒤 경영난을 겪고 있던 윌셔은행에 1986년부터 대주주로 참여하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고 이사장은 5년간 정말 고생이 많았다. 누구나 꺼리는 은행을 맡아 눈에 보이는 성장보다 수익위주, 건실함을 강조하면서 직원과의 친화를 바탕으로 은행을 이끌어나갔다며 이제는 자본금이 17억 달러에 달하며 1992년 나스닥 상장 이후 초고속 성장을 거듭했다고 밝혔다.

윌셔은행은 경제인들이 가장 많이 본다는 인베스터스 비즈니스 데일리에의해 2003년 478개 지방은행 가운데 1위로 뽑힌데 이어 2004년에는 미국내 전체은행 61위로 선정했고 지난해 10월에는 포천지 선정 최근 3년간 건전 성장기업에서 당당히 79위에 랭크됐다.

1990년부터 2004년까지 윌셔은행의 주가 수익률은 무려 1천900%로 웬만한 벤처기업의 신화를 능가한다. 그럼에도 겉으로 보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 그의 사무실은 대주주 참여 이후 지금까지 변한 것이 없어 일반 중역들의 사무실 보다 오히려 작을 정도다.

그는 또한 얼마전 모교에 100만달러의 장학금을 출연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기도 하다.

고회장은 기업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말단직원부터 사장까지 함께 하는 것이다며많은 사람들의 능력을 모을 때만이 무한한 가능성을 재창출 할 수 있다.고 기업운영지론을 펼치기도 했다.

미국내 아시아계 은행 중 최고의 은행을 운영하는 고회장의 마지막 목표는 은행이 아닌 자선사업가가 되는 것이다.

고 이사장은 지난 1997년 남가주한인무역인협회 초대 회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한인 2세들의 한글교육, 한국문화 알리기에 앞장서는 남가주한국학원 초대이사장(2003년)에 이어 미주 한인의 날 제정에 기여한 남가주미주한인재단 초대 회장을 맡아 3년째 이끌고 있고, 2006년 해외한인무역협회 이사장에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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