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곤 (내슈빌-GMC-TN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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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2,192회 작성일 10-05-13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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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리석 사업으로 대박 - 김정곤 사장
대리석 미국1위가 목표…공구도 없이 창업 내슈빌 1위
42세라는, 한인사업가로서 아직 젊은 나이인 김정곤 사장은 테네시주 내쉬빌에서 가장 성공한 한인기업가로 통한다. 언뜻 보기엔 젊은 나이에 성공을 했기 때문에 실패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업가처럼 보인다. 외모만 보더라도 아담한 체구에 동안으로 이른바 노가다와는 전혀 이미지가 안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하는 사업은 돌, 그것도 현대건축재료의 강자로 군림하는 화강암, 대리석 사업이다.
애띤 겉모습과는 달리 그의 20년 이민 인생은 풍운아같은 면모가 엿보이고, 그 삶은 맨 밑바닥까지 떨어진 적도 있다.
그의 사업체 GMC-TN는 말 그대로 화강암과 대리석을 취급하는 업체다. 화강암과 대리석은 미국의 중산층 이상이 사는 주택이라면 거의 예외없이 들어가는 건축 장식 재료. 부엌과 화장실 일부는 거실에 까지 깔린다.
GMC-TN은 종업원 등 외형 만으로 따진다면 내슈빌의 40여 동종 업체 가운데 가장 크고 매출 규모는 매출 규모로도 5위 안에 든다. 특히 GMC-TN이 지난 2002년 말 문을 연 후발업체라는 점을 감안하면 동종업계에서 단연 눈에 띈다.
제가 성공해서 일군 모든 것을 잃고 난후 다시 시작한 사업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이 돌로 승부를 보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사업이 계속 성장하고 있어서 여러모로 순조로울 것 같습니다.
그는 화강암 대리석을 취급하기에 앞서 건축 사업을 했다. 94년부터 직접 집을 지어 팔기도 했고 큰 회사의 일을 하청받기도 했다. 업체는 애틀란타시에 있었지만 인근 노스 캐롤라이나주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까지 직원들을 데리고 원정을 다니곤 했다.
그는 건축 사업으로 적지 않은 돈을 모았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수백만 달러 이상을 현금으로 운용하고, 대형 건설기업으로 커질 수 있는 희망과 함께 아메리칸 드림이 성취된 듯 했다.
김사장은 이때 한번 더 가속 페달을 밟기로 했다. 큰 베팅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가지고 있던 모든 현금과 주위에서 돈까지 끌여들여 주식에 투자했다. 뼈빠지게 뛰어야 하는 건축 일에 비해 주식 투자는 훨씬 빠르게, 그리고 손쉽게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람 앞일을 어떻게 알 것인가… 1929년 경제 대공황 때 주식이 잿더미로 변했듯이 뉴욕의 9.11 테러 사건과 함께 주식에 쏟아부은 엄청난 돈이 휴지조각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인생이라게 빨리 뛰나 천천히 뛰나 사실 비슷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처음에는 절망감이 몸부림 쳤지만 다 잊기로 했지요. 미국에 왔을 때 무일푼이었는데 새로 시작하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까.
이 때 그는 자신과 관련된 건축쪽에서 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화강암 대리석 일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건축 일을 할때 눈여겨 보고 언젠가 한번 손을 대보겠다고 생각한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을 만지는 것은 일반 건축과는 또 다른 전문 분야였다. 2002년 9월 간신히 여비를 마련해 중국으로 무작정 달려갔다. 그리고 맨땅에 헤딩하기식으로 화강암 대리석 원자재 취급업자들을 수소문했다.
그 사람들 한테 솔직히 얘기했어요. 나 지금 돈없다. 그러나 화강암 대리석 원자재 분야에 대해 얘기해주면 최소한 한번은 당신네들 물건 사주겠다는 식으로요.
내슈빌로 돌아온 김사장은 곧바로 공장을 열었다. 반 가공된 화강암 대리석 원석을 자르고 다듬어 파는 소매업이었는데 공구 조차 변변한 것이 없었다. 물건을 팔만한 네트워크도 형편없었다. 통장은 텅텅 비어있고 직원들 월급날만 되면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뚝심으로 밀고 나갔다. 그의 저력은 여기서 나타났다. 돈이 없는데도 설치해주고 후불로 물건 값을 받는 식이었다. 돌을 사간 사람이 책임져야할 문제도 그쪽에서 맡아 처리했다. 신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신용이 쌓이면서 1년도 못돼 매상이 늘기 시작했다.
2003 년 첫해에는 20만달러도 못 팔았지만 2004년 이후 특히 작년까지 월 매출이 40-50만 달러 수준으로 사업이 급속히 안정돼 가고 있다. 또 건축자재 전문 유통업체인 홈디포를 비롯 테네시주 유수의 건축업체들과 거래도 최근들어 부쩍 늘어났다. 그런가하면 내슈빌 일대를 중심으로 벌여가고 있는 GMC-TN 프랜차이즈 개설 사업도 활기를 띠고 있다.
톨(Toll Brothers) 등 굴지의 건축업체와 손잡고 건축 일을 할 때 만큼은 아니지만 화강암 대리석 분야의 전망도 건축 일 못지 않게 밝다고 김사장은 생각한다.
김사장은 건축 경기가 공황 상태만 아니라면 집을 제값 받고 팔기 위해서라도 써야 하는 것이 화강암 대리석 같은 자재라며 앞으로 사업여건이 나빠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한다. 김사장은 테네시를 석권하면 미국 전역으로 프랜차이즈 개설하는 등 사업망을 넓혀갈 것이라고 향후 사업계획을 설명했다. 그는 미국경제의 중심지인 뉴욕으로 진출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건축업체를 이끌고 있는 뉴욕한인상공회의소 임원업체들과 상의 중에 있고, 조만간 물류센터와 사무소도 세울 계획이다. 과거 자신을 구렁텅이로 몰고갔던 뉴욕증시 폭락의 악몽을 딛고 뉴욕에서 보란듯이 성공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한국에서 국회의원 보좌관도 역임했던 김사장은 20대 초반인 87년, 미국에 이민와서 먼저 도착한 부모를 따라 처음에는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이어 애틀란타에서 수퍼 마켓 종업원으로 영어와 함께 미국의 밑바닥을 익혔다. 건축 사업에 뛰어들만한 종자돈은 그 뒤 시작한 리커 사업에서 마련했다. 애틀란타에서 리커상을 운영하며 건축업의 사업밑천을 만들었다. 그 스스로 말하듯 바람처럼 달려온 이민 생활 20년이었다. 성공을 맛보았고, 쓰린 실패도 겪었습니다. 이제는 한눈 팔지 않고 대리석 사업으로 승부를 볼 것입니다.
김정곤사장은 2006년부터 내시빌한인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고 있다. 내시빌에는 현재 한인이 5천여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 곳 한인들은 세탁업과 뷰티 서플라이, 그로서리를 많이 운영하고 있다. 한인교회도 30여개나 된다. 김사장은 내시빌은 테네시주를 대표하는 도시 가운데 하나이고, 광역권 인구 140만명이나 되는 미남부지역의 물류 중심지라며, 세탁업을 제외한 다른 업종은 기회가 많다며 한인들의 진출도 권유했다. 또 집값도 싸고 비즈니스 오픈 비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날씨가 따뜻하고, 소수계 차별도 거의 없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내 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 등 해외를 누비는 김사장…
사업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김사장은 앞으로 해외한인상공인들과 한국기업인들간의 교류 및 연합활동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넓은 미국땅에 한국의 많은 중소기업들이 진출해서 미국시장을 장악하고, 해외한인상공인들과 힘을 합하는 길만이 한국과 해외교포사회의 미래를 보장받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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