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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ersonal coach - 일상의 순간순간을 함께하며 벗이자 멘토가 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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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yale 댓글 0건 조회 2,892회 작성일 11-05-1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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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한 명인 워런 버핏은 매년 최고最高 금액을 적어낸 이와 ‘파워 런치’를 하고 받은 금액을 전액 자선 단체에 기부한다. 지난해 당첨자는 캐나다의 한 헤지 펀드 CEO로 낙찰가는 168만 300달러(약 22억 원)였다. 세계 최고의 부자이자 현인賢人과 식사를 하며 투자 등에 관해 퍼스널 코칭을 받는 기분은 어떨까?
온갖 성공과 실패, 시련과 좌절을 겪고 세계 최고가 된 이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느낌은 단순히 매매 타이밍이나 유망 펀드 종목을 추천받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다. 최고에게 배우는 일대일 코칭의 감동은 그 분야가 무엇이라도 마찬가지다. 타이거 우즈와 라운딩을 하고, 마크 제이콥스와 패션을 논한다면 이 세상에 이만한 럭셔리가 또 있을까?

퍼스널 코치가 일반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개인 교사를 두는 요즘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좀 더 특별하고, 좀 더 개인적인 코칭을 원하는 이들은 ‘최고’를 찾는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본업인 사람 중 최고인 것이 아니라 골프면 골프, 사진이면 사진 등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전문가! 족집게 강사처럼 정확한 솔루션은 제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의 ‘시범’을 보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풍성하고 다채로운 배울 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묻어나올 것이다. 악기가 됐건, 골프가 됐건 누가 코치를 맡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말해주는 잣대가 된 요즘이다. 코치의 이름이 곧 나의 브랜드가 된 것이다. 10세 때부터 기타를 배웠다는 버진 그룹의 CEO 리처드 브랜슨은 전설적 록 그룹 딥 퍼플의 보컬이자 작곡가인 이언 길란Ian Gillan에게 노래와 연주를 배웠다는데, 그를 ‘섭외’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퍼스널 코칭을 하는 종種은 지구상에 인간뿐이다
승마, 다도, 그림, 발레, 피아노, 붓글씨, 꽃꽂이 등 취미 활동은 물론이고 스마트폰 활용법, 디자인, 건축, 그루밍까지 전 분야에서 맞춤식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대다. 수년 전만 해도 코치 혹은 트레이너라 하면 운동선수의 조력자 느낌이 강했으나 이제는 자연스럽게 전문 지식과 가르침을 전하는 친구이자 멘토로 받아들여진다. 재미있는 것은 누군가에게 코칭을 해주는 종은 인간이 유일하다는 점이다.
교토 대학 영장류 연구소에서 침팬지의 인지와 행동을 공부한 동덕 여대 교양교직학부 장대익 교수의 말을 들어볼까?
“남이 하는 걸 옆에서 관찰하고 지켜보며 개입하고 조언하는 동물은 지구상에 인간밖에 없다. 어떤 침팬지가 조그만 굴 속의 개미핥기를 먹으려는데 사냥 솜씨가 능숙하지 않다고 치자. 인간 같으면 대번에 누군가 그 방법을 가르쳐주겠지만 침팬지는 그러지 않는다. 선배나 동료가 하는 걸 보고 따라 할 뿐이다. 이는 인간의 모방 심리와 관련이 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다수多數와 명성을 따른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 교사를 두고 무언가를 하면 자신도 그러기 위해 노력한다. 셀러브러티가 배우는 것, 하는 것을 모방함으로써 성공하려는 욕망도 강하다. 특정 유명 인사가 코치를 두고 경비행기 조정술을 배운다고 하면 자신도 그 코치를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경제적 조건이 비슷할 때는 더욱)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퍼스널 코칭 시장은 앞으로도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이들은 저마다 여러 분야에서 최고의 코치를 둘 것이고 ‘일반인’은 이를 재빠르게 모방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배우는지 아무도 모르게 하라
우리나라에서 퍼스널 코치란 용어가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분야 중 하나가 헬스다. 탄탄한 보디라인이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면서 헬스 트레이너는 퍼스널 코치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이서진, 송일국 등 수많은 셀러브러티의 트레이너로 유명한 한동길은 말한다. “2000년 9월 JW 메리어트 호텔이 맞춤 헬스 트레이닝을 제공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퍼스널 트레이닝’이란 용어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퍼스널 트레이너라고 소개하면 ‘미친 놈’이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수영과 골프라면 몰라도 기구 사용법만 알려주면 되는 헬스클럽에서 무얼 관리해준다는 것인지 의아해했다. 약 10년 전 캘리포니아 피트니스, 발리 피트니스 등이 차례로 문을 열면서 맞춤식 교육이 서서히 알려졌다.” 지금껏 그에게 개인 레슨을 받은 고객은 약 4000명. “대부분이 국내 주요 기업의 임원, 유명 아티스트나 연예인으로 특정 음식에 대한 선호도나 소화 기능까지 고려해 맞춤 프로
그램을 짜준다. 3~4년간 호흡을 맞춘 이는 물론 7년 이상 관리를 받는 고객도 많다. 몸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해 건강하게, 그리고 장기적으로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이 고객의 목적.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단기간에 근육을 만들려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러면서 그는 “상류층 인사들은 언론 매체에 어떤 헬스 트레이너가 나와 유명해졌다고 해서 그에게 레슨을 부탁하지는 않는다. 비슷한 ‘레벨’의 사람들끼리 네트워크가 확실해 주변에서 입소문을 듣거나 직접 추천을 받고 결정한다. 회원 정보를 누설하지 않는 것은 필수다”라고 했다.

많은 성공한 남성이 퍼스널 코치를 두고 헬스를 한다면 여성들은 요가나 필라테스를 즐긴다. 하루키의 소설 <1Q84>에서도 여주인공 아오마메는 주기적으로 (중요한 관계에 있는)노부인을 찾아가 근육을 풀어주지 않던가? 필라테스 코리아의 박주희 대표는 “3~4년전만 해도 가정 방문 레슨이 많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홈 트레이닝’ 서비스가 생길 만큼 일상화됐다. 특별히 신경을 쓰는 분은 대부분 대기업 회장님이나 사모님, 유명 연예인이다. 정기적으로 학원을 찾지 못할 만큼 바빠 새벽이나 늦은 밤에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분들은 아예 트레이닝 룸까지 갖추고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는다”라고 말한다. 그녀의 역할이 단지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몸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것만은 아니다. “주 2~3회 정기적으로 만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사적인 얘기를 많이 하게 되더라. 6~7개월 정도를 함께하면 편안하게 고민도 얘기하는 사이가 된다. 최소한의 옷만 걸친 ‘원초적 모습’으로 마주하고, 근육을 눌러주는 등 스킨십도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믿음이 생기고 의지도 되는 것 같다. 요가나 필라테스에서 퍼스널 코치는 심신을 고루 어루만지는 역할을 한다.”
골프와 사진 역시 수요가 많은 분야 중 하나다. 단, 누가 누구에게 특별 레슨을 받는지에 대한 정보는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골프 티칭 프로는 “외국과 달리 경영자의 취미 활동에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관대하지 못하다. 경영 실적이 나쁘면 이사회에서 ‘외도’를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 조심스럽기는 우리 측도 마찬가지다. 개인 레슨을 많이 한다고 알려지면 곧 세무 조사가 나온다”라고 했다. 최상류층 인사일수록 퍼스널 코치를 여러 명 두는 경우가 많다. 자신과 가장 호흡이 잘 맞는 이를 찾기 위해서다. 마라톤은 물론, 카메라 마니아이기도 한 LIG 손해보험 구자준 회장은 “조세현 등 최고의 프로들에게 사진을 배웠다”고 말했다.

지식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다
퍼스널 코칭의 영역이 최근 몰라보게 다양해졌다. 구두 디자인, 한옥 건축, 도자기 굽기 등 그 종류가 일일이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직접 고객의 집까지 찾아가 미술 사조나 블루칩 작가 등을 강의하는 일대일 아트 티칭은 최근 그 수요가 가장 크게 증가한 분야 중 하나다. 주요 갤러리에서 컬렉터를 대상으로 소규모 강의를 진행하는데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거나 고객이 원할 경우 개별적인 강의로 이어지기도 한다. 오페라 갤러리의 김영애 실장은 “평소 알고 지내다가 자연스럽게 인연이 되는 경우가 많다. 너무 바빠 학원이나 갤러리의 강좌를 들을 여유가 없거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분들이 도움을 요청한다. 과외 공부처럼 집에서만 강의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미술관도 같이 가고, 페어에도 동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미술을 이야기하는 식이다. 믿음과 호감을 바탕으로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집사나 가정교사보다는 ‘친구’나 조언자의 역할이 크다. 디 갤러리의 성지은 대표는 “유럽의 경우 이 같은 일대일 아트 코칭이 생각보다 일상화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 일대일 코칭 교육이 유독 많은 데 여기에는 공부 욕심이 남다르고 사람과 ‘관계’ 맺기를 좋아하는 국민성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CEO, 힘드실 땐 얘기하세요
자신만의 취미 생활을 즐기는 이가 일만 묵묵히 잘하는 이보다 훨씬 근사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세태도 오늘날의 퍼스널 코칭 전성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 일 밖에서 매력을 찾는 노력은 CEO 사이에서도 활발하다. 많은 경우 일상의 재미를 위해서지만 전략적으로(특히 외국에서) 취미 생활이나 전문 지식을 키우는 이들도 많다. 의 저자 데브라 A. 벤튼은 “과거에는 학벌이나 지연 등이 출세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실력은 물론이고 일을 진행하는 태도, 스타일, 멋 등을 동시에 요구받는다. 기업에서 CEO를 뽑을 때도 마찬가지다. 실력과 열정, 도전 정신 등을 모두 체크하고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그 사람의 개인적인 매력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의 매력이란 물론 취미 생활이나 특정 분야의 해박한 지식 등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안목을 말한다. 업무 이외에 알아야 할 상식(와인, 인문학, 예술, 골프 등)이 폭발적으로 넘쳐나 스트레스를 받는 CEO가 많아지면서 최근에는 이들의 스트레스를 경감해주는 ‘퍼스널 코치’도 등장했다. 미국에 본사를 둔 ‘N2그로스 N2Growth’는 CEO 코칭 전문 기업으로 리더십 개발, 퍼스널 브랜딩, 퍼스널 멘토링 등을 자문한다. AT&T, 델 Dell, 등 굴지의 기업을 회원사로 갖고 있는데 CEO의 정신 건강을 위해 최고의 정신과 의사까지 연결해준다. Survival Manual>을 낸 마이크 마이엇이 이 회사의 CEO로 그는 트위터(http;//twitter.com/mikemyatt)까지 동원해 컨설팅을 한다.
퍼스널 코칭 시장은 매년 빠르게 팽창할 것이다. 세상엔 많은 종류의 쾌감이 있지만 그중 최고는 내가 ‘성장’함을 자각하는 것이지 않던가! 먹고 마시는 즐거움은 일시적이지만 최고 전문가에게 무언가를 배운다는 카타르시스는 자신감, 행복으로까지 이어져 두고두고 힘을 발휘하니 오늘 최고의 코치를 둔 자, 내일도 모레도 ‘그’를 갈구할 것이다. 아직 ‘그’를 갖지 못한 이라면 더욱 더. 글 정성갑 기자


wild marathon 마라톤에도 매니지먼트 능력이 필요하다
웨일스 개발청 황재필 소장 & 오지 마라토너 유지상 달리기란 무엇보다 단순한 운동인데, 굳이 개인 코치까지 두고 배울 필요가 있을까? 2월의 어느 주말, 삼청 공원에서 만난 유지상 마라토너(사진의 앞쪽)는 그 질문에 답한다. “극한의 코스를 달리는 ‘오지 마라톤’은 42.195km를 달리는 일반 마라톤과 달라요. 대부분 6박 7일간 진행되는데, 본인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면 완주는 고사하고 탈진하거나 심장마비에 걸릴 수도 있지요.” 올해 38세인 그는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 마라톤 코스를 완주해 2007년 국내 최초로 ‘마라톤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오지 마라토너. 평소 다양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겨온 황재필 소장(사진의 뒤쪽)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유 코치의 뒤를 따라 공원을 달리던 황 소장이 한마디한다. “오래전부터 마라톤에 도전한다면 꼭 저 사람에게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03년부터 틈틈이 기회를 엿보다 코치 제안을 한 건 2년 전입니다.” 황 소장은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유 코치를 찾아가 ‘함께 달릴 것’을 청했다. 유 코치는 흔쾌히 수락했고, 그때부터 둘은 ‘러닝메이트’가 되었다.

“달리기를 잘하는 상급자에게는 실전에서 고생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사하라 사막에서는 물집과 씨름할 일이 많으니 딱 맞는 신발과 양말을 착용해라, 모래 웅덩이에 빠지면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옆으로 돌아가라 같은 노하우 말이에요.”
춘천 마라톤, 제주도 울트라 마라톤을 통해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황 소장은 유 코치와 함께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실전 연습을 했다. 한 달에 1~2차례 삼청 공원이나 북악 스카이웨이 오솔길을 함께 달리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저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유 코치의 자세와 보폭, 길을 만들어가는 감각 등을 눈썰미를 발휘해 배웠다. 그중에서도 황 소장에게 가장 도움이 된 것은 ‘매니지먼트 능력’. 그전에는 기록을 깨는데 연연해 오버 페이스로 달렸다면, 유 코치를 만난 뒤로는 달리기 자체를 즐기는 데 집중하게 되었다고. “유 코치는 항상 내일을 생각하며 뛰라고 조언해요. 하루만 즐기고 끝낼 운동이 아니니 무리하지 않는 선까지만 즐기라는 거죠. 힘들면 가끔 멈추고 걷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구불구불한 길 모양, 운동화에 닿는 촉촉한 흙길의 촉감,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게 돼요.”
마라톤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두 사람은 레슬링 전 국가대표 김민철 선수와 올해 초 ‘트레일 어드벤처 레이스 연맹’을 설립했다. 선진국에 비해 국내에 제대로 된 산악 마라톤이 없는 게 늘 아쉬웠다고. 조만간 스폰서를 확정해 올해 안에 한국을 대표하는 오지 마라톤 대회를 열 계획! 이 생각에 요즘 두 사람은 잠을 못 이룰 만큼 행복하다. 글 박나리 기자 | 사진 김문성

baking
자신만의 레서피를 가져라, 인생에서도!

작가 양진숙 & 르 코르동 블루 한국 제과장 장 피에르 제스탱 회색 콧수염이 근사한 르 코르동 블루 한국 지점 제과장 장 피에르 제스탱Jean-Pierre Géstin이 촬영 장소에 도착한 것은 오후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1시간 전부터 쿠킹 클래스 룸에서 그를 기다리던 작가 양진숙이 능숙한 프랑스어로 셰프를 반긴다. 볼을 맞대고 유럽식 인사를 나누는 이들은 6년째 ‘타르트’로 인연을 맺고 있는 사제지간이다.
쿠킹 룸에 들어선 두 사람은 사진 촬영을 위해 봄 향기 물씬 풍기는 달콤한 생딸기 타르트를 만들기로 한다. 양 작가가 먼저 소매를 걷어붙이고 밀가루 반죽을 시작하자 셰프가 한동안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본다.

프랑스 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불문학까지 전공한 양 작가는 어느 날, 홀연히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더 이상 파리를 짝사랑 하고 싶지 않았고, 어렸을 때부터 늘 좋아하던 빵을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파리 르 코르동 블루에 입학한 그녀는 낮에는 수업을, 방과 후에는 국내 몇몇 잡지사의 해외 통신원으로서 다양한 파리지엥을 만나고 인터뷰했다. 제스탱 셰프를 만난 건 2004년 여름의 일. ”당시 르 코르동 블루 한국 분점 제과장을 결정하는 자리에 제가 스태프로 참여했는데, 그 후보 가운데 한 분이 제스탱 셰프였어요. 이듬해 한국에 들어와 여행에세이집 <빵빵빵 파리> 집필 작업을 하면서 르 코르동 블루 한국 지점을 찾았는데, 거기서 셰프와 딱 마주친 거예요. 그분이 맞나 싶었는데, 볼록한 뱃살을 보고 확신했죠.” 양 작가의 말이 끝나자마자 취재진의 시선이 일제히 셰프의 앞치마로 향한다. 그녀가 급히 대화 내용을 프랑스어로 전달하자 그는 타르트 반죽 위로 밀가루를 흩뿌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당시 파리에서 배운 레서피를 한국에서 제대로 활용할 수 없던 양 작가는 셰프에게 개인 레슨을 청했다. 이미 파리에서 타르트를 만드는 기본기는 다졌기 때문에 별도의 시간을 정하지 않고, 궁금한 점이 생길 때마다 찾아가 노하우를 들었다. 40년 경력의 제과 장인은 양 작가에게 늘 자신만의 레서피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레서피를 답습하지 말고,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만의 타르트를 완성하라는 것. “셰프는 무얼 어떻게 만들라고 한번에 가르쳐주지 않아요. 이것저것 재료를 더하고 빼고 한참을 연구한 뒤에야 슬쩍 일러주시죠. 어떡하면 카눌레(프랑스 보르도의 특산 과자)를 윤기 나게 만들까 고민하다 버터를 발랐더니, 좀 더 달콤하고 반짝이는 것을 사용해보라는 거예요. 고민 끝에 결국 꿀이 답이었다는 것을 알았죠.”
셰프의 지도 아래 배운 제과 기술은 여느 파티셰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그 결과 양 작가는 지난해 5월, 홍대 근교에 ‘빵빵빵 파리’라는 작고 아담한 디저트 전문점까지 오픈했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 이제는 직업으로 발전한 셈이다. 문화와 세대는 다르지만, 양 작가에게 셰프는 ‘삶의 레서피’까지 허심탄회하게 물을 정도로 든든한 멘토가 되었다. “셰프는 늘 말해요. 빵을 만드는 일이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든 충분히 숙성할 시간이 필요하다고요.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써내려가는 것은 결국 너 자신이니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요.”

wine
이론만 배우는 와인 수업은 빵점

아나운서 정은아 & 포도플라자 김혁 관장 신사동 포도플라자에서 만난 정은아 아나운서와 김혁 관장은 만나자마자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미 <김혁의 프랑스 와인 기행>과 <김혁의 이탈리아 와인 기행>을 낸 김혁 관장은 최근 다음 와인 기행 책을 준비하며 스페인에 다녀왔다고 했다. “바르셀로나부터 나바라, 리오하 지역까지 와인 명가가 많은 지역을 쭉 돌고 왔습니다. 나바라에서 오거닉 채식 레스토랑에 갔는데 맛이 예술이더군요. 전식부터 후식까지 모든 메뉴를 채소로 구성한 8가지 코스 정찬이었는데 레스토랑 오너가 인근에 농장을 갖고 있어 식재료가 무척 신선했습니다. 여행길에 만난 사람들이 제대로 된 채식 식당을 찾으려면 무조건 나바라로 가라더니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듣던 정은아는 “요즘 미식 여행지로 각광받는 곳이 스페인이라 궁금했는데 잘됐다”며 최고급 와인으로 유명한 ‘우니코’ 등에 관해 많은 질문을 한다. 김 관장의 여행담은 생생했다. “엄마 젖만 먹고 자란 20개월짜리 양고기 요리는 정말 기가 막힙니다. 부드럽고 향기롭죠. 잔인하다고도 하지만 와인과 함께 그 맛을 보면 그런 말을 쉽게 못할 겁니다”, “어떤 마을은 집집마다 달걀 모양 굴뚝이 얹혀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와인 셀러의 공기 순환 장치였는데 해질녘 그 풍경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정 아나운서와 김 관장의 와인 수업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에어프랑스 식음료 팀에서 일한 스승과 ‘츠지원’에서 일식 요리를 배울 만큼 식문화에도 관심이 많은 제자는 지금 마시면 딱 좋을 빈티지의 와인을 글라스마다 채워놓고 부르고뉴로, 키안티로, 나파 밸리로 국경을 넘나들며 그곳에서 만난 사람, 와인, 레스토랑, 음식을 이야기한다. 정 아나운서는 “와인은 그 자체로 이야기가 가득잖아요? 사람, 시간, 자연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것인 만큼 여행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직접 그곳에 가보진 못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와인 산지에 관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지요. 빈티지의 가치라든가 특정 포도 품종의 캐릭터도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고요. 물론 이론적인 설명도 곁들이지만 여행 이야기까지 함께 들으니 와인을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꼭 가봐야지’ 하는 꿈을 꾸게 되는 것도 좋습니다”라고 말한다.
둘의 인연은 2006년에 시작되었다. 정 아나운서를 포함해 4명이 모여 포도플라자의 뱅가에서 조촐한 파티를 했는데 김 관장으로부터 와인도 추천받고, 각각의 와인에 담긴 이야기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었다. 그 후 와인 구입을 위해 포도플라자에 자주 들르고, 와인 모임에 김 관장을 특별 강사로 모시면서 사제 관계로 발전했다. 와인을 마시다 보면 ‘원샷’을 하는 사람, 가격만 따지는 사람 등 저마다 성격과 인격이 보인다는데 둘은 와인 자체는 물론 와인 주변의 땅과 풍경도 관심이 많다는 점에서 호흡이 잘 맞는다. 정 아나운서는 가까운 미래에 와인 여행을 떠날 꿈을 키우고 있다. 그 꿈을 살찌우기 위해서라도 김 관장을 자주 만날 계획이다. 그의 이야기만큼 와인을 맛보고 싶게 하고, 와이너리를 상상하게 하는 자극제는 없으니까. 글 정성갑 기자 사진 김문성 | 의상 협찬 소니아 리키엘 | 헤어 파비안 h | 메이크업 강은경 | 스타일리스트 민선휴

photograph
사진은 걷는 만큼 나온다
삼익가구 이방희 회장 & 신구대학 홍순태 명예 교수
“하나둘, 찰칵~!” 4년 전 마다가스카르에서 찍은 바오밥나무 사진 밑에서 포즈를 취한 이방희 회장(사진의 우측)과 홍순태 교수(사진의 좌측)가 소년처럼 웃는다. 홍 교수가 호기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 사진을 어떻게 찍은지 압니까? 엄청나게 굵은 바오밥나무에 카메라를 밀착하고 아래에서 위로 찍었더니 이렇게 기막힌 사진이 나왔습니다.” 이방희 회장도 웃으며 말을 보탠다. “함께 간 이들은 고기를 구워먹고, 풍경을 감상하며 유유자적하는데 교수님 덕분에 저는 사진만 찍다 왔습니다. 일몰 풍경을 찍자고 늦게까지 바오밥나무 군락지에 계시더니 다음날 새벽에는 일출 풍경을 찍자고 깨우고, 그 다음 날 새벽에는 또 해변 풍경을 찍어야 하니 서두르라고 하시더군요. 교수님을 오랫동안 스승으로 모실 수 있는 건 그런 열정 때문입니다.”

사제師弟 간의 인연은 약 8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사진을 좋아한 선친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카메라에 익숙했던 이 회장은 홍 교수를 만나기 전 이미 다른 코치를 두고 있었다. 다만 선생님의 확고한 틀과 기준에 갇혀 프레임 밖으로 뻗어나가지 못했다. “20년 가까이 사진을 찍었는데 무조건 선생님의 스타일을 따라 할 것도 아니라서” 이 회장은 새 스승을 찾았고, 그렇게 만난 이가 홍 교수다. 사진 관련 서적만 13권을 내고, 개인 전시만 30여 차례 이상 연 사진계의 대부는 “좋은 사진은 걷는 만큼 나온다”며 국내외로 함께 사진을 찍으러 다닐 뿐 별다른 주문이 없었다. 홍 교수에게 사진을 배운 ‘흑백 사진의 달인’ 사진가 민병헌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홍 교수님은 좀처럼 자신의 스타일을 강요하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그 말 그대로였다.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수업을 통해 이 회장은 사진의 앵글 잡기와 인화 등 전 과정을 찬찬히 소화했고, 몇 해 전에는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개인전까지 열었다. 올해 76세의 노老 교수는 말한다.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많이 보여주려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면 작가의 시선과 스타일, 사상이 보이고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 지 자연스럽게 감이 옵니다.” 이 회장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는다. “사진 찍으러 가야 하니 새벽 일찍 일어나라고 했을 때 제시간에 딱 하고 맞춰 나오는 사람은 우리 이 회장뿐입니다.”
지난 2월 3일부터 10일까지 스승과 제자는 사진 좋아하는 지인 10여 명과 함께 동티베트에 다녀왔다. 사륜구동차 4대에 3명씩 나눠 타고 고원과 협곡을 달리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매번 그렇듯 이번에도 대장은 홍 교수였다. 10여 년 째 파킨슨 병을 앓고 있어 거동이 불편한 홍 교수는 이번에도 “새벽에 일어나라”며 지령을 내렸다. 일정 내내 이 말을 가장 고분고분 잘 따른 모범생은 역시 이방희 회장이었다. 글 정성갑 기자 | 사진 이우경


jazz
재즈는 재능이 아닌 ‘필feel’이다

국회의원 남경필 & 재즈 가수 윤희정 압구정 재즈 클럽 ‘원스 인 어 블루문’에 도착한 남경필 의원이 뭔가를 발견한 듯 무대 위로 성큼 올라선다. 의좋은 삼형제처럼 늘어선 콩가(북과 비슷한 브라질 민속 악기) 곁으로 가 손 끝으로 ‘통통’ 가죽을 두들겨본다. “선생님, 저 지난번 쿠바 갔을 때 악기점에서 소리 끝내주는 콩가를 발견했어요.” 남 의원의 말에 가수 윤희정이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답한다. “하나 사오지. 콩가는 쿠바 민속 악기라 그쪽에서 만든 것이 최곤데.” “에이, 그 큰 걸 어떻게 가져와요? 카바사(손으로 흔들어 소리 내는 브라질 민속악기)라면 모를까….” 전문 라틴 음악 밴드처럼, 악기를 둘러싼 대화가 끓일 줄 모른다. “띱따뚜~ 띱따뚜다~” 윤희정이 즉석에서 스캣을 부르자 남 의원이 콩가로 흥을 돋운다.
남 의원이 재즈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작년 9월. 미국 유학 시절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던 그에게 한 지인이 ‘윤희정 앤 프렌즈’라는 콘서트에 출연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재즈는 왠지 어려울 것 같아 거절했지만, 국내 최고 재즈 뮤지션의 무대에 선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었다. 결국 남 의원은 가수 윤희정을 찾았고, 그녀는 유명 인사가 재즈를 노래하는 ‘윤희정 앤 프렌즈’의 ‘아이 앰 어 싱어’ 코너에 그를 세웠다. 작년 11월 26일, 94번째 ‘윤희정 앤 프렌즈’ 콘서트 때의 일이다.

“윤 선생님께 재즈를 배운다는 건 타이거 우즈와 라운딩하는 것과 같아요. 선생님 같은 고수와 대화하고, 음악을 듣는 자체가 최고의 레슨이죠.” 데뷔 일시가 확정된 후, 남 의원은 3개월간 꾸준히 윤희정의 작업실을 찾았다. 첫 한두 달은 일주일에 한번, 공연에 임박해서는 거의 매일 지도를 받았다. 평소 라틴 음악을 좋아하던 그는 레퍼토리로 ‘The Girl From Ipanema’를 선택했다. 보사노바의 꽃은 리듬인 만큼 자유로운 콩가 연주가 중요하기 때문에 직접 콩가도 사고 별도의 퍼커션 레슨도 받았다. 그렇다고 실력이 단시간에 늘 수 있을까? “재즈는 ‘필’이에요. 가슴속에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 가능해요.”
남 의원은 재즈를 통해 삶이 더욱 풍요로워졌다고 말한다. 세상을 보는 시각도, 삶을 즐기는 방식도 더 깊어졌다. 쿠바를 방문했을 때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마지막 생존자 오마라 포르투온도가 이끄는 밴드의 공연을 찾았을 정도. “몇몇 의원들과 ‘펀치’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한 방punch’ 혹은 ‘즐거운 정치(펀Fun-치治)’라는 중의적 의미가 있죠. 즐겁게 사는 사람이 뭐든 잘하는 시대 아닌가요. 윤 선생님이 제 안에 잠재된 그 ‘필feel’을 끄집어내 주셨죠. 정치도 재즈처럼, 많은 이가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글 박나리 기자 | 사진 김문성 | 장소 제공 원스 인 어 블루문(549-5490)

climbing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의리
LIG 손해보험 구자준 회장 & 산악인 박영석 우이동 도선사 입구에서 만나 북한산 인수봉 맞은편까지 오른 다음 하산하는 것이 박영석 대장(사진의 좌측)이 제안한 촬영 코스였다. 취재를 위해 오전 일정을 모두 비운 LIG손보 구자준 회장(사진의 우측)은 천천히 걸었고 땀을 많이 흘렸다. 구 회장은 “결혼 전 처갓집엘 갔는데 땀을 하도 많이 흘려 허한 사람인 줄 알고 결혼을 안 시키려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고산을 오를 때는 호흡에 신경을 써야 해요. 어떤 이는 서울에서 산을 탈 때처럼 빠른 보폭으로 오르는데 그러다 보면 고산증 때문에 곧 하산해야 합니다. 저는 북한산이나 에베레스트나 지금과 똑같은 보폭으로 천천히 걸어요”라고도 했다. 그런 구 회장을 보며 박 대장은 “회장님은 지구력 빼면 시체”라며 농을 건넸다.

구 회장과 박 대장은 서로에게 든든한 인생의 코치이자 ‘친구’다. 지난 2000년, 구 회장이 경영 적자로 고전하던 럭키 생명의 대표이사로 취임했을 때다. 어떻게 회사를 살릴까 고민이 깊던 차에 회사 차원에서 후원을 하던 박 대장으로부터 히말라야 K2 봉 원정 대장직을 제안받았다. 뭔가 큰 결심과 전환점이 필요했던 구 회장은 고심 끝에 수락했고, 원정길에서 자신감과 성취감을 얻은 그는 이후 남극점, 북극점, 에베레스트 횡단까지 함께했다. 회사도 2년만에 흑자 기업으로 변신시켰다. 사실 해외의 고산에서 전문가가 동행자에게 가르쳐줄 것은 많지 않다. 그저 천천히 기다려주는 것, 몸 상태를 수시로 체크해주는 것,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한다는 의리를 보여주는 것뿐이다. 구 회장은 “그런 듬직한 배려가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작년 봄, 구 회장은 박 대장이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끝내 개척하지 못한 에베레스트 남서벽 신 루트 원정에도 함께했다. 해발고도 2840m인 루크라 지역에서 5364m인 베이스캠프까지 2524m를 오르는 여정. 잠자리나 음식이 곤혹스럽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구 회장은 “제가 8남매 중 막내 아닙니까? 어렸을 때부터 생활력과 적응력이 남달라 잠자리나 음식 때문에 고생을 한 적은 별로 없습니다. 밥도 박 대장이 ‘식사 개시’하면 ‘잘 먹겠습니다’ 복창하고 맛있게 먹었지요. 내가 열외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 그런 구 회장을 박 대장은 “영원한 대장님이자 멘토”라고 했다. “에베레스트 남서벽 신루트를 통해 정상에 오르면 LIG 손해보험의 창립 50주년 엠블럼을 새긴 동판을 매립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룹 오너의 입장에서 회사를 홍보하고 싶은 욕심이 날 것도 같은데 기상이 악화되자 회장님이 그러시더군요. ‘몸이 먼저다. 올라가지 마라!’ 3차 시도 끝에 정상에 올라 회장님께 무선을 쳤는데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박 대장은 구 회장을 인생의 멘토라 치켜세우지만 구 회장 역시 박 대장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박 대장은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시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좀처럼 포기하지 않죠. 그런 도전 정신이 사업을 하는 저에게 많은 자극이 됩니다.”
기상 악화로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고산 등정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남을 배려하거나 돌볼 겨를이 없을 때가 많다. 그런 ‘우정의 시험대’에서 벌써 10년 가까이 믿음을 나누고 있는 두 사내는 지난 3월 22일 안나푸르나로 떠났다. 글 정성갑 기자 | 사진 김문성

golf
칭찬은 아마추어도 춤추게 한다
갤럭시아 일렉트로닉스 김성남 대표 & 제이슨 골프 아카데미 강제이슨 대표
“처음에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오시더니, 이제는 잘 치신다 이거죠?” 천호동에 자리한 제이슨 골프 아카데미 연습장. 한 달 만에 방문한 김성남 대표에게 강제이슨 대표가 농담을 건넨다. “아이고, 무슨 소립니까. 필드 나갈 시간도 없었어요.” 김 대표가 억울하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웃는다. LED 전문업체 갤럭시아 일렉트로닉스를 운영하는 그는 지난해 서울스퀘어 LED 디스플레이를 담당한 뒤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터였다.
지금이야 골프 칠 시간이 부족해 아쉬울 정도지만,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김 대표는 골프가 죽을 만큼 싫었다. “반 년 가까이 개인 강습을 받았는데, 코치가 못 친다고 혼만 내는 겁니다.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자꾸 지적을 당하니 자신감도 사라지고 주눅이 들었죠.” 골프를 그만둘까 하던 차에 지인이 추천한 코치가 바로 강 프로였다. “주로 연예인이나 기업 CEO를 가르치던 분이라 이번에도 핀잔만 듣는 게 아닌가 했는데, 웬걸요. 내 스윙을 보고는 대뜸 잘한다지 않겠어요?” 유심히 듣던 강 프로가 말을 보탠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잘하셨다니까. 김 대표님은 남들보다 허리 유연성이 떨어지지만, 대신 스윙 궤도가 좋아요. 어차피 스포츠란 즐기려고 배우는 건데, 숨겨진 장점을 찾아 단점을 보완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죠.”

강 프로는 김 대표의 체형을 분석해 그에 맞는 스윙 동작을 집중적으로 지도했다. 자신감을 회복한 김 대표는 일주일에 3~4회씩 강 프로를 찾아 꾸준히 자세를 교정했다. 스윙 뒤에 늘 발뒤꿈치에 머물던 시선도 바로잡고, 어깨와 무릎에 잔뜩 들어간 긴장을 푸는 데도 노력했다. “보고, 듣고, 느끼는 삼박자가 맞아들어갈 때 비로소 실력이 늡니다. 이론적으로 충분한 설명을 한 뒤, 회원의 자세를 동영상으로 촬영해 보여줘요. 그런 다음 수정된 자세를 다시 한번 찍어 보여주죠. 말로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동영상을 한 번 보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므로 실력 향상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미처 고쳐지지 않는 동작은 강 프로가 일일이 자세를 잡아주며 근육의 미세한 변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그간 골프 책을 20권도 넘게 봤지만, 실전에 아무런 도움을 얻을 수 없던 김 대표는 강 프로를 만나 비로소 그 ‘감’을 확실히 터득하게 되었다고.
덕분에 100 언저리에 머물던 김 대표의 타수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되었다. 80대 초반까지 칠 정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어느 정도 실력이 늘면 필드에 나가 코치와 함께 치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필드에 한 번 나가면 연습장을 한 30번 정도 왔다갔다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죠.” 글 박나리 기자 | 사진 김문성 | 의상 협찬 휠라 코리아

tennis
테니스에는 국경도 없더라

주한 네덜란드 대사 부인 도나 하인스브룩 & 한남 테니스클럽 김인우 코치 동빙고동에 있는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저에서 진행한 촬영. 도나 하인스브룩Donna Heinsbroek은 김 코치의 얼굴과 팔에 직접 로션을 발라주었다. 도나를 향한 김인우 코치의 애정도 두터웠다. 도나가 매년 4월 <코리아 타임스> 주최로 열리는 주한 외교관 테니스 대회 우승 트로피를 보여주자 “테니스를 잘 치는 줄은 알았지만 대회 우승까지 한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말하며 혼잣말로 “음, 우승할 만하지”라고 했다. 올해 55세인 도나의 테니스 실력은 수준급이다. 21세에 테니스를 시작했으니 벌써 34년째. 포핸드, 백핸드, 발리, 스매싱 모두 뛰어나다. 승부욕도 남다르다. 김 코치는 “무릎이 좋지 않은데 절대 쉽게 포기하는 법이 없어 불안할 정도입니다”라고 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녀는 “예Yeh~” 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무릎 통증이 도지기 전까지 매일 테니스를 친 결과지요. 매일 코트에 나가지 못해 아쉬웠는데 열심히 운동을 해 완쾌 일보 직전입니다. 이제 다시 나가는 거죠. 예Yeh~”라고 말하며 좋아했다. 도나의 애칭은 ‘다이나모Dynamo’(정력이 넘치는 사람)이다.

둘도 없는 친근한 사제지간인 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나누는 데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나는 한국어에 서툴고 김 코치는 영어를 못하지만 둘은 함께 웃고, ‘대화’하고, 테니스를 친다. 김 코치는 도나의 두 딸에게도 테니스를 가르쳤다. 수업에 애로 사항이 없느냐는 질문에 김 코치는 “왜요? 문제가 많죠. (말이 안 되니) 계속 공만 받아줍니다”라며 웃어 보이지만 도나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어요. 개인 코치를 여러 번 두어봤지만 김 코치처럼 스트로크에 실수가 없는 분은 처음이에요. 그 덕에 공격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지요”라고 말한다. 한국체대를 졸업한 김 코치는 고양시 전국 테니스 대회 복식 우승 등 수차례의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김 코치는 단순한 코치 이상의 의미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미국 LA 흑인 폭동 사건, 식료품점에서 일하는 한국인 등이 제가 한국에 대해 아는 전부였죠. 그랬던 제가 한국의 열렬한 팬이 된 건 김 코치를 포함해 한남 테니스클럽의 CEO인 닥터 최와 송 온니(한남 테니스클럽을 이용하는 테니스 동호회 ‘포시즌스’의 회장으로, 도나는 그녀를 ‘온니’라 부르며 따른다) 덕입니다. 이런 환대와 따뜻함, 마음 씀씀이는 이제껏 어디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갖은 악천후에도 함께 테니스를 치고, 삼계탕을 먹던 추억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1889년부터 1992년까지(조지 H 부시 시절) 백악관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의 비서관으로 일하기도 한 도나에게 한남 테니스클럽은 집 외에 가장 많이 발걸음을 한 곳 중 하나다. 앙투카en-tout-cas 코트라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30분 만 지나면 볼을 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그녀는 진심으로 좋아했다. 도나는 오는 8월 남편의 다음 근무지인 시카고로 떠난다. 에너지 넘치는 그녀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한국에서의 달콤한 시간을 추억하며 이렇게 말할는지 모른다. “세상에, 테니스에는 국경도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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