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프론티어를 열어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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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yale 댓글 0건 조회 2,535회 작성일 10-09-1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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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부분이 아닌 전체의 관점에서 조망했던 최후의 경제학자는 아마도 오스트리아 출신의 조세프 A. 슘페터였던 것 같다. 당시의 비교적 덜 복잡했던 경제상황이 그로 하여금 웅대한 스케일의 경제이론을 펼 수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탁월한 경제학자는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서 낡은 질서와 관습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창업가정신에서 찾았다.
그에 의하면 창업가는 이윤을 목적으로 위험을 무릎쓰고 사업을 일으키고 조직하며 관리해 나가는 사람이며 그들은 온갖 역경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도전해 나가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200년쯤 전에 프랑스의 경제학자 세이가 처음으로 창업가(Entrepreneur)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에도 그것은 질서를 어지럽히고 조직을 파괴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기업가들은 기존 질서와 조직의 파괴자로서 남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창조적 파괴자들이다.
최저가 컴퓨터를 만드는 업계의 아웃사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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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이트웨이 테드 웨이트 사장 |
어느 쪽이냐 하면 그는 PC관련 제조업자 보다는 사용자의 편에 서 있다. 그의 사업이력은 확실히 업계 최저가 컴퓨터를 공급하려는 부단한 투쟁과 다름이 아니다.
1985년 22세의 웨이트는 미국 중서부 사우스 다코다주 노스 수 시티의 농촌지역에 있는 할아버지 농장의 한켠에 사무실을 내고 통신판매로 컴퓨터를 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은행에서 빌린 1만 달러가 사업자금의 전부였다.
싼 노동력과 낮은 세율이 업계 최저의 가격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더욱이 고객의 요청에 따라 주문 제작하고 직송하는 방법으로 재고를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 완성된 제품은 5일 이내에 배달되었다. 그후 퍼스컴 붐을 타고 급성장하여 1993년에 NASDAQ(미국 주식 장외시장)에 주식을 공개함으로써 델 컴퓨터 등에 이어 미국 5위의 퍼스컴 통판업체가 되었다.
웨이트는 자신의 회사를 컴퓨터 회사가 아니라 마케팅 회사라고 주장한다. 미국 사우스 다코타주와 아일랜드, 말레이시아에 있는 게이트웨이의 공장에서는 조립작업만 한다. 퍼스컴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머더보드, 플로피 디스크와 CD-ROM 구동장치 등 모든 부품은 외부에서 구입해온 것이다. 부품조립 이외에 컴퓨터 기술과 관련된 부서는 두고 있지 않다.
게이트웨이가 주력하는 것은 전화를 통해 고객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 지를 파악하고, 고객과의 신뢰관계를 통해서 통신판매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화를 하는 고객과 이름(미국에서는 퍼스트 네임)을 부르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된다.
컴퓨터 통신판매의 가장 큰 장애는 고객들이 실물을 만져보고 컴퓨터를 구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퍼스컴 상급자들의 관심은 가격과 성능을 더 중시한다. 게이트웨이는 이런 사용자들의 니즈에 철저하게 대응함으로써 전세계에 최저가 컴퓨터를 파는 '컴퓨터 마케팅' 회사로 급부상했다.
도전이 없으면 성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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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진그룹 리차드 브랜슨 회장 |
그러나 결과는 이들이 예상한 것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그의 회사 '버진그룹( Virgin Group)'이 발매한 '버진 콜라'가 영국 콜라 시장의 10%를 탈취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98%까지 올려갔던 것이다.
그는 매사에 그런 식이었다. 16세 때 'Student'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20세 때 '버진'이라는 레코드 회사를 설립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된 그의 사업경력은 모험과 도전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과점상태를 즐기고 있는 대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허점을 알고 있는 듯하다. 버진 콜라는 과거에 펩시 콜라가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코카 콜라를 공격하고 있다. 블라인드 테스팅(Blind Testing), 즉 눈을 감고 더 맛이 좋은 콜라를 선택하는 테스트에서 버진 콜라는 항상 코카 콜라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맛에 자신이 있다면, 그에게도 승산이 있는 게임처럼 보인다. 그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무리라거나 불가능하다는 사업을 성공시킨 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브랜슨의 좌우명은 도전이 없으면 성취도 없다(Nothing Ventured, Nothing Gained)라고.
앤 아줌마의 프레츨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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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티앤즈 앤 베일러 사장 |
19세에 결혼한 후 다시 19년 동안을 두 자녀를 키우면서 보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지금 미국에서 저지방 식품에 대한 선호경향을 타고 스낵시장을 강타하고 있는 프레츨 열풍 속에서 가장 성공적인 여성사업가의 한사람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녀의 회사 앤티 앤즈사는 미국 35개주에서 17개의 프랜차이즈 점포를 포함하여 290개의 프레츨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는 매년 40%의 매출신장을 보이면서 8,100만 달러의 매출액을 올리는 등 기염을 토하고 있다.
이같은 업적에 비하면 그녀의 시작은 너무나 소박한 것이었다. 그녀는 시아버지로부터 빌린 6,000달러로 오븐과 반죽기, 냉장고를 구입하고 반평도 안되는 작은 스탠드의 임대비용으로 사용했다.
처음에는 미숙한 조리법 때문에 재료비도 건지지 못하는 고전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부드럽고 독특한 맛의 프레츨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제때에 프레츨을 구어내지 못할 정도로 바빠졌다.
그해 7월에는 두번째 점포를 냈고, 다음 해에는 10개, 그리고 1991년 까지 43개로 늘어났다. 시댁과 친정의 모든 가족들은 그녀의 사업에 매달렸다.
여자들은 반죽을 하거나 프레츨을 구었고, 남자들은 새 점포를 만들고, 배달을 했다. 그들은 하루에 11시간씩 점포를 운영했다. 점포수가 늘어나면서 많은 종업원이 채용되었다. 하지만 '앤 아줌마의 프레츨 가게'는 여전히 가족처럼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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