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소구와 긍정적인 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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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057회 작성일 10-06-2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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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하는데 부정적인 소구방법과 긍정적인 소구방법이 있다.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소구는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긍정적인 소구는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킨다고 한다. 내가 싫다고 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나를 좋다고 하는 사람을 미워할 수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몇해전 어느 보험회사 광고에 지면을 세로로 양분하여 한쪽은 밝은 색깔에 환히 웃는 얼굴을, 다른 한쪽은 흑백 바탕에 찌푸린 얼굴을 일러스트로 제공한 예가 있었다(비슷한 예가 진통제 TV 광고에도 있다). 이 일러스트가 의미하고자 하는 것은 이 보험을 들면 불행한 사고를 당하더라도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이 광고를 본 사람들은 그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를 알았다고 해서 그 보험에 든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이 광고는 본인 또는 배우자의 죽음을 연상시켜주기 때문에 두번 다시 쳐다보기도 싫고, 기억하기조차 싫은 마음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비슷하게 몇년전 모 기독교 단체에서 낸 광고 문안 중에 "겁나는 사람은 모두 오십시오"라는 것이 있다. 이 광고 역시 부정적 소구의 극단적인 예이다. 소구대상의 공포심을 자극하여 광고 효과를 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광고를 보는 사람들이(물론 이 종교를 광신적으로 믿는 사람은 예외일 수도 있다) 말세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갑자기 신앙심이 생기거나 영생을 위해 종교집회에 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몇해전 신경림씨가 우리 학교 강연 중에 한 말이 생각난다. 민중시, 노동시 역시 시이며 시로서 서정성을 지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그의 강연 요지였는데 그 말 도중에 그는 오늘의 직접적이고 과격한 민중시를 보고 감격하고 박수치는 사람들은 노동운동가나 학생운동하는 사람들 뿐이라고 고언을 한 적이 있다. 실제로 공장에 다니는 여공들이나 노동자들은 그런 시를 읽지도 않고 감격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이성적 동물이기도 하지만 감정을 가진 동물이기도 하다. 이성적으로 아무리 옳다고 해도 정서적으로 맞지 않으면 친구가 될 수 없다. 광고는 소구대상의 정서에 적합하지 않으면 안된다.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지만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속담은 우리에게 하나의 교훈이 된다고 할 것이다.
십오륙년 전 필자가 일하던 사무실은 직원들끼리 사이 좋기로 이름이 난 곳이었다. 스트레스가 많기는 했지만 직원들 사이가 좋아 적은 봉급과 과도한 업무도 그럭저럭 참고 지낼 수 있었다. 어느 화창한 토요일 늦은 오후, 일주일의 허탈감을 풀기 위해 한잔 하자는 총각들의 주장을 "오늘은 가정의 날, 내공을 쌓는 날"이라는 말로 완곡하게 거절하며 "그래도 매일 나를 좋다고 하는 여자가 좋더라"고 하던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삼포능자는 여성들에게 권유하는 글에서 남편이 도둑이면 같이 도둑이 되라고 말하고 있다. 도둑질하는 남편과는 도저히 못살겠다고 매일 얼굴 붉히고 싸운다고 해도 남편의 버릇이 고쳐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집안의 평화마저 깨뜨려 파탄에 이르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아내가 같이 도둑질하고 자식들까지 도둑질하다 감옥에 갈 때 비로소 "아, 나 때문에 아내와 자식들까지 도둑이 되었구나" 하고 탄식하고 도둑질을 그만 두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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