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와이드너 - 19세기 세계최대 전차회사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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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칵테일 댓글 0건 조회 1,999회 작성일 11-11-2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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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치에도 관심을 가져 1873년(39세) 필라델피아시 재무를 맡았다. 1877년 필라델피아 시장에 출마했다가 낙선되었고 주 재무장관 공천에도 실패했다.
그는 시내 대중교통에 관심을 두고 윌리엄 켐블 등 여러 명의 투자가들을 모아 동업으로 1875년 컨티넨탈 전차노선회사(Continental Streetrailway Co.)를 설립했다. 그들은 필라델피아시의 노선을 통합하기 위해 공화당 정치인들의 영향력을 이용, 최대경쟁사인 유니언승객사(Union Passanger Co.)와 같은 방향의 노선을 깔고 동서남북을 연결시켜 유니언승객을 유치하였다. 경쟁사와 달리 국내 처음 표 한장으로 노선을 갈아탈 수 있게 하여 1882년(48세)에는 연간 승객수가 3,300만이 넘었다. 후에 합병된 유니언 승객사에는 새로운 차량을 임대해줘 임대수입도 올렸다.
1883년 ‘필라델피아 노선회사’를 세워 시내 노선사들에게 999년간 차량과 노선을 임대해주고 관리를 맡는 지주회사 역할을 했다. 그들은 같은 시기에 새로운 투자자들을 위해 계속 증권을 발행해 모은 자본금을 새 노선 개발에 투자했다.
종전 철로를 따라 말이 끄는 승객차량을 철선으로 끄는 케이블차량으로 바꾸는 사업도 시작했다. 이 사업은 계획보다 시간과 비용이 크게 더 들어 10마일 건설에 400만달러가 들었고 5년이나 걸렸다. 1889년 완성된 후 다음해 연간 승객수가 50% 증가했으나 필라델피아 인구 급증으로 노선이 모자랐다.
그는 케이블차량보다는 속도가 빠르고 설치에 융통성이 있고 정비 비용이 덜 들어가는 전차(Electric Trolley) 에 미래를 보고 사업을 크게 벌이기로 했다. 시내에 고압선 설치 등 난제가 많았지만 시정치인들을 설득해 1892년 총공사에 들어갔다. 필라델피아 시내도로를 거의 뒤집어엎다시피하여 1895년 마침내 완공했다. 이로인해 연간 승객수는 1억명이 넘어 세계 최대의 전차회사로 부상했다.
한편 경쟁사들도 전차로 바꾸면서 치열한 승객유치에 들어갔다. 와이드너는 1895년(61세) 시정치세력을 이용, 경쟁사들을 합병해 유니언노선사(Union Traction Co.)를 설립, 합병사들에게 장비와 노선을 임대해주었고 필라델피아의 전차선을 독점했다. 독점사업을 벌였으나 시민들의 반대로 시정부는 승차료를 올리지 못하게하여 와이드너 사업은 큰 이익을 내지 못했다. 특히 1907년 경제공황으로 재정적인 곤란을 겪게되자 그는 시에 경영권을 넘겨주었다. 그후 와이드너는 윌리엄 켐블 등 4명의 동업자와 함께 뉴욕시의 메트로폴리탄노선사(Metropolitan Traction)를 설립했다.

1858년(24세) 하나 더튼과 결혼, 세 아들을 두었지만 장남은 15세에 요절했고 사업은 차남 조지에게 맡겼다. 조지와 조지 아들은 1912년 타이태닉호 침몰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와이드너는 아들과 손자가 사망한지 3년 후 81세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1,100만달러를 자선사업에 기증했고 저택과 수많은 미술품들은 필라델피아도서관 및 시에 헌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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