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공한다, 내가 나를 가로막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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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833회 작성일 15-06-07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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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니스 전문가 김민철
나는 성공한다, 내가 나를 가로막지만 않는다면!
** 슈퍼헤비급 레슬링 선수에서 패션 모델로 변신했다가 이제는 피트니스 사업가로 거듭난 김민철. 그의 성공 과정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왜냐하면 번번이 맨땅에 헤딩하듯이 도전했기 때문이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사람들은 생각했지만, 그 자신만은 그 계란으로 수없이 내려치면 바위가 쪼개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가 깬 바위는 다름 아닌 '자기 의심' 이라는 마음의 장애였다. **
새벽 4시면 김민철은 고단한 몸을 일으켜 운동을 하러 나갔다. 아침 운동은 피트니스 센터가 아니라 집 뒤쪽에 있는 조그만 언덕에서 해야 했다. 그 언덕을 뛰어서 오르내리고, 뒤로도 내려오고, 꼭대기에서 팔굽혀펴기도 했다. 한국에서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로 뛸 때는 운동에 필요한 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었지만, 파리로 건너갔을 때는 언덕 하나가 다였다.
패션 모델의 꿈을 안고 겨우 500만 원을 들고 무턱대고 날아간 파리는 그에게는 좌절의 도시였다. 프랑스어는 물론 영어조차 하지 못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파리는 그에게 냉정하게만 보였다. 사람들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마치 미개인이라도 되는 듯 무시하곤 했다.
더 큰 문제는 생활비였다. 도무지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최대한 돈을 아껴야 했던 그는 바게트 빵과 파스타만으로 연명하듯 살아야 했다. 그나마 첫째 달에는 빵에 잼을 바르고 파스타에 소스를 얹을 수 있었다. 둘째 달에는 잼과 소스를 살 여력이 없어졌다. 삶은 파스타에 후추와 소금을 뿌려 먹어야 했다. 느끼해서 도로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삼켰다. 셋째 달에는 빵이나 파스타조차 살 수 없었다. 자신을 벼랑으로 몰듯이 시도한 모델의 꿈은 벼랑 끝에서 아무런 날개도 달지 못하고 떨어져 버릴 것 같았다.
허기에 지쳐 찬장을 뒤지다가, 딱딱해서 그냥 내버려둔 바게트 조각을 발견하고는 냉큼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딱딱해서 씹을 수가 없었다. 주먹으로 박살을 내고서야 먹을 수 있었다. 그때, 그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무척이나 비참하게 느껴졌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떠오르면서 눈에서 굵은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화려한 패션의 도시 파리에서 김민철은 길을 잃고야 말았다.
* "그래, 난 레슬링 선수가 되어야겠어!"
어린 시절, LA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김원기 선수가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따는 모습은 그에게 커다란 환희를 불러일으켰다. 국위를 드높이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게 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었다.
무려 5킬로그램이나 되는 거대한 신생아로 태어났던 그의 몸은 타고난 레슬러 체형이었다. 김민철은 초등학교 때 씨름을 시작하더니, 중학교에 올라가자 학교 씨름부에 들어갔다. 레슬링을 시작한 첫해부터 그는 두각을 나타냈다. 2학년이 되자 대회 때마다 2등을 차지하더니, 3학년에 올라서자 그를 당해낼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레슬링은 그의 모든 것이었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체급을 올려서 슈퍼헤비급으로 뛰고자 했다. 남들은 어떻게든 체급을 낮추려고 했지만, 그는 이왕이면 최고 체급에서 뛰고 싶었다. 몸을 불리려고 틈만 나면 먹어 댔고, 물 대신 우유를 마셨다. 1년 만에 체급을 올린 그는 슈퍼헤비급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다 물리치면서, 고등학생이면서도 실업부와 대학부 경기에 출전해 대회를 완전히 제패했다. 당시 그는 레슬링계의 무서운 신인이었다.
대학 1학년 때는 당당히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로 뽑혔다. 올림픽 금메달의 꿈이 점점 다가오는 듯했다. 하지만 국가대표로 처음 출전한 국제 대회에서 그는 국제 무대의 벽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아무리 국내에서 1등이라고 해도 국제 무대에서는 별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크게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체급을 낮추면 가능성이 있었지만, 한 번 크게 상심하자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다.
모델에 대한 꿈을 꾸게 된 것은 그 즈음이었다. 어느 날 TV에서 우연히 패션쇼를 보았는데, 그것은 그에게 새로운 세계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엉뚱하게도 패션 모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사람이 '미친 짓' 이라고 했다. 130킬로그램의 레슬러와 패션 모델 사이에는 태평양보다 더 넓은 간격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김민철은 어쩐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수시로 몸무게를 조절했으니 몸무게를 충분히 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살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 패션의 본고장 파리로 직행하다
패션 모델이 되자면 적어도 50킬로그램은 줄여야 했다. 일주일 동안 굶었더니 10킬로그램이 빠져나갔다. 자신감이 붙어 계속 굶었지만, 더는 몸무게가 내려가지 않았다. 그러다 지쳐 폭식을 하고 말았다. 그 뒤로는 다이어트와 폭식이 거듭되었다. 그건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는 일이었다. 6개월이 지나자, 그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체계적인 다이어트를 시도했다. 먹되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었다. 아침은 달걀 하나, 고구마 하나, 우유 한 컵이었고, 점심은 쇠고기와 닭고기 살코기만 먹었다. 저녁은 굶었다. 그렇게 꾸준히 운동하면서 1년을 보내자, 거짓말처럼 80킬로그램대로 내려갔다. 그를 보는 주위의 눈길도 크게 달라졌다.
그는 곧 파리행을 결심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먼저 국내에서 조금씩 경험을 쌓는 것이 먼저였다. 하지만 그는 기왕 최고의 모델이 될 거라면 아예 패션 모델의 일번지인 파리에 가서 바닥에서 시작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파리로 날아간 김민철. 그런데 파리 공항에 도착하니 덩치가 산만한 경찰 둘이 그를 붙잡았다. 이유를 알아보니, 여권 사진과 현재 모습이 너무나 달라서 여권 위조 혐의를 받은 것이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지문을 대조해도 문제가 없자 경찰들도 몹시 당황해했다.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다. 파리의 첫 대면은 힘든 그의 앞날을 예고하는 것과 같았다.
국가대표 선수에서 경력이 전무한 무명 모델로의 변신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했다. 몹시 비싼 파리 물가는 그의 삶을 조여 왔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고, 그는 굶어죽을 처지가 되었다. 파리로 오기 전에는 그저 살을 빼기 위해 굶기를 밥먹듯이 했지만, 이제는 정말 먹을 게 없어서 굶는 아이러니컬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패션 모델이 되려고 모델 에이전시들을 찾아 숱하게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동양에서 날아온,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그리고 모델 활동을 해본 적도 없는 이 이름 없는 젊은이를 선택할 에이전시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날마다 아침 4시에 일어나서 뒷동산에서 두 시간 동안 운동하고, 낮에는 에이전시를 부지런히 찾아다녔지만, 돌아오는 건 멸시와 거절뿐이었다. 그래도 다시 찾아가고 또 찾아갔다. 그만큼 했으면 들어와서 차나 한잔 하라고 할 법한데도 아무도 받아 주지 않았고, 귀찮은 표정만 역력했다. 배고픔과 좌절이 자신감을 갉아먹었고, 정신은 황폐해져 갔다.
* "당신에게는 빛이 있군요"
굶어죽기 직전에 그는 의류수선실 일자리를 얻었다. 바닥에 떨어진 핀들을 줍는 허드렛일이었다. 일자리가 생기자, 적어도 굶어죽는 것은 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식사는 여전히 후추와 소금으로 간을 한 파스타였다. 최고의 모델이 되기 전까지는 방심하지 않겠다는 마음의 자세였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도움으로 가게 된 패션쇼에서 수잔나라고 하는 자메이카 출신의 패션 저널리스트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김민철에게 호감을 느끼고, 파리 최고의 헤어숍을 운영하는 알렉산드로 주아리를 소개해 주었다. 주아리 또한 김민철에 호감을 느껴, 머리 스타일링을 계속 무료로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패션쇼에 관계된 사람들을 하나씩 소개받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장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날씬한 모델이 되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 "난 보기만큼 무겁지 않다, 날씬하다" 고 했다. 하지만 날씬한 모델은 지천에 널려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남성미를 부각하기로 하고 "근육질의 강한 남성미가 있다" 고 어필했다. 옷도 근육이 드러나 보이도록 입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를 더 크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기회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아직 아무 무대에도 서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 최고의 패션쇼가 다가왔다. '오트쿠튀르' 라고 하는 패션쇼로, 오직 파리에서만 열렸고, 그날에는 모든 정규 방송이 중단되고 이 패션쇼만 방송되는 대단한 행사였다. 프랑스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이 패션쇼를 주목하고 있었다. 내로라하는 모델은 다 이 패션쇼에 등장했다.
그런데 패션쇼가 다가오면서, 이 패션쇼 역사상 처음으로 남자 모델을 기용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소식을 들은 김민철은 긴장했다. 여자를 지켜 줄 남자로는 자신처럼 강한 느낌의 모델이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여러 패션쇼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이런 점을 적극 어필했다. 사실 그 소문은 확정적인 것도 아니어서, 소문으로 끝나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김민철이 관계자들에게 적극 어필하면서 컨셉이 더욱 명확해졌다.
김민철이 몇 차례나 만나 본 예술감독은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당신에게는 빛이 있군요."
그 예술감독은 김민철을 디자이너에게 데려가서, 옷을 만들어 주도록 지시했다. 김민철은 이제 데뷔 무대를 세계가 주목하는 최고의 패션쇼에서 치르게 된 것이다. 그가 출연하게 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다른 유명한 남자 모델들이 들고일어났지만, 패션쇼 예술감독은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마침내 패션쇼가 열리게 되었을 때, 그의 모습이 무대 위로 나타나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진기자들은 너무 놀라서 처음에는 사진도 잘 찍지 못했다. 그러다 두 번째로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플래시 세례가 온몸을 감쌌다.
다음날부터 사람들은 거리에서 그를 알아보았고, 그를 거절했던 모델 에이전시들이 '미처 몰라보았다'며 러브콜을 계속 보내 왔다. 그는 유명 에이전시와 계약했고, 멋진 집도 제공받았다. 이제 강한 남성미가 필요한 패션쇼에는 그가 가장 먼저 섭외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입이 늘어났고, 그는 더욱 세련되어 갔다. 그가 꿈꾸었던 최고의 남성 패션 모델이 된 것이다. 레슬링을 할 때는 아무리 잘 해도 비인기 종목이라는 점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던 그의 삶은 이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 "나는 그저 나 자신을 넘어섰을 뿐이다"
최고의 패션 모델로 인생 2막을 활짝 열어 젖힌 그는 그 삶에 안주할 수도 있었지만 곧 인생 3막을 꿈꾸었다. 디자이너이면서 사업가로 활동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그의 3막 모델이 되었다. 1년 동안의 패션 모델 생활을 청산한 그는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경력을 살려 피트니스 사업을 시작하고, 이어서 미용 ' 패션업까지 진출할 생각이었다.
그 첫 단계로 그는 미국의 유명 피트니스 업체인 발리 토털 피트니스를 국내에 들여왔다. 한국 지사의 홍보팀장을 맡은 그는 회원 유치를 위해 직원들과 함께 미키마우스 복장으로 거리를 나서기도 하는 등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것만이 아니라 유니레버와 나이키에게서 광고를 조건으로 제품을 무상으로 공급받는 계약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마케팅에 대해서는 전혀 배운 적이 없었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해내는 그의 실행력이 이루어낸 성과였다.
그런데 발리 토털 피트니스가 로열티를 지나치게 높게 요구해 회사 재정이 크게 나빠졌다. 그 위기 상황을 김민철이 떠안고 회사 대표로 취임했다. 재정난 때문에 급여가 나가지 못하자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고, 회원들도 동요하여 탈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김민철은 고민 끝에 피트니스 센터 다섯 곳 가운데 세 곳을 매각했다. 그 대신 운영은 그전처럼 자신이 다 맡았다. 그리고 더 열심히 뛰어 사업을 점점 안정시켰다. 그러자 투자 유치도 이루어져 자금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 그는 회사를 안정적으로 이끌면서 국내 최고의 피트니스 센터를 경영하고 있다. 그의 3막 인생이 정상 궤도에 오른 것이다.
지금까지 그는 늘 바쁘게 살아왔다. 영화 한 편 볼 시간도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파리에서 그가 아침마다 오르내리던 그 조그만 언덕은 예술가들의 활동 무대로 유명한 몽마르트 언덕이었다는 점이다. 그때는 어떻게든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런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인생 3막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중요한 구실을 했다. 1막에서 레슬링을 했던 경력이 2막에서 모델을 할 때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했고, 패션 모델로서의 성공은 3막에서 피트니스 센터 사업에 뛰어드는 데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각 단계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결과다.
이제 조금 숨을 돌릴 여유가 생기자 그는 다시 인생 4막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건 바로, 못 다 이룬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체급을 낮춰서라도 꼭 도전하고 싶다고 한다. 그 또한 사람들은 어렵다고 할 것이 틀림없다. 그 자신도 잘 안다. 하지만 그는 늘 안 된다는 걸 해온 사람이다. 문제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일 뿐, 그는 세상 사람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의 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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