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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잉 감독과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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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verbena 댓글 0건 조회 1,333회 작성일 13-05-2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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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잉 감독은 선수로서 직접 경기에 출전하며 동시에 감독을 겸하는 사람이다. 구기종목 경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복 입은 감독님’이 아니라 ‘경기를 뛰는 감독님’이다.
현역 남자 핸드볼 국가대표 센터백 백원철(34, 웰컴론코로사)은 플레잉 감독으로 변신해서 2011 SK핸드볼코리아리그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그 동안 플레잉 코치는 많아도 플레잉 감독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인천도시개발공사와의 데뷔전에서 석패를 했지만, 그가 보여 준 열정과 팀의 단합된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 경기에서 선수들은 이런 말을 했다. “일반 감독님들보다 선수들을 이해해주는 면이 좋은 것 같고 같이 뛰다 보니까 저희가 한 발 더 뛰어야 하는 그런 게 생긴 것 같아요.”

백원철 감독이 국내 최초의 감독이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의 영화의 실제 주인공 임오경 감독(37, 서울시청)은 일본 히로시마 메이플레즈 팀의 플레잉 감독을 14년 동안 해 온 전적이 있다.
영화에서 보았듯이 여자 핸드볼에는 사연이 많다. 아줌마들이 주축을 이뤄 팀을 이끌고 있고 유럽의 덩치 큰 선수들과 맞붙어 쓰러지고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고 부딪히고… 경기만 있는 게 아니라 눈물과 감동이 있고 그래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고, 그런 역경을 극복하면서 올림픽에서 금메달, 은메달 또는 동메달을 획득하는 모습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이라는 대리만족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이런 스토리의 뒤에는 감독 임오경의 지독한 끈기와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 스물네살 때 플레잉 감독으로 선임되어 어린 나이와 한국인 감독이라는 높은 벽을 넘기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겪었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오뚝이 인형을 사다 놓고 마을 잡아왔던 시간들이다. 또 출산한 지 2주 후부터 윗몸일으키기를 하며 운동을 시작했고 훈련에 참가할 때는 갓난아기를 바구니에 담아 체육과 한쪽에 놓고 수시로 우유와 기저귀를 갈아주며 정말 ‘독하게’ 선수와 감독 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창업하는데 처음부터 대규모로 ‘그럴싸한’ 사업체를 차릴 수는 없다. 작은 것부터 만들고 키워나가는 것을 반복하는 과정이 창업하시는 사장님들의 필수 코스이다. 큰 사업체가 아닌 소규모의 사업이라면 인재개발과 역할분담이 쉽지 않은 과제이다.
간혹 훌륭한 매니저와 관리자를 두고 날 위해 돈을 벌어줄 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장님들을 보게 된다. 높은 급여를 주고 관리를 맡긴다 한들 창업자의 마음을 다 담아 운영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훌륭한 감독이 훌륭한 선수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듯이 창업자가 훌륭한 인재를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훌륭한 선수에게만 전반적 경기운영을 맡기는 감독은 없을 것이다.
필자는 직업관계상 전국의 ‘장사 잘되는 가게’를 많이 봐왔다. 이런 가게들의 공통점은 좋은 제품과 서비스가 있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장님의 열정이 가게에 녹아 있었고 그걸 소비자들은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다.
감독은 선수들과 호흡하고 선수들은 감독의 의도에 한발 더 가까이 접근해서 이해할 수 있는 플레잉 감독에서 열정적인 창업자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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