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디자이너는 '벽' 보고 말한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진저 댓글 0건 조회 2,300회 작성일 12-02-22 21:32
본문
몸벽을 찬미하라 손꼽히는 아름다운 벽을 만드는 회사가 있다. 세계적인 이탈리아 타일 브랜드 비사자(Bisazza)다. 유명 디자이너들과 이들의 50년 노하우가 만나 ‘소유하고 싶은 벽’ 을 만든다. 현대 디자인의 아버지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를 필두로, 파비오 노벰브레(Fabio Novembre), 파트리치아 우르퀴올라(Patricia Urquiola) 등 오늘날 이탈리아 디자인의 핵심 인물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비사자는 그들이 원하는 색상과 질감의 타일을 만들기도 한다. 하나의 벽이 탄생하기까지 비사자의 비밀병기인 특수 테이블이 꼭 필요한데, 타일 샘플에는 숨겨진 서랍같은 것이 있으며 퍼즐처럼 이런저런 조합을
만들 수 있도록 고안된 테이블이다. 디자이너들은 그 위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먼저 테스트한다. 그러고 난 후 무한 면적의 벽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파비오 노벰브레는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누드로 공개할 만큼 파격적인 디자이너다. 나이트클럽 디자인에는 진한 성적 화두를 끄집어내 타일을 도구로 벽화를 그리기도 한다. 악어가죽 핸드백과 액세서리를 파는 매장을 위해서는 바닥부터 벽을 타고 천장까지 이어지는 면을 만들어 악어가죽 문양대로 타일을 조합한 것도 있다. 그의 크리에이티브 유전자가 담긴 세포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벽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그에게 벽은 바닥과 천장의 연장 선상에서 가구의 일부로 활용될 수도 있다. 고정관념대로라면 어디까지가 벽이고 어디서부터 가구라고 해야 할지 모호하다. 이처럼 스스로를 차별화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하나의 방법이 ‘벽에 힘주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대표 여성 디자이너 파트리치아 우르퀴올라는 좀 더 기능적이고 유연한 벽을 제안한다. 벽을 몇 개의 면으로 나누고 앞면에는 타일, 뒷면엔 거울을 사용했다. 그에게 벽은 앞뒤 꽉 막힌 답답한 것이 아니다. 보일 듯 말듯 호기심도 유발하며, 임의로 바꿀 수 있는 대상이다. 물리적 단절이 아닌, 시각적 차단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에서.비사자의 아트 디렉터 카를로 달 비안코 (Carlo Dal Bianco)는 2007년 비사자 컬렉션으로 이탈리아 신고전주의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의 조각상을 평면화시켰다. 그럼에도 살아 숨 쉴 듯 생동감이 느껴진다. 벽 속의 주인공이 오히려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것만 같이. 또 여전히 ‘벽 보고 이야기 하지’ 하는 사람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지나 않을까? 디자이너들의 창의적 세계가 담긴, 예술을 꿈꾸는 비사자의 벽 앞에서 그것은 무례한 발언이다. 벽은 미디어다 1976년 중국에서 태어나 현재 홍콩을 근거로 활동하고 있는 창 킨 와(Tsang Kin Wah)는 일단 벽을 표현하기 위해 빔 프로젝터부터 설치한다. 프로젝터는 벽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고, 그는 붓을 통해 벽에 맺히는 상을 따라간다. 빔 프로젝터가 쏘아 비춘 영상에는 창 킨 와의 스케치가 담겨 있다. 밑그림 한번 거하다. 멀리서 보면 그의 작업은 그냥 꽃ㆍ기하학 등 하나의 패턴일 뿐이다. 그런데 다가갈수록 그 패턴을 이루는 요소들이 해체되고 중국어 혹은 영어가 꼬리를 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때론 중국어와 영어 단어가 섞여 있기도 하고,그 단어들이 하나의 문장을 이루며 작가의 생각을 대변한다.

킨 와의 작품에서 이미지와 텍스트는 서로다른 두 개의 대표할 만한 구조체이다. 이미지는 그림으로, 텍스트는 소리(발음)가 있는 언어적 요소로 각각의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런 두 요소가 그의 작품 속에서 하나의 의미를향해 리듬감과 조형성을 가진 기호 같은 것을 만들어 낸다. 다시 멀리서 보면 그것은 벽면을 나아가 공간을 압도하는 그래픽이 된다. 창 킨 와는 화장품 브랜드 슈에무라의 캘리포니아 매장을 디자인한 적이 있다. 입구를 향한 벽면에 천장에서부터 타고 내려오는 한 편의 시를 연출했다. 슈에무라 화장품에 드리워진 일본 문화, 자신이 속한 중국 문화, 또 매장이 위치한 미국의 문화를 형형색색의 텍스트로 나열한 것이다. 흰색의 벽으로 대표되는 갤러리에도 그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입혔다. 오로지 예술만을 위한 매우 중성적인 공간을 위한 은밀한 작업이었다. 강요된 흰 벽 뒤에 감춰진, 예술품 감상이 아닌 사회적 지위나 취향의 과시를 위한 소비 마인드를 드러냈고, 그의 이미지가 전시장 전체를 뒤덮고 작품에까지 타고 올라가는 것이었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그가 보여주는 이미지가 드러난다. 그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지양한다. ‘왜 꼭 공간이 그렇게 나뉘어야 하느냐’고 묻듯이 자신의 작품은 벽을 위한 것도, 바닥을 위한 것도 아닌 것처럼 만든다. 그 자체가 공간을 채우는 하나의 메시지며 벽은 아이디어의 출발점일 뿐이다. 벽을 타고 무한한 기호들이 뻗어 나간다. 벽 안에서 그의 모든 생각과 미적인것에 대한 가치관이 만들어진다. 그의 스케치가 빛을 타고 벽면에 맺히는 순간 벽은 미디어가 된다.
만들 수 있도록 고안된 테이블이다. 디자이너들은 그 위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먼저 테스트한다. 그러고 난 후 무한 면적의 벽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파비오 노벰브레는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누드로 공개할 만큼 파격적인 디자이너다. 나이트클럽 디자인에는 진한 성적 화두를 끄집어내 타일을 도구로 벽화를 그리기도 한다. 악어가죽 핸드백과 액세서리를 파는 매장을 위해서는 바닥부터 벽을 타고 천장까지 이어지는 면을 만들어 악어가죽 문양대로 타일을 조합한 것도 있다. 그의 크리에이티브 유전자가 담긴 세포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벽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그에게 벽은 바닥과 천장의 연장 선상에서 가구의 일부로 활용될 수도 있다. 고정관념대로라면 어디까지가 벽이고 어디서부터 가구라고 해야 할지 모호하다. 이처럼 스스로를 차별화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하나의 방법이 ‘벽에 힘주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대표 여성 디자이너 파트리치아 우르퀴올라는 좀 더 기능적이고 유연한 벽을 제안한다. 벽을 몇 개의 면으로 나누고 앞면에는 타일, 뒷면엔 거울을 사용했다. 그에게 벽은 앞뒤 꽉 막힌 답답한 것이 아니다. 보일 듯 말듯 호기심도 유발하며, 임의로 바꿀 수 있는 대상이다. 물리적 단절이 아닌, 시각적 차단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에서.비사자의 아트 디렉터 카를로 달 비안코 (Carlo Dal Bianco)는 2007년 비사자 컬렉션으로 이탈리아 신고전주의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의 조각상을 평면화시켰다. 그럼에도 살아 숨 쉴 듯 생동감이 느껴진다. 벽 속의 주인공이 오히려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것만 같이. 또 여전히 ‘벽 보고 이야기 하지’ 하는 사람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지나 않을까? 디자이너들의 창의적 세계가 담긴, 예술을 꿈꾸는 비사자의 벽 앞에서 그것은 무례한 발언이다. 벽은 미디어다 1976년 중국에서 태어나 현재 홍콩을 근거로 활동하고 있는 창 킨 와(Tsang Kin Wah)는 일단 벽을 표현하기 위해 빔 프로젝터부터 설치한다. 프로젝터는 벽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고, 그는 붓을 통해 벽에 맺히는 상을 따라간다. 빔 프로젝터가 쏘아 비춘 영상에는 창 킨 와의 스케치가 담겨 있다. 밑그림 한번 거하다. 멀리서 보면 그의 작업은 그냥 꽃ㆍ기하학 등 하나의 패턴일 뿐이다. 그런데 다가갈수록 그 패턴을 이루는 요소들이 해체되고 중국어 혹은 영어가 꼬리를 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때론 중국어와 영어 단어가 섞여 있기도 하고,그 단어들이 하나의 문장을 이루며 작가의 생각을 대변한다.

킨 와의 작품에서 이미지와 텍스트는 서로다른 두 개의 대표할 만한 구조체이다. 이미지는 그림으로, 텍스트는 소리(발음)가 있는 언어적 요소로 각각의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런 두 요소가 그의 작품 속에서 하나의 의미를향해 리듬감과 조형성을 가진 기호 같은 것을 만들어 낸다. 다시 멀리서 보면 그것은 벽면을 나아가 공간을 압도하는 그래픽이 된다. 창 킨 와는 화장품 브랜드 슈에무라의 캘리포니아 매장을 디자인한 적이 있다. 입구를 향한 벽면에 천장에서부터 타고 내려오는 한 편의 시를 연출했다. 슈에무라 화장품에 드리워진 일본 문화, 자신이 속한 중국 문화, 또 매장이 위치한 미국의 문화를 형형색색의 텍스트로 나열한 것이다. 흰색의 벽으로 대표되는 갤러리에도 그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입혔다. 오로지 예술만을 위한 매우 중성적인 공간을 위한 은밀한 작업이었다. 강요된 흰 벽 뒤에 감춰진, 예술품 감상이 아닌 사회적 지위나 취향의 과시를 위한 소비 마인드를 드러냈고, 그의 이미지가 전시장 전체를 뒤덮고 작품에까지 타고 올라가는 것이었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그가 보여주는 이미지가 드러난다. 그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지양한다. ‘왜 꼭 공간이 그렇게 나뉘어야 하느냐’고 묻듯이 자신의 작품은 벽을 위한 것도, 바닥을 위한 것도 아닌 것처럼 만든다. 그 자체가 공간을 채우는 하나의 메시지며 벽은 아이디어의 출발점일 뿐이다. 벽을 타고 무한한 기호들이 뻗어 나간다. 벽 안에서 그의 모든 생각과 미적인것에 대한 가치관이 만들어진다. 그의 스케치가 빛을 타고 벽면에 맺히는 순간 벽은 미디어가 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