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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or Day (근로자의 날[노동절], 9월 첫째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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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ica 댓글 0건 조회 1,686회 작성일 14-01-26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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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노동절은 9월 첫째 주 월요일입니다. 노동절은 미국의 중요한 연휴 중의 하나로 노동절 연휴를 끝내면 아이들의 새 학년이 시작되며 여름에서 가을로의 계절변화를 알려주는 분기점입니다. 미국의 ‘노동절’은 우리 나라의 ‘노동자의 날’과 비슷합니다. 이 날은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직장을 쉬게 되며 퍼레이드, 노동 지도자의 연설 등이 이루어집니다.

미국의 노동절은 정확히 ‘The Knights of Labor (노동 기사단)’라는 노동조합이 1882년에 처음으로 뉴욕에서 퍼레이드를 벌인 것을 기념하는 날로, 실제로 주법에 의해 노동자의 기념일로 삼은 것은 오리건 주가 가장 빠르며 1887년의 일입니다. 연방의회는 1894년에 9월 첫째 월요일을 각자의 축일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인은 이날을 노동자의 제전이라기보다는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는 환절기로 여기고 있으며, 휴일이 겹쳐 있으므로 여행이나 피크닉을 마음껏 즐기자는 날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합니다.

9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는 이 곳은 보통 이 Labor Day(노동절)을 지나고 난 다음 학기를 시작하는데 미국 내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예우해주고 그들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들에게 업무로부터 벗어나 긴 휴일을 주기 위한 날로 정해졌습니다. 목수, 비서, 기술자, 엔지니어 등 많은 사람들이 이 날만큼은 일을 하지 않고. 학교, 은행, 사무실 등도 모두 쉽니다.

노동 연합들의 시조인 “Knights of Labor”라는 연합이 1882년에 이 노동자의 날을 처음 시작했다고 하는데 1800년대에 유럽으로부터 이민 온 많은 사람들이 저임금에 하루에 10시간에서 16시간까지도 일을 해야하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또 여자들과 어린이들의 임금이 싸기 때문에 남자들보다도 그들을 더 많이 고용하는 업주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부당함에 대항하여 남자 노동자들이 노동자 보호를 위해 싸웠고 드디어 1886년 American Federation of Labor가 조직되면서 일주일에 할 수 있는 최대 노동시간, 최저 임금 수준 등을 법으로 결정하여 업주가 사람을 고용할 때 시간당 최소한의 임금은 보장해줘야 하고 또 일주일에 몇 시간 이상은 일을 시키면 안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성별이라든가 인종, 피부 색깔, 혹은 국적에 따른 차별은 이제 불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절반은 여성들이라고 할 만큼 고용하는데 있어서 남녀간에 차별을 두지 않으며 인종간의 차별도 물론 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사람이 필요해 취업 공고를 낼 때마다 꼭 같이 설명해 놓습니다.

대부분의 가게들도 이날에는 특별 세일에 나서고 거의 모든 공산품들뿐만 아니라 식료품들까지도 대세일을 합니다. 9월 초순인 이 날은 날씨가 보통 좋기 때문에, 사람들은 피크닉과 바베큐를 즐길 수 있어서 이 노동절은 여름 휴가철의 마지막 날로 인식되어집니다.

- 노동절의 유래와 노동절의 의미

노동절은 19세기 후반 열악한 노동조건 아래서 싼 임금을 받으며 장시간 노동하던 유럽과 미국의 노동자들이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쟁취한 노동자의 날입니다. 그러나 노동절이 성립하게 된 계기를 만든 미국노동총동맹이 1893년부터 5월 1일 대신 9월의 첫째 월요일을 노동자의 날로 바꾸면서 그 이듬해인 1894년 미 의회가 그날을 공휴일로 정하고 ‘레이버 데이(Labor Day)’라 칭함으로써 노동자 투쟁의 날이 아닌 하루 쉬며 노는 날로 변질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1886년 미국. 대대수의 자본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다이아몬드로 이빨을 해 넣고, 100달러짜리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울 때, 노동자들은 하루 12~16시간 일하고 그 노동의 대가로 7~8달러의 주급을 받아 월 10~15달러하는 허름한 판잣집에서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마침내 5월 1일, ’8시간 노동’을 외치며 총파업에 돌입함으로써 모든 공장의 기계소리와 망치소리가 멈추었고 연일 뿜어내던 공장 굴뚝의 연기도 더 이상 솟아오르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으면 세계가 멈춘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들은 서로를 부등켜 안은채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연대의 힘과 필요성을 확인한 것이죠.

그러자 경찰은 파업 농성중인 어린 소녀를 포함한 6명의 노동자를 발포, 살해하였으며 그러한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기 위해 헤이마켓 광장에 모여든 30만의 노동자들에게 폭탄을 터트리며 몽둥이를 휘둘렀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세계 노동 운동사에 뚜렷이 자취를 남긴 ‘헤이마켓 사건’으로 수많은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폭동죄로 체포되었고 장기형 또는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들 가운데 노동운동 지도자 파슨즈는 그의 마지막 재판에서 “그렇다. 나는 지금은 비록 임금을 받아먹고 사는 노예에 지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 노예 같은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 자신이 노예의 주인이 되어 남을 부리는 것은, 나 자신은 물론 내 이웃과 내 동료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만약에 인생의 길을 달리 잡았다면 나도 지금쯤 시카코 시내의 어느 거리에 호화로운 저택을 장만하고 가족과 더불어 사치스럽고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노예들을 나 대신 일하도록 부려 가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길을 걷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나는 여기 재판정에 서게 되었다. 이것이 내 죄인 것이다.” 라고 최후 진술함으로써 전세계 노동자들의 가슴에 ‘노동자 권리 선언’의 불을 지폈습니다.

마침내 1890년 5월 1일을 기해 모든 나라, 모든 도시에 8시간 노동의 확립을 요구하는 국제적 시위가 조직화되기 시작, 노동자들은 각국의 형편에 맞는 형식과 방법으로 대규모의 노동절 행사를 벌이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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