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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길림성 장춘에서 보내온 천사의 긴급구호요청 전화, 맨하탄에서 쓰러진 중국청년을 살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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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374회 작성일 09-09-0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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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중국 만주평야에 백말 한필이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해 초가을,  뉴저지의 가로수는 한잎두잎 붉은색갈로 바뀌고 있었다. 길림성 장춘시에서 천사와 친분이 있는 한 중국인의 아들이 비단 장사를 하러 미국 출장을 왔다가 갑자기 뉴욕 길거리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긴후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데 이환자의 병세가 어떤지 급히 알아봐달라는 얘기였다.
 
중국청년이 있는 병원은 뉴욕 홀랜드터널 부근에있는 SF병원이다. 병원당국의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니 급성뇌막염에 걸려 격리 중환자 병실에 있으며 상태가 위독하다 한다. 보호자등 아무연고가  없는 여행객환자이지만 미국법상 치료를 안해줄수 없는 상황이란다. 유리로 격리된 병실을 바라보니 혼수상태로 2주를 지낸 처절한 모습이다.

매일매일 시간을 내어 병원을 찾아가 보며 차도가 있나를 살폈다. 장춘에있는 중국부모는 애간장이 녹고 있다. 병원 간호사가 매일 찾아오는 내가 누군지 궁금한 모양인지, 나의 신상에대해 꼬치꼬치 물어본다. 나는 지나가는  Angel이고 그냥 궁금해서 들러볼 뿐이요하며 나중을 생각해서 신분을 밝힐수가 없었다. 주 이유는 아무리 여행객을 길거리에서 병원 응급실로 대려와 살려는 놨지만 병원비가 감당할수 없는 지경에 이를것이 뻔 한일이기에 병원 사람들에게는 모르쇄로 일관할뿐이었다.

전화를 통해 중국인 아버지와는 말이 통하지 않고 통역인이라며 한 중국사람이 영국식발음의 유창한 영어로 아버지의 궁금증을 통역한다. 아들의 병에대한 모든 사항들을 애절히 묻고 또 묻는다. 나에게 자기의 마음을 전할수는 없지만 아들을 잘 지켜보아달라고 간청을 한다.

열흘 후 환자의 아버지가 통역을 대동하고 뉴욕에 도착하니 뒤를 잘 돌봐주라는 천사의 부탁이다. 케네디공항에 내린  두사람을 병원으로 바로 안내했다. 유리병실속에서 혼수상태에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중국인 아버지는 눈물을 보였다. 숙소는 병원으로 걸을수있는 거리의 인근 모텔로 잡았다. 병원근처 그로서리에서 쌀과 통조림등 식료품과, 전기곤로, 후라이펜, 작은냄비를 사주고 모텔방에서 지낼 준비를 해주었다. 모텔비등 체류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도와줄테니 걱정 말라는 위로를 하며 초면의 중국인에게 아들의 완쾌를위해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노라며 안심을 시켜주었다. 이당시에는 보통 중국인들의 월급이 $50정도 된다는 선입관이 있기에 더욱 측은지심으로 극진히 돕기로 마음 먹었다. 

아직 이 중국사람이 천사와 어떤 친분이 있는지, 중국서 무엇을 하는분인지 몰랐다. 경황이 없어 인사를 하지 못했다며 명함을 내민다. 이름은 허화흥, 일하는기관은 길림성 장춘시에있는 길림성 지방정부기관 출판문화국의 국장이라한다. 뉴욕 길에서 쓰러진 아들은 결혼한지 3달되는 새신랑 이라했다. 영어 잘하는 부하직원을 대동하고 아들찾으러 미국으로 온것이다. 중국 길림성 기자협회 주석등 타이틀 몇개가 더 명함에 적혀있다.  

불행중 다행으로 환자의 병세가 호전되어 다행히 의식이 돌아왔다. 퇴원을 한후 몇일동안 통원치료를 받고 안심할 정도로 몸이 좋아졌다. 반면 한달넘게 입원 치료했기에 중국친구의 주머니사정으론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할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루라도 빨리 이들을 중국으로 보내야만 한다는 나의 생각뿐이었다. 미국 치료약을 약국서 여유있게 사주며 병원비는 소셜워커의 도움으로 혜택을 받는쪽으로 해결한후  중국 비행기에 이들을 신속하게 실어 보냈다. 무사히 장춘에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이당시는 행려병자 외국인에게 돈이 없어도 치료해주는 좋은나라 미국이 중국청년 의 생명을 구해준 것이다.

꿈같은 세월이 흘렀다. 중국인 아버지는 고마움의 표시로 나를 장춘으로  초대하고싶어 자주 연락하였다.  매번 중국방문을 거절하였지만 더이상 호의를 거절할수 없어 장춘행을 결정했다. 뉴욕에서 서울을 경유 장춘공항에 내리자 통역으로 뉴욕에 왔던 중국인이 귀빈출구로 마중을 나왔다. 입국심사도 없이 공항 앞에 준비된 검은 토요타 세단에 나를 태우고 장춘 인민대로에 있는 길림성 출판문화국으로 향했다. 새로지은 현대식빌딩 30층 꼭대기층에 위치한 허국장 방으로 나를 비서가 안내했다. 허국장은 나를 반갑게 포옹을 하며 감사의 인사와 함께 길림성 모든곳을 보여주겠으니 몇달 묵으며 자기와 지내자며 두손을 꼬옥 잡았다. 말은 서로 통하지 않으나 옛친구의 우정어린 마음과 마음의 고리가 연결된 느낌이었다.

허화흥국장은 3500만을 다스리는  길림성 지방정부에서 다섯손가락안에드는 고위층으로 문화공보부 장관과 같은 인물 이라는것을 만나고서야 알게되었다. 미국 모텔방에서 아들 간호를위해 전기곤로로 손수 음식장만을하던 이 애간장이 타서 초최해진 중국인아버지가 길림성에서 이름난 행정관료라니 놀랄일이었다.  

허국장비서가 나를 남호빈관으로 안내한다. 이곳은 중국 공산당 고급간부들이 출장와서 묵는 영빈관이다. 모택동, 등소평, 주은래, 화국봉등 유명정치가들이 갑자기 복도에서 천장에서 튀쳐나올 정도로 특별한 숙박시설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허국장의 특별손님이라 나를 소개하니 호텔 지배인이 정중히 대접하라고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것 같다. 복도에도 엘리베터에도 안내직원이 공손하게 인사를 건낸다. 넓은 평지에 사방이 소나무 숲으로 둘러쌓여있고 이곳은 군인보초가 24시간 경비를 서는곳이다. 새벽잠이 없는 나는 츄리닝 바람으로 아침 운동을 할겸 남호빈관 사방을 뛰어다니며 이곳저곳 심어놓은 채소밭, 닭장, 식당등을 둘러보았다. 아마도 손님상에 오르는 식재료는 거의 자급자족할  정도로 농사규모가 컷다. 아침밥상에 올라온 음식들이 입에 꼭맞았다. 특히 고사리나물, 건두부무침등. 오래된 영빈관은 지하에는 볼링장이있고 기념품가게가 한편에 있어 옥구슬로 만든 벼개덮개를 하나구입했다.

남호빈관은 2010년 8월말 중국 후진타오와 북한 김정일의 정상회담 숙소로 사용되어 세상의 관심을 끌기도한 곳이다.

이회담에서 중국이 원하는 동해상의 나진항이 확보되어 앞으로  중국 동북지방에서 생산되는 상품들의 무역항 역활을 하게되었다는 뉴스가 눈길을끈다.  

나진시에는 국제가톨릭 병원이 2005년에 개원하여 동네 주민들을 진료하고있다.












만주국시절 마지막 황제 부이의 궁전, 영화촬영장, 자동차공장, 지역 박물관등 꼼꼼히 구경을 다녔다. 대규모 중국 레스토랑에서는 매일저녁 산해진미 중국요리를 대접 받으며 출판문화국 간부들과 연회를 갖었다. 갑자기 기름진 중국음식을 접하게되니 배탈이 안날수가 없다. 첫날부터 겉으로 표현도 못하겠고 계속 화장실만 들락날락 거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어느날은 만주지방 사슴피로 탕을 만들어 주빈인 나에게 이사람 저사람이 권한다.   

허국장은 부하 간부들을 위해  미국에서 사업하며 돈버는 이야기를 해달라 간청한다. 중국이 개방된후 자본주의 경제를 조금씩 도입하던 초창기라서 나의 자문이 필요하단다. 나의 오랜 연구과제였던 자유경쟁 체재에서 돈버는 법 How To Make Money를 설명해 주었다. 많은 간부들이 듣고는 있지만 이해가 않되는 표정들이다. 왜? 나라에서 집도주고 밥도주고 옷도주고 하는데 내가 내인생 책임져야 하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 같았다.  국가 배급에만 의존하던 출판문화국소속 공무원 몇십만명을 먹여 살려야할 허국장의 고민이 많았기에 더욱열심히 말해주었다. 개혁개방의 새로운 제도하에서 정부의 배급제가 아닌 단위 스스로 자급자족을 해야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단다.  자본주의 경쟁의 원리를 노동자에게 대입시켜 다른 정부 기관보다 사업을해서 이익을 남기며 미래의 수입원 창출을 해야하는 고민거리가 많다한다. 

초대형규모의 출판문화국소속 사업장으로 나를 안내했다. 왠만한 인쇄소규모는 직원 5천명정도가 기본이라한다. 인쇄기계는 독일제 하이델베르그 최신형으로 첨단인쇄기계로 구비되어있다. 일거리가 얼마만큼 있는지 살펴보았다. 주로 모택동 전집등 국가 간행물인쇄가 대부분이라한다. 이대로 나가다간 손가락 빨기기 십상이라 말해주었고 이곳에는 진짜로 유능한 쎄일즈팀이 필요하겠다 생각하여 어떤사람을 뽑고 어떻게 교육하여 어떤 고객확보를 해야하는지 조목조목 얘기해주었다. 미국과 유럽, 한국에서 인쇄고객을 확보하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좋은인연 반가운 만남, 개방으로 나가는 중국 길림성의 추억을 오래오래 마음에 남기며 뉴욕으로 향했다. 중국에서 잘나가는 최고위층 허국장이 천사사업에 적극적으로 중국에서 도움을 준것을 생각하면 내가 이들을 뉴욕에서 도운것은 미미한 일이 아니겠는가. 중국을 이끌어나가는 핵심파워 공산당 리더도 물을 보내야 배가 온다는 이치를 잘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중국 길거리에 서 있으면 중국사람들이 나에게 길을 물어본다. 말만 안하면 내 외모가 영락 중국인과 구분이 않되는 모양이다. 마음씨 좋은 이웃동네 아저씨와 같은  인상으로 허국장과 중국친구들이 나를 기억하도록 더욱 정성을 기울여 물을 보내야 겠다. 허국장은 길립성 국회의장으로 있다가 은퇴하여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전해들었다.

허국장이 한시 한구절을 읇었다. "벗이 먼곳에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마지막 악수를 나누며 나도 화답을 했다.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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