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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무덤에서 피어난 성인의 향기-정남규 요한, 침묵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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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6회 작성일 26-06-27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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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는 단순히 오래된 역사가 아닙니다. 그 역사는 수많은 신앙인들이 

자신의 피로 써 내려간 복음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초대 순교 성인들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우리 곁에는 아직도 이름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은 현대의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정남규 요한(1886~1950)**입니다. 


그는 사제가 아니었습니다. 수도자도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한 평신도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복음 그 자체였고, 그의 마지막은 순교자의 길이었습니다. 


권력보다 하느님을 선택한 사람 


서울 옥인동에서 태어난 정남규는 뛰어난 행정가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공직에 들어가 탄탄한 미래가 보장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의 성공보다 하느님의 뜻을 먼저 선택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높은 관직이 눈앞에 놓였지만 그는 이를 마다했습니다. 

불의와 타협하는 출세보다 양심과 신앙을 지키는 삶을 택했던 것입니다. 

1923년, 뮈텔 주교의 부탁으로 그는 명동성당 총회장이 되었고, 그날부터 그의 삶은 

교회를 위한 봉사의 역사로 바뀌었습니다. 


길거리의 노인들에게 집이 되어준 사람 


정남규 회장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사람들은 갈 곳 없이 거리를 떠돌던 노인들이었습니다. 

굶주리고, 병들고, 세상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던 그들을 바라보며 그는 말했습니다. 

'이분들에게도 따뜻한 집이 필요합니다.' 

1926년, 그는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양로원을 세웠습니다. 후원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큰 재단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내놓았습니다. 

심지어 아들과 딸의 월급까지 보태며 양로원을 운영했습니다. 

그곳에는 모두 267명의 어르신이 머물렀고, 

235명이 그의 손을 잡고 평안히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거리의 구세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자신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사랑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었습니다. 

복음은 책 속의 글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지켜낸 평신도 


정남규는 사랑만 실천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소중한 신앙 유산을 지키는 일에도 자신의 모든 정성을 바쳤습니다. 

79위 한국 순교복자의 시복 추진을 위해 뮈텔 주교가 

황사영 백서 원본을 로마 교황청으로 보내려 할 때, 그는 며칠 밤을 새워가며 

한 자 한 자 정성껏 필사했습니다. 오늘날 절두산 순교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황사영 백서 필사본은 바로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입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의 손길은 한국 교회의 역사를 지켜냈습니다. 


마지막으로 걸어간 길 


1950년 9월 16일 밤. 북한 정치보위부가 그의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정남규 동무 있소? 인민위원회로 함께 갑시다.' 그는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조용히 문을 나섰습니다. 

그것이 가족들이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명동성당 평신도 지도자들과 함께 서대문형무소를 거쳐 북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행진이었는지, 이름 모를 수용소였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의 무덤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왜 교회는 그를 성인의 길에 올리려 하는가 


어떤 사람은 묻습니다. '착한 일을 많이 했다고 성인이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교회는 단순히 선행이 많은 사람을 성인으로 선포하지 않습니다. 

성인은 자신의 삶 전체를 그리스도께 내어드린 사람입니다. 

정남규 요한은 가진 재산을 가난한 이웃에게 내어주었습니다. 

자신의 재능은 교회를 위해 바쳤습니다. 그리고 신앙 때문에 체포되었을 때, 

그는 믿음을 버려 목숨을 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그리스도를 선택했습니다. 

끝까지 교회를 선택했습니다. 끝까지 사랑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말하는 '영웅적 덕행'이며, 목숨으로 신앙을 증언한 '순교자의 삶'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오늘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며, 

복자와 성인의 반열에 오르도록 그의 삶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무덤은 없지만 향기는 남아 있습니다 


정남규 회장이 세운 양로원은 그의 납북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58년 성가수녀회가 그 정신을 이어받아 오늘날까지 사랑의 봉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름은 잊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덕은 세월을 넘어 살아갑니다. 정남규 요한은 한 번도 강론을 하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제의를 입어본 적도 없습니다. 주교의 지팡이를 잡아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 자체를 한 편의 복음으로 남겼습니다. 

그는 말이 아니라 사랑으로 설교했고, 봉사로 기도했으며, 마침내 자신의 생명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했습니다. 

어쩌면 오늘도 그는 이름 없는 무덤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은 목숨보다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매일 하느님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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